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월은 직지지기가 경로도 모른채 아래아 한글 문서로 가지고 있었는데, 그 문서 정보를 보면 사범대 국어교육과 김 문기씨가 2000년 4월 10일 월요일에 입력(또는 저장)한 것으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그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금오신화

금오신화, 그림 출처: http://www.seelotus.com/

만복사저포기

(전라도) 남원에 양생이 살고 있었는데, 일찍이 어버이를 잃은 데다 아직 장가도 들지 못했으므로 만복사(萬福寺)의 동쪽에서 혼자 살았다. 방 밖에는 배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마치 봄이 되어 꽃이 활짝 피었다. 마치 옥으로 만든 나무에 은조각이 쌓여 있는 것 같았다. 양생은 달이 뜬 밤마다 나무 아래를 거닐며 낭랑하게 시를 읊었는데, 그 시는 이렇다.

시를 다 읊고 나자 갑자기 공중에서 말소리가 들려 왔다.

양생은 마음속으로 기뻐하였다. 그 이튿날은 마침 삼월 이십 사일이었다. 이 고을에서는 만복사에 등불을 밝히고 복을 비는 풍속이 있었는데, 남녀들이 모여들어 저마다 소원을 빌었다. 날이 저물고 법회도 끝나자 사람들이 드물어졌다. 양생이 소매 속에서 저포를 꺼내어 부처 앞에다 던지면서 (소원을 빌었다.)

빌기를 마치고 곧 저포를 던지자, 양생이 과연 이겼다. 그래서 부처 앞에 무릎은 꿇고 앉아서 말하였다.

그는 불좌(佛座) 뒤에 숨어서 그 약속에 이루어지기를 기다렸다. 얼마 뒤에 한 아름다운 아가씨가 들어오는데, 나이는 열대 여섯쯤 되어 보였다. 머리를 두 갈래로 땋고 깨끗하게 차려 입었는데, 아름다운 얼굴과 고운 몸가짐이 마치 하늘의 선녀 같았다. 바라볼수록 얌전하였다.

그 여인은 기름병을 가지고 와서 등잔에 기름을 따라 넣은 다음 향을 꽂았다. 세 번 절하고 꿇어앉아 슬피 탄식하였다.

그리고는 품속에서 축원문을 꺼내어 불탁 위에 바쳤다. 그 글은 이렇다.

여인이 빌기를 마치고 나서 여러 번 흐느껴 울었다. 양생은 불좌 틈으로 여인의 얼굴을 보고 마음을 걷잡을 수가 없었으므로, 갑자기 뛰쳐나가 말하였다.

그는 여인이 부처님께 올린 글을 보고 얼굴에 기쁨이 흘러 넘치며 말하였다.

여인이 대답하였다.

이때 만복사는 이미 퇴락하여 스님들은 한쪽 구석진 방에 머물고 있었다. 법당 앞에는 행랑만이 쓸쓸하게 남아 있고, 행랑이 끝난 곳에 아주 좁은 판자방이 있었다.

양생이 여인의 손을 잡고 판자방으로 들어가자, 여인도 어려워하지 않고 들어왔다. 서로 즐거움을 나누었는데, 보통 사람과 한 가지였다.

이윽고 밤이 깊어 달이 동산에 떠오르자 창살에 그림자가 비쳤다. 문득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 여인이 물었다.

시녀가 말하였다.

여인이 말하였다.

시녀가 그 명령대로 가서 뜨락에 술자리를 베푸니, 시간은 벌써 사경(四更)이나 되었다. 시녀가 차려 놓은 방석과 술상은 무늬가 없이 깨끗하였으며, 술에서 풍기는 향내도 정녕 인간 세상의 솜씨는 아니었다.

양생은 비록 의심나고 괴이하였지만, 여인의 이야기와 웃음소리가 맑고 고우며 얼굴과 몸가짐이 얌전하여, '틀림없이 귀한 집 아가씨가 (한때의 마음을 잡지 못하여) 담을 넘어 나왔구나' 생각하고는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다.

여인이 양생에게 술잔을 올리면서 시녀에게 명하여 '노래를 불러 흥을 도우라' 하고는, 양생에게 말하였다.

양생이 흔연히 허락하고는 곧 「만강홍(滿江紅)」 가락으로 가사를 하나 지어 시녀에게 부르게 하였다.

노래가 끝나자 여인이 서글프게 말하였다.

양생이 이 말을 듣고 한편 놀라며 한편 고맙게 생각하여 대답하였다.

그러면서도 여인의 태도가 범상치 않았으므로, 양생은 유심히 행동을 살펴보았다. 이때 달이 서산에 걸리자 먼 마을에서는 닭이 울고 절의 종소리가 들려 왔다. 먼동이 트려 하자 여인이 말하였다.

시녀는 대답하자마자 없어졌는데,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여인이 말하였다.

양생이 여인의 손을 잡고 마을을 지나가는데, 개는 울타리에서 짖고 사람들이 길에 다녔다. 그러나 길가던 사람들은 그가 여인과 함께 가는 것을 알지 못하고, 다만

하였다. 양생이 대답하였다.

날이 새자 여인이 양생을 이끌고 깊은 숲을 헤치며 가는데, 이슬이 흠뻑 내려서 갈 길이 아득하였다. 양생이

하자 여인이 대답하였다.

여인이 또(『시경)에 나오는 옛시 한수를 외워) 농을 걸어왔다.

양생또한 (『시경)에 나오는 옛시 한 수를)

둘이 읊고 한바탕 웃은 다음에 함께 개령동(開寧洞)으로 갔다. (한 곳이 이르자) 다북쑥이 들을 덮고 가시나무가 하늘에 치솟은 가운데 한 집이 있었는데, 작으면서도 아주 아름다웠다.

그는 여인이 이끄는 대로 따라 들어갔다. 방안에는 이부자리와 휘장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밥상을 올리는 것도) 어젯밤 (만복사에) 차려온 것과 같았다. 양생은 그곳에 사흘을 머물렀는데, 즐거움이 평상시와 같았다.

시녀는 아름다우면서도 교활하지 않았고, 그릇은 깨끗하면서도 무늬가 없었다. 인간세상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여인의 은근한 정에 마음이 끌려, 다시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얼마 뒤에 여인이 양생에게 말하였다.

드디어 이별의 잔치를 베풀며 헤어지게 되자, 양생이 서글프게 말하였다.

여인이 말하였다.

양생이 '좋다'고 하자 곧 시녀에게 시켜, 사방의 이웃에게 알려 모이게 하였다.

첫째는 정씨이고 둘째는 오씨이며, 셋째는 김씨이고 넷째는 류씨인데, 모두 문벌이 높은 귀족집의 따님들이었다. 이 여인과는 한 마을에 사는 친척 처녀들이었다. 성품이 온화하며 풍운이 보통 아니었고, 총명하고 글도 또한 많이 알아 시를 잘 지었다.

이들이 모두 칠언절구 네 수씩을 지어 양생을 전송하였다.

정씨는 태도와 풍류가 갖추어진 여인인데, 구름같이 쪽진 머리가 귀밑을 살짝 가리고 있었다. 정씨가 탄식하며 시를 읊었다.

