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녹색평론》제114호 2010년 9-10월호에 실린 글로서 <돈을 근원적으로 묻는다>에 있는 내용을 옮겨온 것 입니다. 아직 지적 재산권에서 자유로운 문서는 아니지만, 좋은 내용이 멀리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원저작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싣습니다. – 2011년 1월 4일 CET, 직지지기 김민수.

돈을 근원적으로 묻는다

1994년 2월 6일,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 주도(州都)인 뮌헨의 자택에서 엔데는 두시간 넘게 끝없이 이야기를 했다. 이때 이미 엔데의 육체는 암으로 손상되어가고 있었다. 이듬해 8월에 엔데의 부고를 접했을 때, 우리는 무거운 과제를 떠맡은 느낌이었다. 이 테마를 엔데 없이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어찌할 바를 모르면서도, 가급적 많은 사람들에게 엔데의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 무렵 냉전 후의 세계에서 사건들이 급격히 일어났다. 1994년 말 멕시코와 아르헨티나의 통화위기, 97년의 아시아 그리고 러시아의 금융위기, 98년의 세계시장 도박화의 장본인인 헤지펀드의 파탄 등등. 일본도 거품경제 이후 사회 모습이 빗나가고, 관민 모두에게서 도덕적 위반행위가 줄줄이 계속되고 있다. 사회에서는 벌거벗은 생존경쟁논리가 활개를 치고, 실업자와 자살자가 전후 최악의 비율로 증가하고 있다. 바닥 없는 늪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는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 지방이나 지역공동체에서 자본주의의 폭주에 대항하는 움직임의 싹도 자라고 있다. 지역통화나 ‘사회적 은행’ 등이 시도되고 있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돈’이라는 병에 걸려있다고 지적한 엔데의 예언은 들어맞고 있다. 1995년 5월, 꽤 시간이 걸렸지만 이 녹화테이프를 토대로 한편의 프로그램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그것은 《엔데의 유언―근원에서부터 돈을 묻는다》라는 제목으로 방송되었다.

3차대전은 시작되었다

엔데는 기회 있을 때마다 “이미 제3차 세계대전은 시작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것은 영토나 종교를 둘러싼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자손들을 파멸로 이끄는 시간전쟁”이라는 것이었다.

자손을 희생시키고자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 말을 비유로서 이해하고자 하였다. 지금 우리는 20세기가 산출한 미해결의 문제가 산적한 채로, 21세기로 들어가고 있다. 상징적인 사례는 환경호르몬과 핵폐기물이다. 자신의 손으로 만든 이것들을 안전하게 처리하는 것은 현재의 과학기술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후세에 해결을 미룬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거품 붕괴 후의 경제재건 명목으로 거액의 적자국채가 남발되고, 그 부채상환의 짐은 자손이 지지 않으면 안된다. 세계적으로도, 종교나 민족의 대립이 격화하고 있지만, 그때그때의 대응으로 시종할 뿐, 근원적인 해결을 보지 못하고 있다.

엔데는 이런 현실을 ‘시간전쟁’이라고 불렀다. 엔데는 누구보다도 일찍이 온갖 문제의 핵심으로서, 자본주의경제가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금융시스템에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

판타지 작가인 엔데는 의표를 찌르는 우화나 이야기의 힘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독자들이 느낄 수 있게 하였다. 엔데는 말했다.

엔데는 사람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위기에는 대처할 수 있지만, 눈으로 볼 수 없는 위기에는 무력한 존재라고 말한다. 더욱이 엔데는 예전에는 과거의 문화나 역사를 배움으로써 현대의 문제에 어떻게 대처할까를 터득했지만, 우리가 지금 직면하고 있는 ‘돈’의 문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에 대한 규범이 과거에는 아무것도 없다 ― 따라서 미래를 상정하고, 무엇이 일어날 것인가를 예언적으로 직관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그것은, 인간에게 부여된 상상력에 의존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문제해결을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서부터 생각한다. 그것이 엔데가 의지하는 판타지의 힘이다. 우리는 《끝없는 이야기》의 허무나 《모모》의 시간도둑에 대한 상상력이 갖는 설득력을 다시 한번 검토해봐야 하는 게 아닐까.

