건강과 에너지
이 글은 녹색평론 통권 제 83호에서 뽑아 실은 것이다. 지적 재산권에서 자유로운 문서는 아니지만, 좋은 내용이 멀리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원저작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싣는다. – 2005년 12월 18일, 직지지기 김민수
-- 이진아1
물도 물 나름이다
최근 읽은 책 중에 인상적이었던 것으로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책이 있다. 아마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서도 이미 읽었거나 이야기를 들은 분들도 많이 계실 것이다. 이 책에는 물의 결정체 사진이 많이 실려 있는데, 정말 신기한 것은 물에게 말을 하거나 글자를 보여주거나 음악을 들려주거나 사진을 보여주고 나서 그 결정체 사진을 찍으면, 그게 어떤 내용의 것이었는가에 따라 결정체의 모습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사랑해요"라는 말을 들려주거나 좋은 음악을 들려주거나 아름다운 사진을 보여준 물은 보석처럼 빛나는 예쁜 육각형 결정을 보여주고 "망할 놈", "악마" 등의 말을 들려주거나 시끄럽고 분노에 넘치는 음악을 들려주거나 흉측한 사진을 보여준 물은 결정체가 깨져 보기 흉한 모습으로 찍혀 있다. 더욱 신기한 것은 어떤 나라 말이든 같은 효과를 지닌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대안의학을 연구한 사람으로서 파동치료에 관심을 갖다가 우연히 물의 결정체를 찍게 되어, 그 결정체가 나타나는 모양이 물에게 어떤 자극을 주었는지에 따라 전혀 달라지는 것을 보고 물도 의식을 갖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와 관련하여 그는 많은 실험을 했는데, 그중에는 오염된 호수 물을 떠서 결정체 사진을 찍고, 다음으로 그 호수 앞에서 대단히 도가 높은 승려가 기도를 한 후 결정체 사진을 찍는다든지, 여러 사람들이 소리를 내어 맑은 소망을 빈 후 찍는다든지 하는 것도 있었다. 물론 어느 것이든 같은 결론을 지지해주었다. 기도하기 전의 물 결정은 모습이 흉했지만, 기도한 후의 결정은 아름다워졌다. 심지어는 아주 결정체가 예쁘게 찍히던 물의 결정체 모습이 갑자기 불안정해져서 웬일인가 궁금해 했더니, 바로 그 시간에 걸프 전쟁이 발발했었다는 것을 다음날 아침 알게 되었다는 에피소드도 실려 있다. 저자는 우리의 의식이 사물을 바꾼다는 신념을 갖게 되어, 우리가 노력한다면 사랑과 평화로 가득 찬 세계를 만들 수 있다고, 그를 위해 힘쓰자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하고 있다.
언제나 신비스러운 현상을 '과학'으로 설명해버리면 그 매력이 떨어지지만, 이런 현상도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 물은 이 지상의 물질 중에서 파동을 유도해서 흡수해버리는 비율이 가장 큰 물질 중의 하나이다. 도자기도 파동을 흡수하는 성격이 강한데, 물의 파동 흡수력은 도자기의 그것보다 15배 이상 강하니까, 물이란 아주 특수한 물질이다. 이렇게 파동을 흡수하는 힘이 큰 물질에 파동이 닿으면 그 물질은 이 파동에 의해 진동을 하게 되고, 이때 생기는 마찰로 인해 파동의 에너지가 열로 되어 상실되어버린다. 그러니까 이런 물질이 파동을 흡수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물이 파동을 흡수하는 성질이 강한 원리는 여러 방면에서 이용되고 있다. 가장 극적인 예가 우주선의 전자파 피난실에 쓰이는 것이다. 우주 상공에서는 때로 극심한 전자기파 교란이 폭발적으로 일어날 때가 있는데, 이 전자기파가 너무 강해서 우주선에 타고 있는 우주 비행사의 상태에 아주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이런 전자기파 폭발이 기기를 통해 감지되면 우주 비행사들은 피난실로 도피해서 그 폭발이 가라 앉을 때까지 기다리는데, 이때 피난실은 좁은 방으로 사면의 벽과 천장, 바닥에 상자 모양의 플라스틱 물병 안에 식수를 담은 것을 마치 벽돌처럼 차곡차곡 쌓아서 막은 것이다. 어차피 사용될 식수를 이용해서 물로된 전자파 차단벽을 만드는 것이다.