오씨는 두 갈래로 땋은 머리에 가냘픈 몸매로 속에서 일어나는 정회를 걷잡지 못하며, 뒤를 이어 읊었다.

김씨가 얼굴빛을 가다듬고 얌전한 태도로 붓을 잡더니, 앞에 읊은 시들이 너무 음탕하다고 꾸짖으면서 말하였다.

그리고는 낭랑하게 시를 읊었다.

류씨는 엷게 화장하고 흰옷을 입어 아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법도가 있어 보였다. 말없이 가만있다가 (자기의 차례가 되자) 빙그레 웃으면서 시를 지어 읊었다.

여인은 류씨가 읊은 시의 마지막 장을 듣고 감사하여, 앞으로 나와서 말하였다.

그리고는 칠언율시 한 편을 지어 읊었다.

양생도 또한 문장에 능한 사람이어서, 그들의 시법이 맑고도 운치가 높으며 음운이 맑게 울리는 것을 보고 칭찬하여 마지않았다. 그도 곧 즉석에서 고풍(古風) 장단편 한 장을 지어 화답하였다.

술이 다하여 헤어지게 되자, 여인이 은그릇 하나를 내어 양생에게 주면서 말하였다.

양생이 대답하였다.

(이튿날) 양생은 여인의 말대로 은그릇 하나를 들고 보련사로 가는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정말 어떤 귀족의 집안에서 딸자식의 대상을 치르려고 수레와 말을 길에 늘어 세우고서 보련사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길가에서 한 서생이 은그릇을 들고 서 있는 것을 보고는, 하인이 주인에게 말하였다.

주인이 말하였다.

하인이 말하였다.

주인이 마침내 탔던 말을 멈추고 (양생에게 그릇을 얻게 된 사연을) 물었다. 양생이 전날 약속한 그 대로 대답하였더니, (여인의) 부모가 놀라며 의아스럽게 여기다가 한참 뒤에 말하였다.

그 귀족은 말을 마치고 먼저 (개령사로) 떠났다. 양생은 우두커니 서서 (여인이 오기를) 기다렸다. 약속하였던 시간이 되자 과연 한 여인이 계집종을 데리고 허리를 간들거리며 오는데, 바로 그 여인이었다. 그들은 서로 기뻐하면서 손을 잡고 절로 향하였다.

여인은 절 문에 들어서자 먼저 부처에게 예를 드리고 곧 흰 휘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친척과 절의 스님들은 모두 그 말을 믿지 못하고, 오직 양생만이 혼자서 보았다. 그 여인이 양생에게 말하였다.

양생이 그 말을 여인의 부모에게 알리자, 여인의 부모가 시험해 보려고 같이 밥을 먹게 하였다. 그랬더니 (그 여인의 얼굴은 보이지 않으면서) 오직 수저 놀리는 소리만 들렸는데, 인간이 식사하는 것과 한가지였다. 그제야 여인의 부모가 놀라 탄식하면서, 양생에게 권하여 휘장 옆에서 같이 잠자게 하였다. 한밤중에 말소리가 낭랑하게 들렸는데, 사람들이 가만히 엿들으려 하면 갑자기 그 말이 끊어졌다.

여인이 양생에게 말하였다.

사람들이 여인의 영혼을 전송하자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혼이 문 밖에까지 나가자 소리만 은은하게 들려 왔다.

남은 소리가 차츰 가늘어지더니 목메어 우는 소리와 분별할 수 없게 되었다.

여인의 부모는 그제야 그 동안 있었던 일이 사실인 것을 알게 되어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다. 양생도 또한 그 여인이 귀신인 것을 알고는 더욱 슬픔을 느끼게 되어, 여인의 부모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울었다.

여인의 부모가 양생에게 말하였다.

이튿날 양생이 고기와 술을 마련하여 개령동 옛자취를 찾아갔더니, 과연 시체를 임시로 묻어 둔 곳이 있었다. 양생은 제물을 차려 놓고 슬피 울면서 그 앞에서 지전(紙錢)을 불사르고 정식으로 장례를 치러 준 뒤에, 제물을 지어 위로하였다.

장례를 치른 뒤에도 양생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였다. 밭과 집을 모두 팔아 사흘 저녁이나 잇따라 재를 올렸더니, 여인이 공중에서 양생에게 말하였다.

양생은 그 뒤에 다시 장가들지 않았다. 지리산에 들어가 약초를 캐었는데, 언제 죽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이생규장전

송도(松都:개성) 낙타교 옆에 이생이 살고 있었는데, 나이는 열 여덟이었다. 풍운이 맑고 재주가 뛰어나 일찍부터 국학(國學)에 다녔는데, 길을 가면서도 시를 읽었다.

선죽리(善竹里) 귀족집에서는 최씨 처녀가 살고 있었는데, 나이는 열대 여섯쯤 되었다. 태도가 아리땁고 수도 잘 놓았으며, 시와 문장도 잘 지었다. 세상 사람들이 그들을 이렇게 칭찬하였다.

이생은 일찍부터 책을 옆에 끼고 학교에 다닐 때에 언제나 최씨네 집 북쪽 담 밖으로 지나다녔다. 수양버들 수십 그루가 간들거리며 그 담을 둘러싸고 있었다.

어느 날 이생이 그 나무 아래에서 쉬다가 담 안을 엿보았더니, 이름난 꽃들이 활짝 피고 벌과 새들이 다투어 재잘거리고 있었다. 그 곁에는 작은 누각이 있었는데, 꽃떨기 사이로 은은히 보였다. 구슬발이 반쯤 가려 있고 비단 휘장이 낮게 드리워져 있었는데, 한 아리따운 아가씨가 수를 놓다가 지쳐 잠시 바늘을 멈추며 턱을 괴고 시를 읊었다.

이생은 그 여인이 읊은 시를 듣고 마음이 근질근질하여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집의 담이 높고도 가파르며 안채가 깊숙한 곳에 있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서운한 마음으로 (학교에)갔다. 그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흰 종이 한 장에다 시 세 수를 써서 기와 쪽에 매달아 담 안으로 던져 넣었다.

최랑이 몸종 향아(香兒)를 시켜서 그 편지를 주워다 보니, 바로 이생이 지은 시였다. 최랑이 그 시를 펼쳐서 두세 번 읽고는 마음속으로 혼자 기뻐하였다. 종이쪽지에 여덟 자를 써서 담 밖으로 던져 주었다.

이생이 그 말대로 황혼이 되자 최랑의 집을 찾아갔다. 갑자기 복사꽃 한 가지가 담 위로 넘어오면서 하늘거리는 그림자가 나타났다. 이생이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그넷줄이 대바구니를 매어서 아래로 늘어뜨려 놓았다. 이생을 그 줄을 잡고 담을 넘었다.

마침 달이 동산에 떠오르고 꽃 그림자가 땅에 비껴 맑은 향내가 사랑스러웠다. 이생은 자기가 신선 세계에 들어왔다고 생각하여 마음은 비록 기뻤지만, 자기의 마음이나 지금 하려는 일이 비밀스러워서 머리칼이 모두 곤두섰다.