지금 다시 엔데의 책을 읽어보면, 그의 ‘돈’에 대한 문제의식은 이미 《모모》 속에서도 흐르고 있고, 엔데 자신이 온갖 기회에 이 문제를 되풀이해서 말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1980년경에 엔데는 취리히에서 열린 재계인사들의 모임에 초대되었다. 200명 정도의 경영자가 모여서 하루 종일 경제파국을 막기 위해서는 연간 몇퍼센트의 성장이 어떻든 필요하다 따위의 논의로 시간을 보냈다. 저녁이 되어서, 엔데는 그들 앞에서 《모모》의 한구절을 낭독했다. ‘회색의 남자들’에 관한 대목이었다. 듣기를 끝낸 최고경영자들은 난감한 얼굴로 묵묵히 있었다.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낭독 부분의 문학적 가치에 대하여 토론이 시작되었다. 높은 분들이 아무리 해도 토론이 잘 안되었다. 그래서 엔데는 “여러분은 오늘 미래에 대해서 논의하셨는데, 과감하게 100년 후의 사회가 어떻게 되면 좋을지 자유로이 말해보시라”고 제안했다. 또 오래 침묵이 계속되었다. 이윽고 어떤 사람이 “그러한 이야기가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전혀 난센스가 아니겠는가. 우리는 사실의 영역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사실이라는 것은 곧 적어도 연간 3퍼센트의 성장이 안되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고, 경제적으로 파멸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엔데는 이 회의에 참석한 체험으로부터, 이러한 피상적인 사고에 붙들려 있는 것은 경영자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 경험을 나중에 친구에게 말했다.

성장을 강제하는 ‘돈’

엔데는 공업국의 생산과 소비를 관통하고 있는 것이 일종의 성장 강박증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어디로부터 온 것인가. 독일어에 ‘개가 묻힌 곳’이라는 관용구가 있다. 문제의 핵심이라는 의미이지만, 엔데는 성장에의 강제는 자본주의국가가 공통하게 갖고 있는 ‘돈’의 문제, 즉 돈의 발행, 관리, 운영, 보증 등을 포함하는 금융구조 전체에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지폐의 가치는 무엇에 의해 담보되는 것인가. 금본위제 시대에는 발행된 지폐는 물질적인 가치를 가진 금과의 관련에서 보증되었다. 그러나 국제통화 달러는 1971년의 닉슨독트린으로 금과의 연계가 단절되고, 달러를 보증하는 구체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는 시대로 들어갔다. 각국의 통화와 달러가 상품으로서 거래되는 머니게임의 시대가 된 것이다. 경제학자 베르나르 리에테르는 이러한 상태를 “닻을 잃어버린 달러가 세계를 표류하고 있다”라고 적확히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법적 권리’인가, 국가가 그것을 보증하는가. 만일 그렇다면 ‘돈’은 경제영역에 속하지 않고, 법적 단위가 됩니다. ‘법적 권리’라면 상업행위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경제영역에 속한다면 그것은 상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0명의 법률가로부터는 10가지 답변이 왔습니다. 즉 법적으로 보아서 은행권이 무엇이라는 것을 우리는 전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정의는 한번도 내려진 적이 없어요. 우리는 그것이 뭔지도 모르면서 주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많은 전문가와 만나고, 자료를 수집하는 가운데, 엔데는 스위스의 경제학자 빈스방거에 주목했다. 빈스방거는 무한의 진보라는 환상을 만들어낸 근대경제는 중세의 연금술이 성공한 것이라는 특이한 관점을 갖고 있다. 그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현대인에게 경종을 울리는 책으로 인식하고, 거기에는 근대경제의 매력과 위험이 암시되어 있다고 말한다.(《돈과 마술―파우스트와 근대경제》)

《파우스트》의 제4막에서, 악마의 힘을 빌려 청춘을 되찾은 파우스트는 처녀 크레트헨과의 미(美)의 편력을 끝내고, 지금으로 말하면 개발사업에 뛰어든다.


엔데는 악마적인 원리에 대해서 말했다. 그것은 인간이 가진 영성을 부정하고, 인간이란 어디까지나 물질로 되어있다는 논리를 깔고 있는 원리라는 것이다. 인간의 고뇌는 늘 한편으로는 정신적 존재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물질적 존재라는 점에서 기인하며, 이 긴장관계가 끊임없는 고뇌를 가져다준다. 고뇌는 인간이 영성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악마는 어떤 시대에도 인간에게 “모든 것을 잊어버려라. 고뇌 따위는 필요없다. 현세로부터 자신을 해방시켜라”라고 호소한다. 모든 게 물질적인 존재라면 사람에게는 고뇌도 환희도 없을 것이다.