그밖에도 파동치료에 많이 쓰이는 파동수도 이런 성질을 이용한 것이다. 우리 몸의 건강한 세포와 질병 세포는 각각 고유한 파동을 가지고 있는데, 예를 들어 암에 걸린 사람은 그 암세포로 인해 독특한 파동 패턴을 갖는다. 이때 이 사람이 가져야 할 건강한 파동 패턴을 만들 수 있는 패턴(즉, 치료 패턴)을 가진 파동을 물에 쏘게 되면 그 물의 파동은 그 치료 패턴으로 변하게 되고, 이것을 계속 마시게 되면 우리 몸 세포 속의 물(70%가 넘는다)에 역시 그 파동이 흡수되어 암세포의 파동과 합성되어서 건강한 파동 패턴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그러면 암세포는 차차 소멸되고 세포들이 모두 건강해지게 될 것이다.
우리의 의식 상태에 따라 뇌파를 비롯한 몸의 파동이 바뀐다는 것은 이미 밝혀져 있다. 말은 우리의 의식을 좌우한다. 그게 어느 나라 말이든 욕을 하는 사람은 그 순간 부정적인 파동을 낼 것이며, 감사의 말을 하는 사람은 긍정적인 파동을 낼 것이다. 또한 음악도 곡에 따라 다 다른 파동을 가진 것으로 밝혀져 있으며, 특히 모차르트의 음악 같은 것은 아주 좋은 파동을 가지고 있어서 생명체에 좋은 영향을 준다는 것도 밝혀져 있다. 또한 파동은 사진에도 실려, 좋은 파동을 내는 곳은 사진을 찍어서 보아도 그 사진에서 좋은 파동이 나온다는 것도 밝혀져 있다. 그러니까 물을 떠서 놓고 그 물에 좋은 파동, 예를 들어 감사의 말을 할 때의 몸의 파동, 좋은 음악의 파동 등을 투사하면 물의 파동이 그 영향을 받아 안정되므로 균형 잡힌 모양의 결정체가 나오고, 욕을 할 때의 몸의 파동, 오염물질 등 나쁜 파동을 투사하면 그 파동의 영향으로 물의 파동도 불규칙해지고, 그의 영향을 받아 결정체가 깨져 불균형한 모양으로 변한다. 이것은 과학적으로 충분히 설명될 수 있는 현상이다.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간절히 소망하는 일이 있으면 새벽 일찍 일어나 샘물 한 그릇을 정성들여 떠서 장독대 위에 놓고 기도를 한 후 그 물로 밥을 짓거나 식구들에게 마시게 했다. 새벽은 가장 인체에 좋은 파동이 대기 속에 충만해 있는 시간이며, 장독대는 우리나라 주택에서 가장 태양 에너지를 많이 받아 좋은 파동이 있는 곳이고, 여기서 어머니의 사랑에 충만한 의식까지 더해져 좋은 파동이 물 안에 모이게 되면, 이 물을 몸 안에 섭취하는 사람들의 상태가 좋아져서 일이 잘될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물 한 그릇의 치성에서 우주 비행사의 보호 방법에 이르기까지, 물의 뛰어난 파동 흡수력이라는 과학적 원리가 적용되는 것이다. 각각 다른 파동을 흡수한 물은 외관으로는 똑같아도 그 성질이 전혀 다를 것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가르침도 있었지만, "물도 물 나름"인 것이다.
전기로 데운 물의 문제점
지난 호(통권 제82호) <녹색평론>에 농촌에서 '좋은 삶'의 터전을 찾는 사람들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나 역시 지난 몇년간 열심히 그런 터전을 모색했던 사람 중의 하나다. 그런데 아무리 마음에 들고 지내기 쾌적한 곳이 있어도 그런 곳에 지은 집에서 잠을 자게 되면 이상하게도 잠을 깊이 자지 못하고 악몽에 시달리거나 가위 눌리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구들을 놓아 불을 때는 곳에서는 깊이 자는 경우도 있지만 보일러를 쓰는 경우는 예외 없이 그런 악몽과 불면의 밤을 겪는다. 충분히 낡고 가재도구가 거의 없어 화학물질의 방출도 의심할 수 없고, 통풍도 충분히 잘 되며, 수맥 같은 것도 있어 보이지 않는데도, 그리고 낮 동안에는 즐겁고 쾌적하게 지냈을 때라도 밤만 되면 반드시 몸의 상태가 불편해지는 것이다.