이생이 좌우를 둘러보았더니, 최랑은 꽃떨기 속에서 향아와 같이 꽃을 꺾어 머리에 꽂고는, 외진 곳에 자리를 펴고 앉아 있었다. 최랑이 이생을 보고 방긋 웃으면서 시 두 구절을 먼저 읊었다.

이생이 뒤를 이어 시를 읊었다.

최랑이 얼굴빛이 변하면서 말하였다.

향아가 시키는 대로 가버리자, 사방이 고요하여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이생이 최랑에게 물었다.

최랑이 말하였다.

최랑이 술 한 잔을 따라 이생에게 권하면서 고풍(古風)으로 한 편을 읊었다.

이생도 바로 시를 지어 화답하였다.

술자리가 끝나자 최랑이 이생에게 말하였다.

말을 마치고 최랑이 북쪽 창문으로 들어가자 이생도 그 뒤를 따라갔다. 누각에 달린 사다리가 있었는데, 그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더니 과연 그 다락이 나타났다. 문방구와 책상들이 아주 말끔했으며, 한쪽 벽에는「연강첩장도(烟江疊 圖)」와 「유황고목도(幽篁古木圖)」가 걸려 있었는데, 모두 이름난 그림이었다. 그 그림 위에는 시가 씌어 있었는데, 누가 지은 시인지는 알 수 없었다.

첫째 그림에 쓰인 시는 이러하였다.

둘째 그림에 쓰인 시는 이러하였다.

한쪽 벽에는 사철의 경치를 읊은 시를 각각 네 수씩 붙였는데, 역시 누가 지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 글씨는 송설(松雪)의 서체를 본받아 자체가 아주 곱고도 단정하였다.

그 첫째 폭에 쓰인 시는 이러하였다.

그 둘째 폭에 쓰인 시는 이러하였다.

그 셋째 폭에 쓰인 시는 이러하였다.

그 넷째 폭에 쓰인 시는 이러하였다.

한쪽에 작은 방 하나가 따로 있었는데, 휘장 . 요 . 이불 . 베개들이 또한 아주 깨끗하였다. 휘장밖에는 사향을 태우고 난향의 촛불을 켜놓았는데, 환하게 밝아서 마치 대낮 같았다. 이생은 최랑과 더불어 마음껏 즐거움을 누리면서 여러 날 머물었다.

(어느 날) 이생이 최랑에게 말하였다.

최랑은 서운하게 여기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담을 넘어 보내 주었다. 이생을 이 뒤부터 저녁마다 최랑을 찾아가지 않는 날이 없었다. 어느 날 저녁에 이생의 아버지가 이생을 꾸짖으며 말하였다.

그 이튿날 (이생의 아버지가 이생을) 울주로 내려보냈다.

최랑은 저녁마다 화원에서 이생을 기다렸지만, 여러 달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최랑은 이생이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여, 향아를 시켜 이생의 이웃들에게 물래 물어 보게 하였다. 이웃들이 이렇게 대답하였다.

최랑은 이 소식을 듣고 병을 얻어 침상에 누웠다. 엎치락뒤치락하며 일어나지 못하고, 음식도 먹지 못하였다. 말도 앞뒤가 맞지 않았으며, 얼굴이 초췌해졌다.

최랑의 부모가 이상하게 여겨 그 병의 증상을 물었지만, 묵묵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딸의 상자 속을 들추어보았더니, 이생과 지난날에 주고받은 시들이 있었다. 최랑의 부모들이 그제야 놀라서 무릎을 치며 말하였다.

그리고는 딸에게 물었다.

이렇게 되자 최랑도 더 이상 숨길 수 없어 목구멍에서 겨우 나오는 소리로 부모에게 아뢰었다.

그러자 부모도 이미 그의 뜻을 알았으므로 다시는 병의 증세를 묻지 않았다. 타이르고 달래면서 그의 마음을 누그러뜨려 주었다. 그리고는 중매쟁이의 예를 갖추어 이생의 집으로 보냈다.

이생의 아버지가 최씨 집안이 얼마나 번성한지 물은 뒤에 말하였다.

중매장이가 돌아가서 그대로 아뢰자, 최씨가 다시 (중매인을 이씨 집으로) 보내어 말하게 하였다.

중매쟁이가 돌아가서 또 그 말을 이생의 아버지에게 전하였더니, 이생의 아버지가 말하였다.

중매쟁이가 돌아와서 또 최씨 집안에 전하자. 최씨 집안에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중매쟁이가 또 돌아가서 이 말을 전하였다.

이씨 집안에서도 이렇게까지 되자 뜻을 돌려, 곧 사람을 보내어 이생을 불러다 그의 생각을 물었다. 이생을 스스로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곧 시 한 수를 지었다.

최랑이 이 시를 듣고는 병도 차츰 나아져, 자기도 시를 지었다.

이에 좋은 날을 가려 마침내 혼례를 이루니, 끊어졌던 사랑이 다시 이어지게 되었다. 그들은 부부가 된 이후에 서로 사랑하면서도 공경하여 마치 손님처럼 대하니, 비록 양홍 . 맹광이나 포선(鮑宣). 환소군(桓少君)이라도 그들의 절개와 의리를 따를 수가 없었다.

이생이 이듬해 문과에 급제하여 높은 벼슬에 오르자, 그의 이름이 조정에 알려졌다.

신축년(1361)에 홍건적이 서울을 점거하자 임금은 복주(福州)로 피난 갔다. 적들은 집을 불태워 없애버렸으며, 사람을 죽이고 가축을 잡아먹었다. 부부와 친척끼리도 서로 보호하지 못했고 동서로 달아나 숨어서 제각기 살길을 찾았다.

이생은 가족들을 데리고 외진 산골로 숨었는데, 한 도적이 칼을 빼어들고 뒤를 쫓아왔다. 이생은 달아나 목숨을 건졌지만, 최랑은 도적에게 사로잡혔다. 도적이 최랑의 정조를 빼앗으려 하자, 최랑이 크게 꾸짖었다.

도적이 노하여 최랑을 죽이고 살을 도려내었다.

이생은 거친 들판에 숨어서 겨우 목숨을 보전하다가, 도적이 이미 다 없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부모님이 사시던 옛집을 찾아갔다. 그러나 그 집은 이미 싸움 통에 불타 없어졌다. 또 최랑의 집에도 가보았더니 행랑채는 황량했으며, 쥐와 새들의 울음소리만 들려왔다.

이생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작은 누각으로 올라가서 눈물을 거두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날이 저물도록 우두커니 홀로 앉아 지나간 일들을 생각해 보니 완연히 한바탕 꿈만 같았다.

二更(이경)쯤 되자 희미한 달빛이 들보를 비춰 주는데 낭하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멀리서부터 차츰 가까이 다가왔다. 이르고 보니 바로 최랑이었다.

이생은 그가 이미 죽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너무도 사랑하는 마음에 의심하지도 않고 물어 보았다.

여인이 이생의 손을 잡고 한바탕 통곡하더니, 이내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이생이 기쁘고도 고마워하며 말하였다.

그리고는 서로 정답게 심정을 털어놓았다. 재산을 얼마나 도적들에게 빼앗겼는지 이야기가 나오자, 여인이 말하였다.

이생이 또 물었다.

