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녹색평론 통권 제 85호에서 뽑아 실은 것이다. 지적 재산권에서 자유로운 문서는 아니지만, 좋은 내용이 멀리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원저작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싣는다. – 2005년 12월 18일, 직지지기 김민수

다시 찾는 태양

태양과의 밀고 당기기

'선댄스(Sun-dance)'라고 하면 미국의 대안적 영화제를 떠올릴 분들이 많겠지만, 원래는 북미 원주민 인디언들에게서 널리 퍼져 있던 태양숭배 의식을 가리키는 말이다. 건장한 남자들 여럿이서 며칠 밤낮을 두고 북을 두드리며 소리높여 노래 부르고 박력 있는 스텝을 밟으면서 춤을 추는 의식인데, 특이한 것은 태양을 정면으로 쏘아보면서 춤을 춘다는 점이다.

이 의식의 기원에 관한 설화가 있다. 태고적부터 태양은 인간에게 먹을 것과 에너지를 주는 존재였는데, 언제부터인가 태양빛이 너무 강해져 사람들은 태양을 쳐다보지 않게 되었다. 기분이 상한 태양은 지상에 열병을 보내고, 여기 못 견딘 사람들은 태양을 죽일 음모를 꾸몄다. 그러나 실수로 태양 대신 그 딸을 죽이게 되자 태양은 슬퍼하면서 집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고, 사람들은 사죄의 뜻으로 딸을 되살리려다 실패한다. 어둠이 계속되자 춥고 배고파진 사람들은 높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태양에게 사죄하고 나와 달라고 애걸했다. 결국 태양은 다시 나왔고, 그때부터 사람들은 감사의 뜻으로 태양으로부터 눈을 돌리지 않고 쳐다보며 춤을 추는 의식을 하게 되었다.

이 설화는 태양과 인간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지상 대부분 생명체의 에너지가 근본적으로 태양에서 나온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태양에서 오는 열과 빛이 없으면 이 지상은 암흑과 혹한의 세계로 생명이 존속하지 못할 것이다. 식물에는 태양의 에너지를 붙들어서 자기 에너지로 만드는 능력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땅 속의 물을 원료로 하는 탄소동화작용이다. 동물은 이런 식물을 먹고 간접적으로 태양을 에너지원으로 해서 살고 있다. 그러나 태양은 생명체들에 대한 위협의 요소도 지니고 있다. 태양에서 오는 자외선은 세포를 투과하는 힘이 있어서 강한 자외선을 받으면 소중한 유전자 정보가 파괴되어 질병과 노화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물론 지구는 이런 해로운 광선의 침입을 완충해주는 오존층과 대기권에 둘러싸여 있지만 시기와 지역에 따라 그 완충 효과가 약해질 경우 과도하게 햇볕을 쬐게 되면 피부암을 비롯한 심각한 신체 손상 상태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인간은 예로부터 태양을 감사하게 맞아들이기도 하고 피하기도 하면서 살아왔을 것이다.

산업시대가 되면서 인간은 태양에 의존하지 않고 빛과 열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화석연료와 전기, 그리고 원자력의 등장이다. 이전에는 나무를 때서 난방하고 동물이나 식물의 기름으로 조명을 했는데, 이것은 궁극적으로는 태양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화석연료는 태양에서 에너지를 얻어 생성된 생물체들이 지열로 변질되어 형성된 에너지원이며, 전기는 물의 운동에너지나 화석연료로 얻고, 더 후에는 원자력 연료인 방사성 물질의 결합 에너지를 이용하여 전기를 얻게 되니까, 결과적으로 에너지 중 많은 부분을 태양 이외의 곳에서 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인간의 생활습관에는 변화가 오게 되었다. 태양의 존재를 무시하고 살게 된 것이다. 현대인들은 볕이 잘 들지 않는 실내에서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경우가 많으며, 밤늦게까지 불을 켜놓고 지내다가, 아침에는 늦잠을 자기 위해 태양빛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도 한다. 이런 문화가 정착됨에 따라 사람들의 가치기준에도 변화가 생겨, 햇볕에 타지 않은 창백한 피부 색깔이 사람을 지적이거나 신분이 높은 것으로 보이게 하거나 여자의 경우 더욱 매력적인 것으로 간주하게까지 되었다. 별 이유 없이 태양 속에 자신을 노출하고 지내는 것은 시간을 낭비하거나 피부관리를 잘못하는 것으로, 따라서 어리석은 일처럼 여기는 것이 현대인의 통념이 되어버렸다. 산업시대의 인간은 그 이전 어느 시대의 인간들보다 훨씬더 태양을 하찮은 것으로 여기게 되었고, 심지어는 적극적으로 피하게까지 된 것이다.

