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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월간 《녹색평론》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의 분열을 치유하고, 공생적 문화가 유지될 수 있는 사회의 재건에 이바지하려는 의도로 발간되는 잡지입니다. 우리는 모든 생명체들과 이 지구를 공유하고 있는 형제자매들입니다. 이러한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에 부합하는 비폭력적 삶의 방식을 모색하는 일은 사회적 분열과 생태계의 파손이 극에 달한 오늘날 무엇보다 절박한 과제가 되었습니다.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아이들에게 미래가 허용되는 세상을 위해서 여러분이 지금 당장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의 하나는 《녹색평론》에 정기구독 신청을 하시거나 또는 좀더 적극적으로 후원회원이 됨으로써, 이러한 메시지가 널리 보급되도록 협력하시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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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직지에 있는 녹색평론입니다.
2008년 6월, 한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이 다시금 이 잡지를 생각하게 한다. 최근에 이곳에서 번역한 책이 "正義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인데, 그 서문에 다음과 같은 글월이 나온다.
For the dust jacket, I want to thank Beth Hoinacki, Barbara Withey, and Ray Liddick Jr. Historically, Icarus is taken to symbolize someone who exceeded the measure, the middle (from Aristotle's verb μεδεο. Hence, he suffered the fate of such presumption, falling into the sea and drowning.
Today, Aristotelian virtue may not be enough; some have to go to extremes, for example, quitting their mainline job, taking their kids out of school, refusing medical care, and so on. But persons acting thusly must be prepared to pay the price. They may experience a kind of double irony. For them, the audacity of Icarus is not foolhardy; it may be the courage demanded of them by the times. They must not fear to be judged loony, to fall into the sea and drown.
나는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광우병 사태, 그리고 반정부 시위, 폭력적인 시위 진압 장면를 보면서, 더 많은 사람이 윗 글의 저자가 요구하는 극단적인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체계'내에서, 나의 생존과 영혼의 성장에 대해서 남에게 무엇인가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옳지도 않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민주주의국가라고 믿는가? 난 그것을 믿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자본에 의해서 돌아갈 뿐, 그 어디에도 백성은 없다. 난 한 때, 모든 사상은, 그리고 모든 체계는 사람에 그 중심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아 보였다. 이제 나는, 우리가 정말 인간의 역사를 진보의 그것이라고 믿고자 한다면, 무생물을 포함한 모든 사물에 중심을 둔 사상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는다. 돌 하나, 풀 한 포기, 땅, 바다, 하늘, 들짐승, 물짐승, 날짐승, 사람, 지구, 달, 태양계, 우주, ... ..., 이 모든 것을 다 중심에 둔 사상, 이 모든 것이 다 연결된 하나라는 사상이 아니고서는, 인간은 더 이상 이 지구별에서 살 자격이 없다. 따지고 보면 이것은 새로운 생각이 아니다. 이 땅의 어느 종교가 이것을 가르치지 않으랴?
산업화와 자본주의는 실패한 체계요 사상이다. 처음 시작은 인간에 뿌리를 두었으나, 시간이 가면서 그 뿌리를 키워나가지 못했기에 실패한 사상이다.
사람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면 늘 생각하는 것이 인간의 해탈이요 구원이다. 현재 인류가 누리는 문명와 문화의 실제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금속활자 직지와 Gutenberg를 보라. 이 새 기술로 제일 처음 찍어낸 것이 선종의 깨침에 대한 글이고, 성서가 아닌가? 산업화와 자본주의도 처음에는 그랬다. 사람의 물질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보다 풍요로운 삶을 살게 해줌으로써 사람이 더 나은 영적인 삶을 추구할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결국 산업이 대자본을 형성하면서 자본주의는 사람을 도구화했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광우병 파동의 핵심에 있는 소와 쇠고기도 더 이상 생명이 있는 가축이 아니라 돈을 버는 수단이 되어 버렸다. 그 소와 사람이 자본주의하에서 무엇이 다른가?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의 본질은 겉에서 보이는 것보다 엄청나게 깊은 곳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는 비단 我와 非我의 싸움이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 생명과 비생명, 물과 비물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 김민수 2008년 6월 1일 (EDT)
다음은 제가 이 작은 큰 책이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꾸려가는 창고입니다.
녹색평론이 들어가는 글들
- 건강과 에너지
- 골프장 건설 반대 깃발이 내려지던 날
- 나락 한알 속의 우주
- 녹색평론
- 녹색평론/114
- 다시 찾는 태양
- 대지(大地)로 회귀하는 문학
- 돈을 근원적으로 묻는다
- 땅의 옹호
- 땅의 울음
- 로마, 마야, 그리고 한국의 농촌
- 매화리 일기1
- 먹고 사는 일의 엄중함
- 민주주의를 위하여
- 박정희 시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
- 박정희시대 평가의 문제
- 박정희의 새마을운동에 대하여
- 발도르프학교의 아동교육
- 밥상을 다시 차리자
- 번역은 반역이다
- 사람을 살려서는 뭘 하자는 건가
- 사회신용론과 기본소득
- 상투성과 기계에 맞서는 현인
- 생명의 집
- 생태주의와 평화주의
- 선이골에 온 까닭은
- 성난 카우보이 - 축산업자에서 채식주의자로
- 세계화와 이주노동자
- 아리랑 강물소리에 손대지 마라
- 아이들의 심장과 두뇌발달
- 아픈 집
- 어떻게 살 것인가
- 연두농장 이야기
-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
- 유전공학의 약속과 공포
- 인생은 하루뿐
- 일리치의 혹
- 정복되지 않는 죽음
- 치매에 걸리더라도 잃어버리지 말 것은
- 통화개혁과 '국민배당'
- 파마겟돈
- 흙의 신앙, 인간의 교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