여인이 말하였다.

정겨운 이야기를 끝낸 뒤에 잠자리를 같이 하였는데, 지극한 즐거움이 예전과 같았다.

이튿날 여인이 이생과 함께 자기가 묻혀 있던 곳을 찾아갔는데, 과연 금과 은 몇 덩어리가 있었고, 재물도 약간 있었다. 그들은 두 집 부모님의 해골을 거두고 금과 재물을 팔아 각각 오관산 기슭에 합장하였다. 나무를 세우고 제사를 드려 예절을 모두 다 마쳤다.

그 뒤에 이생도 또한 벼슬을 구하지 않고 최씨와 함께 살게 되었다. 목숨을 구하려고 달아났던 종들도 또한 스스로 돌아왔다. 이생은 이때부터 인간세상의 모든 일을 다 잊어버렸으며, 아무리 친척이나 손님들의 길흉사가 있더라도 방문을 닫아 걸고 나가지 않았다. 언제나 최씨와 더불어 시를 지어 주고받으며 금실 좋게 지내었다.

그럭저럭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저녁에 여인이 이생에게 말하였다.

여인이 목메어 울자 이생이 놀라면서 물었다.

여인이 대답하였다.

그리고는 몸종 향아를 시켜서 술을 올리게 하고는, 「옥루춘곡(玉樓春曲)」에 맞추어 노래 한 가락을 지어 부르며 이생에게 술을 권하였다.

노래를 한마디 부를 때마다 눈물이 자꾸 내려 거의곡조를 이루지 못하였다. 이생도 또한 슬픔을 걷잡지 못하며 말하였다.

여인이 말하였다.

두 사람은 서로 바라보며 눈물만 줄줄 흘렸다.

말이 끝나자 차츰 사라지더니 마침내 자취가 없어졌다.

이생은 (여인의 말대로) 유골을 거두어 부모님의 무덤 곁에다 장사를 지내 주었다. 장사를 지낸 뒤에는 이생도 또한 지나간 일들을 생각하다가 병을 얻어, 몇 달만에 세상을 떠났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마다 가슴 아파 탄식하며 그들의 아름다운 절개를 사모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취유부벽정기

평양은 옛 조선의 서울이었다. 주나라 무왕(武王)이 은(殷)나라를 이기고 기자(箕子)를 방문하자, 기자가「홍범(洪範)」구주(九疇)의 법을 일러주었다. 무왕이 기자를 이 땅에 봉하였지만 신하로 삼지는 않았다.

이곳의 명승지로는 금수산·봉황대·능라도·기린굴·조천석·추남허 등이 있는데, 모두 고적이다. 영명사의 부벽정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영명사 자리는 바로 고구려 동명왕의 구제궁터이다. 이 절은 성밖에서 동북쪽으로 이십 리 되는 곳이 있다. 긴 강을 내려다보고 평원을 멀리 바라보며 아득하기 그지없으니, 참으로 좋은 경치였다.

그림 그린 놀잇배와 장삿배들이 날 저물 무렵 대동문 밖에 있는 유기에 닿아 머물게 되면, 사람들은 으레 강물을 따라 올라와서 이곳을 마음대로 구경하며 실컷 즐기다가 돌아가곤 하였다.

부벽정 남쪽에는 돌을 다듬어 만든 사닥다리가 있다. 왼편에는 청운제, 오른편에는 백운제라고 돌에다 글자를 새겨 화주(華柱)를 세워 놓았으므로, 호사자(好事者)들의 구경거리가 되었다.

천순(天順) 초년에 개성에 홍생이라는 부자가 있었다. 그는 나이도 젊고 얼굴도 잘생긴데다 풍도가 있었으며, 또한 글을 잘 지었다. 그가 한가윗날을 맞아 친구들과 함께 평양에 베를 안고 와서 실을 바꾸었다. 그런 뒤에 배를 강가에 대자, 성안의 이름난 기생들이 모두 성문 밖으로 나와서 홍생에게 추파를 던졌다.

성안에 이생이라는 옛 친구가 살았는데, 잔치를 베풀어 홍생을 환영하였다. 홍생은 술이 취하자 배로 돌아갔지만 밤이 서늘하고 잠도 오지 않아서, 문득 장계가 지은 「풍교야박」이라는 시가 생각났다. 그래서 맑은 흥취를 견디지 못해 작은 배를 타고는, 달빛을 싣고 노를 저어서 올라갔다. 흥취가 다하면 돌아가리라 생각하고 올라가다가, 이르고 보니 부벽정 아래였다.

홍생을 뱃줄을 갈대 숲에 매어 두고, 사닥다리를 밟고 올라갔다. 난간에 기대어 바라보며, 맑은 소리로 낭랑하게 시를 읊었다. 그때 달빛은 바다처럼 넓게 비치고 물결을 흰 비단처럼 고운데, 기러기는 모래밭에서 울고 학은 소나무에서 떨어지는 이슬방울에 놀라서 푸드덕거렸다. 마치 하늘 위에 옥황상제가 계신 곳에라도 오른 것처럼 기상이 서늘해졌다. 한편 옛 서울을 돌아보니 하얀 성가퀴에는 안개가 끼어 있고, 외로운 성 밑에는 물결만 부딪칠 뿐이었다. 「맥수은허」의 탄식이 저절로 나와, 이내 시 여섯 수를 지어 읊었다.

홍생은 읊기를 마친 뒤에 손바닥을 어루만지며 일어나 그 자리에서 춤을 추었다. 한 구절을 읊을 떄마다 흐느껴 울었다. 바로 뱃전을 두드리고 퉁소를 불며 서로 화답하는 즐거움은 없었지만, 마음 속으로 느꺼워하였다. 그래서 깊은 구렁에 잠긴 용도 따라서 춤추게 할 만하였고, 외로운 배에 있는 과부도 울릴 만하였다.

시 읊기를 마치고 돌아오려 하자 밤은 벌써 삼경이나 되었다. 이때 갑자기 발자국 소리가 서쪽에서 들려 왔다. 홍생은 마음 속으로 '절의 스님이 시 읊는 소리를 듣고 이상하게 생각하여 찾아오는 것이겠지.', 하고 생각하며 앉아서 기다렸다. 그런데 나타나고 보니 한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두 시녀가 좌우에서 따르며 모셨는데, 한 여인은 옥자루가 달린 불자(拂子)를 잡았고, 다른 한 시녀는 비단 부채를 들고 있었다. 여인은 위엄이 있고도 단정하여, 마치 귀족집 처녀 같았다.

홍생은 뜰 아래로 내려가 담 틈으로 비켜서서 그가 어떻게 하는지 살펴보았다. 여인은 남쪽 난간에 기대어 서서 달빛을 보며 작은 소리로 시를 읊었는데, 풍류와 몸가짐이 엄연하여 범절이 있었다. 시녀가 비단방석을 펴자, 여인이 얼굴빛을 고치고 자리에 앉아 낭랑한 소리로 말하였다.

홍생이 (그 말을 듣고) 한편으로 두려웠지만,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하였다. 그래서 어찌할까 머뭇거리다가 가늘게 기침소리를 내었다. 시녀가 기침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와서 청하였다.