태양에너지와 비(非)태양에너지의 차이

20세기 후반부터 구미 선진국을 중심으로 산업시대에 조성된 모든 행태와 가치관을 되돌아보는 작업이 본격화된 것 같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이 산업시대에 만들고 우상화해왔던 모든 어리석음에 대한 비판과 반성의 소리가 사실 끊이지 않았는데, 20세기 후반부터는 그런 목소리가 상당히 주류의 가치관에 통합되기 시작하고 있다. (물론 아직도 주류의 가치관으로 정착되었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렇게 된 데에는 과학적 연구의 성과가 쌓여서, 산업시대 이데올로기의 허점이 착착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이 크게 작용해왔다. 예를 들어서 우리는 이제 산업시대에 '인류를 구원할 신물질'로서 선전되고 환영받았던 합성화학물질이 그 독성과 내분비계 교란효과, 면역력 저하효과로 인해 어떻게 생태계와 생명체를 망쳐왔는지 이해하기 시작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런 물질이 인체에 미치는 부작용에 대한 과학적 연구성과가 쌓여왔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다.

비슷한 과정으로 요즘 '태양의 재평가'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화석에너지가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등 대규모 생태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그 대안으로 오염을 일으키지 않으며 영구히 공급될 수 있는 태양에너지의 이점이 강조되기 시작한 지는 꽤 되었다. 최근 들어서는 단순히 화석연료와 대비되는 재생가능 에너지로서의 이점 외에도 태양에너지가 인간의 생명력을 부양시키는 여러가지 효과들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생물의학적으로 밝혀지고 있다.