엔데는 경제는 사람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사회적 행위인 이상, 거기에는 선악이나 도덕의 규범이 포함돼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의 경제활동은 그렇게 되지 않고 있다. 경제활동의 전제조건이어야 할 자연자원을 파괴하고 마는 경제시스템의 모순에 엔데는 눈을 돌린다.

지금 금융시스템을 다시 묻는다

이러한 말은 논리적인 엔데의 발언이기 때문에 각별한 무거움을 지닌다. 통상 우리들 주위에 넘치게 존재하는 경제학이나 경제에 관한 정보 속에서는 현행 금융시스템의 근본을 물어보는 일은 매우 드문 것으로 느껴진다.

과거의 고도문명 가운데서 우리들의 화폐시스템과 전혀 다른 화폐를 가지고 있었던 예는 확실히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잉카문명에서는 전혀 다른 화폐시스템이 있었지만, 동시에 전혀 다른 가치척도 위에 성립한 문명이었습니다. 이것이 금융시스템의 변혁을 생각할 때에 직면하는 문제의 하나입니다. 현대인이 물질적인 풍요만이 인생을 가치있게 한다고 생각하는 한, 그 밖의 것으로 눈을 돌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지금 말하고 있는 문제에는 두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하나는 시스템의 변혁으로, 여기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또하나의 측면은 정신적 변혁으로, 이것은 정말로 필요합니다. 외적인 가치 이외의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배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쪽이 시스템의 변혁보다 어려울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언젠가 나는 이 문제로 당시 독일 사회민주당 당수였던 포겔 씨의 개인적 회합에 초대된 적이 있습니다. 이야기가 끝나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을 사회민주당의 경제평의회 멤버로 모시고 싶다. 지금 당신이 한 이야기는 우리들도 알고 있고, 우리들도 생각하고 있는 문제이다. 그러나 자본경제의 변혁을 당 강령으로 채택한다면 큰일이 날 것이다. 아무도, 노동자들도, 사회민주당에 표를 주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약점입니다. 민주주의에서는 언제나 이성이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근시안적인 이익관념이 승리를 가져다주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지중해나 알프스에서의 휴가가 불가능하다고 한다면 누구도 표를 주지 않습니다. 이 경제시스템의 변혁이 어려운 것은 우리의 민주주의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는 당 강령을 통해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정치를 통해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1920년대에 생각했던 것처럼 국가가 주도하는 경제나 무력 혁명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습니다. 경제인 자신이 이 문제를 이해하는 것 이외의 길은 없습니다. 은행에 거대한 자본이 축적되더라도 자연자원이 파괴된다면 아무런 쓸모도 없으니까요. 경제활동을 하는 경제인이 공동으로 행동해야 하는 것입니다.

엔데는 금융시스템은 인간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변혁도 당연히 가능하며, 동시에 과거의 여러가지 시도 속에 미래에 대한 힌트가 있다고 주장했다. 엔데는 실비오 게젤의 이름을 들었다. 그의 사상은 돈도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세월이 가면 최후에는 사라져버려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얼핏 진기한 생각인 듯이 보이지만, 이 이론은 실제로 실천되어 큰 성과를 거둔 적이 있다. 신고전파 경제학에 대항했던 경제학자 케인즈도 게젤을 평가한 바가 있다. 케인즈의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1936)에는 “실비오 게젤은 부당하게 오해되고 있다. 우리는 장래의 사람들이 맑스의 사상보다도 게젤의 사상으로부터 한층 많은 것을 배울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게젤 이론의 사회적 실천은 1932년 독일 국경에 가까운 뵈르글에서 행해졌다. 당시 인구 5,000명이 채 안되는 이 도시는 400명에 이르는 실업자와 1억3,000만실링의 부채를 껴안고 있었고, 재정은 파탄상태였다. 그래서 시는 긴급구제 계획으로서 통상 화폐와는 다른 ‘노동증명서’라는 새로운 돈을 발행하여 시의 공공사업의 지불에 충당하였다. 그 결과, 새로운 고용이 생겨나서 실업자는 일자리를 얻고, 경제는 활기를 되찾게 되었다. 저축하지 않고 신속하게 유통되는 돈이 경제활동을 몇배나 크게 한 것이다. 주변 도시들에서도 뵈르글의 성공을 보고, 노화하는 돈의 채택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정부는 지폐발행은 국가의 독점적 권리라고 주장하면서 시장 운터구겐베르거를 국가반역죄로 기소하고, 이 돈을 회수하였다.