홍생이 조심스럽게 나아가서 절하고 꿇어앉았다. 여인도 또한 별로 어려워하지 않으며 말하였다.

시녀가 낮은 병풍으로 잠깐 앞을 가리었으므로, 그들은 얼굴을 서로 반만 보았다. 여인이 조용히 말하였다.

홍생이 그 시를 하나하나 외어 주자, 여인이 웃으며 말하였다.

여인이 시녀에게 명하여 술을 한차례 권하였는데, 차려 놓은 음식이 인간세상의 것과 같지 않았다. 먹으려 해봐도 굳고 딱딱하여 먹을 수가 없었다. 술맛도 또한 써서 마실 수가 없었다. 여인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하였다.

여인이 시녀에게 명하였다.

시녀가 시키는 대로 가서 곧 절밥을 얻어 왔다. 그러나 밥뿐이었고, 반찬이 또한 없었다. 그래서 다시 시녀에게 명하였다.

얼마 되지 않아서 시녀가 잉어구이를 얻어 가지고 왔다. 홍생이 그 음식들을 먹었다. 그가 음식을 먹고 나자, 여인이 이미 홍생은 시에 따라 그 뜻에 화답하였다. 향기로운 종이에 시를 써서 시녀로 하여금 홍생에게 주도록 하였는데, 그 시는 이러하였다.

홍생은 시를 받아 보고 기뻐하였다. 그러나 그가 돌아갈까 봐 염려되어, 이야기를 하면서 붙잡으려고 하였다. 그래서 이렇게 물어보았다.

여인이 한숨을 쉬더니 대답하였다.

홍생이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였다.

홍생은 그 자리에서 한 번 읽어 본 시를 기억하고 있었으므로, 다시 엎드려서 말하였다.

여인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붓을 적셔 한번에 죽 내리썼다. 구름과 연기가 서로 얽힌 듯하였다. 붓을 달려서 곧바로 지었는데, 그 시는 이러하였다.

여인은 쓰기를 마친 뒤에 공중에 높이 솟아 가버렸는데,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여인이 돌아가면서 시녀를 시켜 홍색에게 말을 전하였다.

얼마 뒤에 회오리바람에 불어와 땅을 휘감더니 홍생이 앉았던 자리도 걷고 여인의 시도 앗아가 버렸는데, 이 시도 또한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상한 이야기를 인간 세상에 전하여 퍼뜨리지 못하게 한 것이었다.

홍생은 조용히 서서 가만히 생각해 보았는데, 꿈도 아니고 생시도 아니었다. 난간에 기대서서 정신을 모으고는 여인이 하였던 말들을 모두 기록하였다. 그는 기이하게 만났지만 가슴속에 쌓인 이야기를 다하지 못한 것이 서운하여, 조금 전의 일들을 회상하면서 시를 읊었다.

시 읊기를 마치고 사방을 둘러보니 산 속의 절에서는 종이 울고 물가 마을에서는 닭이 우는데, 달은 성 서쪽으로 기울고 샛별만 반짝이고 있었다. 다만 뜰에서 쥐소리가 들리고 자리 옆에서는 벌레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홍생은 쓸쓸하고도 슬펐으며 숙연하고도 두려워졌다. 마음이 서글퍼져서 더 이상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다. 돌아와 배에 올라탔는데도 우울하고 답답하였다. 어제 놀던 강언덕으로 갔더니 친구들이 다투어 물었다.

홍생은 속여서 말하였다.

친구들도 그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 뒤에 홍생은 그 여인을 연모하다가 병을 얻어 쇠약해진 몸으로 자기 집에 돌아왔지만, 정신이 황홀하고 헛소리가 많아졌다. 병상에 누운 지가 오래 되었지만 조금도 차도가 없었다.

홍생이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엷게 단장한 미인이 나타나서 말하였다.

홍생은 놀라서 꿈을 깨었다. 집안 사람을 시켜서 자기 몸을 목욕시키고 옷을 갈아 입히게 하였다. 향을 태우고 땅을 쓴 뒤에 뜰에 자리를 펴게 하였다. 그는 턱을 괴고 잠깐 누웠다가 문득 세상을 떠났는데, 바로 구월 보름날이었다.

그의 시체를 빈소에 모셨는데, 며칠이 지나도 얼굴빛이 변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홍생이 신선을 만나서 시해(弑害)된 것이다. ' 라고 하였다.

남염부주지

성화(成化) 초년에 경주에 박생이란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유학에 뜻을 두고 언제나 자신을 격려하였다. 일찍부터 태학관(太學館) 에서 공부하였지만, 한번도 시험에 합격하지는 못하였다. 그래서 언제나 불쾌한 감정을 품고 지냈다.

그는 뜻과 기상이 고매하여 세력을 보고도 굽히지 않았으므로, 남들은 그를 거만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남들과 만나거나 이야기할 때에는 온순하고 순박하였으므로, 마을 사람들이 모두 그를 칭찬하였다.

박생을 일찍부터 부도(浮圖:불교). 무격. 귀신 등의 이야기에 대하여 의심을 품고 있었지만, 어떠한 결정을 내리지는 못하였다. 그러다가『중용』과『주역』을 읽은 뒤부터는 자기의 생각에 대하여 자신을 가지고 더 이상의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성품이 순박하고도 온후하였으므로 스님들과도 잘 사귀었는데, 한유와 태전의 사이나 유종원과 손상인의 사이처럼 가까운 이들도 두세 사람 있었다.

스님들도 또한 그를 문사로서 사귀었다. 혜원이 종병. 뇌차종과 사귀었던 것처럼, 지둔이 왕탄지. 사안과 사귀었던 것처럼 막역한 벗이 많았다.

박생이 어느 날 한 스님에게 천당과 지옥의 설에 대하여 묻다가, 다시 의심이 생겨서 말하였다.

그가 다시 스님에게 물었더니, 스님도 또한 결정적으로 대답하지는 못하였다. '죄와 복은 지은 데 따라서 응보가 있다. ' 는 설로써 대답하였다. 박생은 역시 마음속으로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박생은 일찍이「일리론(一理論)」이란 논문을 지어서 자신을 깨우쳤는데, 이는 이단(불교)의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 대략은 이렇다.

하루는 박생이 자기 거실에서 등불을 돋우고 『주역』을 읽다가 베개를 괴고 언뜻 잠이 들었는데, 홀연히 한 나라에 이르고 보니 바로 바다 속의 한 섬이었다.

그 땅에는 본래 풀이나 나무가 없었고, 모래나 자갈도 없었다. 발에 밟히는 것이라고는 모두 구리가 아니면 쇠였다. 낮에는 사나운 불길이 하늘까지 뻗쳐 땅덩이가 녹아 내리는 듯하였고, 밤에는 싸늘한 바람이 서쪽에서 불어와 사람의 살과 뼈를 에는 듯하였다. 타파( 婆)를 견딜 수가 없었다.

바닷가에는 쇠 벼랑이 성처럼 둘러싸여 있었는데, 굳게 잠긴 성문 하나가 덩그렇게 서 있었다. 수문장은 물어뜯을 것 같은 영악한 자세로 창과 쇠몽둥이를 쥐고 외물(外物)을 막고 서 있었다.