우리말에도 햇빛과 햇볕이라는 구분이 있지만 태양에너지도 인간이 어디에 중점을 두어 이용하느냐에 따라 광(光)에너지와 열(熱)에너지로 구분된다. 광에너지 쪽, 그러니까 태양광선이 인간의 생리학적 ·심리학적 기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는 상당히 많이 나와 있다. 예를 들어서 햇빛은 눈을 통해 들어오면서 우리 몸의 내분비계 중 다양한 효소와 호르몬의 생성 및 활동을 지시하는 효과를 낸다. 효소나 호르몬은 햇빛의 자극을 받아서 분자 수준에서 변화를 일으키면서 활성화되어 체내에서 역동적인 반응과정을 일으켜 영양물질을 에너지로 바꾸어가며, 그 에너지가 각 세포와 조직에서 목적에 맞게 쓰이도록 유도해간다. 1975년 생리학자 마티넥과 베레딘은 사람들이 햇빛을 받는 정도에 따라 체내 효소의 반응 효율성이 5배 이상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한편 태양은 빛으로서뿐 아니라 열로서도 인체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태양으로부터 받는 파동 중에서 열이 되는 부분은 가시광선인 빛보다 파장이 더 긴 적외선 및 원적외선에 해당되는 부분인데, 이런 태양열을 받으면 우리 몸의 혈압·심박수·호흡이 안정되며 혈액순환이 촉진되어 온 몸의 기능이 활성화되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이유는 태양열은 우리 몸이 항상성을 이루었을 때의 상태와 상당히 비슷한 형태의 파동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태양광선도 마찬가지로 우리 몸에 친화적인 파동을 가지고 있다. 태양이 뜨거나 지는 사진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역시 사진 속에 전사된 태양파동의 효과라고 한다. ) 일광욕이 건강에 좋은 것은 바로 위와 같은 이유에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태양열이 인체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 가운데 아주 중요한 부분이 최근 유럽과 일본의 선구적 의학자들에 의해 확인되고 있다. 이것은 우리 귀에 익숙한 '경락(經絡)'의 기능에 대한 것으로,사실 이 부분을 제일 먼저 밝힌 것은 우리나라가 나은 위대한 의학자 김봉한 선생의 업적이다. (김봉한 선생은 서울 태생으로 1940년대에 경성제대 의학부에서 공부하고 6 ·25 당시 납북되어 김일성 의대에서 연구에 전념해왔으며, 1960-70년대에 경락의 기능을 과학적으로 밝혀냈지만, 1970년대 후반 그의 후원자가 정치적으로 실각하자 탄광으로 유배되던 중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락은 동의학에서 수천년 전부터 인체의 중요한 구조 중의 하나로 믿어왔지만, 서양의학에서는 이것이 관념으로만 존재하는 체계라고 하여 무시해왔다. 경락의 존재가 실증적으로 증명되는 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까닭은, 경락이 아주 배율이 높은 전자 현미경으로 보아야 관찰이 될까 말까 할 정도로 가는 점액질의 선으로, 사람의 생명이 끊어짐과 함께 말라붙어 소실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죽은 시체를 해부하는 것에 인체에 대한 연구의 기초를 두고 있는 서양의학으로서는 그 존재를 파악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최근 초고배율 전자 현미경의 개발로, 경락은 세포의 전기적 커뮤니케이션 통로로서 모든 세포를 관통하며 거미줄처럼 체내에 퍼져 있으며, 우리 몸의 표면으로 집결되는 구조로서, 동의학에서 전통적으로 경혈(經穴)이라고 했던 표피 바로 밑의 여러 지점들은 동의학의 가르침대로 다수의 경락이 교차하는 곳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왜 모든 세포를 관통하는 우리 몸의 연락 체계의 집결지가 피부 바로 밑에 분포되어 있을까? 이것은 우리 몸이 암을 비롯한 구조적 질병을 방지하는 면역기능과 직결되어 있다. 보통 산업사회에 사는 성인의 몸에는 하루에도 수천개씩 암세포가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이 암에 걸리지 않는 이유는 내츄럴 킬러(natural killer, NK)라는 세포가 있어서 암세포를 찾아내서 파괴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봉한 박사가 선구적으로 제창했던 경락의 기능이 확인되면서, NK세포가 파괴한 암세포는 유전자 정보와 단백질로 분해되어 경락을 따라 경혈에 모인다는 사실이 인정되고 있다. 경혈에서는 손상된 유전자 정보를 수리해서 다시 단백질을 합성하게 하여 새로운 세포를 만드는 데 이용한다. 우리 몸은 고도의 자기관리 기능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아주 알뜰한 살림꾼이기도 한 것이다. 이렇게 암세포 등 유전자 정보가 손상된 세포를 수리하는 데는 에너지가 필요한데, 이때 태양열을 이용하기 때문에 세포 수리장소인 경혈이 태양에너지를 잘 받을 수 있도록 표피 가까운 곳에 분포해 있는 것이다. 인체에 대한 과학적 연구성과가 축적될수록 인체의 신비가 벗겨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경이롭게 느껴진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이렇게 태양의 빛이나 열이 인체에 대해 갖는 긍정적인 효과가 과학적으로 밝혀지는 한편 석유나 전기가 갖는 문제점이 또한 다각도로 밝혀지고 있다. 앞서도 말했듯이 '인류를 구원할 신물질'로 칭송되던 물질 중 대부분이 석유 부산물에서 나오는 합성소재들인데, 깨지지도 썩지도 않는 등 다양한 이로운 성격을 가지는 줄 알았던 물질들 중 상당 부분이 최근 들어 인체에 해로운 영향을 끼치는 환경호르몬 내지 맹독성 유해화학물질인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석유나 천연가스를 태워서 얻은 열 역시 파동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태양열처럼 인체의 기능을 활성화시키지는 못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은 인체에 심각한 손상을 초래하는 주요 오염물질이 되고 있다. 화석연료나 핵에너지를 이용한 전기가 열을 발생할 때 인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간단하게나마 녹색평론 제83호에 실렸던 졸고 건강과_에너지에서 살펴본 바 있다. 그밖에도 전기로 만든 빛, 대표적으로 형광등 같은 것이 인체, 특히 뇌기능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요즘 높아져가고 있다.