무릇 돈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둘러싸고 엔데의 사색은 계속되었다.

화폐의 기괴한 자기증식은 무언가의 희생을 동반하는 흑마술(黑魔術)이라고 보는 엔데의 새 작품은 독일 중세의 하메룬의 피리 부는 남자에 관한 전설을 현대식으로 읽은 오페라이다.

엔데의 ‘돈’에 관한 문화사·사상사적인 고찰은 계속되었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엔데에게 큰 영향을 끼친 사상가이다. 엔데의 서재에는 몇십권이나 되는 슈타이너 전집이 있고, 그는 그것을 집중적으로 읽었다. 슈타이너는 사회라는 유기체를 3개의 분절로 나누어서 보는 사회삼층론(社會三層論)을 세웠다. 사회 전체를 정신과 법과 경제라는 세가지의 기능으로 나누는 것이다. 그래서 정신생활에서는 자유가, 법생활에서는 평등이, 경제에서는 상호부조의 힘이 기본이념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기능은 프랑스혁명의 슬로건이었던 자유, 평등, 우애에 대응한, 근대시민사회의 이상이기도 하다. 이 세가지 영역이 기본원리에 따라 기능하면서 상호균형을 이루고 있는 사회가 건전한 것이다. 사회삼층론에서는 경제생활을 경쟁이 아니라, 우애라는 원리를 근본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있다.

엔데의 발언에서 우리는 큰 거리감을 느낄지 모른다. 오늘날 우리사회는 문화도 경제도 관이 지배하고 통제하고 있다. 경제재건이라고 하여 사기업인 금융기관에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고 있다. 문화활동이나 정신활동도 권력의 영향에 의해서 방향이 결정되고 있다. 그러나 엔데의 말은 미래사회의 존립방식을 생각하는 데 구체적인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의 기본인 다수결은 정치적 차원의 원리이다. 문화나 정신활동은 민주주의와는 별도의 원리인 자유가 가장 중요한 영역이다. 예술은 다수결로 측정되지 않는다. 특히 돈을 생각하는 데에, 경제생활을 관통하는 게 우애의 원리라는 생각은 경청할만하다. 지금 많은 지역통화나 ‘사회적 은행’에서는 사람의 생활을 돕고 상호지원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여러가지로 추구되고 있다. 거기에서 돈이 공동체의 회복을 위한 끈이 될 가능성을 볼 수 있다.

경제평론가 우치하시 가츠토(內橋克人)는 ‘다원적 경제사회’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즉 이윤추구와 경쟁을 기본원리로 하는 기업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 전부를 제공할 수 없으므로 그것과는 별도의, 연대와 협동을 행동원리로 하는 경제적 행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경쟁섹터와 공생섹터가 병존할 수 있는 다원적 경제사회야말로 우리가 목표로 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글로벌리즘이나 규제완화에 의한 자유경쟁이 전부라고 하는 논조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인터뷰의 마지막에 엔데는 새로운 사회와 경제의 이상을 내걸었던 맑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엔데는 마지막으로 예언적인 말을 하였다. 낙관적인 게 아니었다.

돈에 관한 사색은 《모모》에서 시작되었다

엔데가 사망했을 때, 독일 대통령 로만 헤르초크는 “현재의 독일인으로서 엔데의 책과 함께 성장한 기억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라고 했다. 이 말에는 전후 독일의 국민적 작가가 된 엔데에 대한 깊은 애정이 넘치고 있다.

1973년에 발표된 엔데의 작품 《모모》는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적으로 600만부가 발행되었다. 엔데의 작품은 아동문학이라는 틀을 넘어 폭넓은 연령층의 독자들에게 읽혀왔다.

《모모》의 줄거리를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어느 큰 거리의 오래된 원형극장에 한 여자아이가 어딘가로부터 나타나 여기서 살고자 한다. 모모라는 이름의 이 소녀는 가만히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으로 그 사람들이 자기자신을 되찾게 하는 불가사의한 힘을 가지고 있다.