그 가운데 거주하는 백성들은 쇠로 지은 집에 살고 있었는데, 낮에는 (피부가) 불에 데어서 문드러지고 밤에는 얼어 터졌다. 오직 아침과 저녁에만 사람들이 꿈틀거리며 웃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별로 괴로워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박생이 깜짝 놀라서 머뭇거리자, 수문장이 그를 불렀다. 박생은 당황하였지만 명을 어길 수 없어, 공손하게 다가갔다. 수문장이 창을 세우고 박생에게 물었다.

박생이 두려워 떨면서 대답하였다.

박생이 엎드려 두세 번 절하며 당돌하게 찾아온 것을 사죄하자, 수문장이 말하였다.

"선비는 위협을 당하여도 굽히지 않는다'고 하던데, 그대는 어찌 이처럼 지나치게 굽히시오? 우리들이 이치를 잘 아는 군자를 만나려 한 지가 오래 되었소. 우리 임금께서 그대와 같은 군자를 한번 만나서 동방 사람들에게 한 말씀을 전하려 하신다오. 잠깐만 앉아 계시면, 내가 곧 우리 임금께 아뢰겠소. "

말을 마치자 수문장은 빠른 걸음으로 성안에 들어갔다. 얼마 뒤에 그가 나와서 말하였다.

(말이 끝나자) 검은 옷과 흰옷을 입은 두 동자가 손에 문서를 가지고 나왔다. 하나는 검은 문서에푸른 글자로 썼고, 다른 하나는 흰 문서에 붉은 글자로 쓴 것이었다. 동자가 그 문서를 박생의 좌우에서 펴 보기에 들여다보았더니, 박생의 이름이 붉은 글자로 씌어져 있었다.

박생이 (이 글을 보고 동자에게) 물었다.

동자가 말하였다.

동자가 말을 마치더니, 그 명부를 가지고 들어갔다.

얼마 뒤에 바람을 타고 수레가 달려왔는데, 그 위에는 연좌(蓮座)가 설치되어 있었다. 예쁜 동자와 동녀가 불자(拂子)를 잡고 일산(日傘)을 들었으며, 무사와 나졸들이 창을 휘두르며 '물럿거라'고 외쳤다.

박생이 머리를 들고 멀리 바라보니 그 앞에 세 겹으로 된 철성(鐵城)이 있고, 높다란 궁궐이 금으로 된 산아래 있었는데, 뜨거운 불꽃이 하늘까지 닿도록 이글거리며 타오르고 있었다. 길가에 다니는 사람들을 돌아보았더니, 불꽃 속에서 녹아 내린 구리와 쇠를 마치 진흙이라도 밟듯이 밟으면서 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박생의 앞에 뻗은 길은 수십 걸음쯤 되어 보였는데, 숫돌같이 평탄하였으며 흘러내리는 쇳물이나 뜨거운 불도 없었다. 아마도 신통한 힘으로 이루어진 것 같았다.

왕성(王城)에 이르니 사방의 문이 활짝 열려 있었는데, 연못가에 있는 누각 모습이 하나같이 인간 세상의 것과 같았다. 아름다운 두 여인이 마중 나와서 절하더니, 모시고 들어갔다.

임금은 머리에 통천관(通天冠)을 쓰고 허리에는 문옥대(文玉帶)를 띠였으며, 손에는 규(珪)를 잡고 뜰 아래까지 내려와서 맞이하였다. 박생이 땅에 엎드려 쳐다보지도 못하자, 임금이 말하였다.

임금이 박생의 소매를 잡고 전각 위로 올라와 특별히 한 자리를 마련해 주었는데, 옥난간에 놓인 금으로 만든 자리였다. 자리를 잡자, 임금이 시자를 불러 차를 올리게 하였다. 박생이 곁눈질하여 보았더니, 차는 구리를 녹인 물이었고 과일은 쇠로 만든 알맹이였다.

박생이 놀랍고도 두려웠지만 피할 수가 없었으므로, 그들이 어떻게 하나 보고만 있었다. 시자가 다과를 앞에 올려놓자, 향그런 차와 맛있는 과일의 아름다운 향내가 온 전각에 퍼졌다. 차를 다 마시자 임금이 박생에게 말하였다.

박생이 물었다.

임금이 말하였다.

박생이 또 물었다.

임금이 말하였다.

박생이 말하였다.

이금이 말하였다1.

박생이 말하였다.

임금이 말하였다.

박생이 또 물었다.

임금이 깜짝 놀라면서 말하였다.

박생이 자리에서 물러나 옷자락을 여미고 말하였다.

임금이 말하였다.

박생이 또 물었다.

임금이 말하였다.

박생이 말하였다.

임금이 말하였다.

그리고는 잔치를 열어 극진히 즐겁게 하여 주었다.

임금이 박생에게 삼한(三韓)이 흥하고 망한 자취를 물었더니, 박생이 하나하나 이야기하였다. 고려가 창업한 이야기에 이르자, 임금이 두세 번이나 탄식하며 서글퍼하더니 말하였다.

박생이 또 역대의 제왕들이 이도(異道)를 숭상하다가 재앙 입은 이야기를 하자, 임금이 문득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하였다.

박생이 말하였다.

임금이 한참 있다가 탄식하며 말하였다.

잔치가 끝나자 임금이 박생에게 임금자리를 물려주기 위하여 손수 선위문(禪位文)을 지었다.

박생이 이 글을 받아들고 응낙한 뒤에, 두 번 절하고 물러 나왔다. 임금은 다시 신하와 백성들에게 명령을 내려 축하드리게 하고, 태자의 예절로써 그를 전송하게 하였다. 그리고는 박생에게 말하였다.

박생이 또 두 번 절하여 감사드리고 말하였다.

박생이 문을 나서자, 수레를 끄는 자가 발을 헛디뎌 수레바퀴가 넘어졌다. 그 바람에 박생도 땅에 쓰러졌다. 깜짝 놀라서 일어나 깨어 보니 한바탕 꿈이었다.

눈을 떠보니 책은 책상 위에 내던져 있었고, 등잔불은 가물거리고 있었다. 박생은 한참 의아하게 여기다가, 장차 죽을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날마다 집안 일을 정리하기에 전념하였다.

박생이 몇 달 뒤에 병에 걸렸는데, 결코 일어나지 못할 것을 스스로 알았다. 그래서 의원과 무당을 사절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세상을 떠나려던 날 저녁에 이웃집 사람의 꿈에 어떤 신인이 나타나서 말하길,

라고 하였다 한다.

용궁부연록

개성에 천마산이 있는데, 그 산이 공중에 높이 솟아 가파르므로 '천마산(天磨山)'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 산 가운데 용추(龍湫)가 있으니 그 이름을 박연(朴淵)이라 하였다. 그 못은 좁으면서도 깊어서 몇 길이나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물이 넘쳐서 폭포가 되었는데, 그 높이가 백여 길은 되어 보였다. 경치가 맑고도 아름다워서 놀러 다니는 스님이나 나그네들이 반드시 이곳을 구경하였다. 옛날부터 이곳에 용신이 살고있다는 전설이 전기에 실려 있어서, 나라에서 세시(歲時)가 되면 커다란 소를 잡아 (용신에게) 제사지내게 하였다.