우리 농촌 난방 에너지원으로서의 태양

우리가 새로운 에너지원을 개발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는 사실에는 누구도 이견을 갖지 않을 것 같다. 우리나라의 모든 경제활동 및 생활이 의존하고 있는 에너지의 거의 전량이 해외에서 수입해오는 화석연료, 아니면 엄청난 재앙의 가능성을 안고 있는 원자력발전에서 온다. 화석연료는 환경오염을 일으킬 뿐 아니라 주로 정치적으로 지극히 불안정한 지역으로부터 공급되며, 그나마 공급되던 것도 매장량의 한계에 다가가면서 가격이 계속 치솟으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원자력발전만이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리고 우리 정부는 그쪽으로 자꾸 길을 넓혀가고 있는 것 같지만, 만일 원자력발전에 관련되어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을 숨김 없이 공개하고 선택하라고 한다면, 이 일에 이해관계가 직접 걸려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주저 없이 선택할지 모를 일이다. 뿐만 아니라 파동의 세계에 대한 인간의 지식이 쌓여가면서, 조명에든 난방에든 원자력발전으로 얻은 전기를 이용하는 것이 아직은 충분히 밝혀지지 않은 엄청난 위험을 내포하고 있을 가능성이 드러나고 있다.

이제까지 인류 역사를 통해서 주류 패러다임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 주류에서 나오는 경우는 없었다. 인간에게 있어서 자기자신을 속이는 능력, 즉 자기에게 편리한 대로 마음으로부터 믿어버리는 능력은 중요한 생존 전략 중의 하나다. 특별히 정신적으로 지적으로 뛰어난 의식 수준에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혜택받은 입장에 있는 사람이라면 거의 예외 없이 그 사회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둔감해진다. 인류 역사가 잘못된 방향으로 치닫다가 방향 선회를 하여 위기를 모면한 경우에서, 그렇게 방향을 바꾸는 시발점이 된 문제제기는 언제나 잘못된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사회구조 속에서 가장 고통을 당해온 사람들, 그로 인해 사회에서 주변화되어 온 사람들에 의한 것이었다. 손쉬운 대로 원자력발전으로 얻은 전기를 앞세워 보급된 심야전기보일러 난방에 대한 문제제기 역시 반생명적 문화가 판치는 이 땅에서 가장 고통을 받는 사람들, 즉 건강이 손상된 사람들에서 나오고 있다는 사실도 앞서 건강과_에너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답답한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에너지 위기를 돌파하는 힘이 농촌에서부터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심야전기보일러는 비쌀 뿐 아니라 건강을 치명적으로 손상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만일 농촌에서 생활하는 것의 주된 이유 중의 하나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난방도 그런 삶을 보장해줄 수 있는 것으로 개발해갈 요인이 더해진다. 그런데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아직 우리 농촌 주택에 태양열을 난방으로 이용하고 있는 곳은 거의 없는 것 같다. 태양광을 집광해서 태양전지를 거쳐 전기로 사용하는 곳은 아직 극소수이기는 해도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를 보인다. 이 전기를 난방에까지 이용하는 경우에 대해선 들은 적이 없으나 그럴 가능성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태양열은 이보다는 많은 농가에서 이용되고 있는데, 난방이 아니라 온수 공급이 목적이다. 더욱이 태양열 온수기의 효능이 아직 충분하지 않아 심야전기 코일과 병행해서 사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에너지 이용 기술에 대한 전문가가 아닌 입장에서 조심스런 사견이기는 하지만, 태양전지로 난방을 하려는 시도는 재고해볼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태양광 자체는 인체에 이로울 수도 있고 과도하면 해롭기도 하겠지만, 이것을 전기에너지로 바꾸어 난방한다면 전자파가 난방수에로 전사되어 우리 몸의 파동을 교란하는 효과를 피할 수 없지 않을까 해서이다. (졸고 건강과_에너지에서 보았듯이.) 그러나 태양열을 난방에 이용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을 것이다. 난방은 해가 있는 낮 동안보다는 해가 없는 밤에 더 필요한 것인데, 태양열을 난방에 이용하려면 그런 시간의 차이를 극복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양열 난방은 전기나 화석연료를 이용하지 못하는 제3세계 사회에서 이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고, 이들을 지원해주는 유럽 시민단체 등의 노력으로 기술상의 진전이 계속되고 있다. 그 방법을 간단하게 보자면, 첫째는 적도를 향하는 방향으로(우리나라에서는 남향으로) 큰 이중 유리문을 두어 그 자체를 집열판으로 하여 태양열을 이용하는 것이며, 둘째는 지붕이나 남쪽 벽에 고효율 집열관을 설치해서 모아들인 태양열로 물이나 암석을 데운 후 난방수 파이프가 이곳을 통과하는 동안 데워지게 해서 집 전체에 순환시키는 방법이다. 두 경우 다 중요한 것은 열의 손실을 막는 일이다.