워낙 예민하니까, 혹은 내 집이 아니니까 어딘가 불편해서 그렇겠지 하고 깊이 생각하지 않은 채로 넘기기는 했어도 그런 곳에서 며칠만 지내고 나면 눈에 띄게 건강이 악화되니까 차차 그런 곳을 찾지 않게 되어갔다. 그러다가 그게 나만 겪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강원도 화천 시골교회에서 지체장애자와 환자들과 더불어 나누는 삶을 살고 계신 임락경 목사님께 들은 얘기다. 강원도 지방 집들 가운데 그런 곳이 많듯이 시골교회에도 보일러실에 나무 보일러, 기름 보일러, 그리고 심야 전기 보일러가 있다. 보일러는 모두 같은 물탱크에 연결되어 있어, 나무를 때거나 석유를 태우거나 심야전기 보일러의 스위치를 넣거나 똑같은 물이 데워져 파이프를 타고 돌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무를 때서 난방을 하면 환자들이 모두 편안하게 잠잘 수 있고, 기름을 태우면 그보다는 못해도 그리 큰 지장은 없지만 심야전기 보일러에 스위치를 넣으면 아픈 사람들이 떼굴떼굴 구르며 고통스러워한다는 것이다.
이 현상 역시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심야전기 보일러는 밤에 남아도는 전력을 이용하는 것으로, 전기저항이 강한 금속 코일에 전류를 통과시키면 그 저항으로 열이 발생하므로 이 열로 물을 데워 방바닥을 순환시키는 구조로 되어있다. 전기로 열을 낼 경우에는 강한 전자파가 발생한다. 이 파동이 물에 흡수되어 물의 파동이 전자파의 파동의 영향으로 심하게 교란될 것이며, 이렇게 파동이 불안정한 물이 파이프를 타고 방바닥을 돌 때 그 바닥에 몸을 붙이고 누워있는 사람의 몸 안에 있는 물에도 그 파동이 흡수될 것이다. 그러면 몸의 세포 전체의 파장이 심하게 교란될 것이다. 인체는 고유한 파동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세포가 경락을 따라 흐르는 전기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으므로, 전자기파의 강한 파장에 의해 교란되면 몸의 생명활동이 전체적으로 엉망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같이 잠버릇이 예민한 사람은 결코 편한 잠을 잘 수 없을 것이고, 인체의 교란으로 인한 만성적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이라면 그 증세 및 그에 따른 고통이 더욱 심해질 것이다.
반면 나무의 파동은 우리 몸의 파동과 매우 유사한 것임이 밝혀져 있다. 그러니까 나무를 때서 구들을 직접 데우거나 물을 데워 그것으로 방바닥을 데워 난방을 하는 방에서는 아주 편안하고 깊은 잠을 잘 수 있는 것이다. 난방뿐 아니라 장작불을 때서 밥을 하면 밥맛이 아주 좋고 먹고 난 후에도 소화가 잘 되며, 물을 끓이면 차맛이 한맛 더해진다는 것을 경험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음식에도 차에도 물이 많이 들어가니까 역시 그 물이 나무의 파동을 흡수할 것이고, 그렇게 해서 우리 몸에 친화적인 파동으로 변한 물이 몸 속으로 들어가면 세포 내에 포함되어 있는 물 분자들의 파동을 도미노 식으로 변화시켜갈 거니까 몸의 컨디션이 좋아지고 소화흡수력도 왕성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전기로 음식을 하거나 물을 끓여서 먹는 것은 어떨까? 굳이 답을 듣지 않아도 독자 여러분은 이미 판단하실 것이다. 그리고 생활 속에서 겪었던 여러가지 경험이 하나둘 떠오르실 것이다. 아하, 그래서 전기밥솥으로 밥을 하면 불에다 직접 한 것보다 맛이 없구나, 그래서 몸이 좀 안 좋을 때, 입덧을 하는 임산부의 경우 전기밥솥의 밥이 끓는 냄새만 맡아도 그 냄새가 싫게 느껴지는구나, 요즘 유행하는 전기 주전자로 끓인 물로 차를 마시면 맛이 떨어지면서 이상하게도 목에 잘 넘어가지 않는 느낌, 혀가 아린 듯 불쾌한 뒷맛이 남는구나 등등. 좀 극단적인 예지만, 나는 한때 천식으로 고생을 했는데, 가스레인지를 틀기만 하면 기침과 재채기가 심해져서, 기회를 보아서 전기로 열을 내는 전기레인지를 장만한 적이 있다. 이 전기레인지로 2-3년간 조리를 했는데, 그동안 나 자신을 포함한 온 식구들의 건강이 크게 악화되었다. 그러다가 물과 전기의 파동 문제에 눈을 뜨고 난 후 다시 가스레인지를 사용했더니 온 식구의 건강이 갑자기 좋아지는 것을 경험했다.