고려 때에 한생(韓生)이 살고 있었는데, 젊어서부터 글을 잘 지어 조정에까지 알려지고 문사(文士)로 평판이 있었다. 하루는 한생이 거실에서 해가 저물 무렵에 편안히 앉아 있었는데, 홀연히 푸른 저고리를 입고 복두( 頭)를 쓴 낭관(郎官) 두 사람이 공중으로부터 내려왔다. 그들이 뜨락에 엎드려 말하였다.

한생이 깜짝 놀라 얼굴빛이 변해지면서 말하였다.

두 사람이 말하였다.

그들이 몸을 굽혀 한생의 소매를 잡고 문 밖으로 나서자, 말 한 마리가 있었다. 금안장 옥굴레에 누런 비단으로 배 띠를 둘렀으며, 날개가 돋쳐 있었다. 종자들은 모두 붉은 수건으로 이마를 싸매고 비단 바지를 입었는데, 열댓 명이나 되었다.

종자들이 한생을 부축하여 말 위에 태우자, 일산을 든 사람이 앞에서 인도하고 기생과 악공들이 뒤를 따랐다. 그 두 사람도 홀(笏)을잡고 따라왔다. 그 말이 공중으로 올라가 날아가자, 발 아래에는 구름이 뭉게뭉게이는 것만 보였다. 땅 아래 있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이미 용궁 문 앞에 이르렀다. 말에서 내려서자 문지기들이 모두 방게 . 새우 . 자라의 갑옷을 입고 창을 들고 늘어섰는데, 그들의 눈자위가 한 치나 되었다. 한생을 보고 모두 머리를 숙여 절하고는 의자를 내어주며 쉬라고 하였는데, 미리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두 사람이 재빠르게 안으로 들어가서 아뢰자, 곧바로 푸른 옷을 입은 동자 둘이 나와서 손을 마주잡고 한생을 인도하여 안으로 들어가게 하였다. 한생이 천천히 걸어가다가 궁문을 쳐다보았더니, 현판에 '함인지문(咸仁之門)'이라 씌어 있었다.

한생이 그 문에 들어서자 용왕이 절운관(切雲冠)을 쓰고 칼을 차고 홀을 쥐고서 뜰 아래로 내려왔다. 한생을 맞이하여 섬돌을 거쳐 궁전에 올라앉기를 청하니, 수정궁 안에 있는 백옥상(白玉牀)이었다. 한생이 엎드려 굳이 사양하며 말하였다.

용왕이 말하였다.

용왕이 손을 내밀어 앉기를 청하였다. 한생은 서너 번 사양한 뒤에 자리로 올라갔다. 용왕은 남쪽을 향하여 칠보화상(七寶華牀)에 앉고, 한생은 서쪽을 향하여 앉으려고 하였다. 한생이 채 앉기도 전에 문지기가 아뢰었다.

용왕이 또 문 밖으로 나가서 맞이하였다. 세 사람이 보였는데, 붉은 도포를 입고 채색 수레를 탄 그의 위의(威儀)와 시종들을 보아서 임금의 행차 같았다. 용왕이 또 그들도 궁전 위로 안내하였다. 한생은 들창 아래 숨었다가 그들이 자리를 정한 뒤에 인사를 청하려 하였다. 그런데 용왕이 그들 세 사람에게 권하여 동쪽을 향하여 앉힌 뒤에 말하였다.

용왕이 좌우의 사람들을 시켜 한생을 모셔오게 하였다. 한생이 빨리 나아가 절하자, 그들도 모두 머리를 숙이고 답례하였다. 한생이 윗자리에 앉기를 사양하면서 말하였다.

한생이 굳이 사양하자 그들이 말하였다.

용왕도 말하였다.

세 사람이 한꺼번에 자리에 앉자, 한생도 몸을 굽히며 올라가서 자리 끝에 꿇어앉았다. 용왕이 말하였다.

다들 자리에 앉아 찻잔을 한차례 돌린 뒤에 용왕이 한생에게 말하였다.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두 아이가 들어왔다. 한 아이는 푸른 옥돌벼루와 상강(湘江)의 반죽(斑竹)으로 만든 붓을 받들었으며, 한 아이는 흰 명주 한 폭을 받들었다. 그들이 한생 앞에 꿇어앉아 바쳤다.

한생이 고개를 숙이고 엎드렸다가 일어나 붓에 먹물을 찍어서 곧바로 상량문을 지어내었다. 그 글씨는 구름과 연기가 서로 얽힌 듯하였다. 그 글은 이러하였다.

    바라건대 이 집을 이룩한 뒤에 화촉의 밤을 맞이하여 만복이 함께 이르고, 온갖 상서가 모여들진저. 요궁(瑤宮)과 옥전(玉殿)에는 상서로운 구름이 찬란하고, 봉황 베개와 원앙 이불에는 즐거운 소리가 들끓게 되어, 그 덕이 나타나고 그 신령이 빛나게 될진저. "

한생이 글을 다 써서 용왕에게 바치자, 용왕이 크게 기뻐하였다. 이내 세 신에게 돌려 보이자, 세 신도 모두 떠들썩하게 탄복하며 칭찬하였다. 이에 용왕이 윤필연(潤筆宴)을 열자, 한생이 꿇어앉아서 말하였다.

용왕이 말하였다.

곧 술을 권하고 풍류를 시작하자, 미인 열댓 명이 푸른 소매를 흔들며 머리 위에 구술꽃을 꽂고 나왔다. 앞으로 나왔다가 뒤로 물러났다가 춤을 추면서「벽담곡(碧潭曲)」 한 가락을 불렀는데, 그 가사는 이러하였다.

춤이 끝나자 다시 총각 열댓 명이 왼손에는 피리를 잡고 오른손에는 도( )를 들고 서로 돌아보면서 「회풍곡(回風曲)」 한 가락을 불렀다. 그 가사는 이렇다.

춤이 끝나자 용왕이 기뻐하였다. 술잔을 씻어 다시금 술을 붓고 한생에게 권하였다. 스스로 옥으로 만든 용적을 불면서「수룡음(水龍吟)」 한 가락을 노래하여 즐거운 흥취를 도왔다. 그 가사는 이러하였다.

용왕이 노래를 마치고는 좌우를 둘러보면서 말하였다.

그러자 한 사람이 나타났는데, 자칭 곽개사(郭介士)라고 하였다. 발을 들어 옆으로 걸으면서 나와 말하였다.

곽개사는 곧 그 앞에서 갑옷을 입고 창을 잡아 쥐었으며, 침을 흘리고 눈을 부릅떴다. 눈동자를 돌리며 팔다리를 흔들더니, 재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뒤로 물러서며 팔풍무(八風舞)를 추었다. 그와 같은 무리 몇십 명도 땅에 엎드려 고개를 숙이고 돌면서 절도 있게 춤을 추었다. 곽개사가 이내 노래를 지어 불렀다.

(그가 춤을 추면서) 왼쪽으로 돌다가 오른쪽으로 꺾어지며 뒤로 물러났다가 앞으로 달려가기도 하니, 자리에 가득 모였던 사람들이 모두 몸을 비틀서 웃음을 참지 못하였다.