열의 손실이 극소화되도록 밀폐하는 수동형 주택(passive house)을 만든다면 첫째의 방식만으로도 충분히 난방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대부분의 주택 건설용 자재 및 일상생활의 가구나 집기의 제작에 많은 화학물질이 쓰이는 현대의 생산과정을 고려할 때 보온성이 좋다고 무조건 밀폐도를 높일 수도 없는 일이다. 다행히 우리나라에는 공기 투과성이 좋은 진흙이나 한지, 목재 등의 재료를 이용하기 쉬운 여건이기 때문에 비교적 밀폐도를 높이면서도 실내 공기가 그리 탁해지지 않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태양열을 채집하는 큰 창을 비롯한 창과 문에, 해가 나오지 않는 동안에는 두꺼운 커튼이나 셔터를 쳐서 모처럼 모아들인 열을 빼앗기는 것을 최대한 막아야 할 것이다.

해가 며칠씩 나오지 않을 경우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두가지 방식을 병행해 쓰는 편이 안전할 뿐 아니라 우리나라같이 겨울철 온도가 많이 내려가는 곳에서는 더욱 열을 보강하는 장치가 필요할 것 같다. 이 경우 많이 쓰이는 것이 히트 펌프(heat pump)라는 장치다. 원리는 땅이나 물, 혹은 공기 속에 포함되어 있는 열을 전기를 이용한 압축 장치로 거쳐 농축하여 저온으로부터 고온을 얻어내거나 혹은 고온을 저온으로 바꾸는 것이다. 히트 펌프는 독일과 일본 같은 데서는 주택의 냉난방에 상당히 보급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별로 보급되어 있지 않다. 전기로 발열하는 난방 방식에 비해 전자파 문제가 크지는 않겠지만, 이 경우에도 함정은 있다. 외부의 공기를 내부로 들여보내는 과정에서 필터를 거치게 되는데, 대부분 필터를 PVC 등 합성수지 소재를 이용해서 만들기 때문에, 뜨거운 공기가 PVC를 통해서 들어갈 경우 다량의 환경호르몬이 실내로 유입될 가능성이 있다. PVC는 환경호르몬으로 밝혀진 최초의 물질인 비스페놀 A를 상온에서도 발생시키는 소재이므로, 뜨거운 공기를 PVC 필터에 불어넣게 되면 더욱 환경호르몬이 농도 짙게 발생할 수밖에 없으니까.