가난해도 풍요롭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앞에, 어느 날, ‘회색의 남자들’이 나타난다. 시간저축은행으로부터 왔다는 이 회색의 남자들은 실은 사람들에게서 시간을 뺏아가려는 ‘시간도둑’들이었다. 시간을 절약해서 시간저축은행에 시간을 예치해두면 이자가 이자를 낳아서 인생의 몇십배나 되는 시간을 만들 수 있다고 하는, 회색의 남자들의 교묘한 말에 넘어가서 사람들은 여유가 없는 생활에 쫓기게 된다. 그리고 시간과 함께 다른 것으로 대신할 수 없는 인생의 의미까지 잃어버리게 된다. 모모는 도둑맞은 시간을 사람들이 되찾을 수 있도록 예지의 상징인 불가사의한 존재, 거북이 카시오페이아와 함께 회색의 남자들과의 결사적인 싸움에 도전한다.

일해도 일해도 어째서 여유롭게 되지 않는가. 물질적인 풍요로움과는 반대로 갈수록 마음속에 퍼지는 공허감…. 엔데의 《모모》는 시간의 진정한 의미, 여유롭게 사는 것의 중요함을 강력하게 호소하여 세계의 많은 독자들을 매료시켰다.

그러나 엔데 자신은 어떤 대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엔데가 《모모》에서 말하고자 한 ‘조금 다른 것’은 무엇이었을까.

독일의 경제학자 베르너 온켄은 《모모》의 우화 이면에 현대의 경제시스템에 대한 엔데의 문제제기가 묘사되어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고, 그것을 엔데에게 편지로 적어 보낸 최초의 인물이다. 1986년, 엔데의 《모모》를 읽은 온켄은 거기에는 ‘시간과 함께 가치가 감소되는’ 실비오 게젤의 자유화폐이론과 루돌프 슈타이너가 제창한 ‘노화하는 돈’이라는 아이디어가 묘사되어 있다고 느끼고, 그것을 〈경제학자를 위한 《모모》〉라는 논문으로 정리했다. 그리고 엔데 본인에게 서신으로 자기 생각이 바른지 어떤지 물었다. 엔데는 바로 답장을 보냈다.

‘경제학자를 위한 《모모》’

온켄은 《모모》에서 무엇을 읽어냈던가. 온켄의 논문 〈경제학자를 위한 《모모》〉의 일부를 소개한다.

온켄이 게젤의 이론에 주목한 것은 1980년대였다. 에콜로지운동의 고조 속에서 태어난 녹색당은 게젤의 이론을 연구,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창설되었다. 그 중심이 되었던 게오르그 오토는 게젤의 화폐이론과 토지제도개혁을 녹색당의 기본노선의 하나로 삼으려고 하였다. 그 후 당의 확대와 함께 분열, 오토는 당으로부터 이탈했지만, 이 때문에 다시 한번 게젤의 이론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온켄도 이러한 에콜로지운동의 흐름 속에서 게젤의 이론과 만났다. 당시, 온켄은 교사를 지망하고 있었는데, 게젤 이론을 통해서 경제에 관심을 갖게 되고, 신고전파 경제학과 맑스주의를 넘은 제3의 길로서 게젤의 이론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싶었다. 그러나 게젤의 이론은 당시 대학에서도 연구되지 않는 잊혀진 경제사상이었다. 온켄은 흩어져 있던 게젤의 저작을 열심히 모았다. 그것이 10년의 세월을 거쳐서 ‘게젤 전집’이라는 형태로 결실되었다. 1990년대로 들어와서 독일에서는 ‘교환링’이라고 불리우는 지역통화가 시민들 사이에 확산되기 시작했다. 온켄은 이러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게젤의 이론이 계승되어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엔데의 작품은 상식이 된 가치관이나 시스템을 계속 묻는 것으로써 새로운 의식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고 말한다.

엔데는 변혁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의지처가 되어있다. (김형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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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평론


Category녹색평론


  1. (Michael Andreas Helmuth Ende) ― 여기 소개하는 글은 1994년 일본NHK 프로듀서 河邑厚德 씨가 《모모》의 작가 미하엘 엔데의 생애 마지막 무렵의 생활을 취재하고 그와 나눈 대담기록을 토대로 해서 정리한 책 《엔데의 유언―근원에서부터 돈을 묻는다》(일본방송출판협회, 2004)의 제1장을 발췌, 번역한 것이다. (1)

돈을 근원적으로 묻는다 (2016-06-18 18:16:53에 MinsooKim가(이) 마지막으로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