몸이 약한 사람을 스승으로 삼는 문화
우리 문화는 서구 근현대 문화의 영향을 받아 강자를 존중하고 약자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서구 선진국에서는 지체장애인 인권보호가 우리 나라에서보다는 앞서 있다 하더라도 약자도 인간이니까 보호해주어야 한다는 입장에서이지, 건강하고 유능하며 강한 사람을 존중하고 약자는 열등한 존재로 평가한다는 점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요즘 지배적인 기준으로 볼 때 약하고 열등한 사람을 오히려 더욱 지혜를 가진 유능한 사람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과거 비서구 사회에서는 많이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노인에 대한 평가인데, 노인을 인생 경험이 많은 스승으로서 우대하는 것은 농경사회 어디서나 공통적이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앞을 못 보는 사람이나 귀먹고 말 못하는 사람을 '현자'로 존중한다. 정상적인 사람이 지니지 못하는 초인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 인간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할 수 있는 사람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실제로 장님은 정상적인 사람보다 청각이나 본능적 직관이 뛰어나며 들리지 않아서 말을 못하는 경우에는 시각과 기타 감각이 뛰어나다는 것은 여러가지 예를 통해서 입증되고 있다. 폐경기가 지난 나이 든 여인을 초능력이 있는 것으로 인정해서, 그때부터야 샤먼(예언자 및 치료사)이 될 자격이 주어지는 사회가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많이 있었다.
지금 우리나라 사회와 같은 분위기에서는 몸이 약해지거나 기능이 떨어지면 그야말로 천덕꾸러기가 된다. 입맛이 까다롭거나 잠버릇이 예민한 사람은 반드시 주위로부터 타박을 받는다. 그러나 입맛이 까다롭다는 것은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기 위해 생긴 고약한 버릇 때문은 아니다. 음식물 속의 독성(어느 식품에나 조금씩은 다 독성이 포함되어 있고, 이것을 중화하는 능력은 사람의 체질이나 혈액형, 건강상태 등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난다)을 이겨내는 능력이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몸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는 음식만 가려먹으려는, 즉 독성 분해 능력이 약한 사람들이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한 본능적인 생활태도다. 잠버릇 예민한 것 역시 멜라토닌 등 수면 호르몬 생성 능력이 약해서 수면 중추가 조금만 교란되어도 잠을 못 자는 사람들이 충분한 수면을 가능하게 해줄 공간을 확보하려는 본능에서 나오는 것이다. 나는 이전에 녹색 평론에 실었던 아토피와 학력저하라는 글(통권 제71호)을 통해서 아토피 아이들은 독성을 분해하는 능력이 보통 사람들보다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조금의 오염물질도 견디지 못하고 온몸으로 그것을 쫓아내려고 애를 쓰는 것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그러니까 아토피 아이들의 고통은 우리들의 생활공간이 너무 많은 독성으로 오염되어 있음을 온몸으로 알리는 절규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산업혁명 이후부터, 특히 거대한 아메리카 대륙을 유럽인이 점거하고 급속한 개발을 추진해온 이래로, 1950년대 이후 석유와 전기가 대중적인 에너지로 생활터전의 기초가 되면서부터는 더더욱, 지구상의 모든 사회가 점점더 빠른 속도와 큰 규모로 새로운 기술과 물질의 사용을 겁없이 시도해오고 있다. 그로 인해 기술개발 당시에는 알 수 없었던 부작용이 봇물 터진 듯 쏟아져나오고 있다. 답답한 것은 이런 사회에서 정책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은 아주 튼튼하고 적응력이 강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전기 보일러 난방 주택에서 자도 크게 문제점을 느끼지 못할 뿐 아니라 느낀다 하더라도 개의치 않고 살아가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 이런 구조 속에서 가장 고통을 당하는 것은 몸이 약한 사람들이다. 황토방에 생나무 켜서 만든 마루에 살면 큰 문제가 없었을 사람들이 시멘트 철근 건물에 합성수지 내장재로 시공한, 신체파장 교란효과가 크고 독성 물질이 많이 배출되는 주택에 사니까 아토피 증세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사람들의 고통은 충분한 주목을 끌지 못한다. 그건 약하고 예민한 사람이라서 그렇게 별나게 구는 것으로 간단히 무시된다. 사업 아이템을 정하든, 에너지 정책을 정하든, 방송 프로그램 내용을 정하든, 그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의 경우 튼튼한 몸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 때문에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에 오를 수 있었고, 그렇게 해서 강자의 집단에 속했기 때문에 약자의 고통을 알기 어려워졌으며, 안다 하더라도 자신이 속한 집단의 기득권을 지키지 않으면 안되는 입장에 이미 놓여져버린 사람들이다.