태양으로 건강해지기

안 그래도 농촌은 도시와 달라 자신의 생활기반 중 많은 부분을 스스로 만들면서 살아가야 하는데, 기왕 시중에 나와 있어서 기술자들이 와서 다 설치해주는 기술이라면 몰라도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면서까지 태양열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 농촌에서 찾아보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런 부분에서 관심과 애정을 가진 제3자의 도움이 절실하다.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독일 등 북서 유럽에 많이 발달한 대안에너지 관련 시민단체와 같은 존재가 우리사회에도 참 필요하다. 우리나라에도 대안적 에너지를 찾고 보급하는 데 헌신하고 있는 시민단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안을 만드는 선구적 세력들이 언제나 그렇듯이 시민단체의 역량은 늘어나는 수요에 미치기 어렵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계속 악화되는 추세 속에 있어왔고 앞으로도 단시간 내에 개선될 전망이 전혀 없는 우리의 환경을 생각해보면, 그리고 그렇게 악화되는 환경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이 점점더 늘어나는 지금의 상황을 돌아보면,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노력이 건강한 에너지를 개발하고 보급하는 데로 돌려져야 할 것 같다.

태양이 단순히 에너지원으로서뿐 아니라 사람들의 건강 수준을 높이는 데도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대안적 에너지를 위한 노력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고무적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공익적 차원의 환경개선보다 개인적 차원의 자기 건강증진이 더 호소력을 가지게 될 것이니까. 예를 들어 순전히 태양열만으로 난방을 할 수 있는 주택이 있다면, 암 환자들처럼 건강문제가 심각한 사람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외기 속에 오래 나가 있어서 태양광선에 포함된 유해한 자외선의 피해를 입거나 기타 이유로 체력을 소모시키는 일을 피하면서 집 안에서 잘 쉬면서도 태양열의 세포 복구력만을 이용할 수 있으니까.

비단 난방뿐 아니라 취사에도 태양열은 유효하게 쓰일 수 있으며, 사실 난방에서보다 취사 분야에서 농촌 지역과 같은 곳에서 간단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장치들이 훨씬더 많이 개발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일조량이 비교적 풍부하니까, 농촌처럼 마당이 있는 곳이라면 파나볼라식 혹은 상자형 태양열 조리기가 상당히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그러면 취사용 화석연료 사용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실내에서 프로판 가스레인지를 사용할 때 발생하는 유해물질로 인한 실내오염을 줄여 주부의 천식이나 아이들의 아토피를 방지하는 등 건강상태를 크게 개선할 수 있다. 몸에 좋은 태양열 파동이 음식을 데울 때 그 안에 포함된 수분 역시 좋은 파동으로 변하면서 우리 몸의 생리작용 전체를 활성화시키는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필자가 실험해 봤는데, 태양열 조리기로 조리한 음식을 먹으면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면서 온 몸에 힘이 솟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농촌에서 고추, 나물, 곡식 같은 수확물을 건조하는 데도 태양열 건조기를 이용하면 해가 날 때마다 멍석에 널어 말리는 것보다 훨씬 빠른 시간 내에 건조할 수 있으면서도 태양열에너지의 건강증진 효과도 거둘 수 있고, 화석연료나 전기를 이용했을 때의 부작용과 비용지출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은 노력이 많이 들고 위험부담도 따르는 일이다. 그러나 문제가 명확해진 이후에도 낡은 길을 붙들고 있는 것은 더 현명하지 못한 선택일 수 있다. 화석 및 원자핵 에너지의 많은 문제점이 '지구환경문제'라는 거대담론으로 제시되었을 때 대안적 행동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은 소수일 수 있어도, '나와 가족의 생명문제'라는 가까운 현안이 되면 그런 행동에 동참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농촌이 진정한 생명의 터전이 되어갈 수 있다면, 지금까지 오랜 세월 그래왔듯이 농촌은 우리사회에 여러가지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이를 뚫고나갈 정신적 · 육체적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소중한 존재로 지속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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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_갈래, 녹색평론, 이진아


  1. 환경과 건강문제 관련 저술가. 이 글은 본지 제82호의 "[로마, 마야, 그리고 한국의 농촌]", 제83호의 "[건강과 에너지]"에 이어지는 글이다. (1)

다시 찾는 태양 (last edited 2011-11-16 23:50:40 by Minsoo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