그의 춤이 끝나자 또 한 사람이 나섰는데, 자칭 현(玄)선생이라고 하였다. 꼬리를 끌며 목을 빼고 기운을 뽐내다가, 눈을 부릅뜨고 앞으로 나와서 말하였다.

현생이 그 앞에서 기운을 토하자 실오리처럼 나부껴 그 길이가 백여 척이나 되더니, 이를 들어 마시자 자취도 없이 되었다. 그리고는 그 목을 움츠려서 사지 속에 감추기도 하고, 혹은 목을 길게 빼어 머리를 흔들기도 하였다. 얼마 뒤에 앞으로 조용히 나아와 구공무(九功舞)를 추면서 혼자 나아갔다 물러났다 하더니, 이내 노래를 지어 불렀다. 그 가사는 이러하였다.

노래는 끝났지만 그래도 황홀하여 발을 올렸다 내렸다 하며 춤을 추었다. 그 몸짓을 형용할 수가 없어, 자리에 가득하였던 사람들이 웃음을 참지 못하였다.

현선생이 놀음이 끝나자 숲속의 도꺠비와 산 속의 괴물들이 일어나서 저마다 장기를 자랑하였다. 누구는 휘파람을 불고 누구는 노래를 불렀으며, 누구는 춤을 추고 누구는 피리를 불었다. 누구는 손뼉을 치고, 누구는 시를 외웠다. 그들이 노는 꼴은 저마다 달랐지만 소리는 같았는데, 그들이 지어 부른 노래는 이러하였다.

노래가 끝나자 강하의 군장들이 꿇어앉아 시를 지어 바쳤다. 그 첫째인 조강신의 시는 이러하였다.

둘째인 낙하신의 시는 이러하였다.

셋째 벽란신의 시는 이러하였다.

짓기를 마치고 용왕에게 바치자, 용왕이 웃으면서 읽어 본 뒤에 사람을 시켜 한생에게 주었다. 한생은 이 시를 받고 꿇어앉아 읽었다. 세 번이나 거듭 읽으며 감상한 뒤에, 그 자리에서 이십 운(韻)의 장편시를 지어 성대한 일을 노래하였다. 그 가사는 이러하였다.

한생이 시를 지어 바치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감탄하고 칭찬하여 마지않았다. 용왕이 감사하면서 말하였다.

한생이 절하고 감사드린 뒤에 앞으로 나아가 용왕에게 아뢰었다.

용왕이 말하였다.

한생이 용왕의 허락을 받고 문 밖에 나와서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았는데, 오색 구름이 주위에 둘려 있는 것만 보여서 동서를 분별할 수가 없었다.

용왕이 구름을 불어 없애는 자에게 명하여 구름을 쓸어버리게 하자, 한 사람이 궁전 뜰에서 입을 오므리며 한번에 불어 버렸다. 그러자 하늘이 환하게 밝아졌는데, 산과 바위 벼랑도 없고 다만 넓은 세계가 바둑판처럼 보였는데 수십 리나 되었다. 아름다운 꽃과 나무가 그 가운데 줄지어 심어져 있었고, 바닥에는 금모래가 깔려 있었다. 둘레는 금성으로 쌓아졌으며, 그 행랑과 뜰에는 모두 푸른 유리 벽돌을 펴고 깔아서 빛과 그림자가 서로 비치었다.

용왕이 두 사람에게 명하여 한생을 이끌고 구경시키도록 하였다. 한 누각에 이르렀는데, 그 이름을 '조원지루(朝元之樓)'라고 하였다. 이 누각은 순전히 파리( 璃)로 이루어졌고 진주와 구슬로 장식하였으며, 황금색과 푸른색으로 아로새겨졌다.

그 위에 오르자 마치 허공을 밟는 것 같았으며, 그 층이 열이나 되었다. 한생이 그 위층까지 다 올라가려고 하자 사자가 말하였다.

이 누각의 위층이 구름 위에 솟아 있었으므로 보통 사람이 올라 갈 수는 없었다. 한생이 칠층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와 또 한 누각에 이르렀는데, 그 이름은 '능허지각(凌虛之閣)'이었다. 한생이 물었다.

답하기를,1

한생이 청하였다.

사자가 한생을 인도하여 한 곳에 이르렀더니 한 물건이 있었는데, 마치 둥근 거울과 같았다. 그런데 번쩍번쩍 빛나서 눈이 어지러워 제대로 살펴볼 수가 없었다. 한생이 말하였다.

답하기를,1

또 북이 있었는데, 크고 작은 것이 서로 어울렸다. 한생이 이를 쳐다보려고 하자 사자가 말리면서 말하였다.

또 한 물건이 있었는데 풀무 같았다. 한생이 흔들어 보려고 하자 사자가 다시 말리면서 말하였다.

또 한 물건이 있었는데 빗자루처럼 생겼고, 그 옆에는 물 항아리가 있었다. 한생이 물을 뿌려 보려고 하자 사자가 또 말리면서 말하였다.

한생이 말하였다.

답하기를,1

한생이 또 말하였다.

답하기를,1

그 나머지 기구들은 다 알 수가 없었다. 또 기다란 행랑이 몇 리쯤 잇따라 뻗어 있었는데, 문에는 용의 모습을 새긴 자물쇠가 잠겨 있었다. 한생이 물었다.

사자가 말하였다.

한생이 한참 동안 두루 돌아다니며 구경하였지만, 다 둘러볼 수는 없었다. 한생이 말하였다.

사자가 말하였다.

한생이 돌아오려고 하였더니 그 문들이 겹겹이 막혀서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자에게 부탁하여 앞에서 인도하게 하였다. 한생이 본래 있던 자리로 돌아와서 용왕에게 감사드렸다.

한생이 두 번 절하고 작별하였다. 그랬더니 용왕이 산호쟁반에다 진주 두 알과 흰 비단 두 필을 담아서 노잣돈으로 주고, 문 밖에 나와서 절하며 헤어졌다. 세 신도 함께 절하고 하직하였다. 세 신은 수레를 타고 곧바로 돌아갔다.

용왕이 다시 두 사자에게 명하여 산을 뚫고 물을 헤치는 무소뿔을 가지고 한생을 인도하게 하였다. 한 사람이 한생에게 말하였다.

한생이 그 말대로 하였다. 한 사람이 서각을 휘두르면서 앞에서 인도하는데, 마치 공중으로 날아가는 것 같았다. 오직 바람소리와 물소리만 들렸는데, 잠시도 끊어지지 않았다. 이윽고 그 소리가 그쳐서 눈을 떠보았더니, 자기 몸이 거실에 드러누워 있었다.

한생이 문 밖에 나와서 보았더니 커다란 별이 드문드문 보였다. 동방이 밝아 오고 닭이 세 홰나 쳤으니, 밤이 오경쯤 되었다. 재빨리 품속을 더듬어 보았더니 진주와 비단이 있었다. 한생은 이 물건들을 비단 상자에 잘 간직하였다. 귀한 보배로 여기면서, 남에게 보여 주지도 않았다.

그 뒤에 한생은 세상의 명예와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명산으로 들어갔다. 어찌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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