건강한 에너지 확보를 위하여
임락경 목사님의 시골교회에 기거하는 병약한 환자들, 지체장애인들의 고통은 우리에게 엄청난 사실을 알려준다. 우리의 농촌주택들 가운데 상당수는 기본적으로 결코 '건강주택'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 이유는 심야전기 보일러를 이용한 난방 때문이다. 왜 심야전기 보일러가 이렇게 보급되었을까?
그것은 우리나라가 원자력 발전에 의존해서 전기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수력이나 화력 발전이라면 필요한 때 필요한 만큼 전기를 생산할 수 있지만, 원자력 발전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원자로는 한번 가동하면 24시간 연중무휴로 돌리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낮에는 사람들의 활동이 많아서 전기가 많이 쓰이지만 밤에는 전기 소비수준이 훨씬 떨어진다. 그러나 원자력 발전소에서 계속 전기를 생산하며, 전기는 저장하는 방법이 거의 없기 때문에 밤에는 전기가 남아도는 것이다. 이것을 4분의 1도 안되는 가격으로 공급할 수 있기 때문에 농촌지역 등에서 심야전기 보일러 사용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밖에는 달리 난방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 같다. 가스는 농촌지역에선 LPG 정도를 사용할 수 있을 뿐이며 가격이 비싸다. 석유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아무리 농촌이라 할지라도 나무를 풍부하게 구할 수 있는 지역은 한정되어 있으며, 그것 역시 너도나도 쓴다면 금방 동이 날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이 없으니까 심야전기 보일러를 이용하지 않을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면, 그에 따라 나오는 결론은 우리나라 농촌의 주택에 살면서 건강해지길 기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농촌이 건강하지 않으면 우리나라 전체가 건강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아니 존재 자체가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지난 호의 로마, 마야, 그리고 한국의 농촌에서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가지 방법은 있다. 그것은 태양 에너지를 이용하는 것이다. 태양 에너지는 지속 가능하며 오염을 일으키지 않는 에너지로, 너무나 생명파괴적인 부작용을 낳는, 그리고 몇십년 지나지 않아 종말을 고하지 않을 수 없는 석유문명의 대안으로서 이 분야 전문가들이 강력히 추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맑은 날이 많은 편이어서 태양 에너지를 이용하기에 그리 불리한 조건은 아니다.
그러나 태양 에너지를 이용하려면 그것을 이용하는 시스템이 갖추어져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전기나 석유를 이용하기 위한 인프라도 하루이틀에 구축된 것이 아니다. 그래도 전기나 석유를 이용하는 데는 그 기술을 이미 개발한 선진국들이 우리 정부를 움직여 강력하게 밀어붙였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진전되었지만, 아직도 태양 등 대안적 에너지는 주류에서 사업화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만일 이용하려면 개인적으로 투자해서 설비를 갖추어야 한다.
그런 문제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 길로 가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환경조건이 점점더 악화될 것이며, 따라서 사람들의 건강상태도 점점더 악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가깝게는 잘못된 우리의 생활습관에서, 좀더 멀게는 정부의 무지막지한 개발정책으로 인해서, 좀더 멀게는 우리나라로 끊임없이 오염된 바람을 보내오는 중국의 더욱 무지막지한 개발정책으로 인해서, 더 큰 범위에서는 지구환경 자체가 빠른 속도로 악화되어 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의 생활공간은 더욱더 살기 힘든 조건으로 변할 것이다. 그러면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도시를 떠나 생명의 공간을 찾아 시골로 몰려들 것이다. 그러나 시골에서 기다리는 것도 생명을 담보해주기는커령 크게 교란시키는 공간이라면 우리에게는 더이상 갈 곳이 없어지는 것이다.
과연 태양 에너지는 우리에게 생명을 보장해줄 에너지인가? 이제까지 새로운 에너지 형태가 개발되어 한동안 쓰이고 나면 한참 후에야 밝혀졌듯이 아직은 알 수 없는 부작용은 없을까? 어떻게 해야 우리의 생활공간 속에서 태양 에너지를 이용해서 우리의 생명력을 고양시킬 수 있을까? 다음 글에서는 우리의 건강과 농촌문화, 그리고 태양 에너지의 관계에 대해 좀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
환경과 건강문제 관련 저술가. 저서 <딱 1년만 자연주의로 살아보기>, <아토피를 잡아라>(공저), 역서 <녹색세계사> 등이 있다. 이 글은 본지 지난 호(통권 제82호)의 "[로마, 마야, 그리고 한국의 농촌]"에 이어지는 글이다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