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녹색평론》 제78호(2004년 9-10월호)에 올려져 있는 글 <좌담, 박정희 시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을 참조하고, 그 본문에서 (하략)이라고 되어 있는 부분을 직지지기 김민수가 직접 입력해서 올린 것 입니다. 이 글은 지적 재산권에서 자유로운 문서는 아니지만, 좋은 내용이 멀리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원저작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싣습니다. – 2010년 5월 2일, 직지지기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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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 | 박정희 시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
- 《녹색평론》제78호 2004년 9-10월호
생존의 토대와 민주주의
김종철
요즘 개혁이니 친일행위 청산문제니 하는 정치적 주제를 둘러싸고 시국이 어지럽습니다. 게다가 경제가 심각한 위기상황으로 가고 있는 게 분명하고, 그래서 한때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까지 들어온 한국경제의 장래에 대해서 깊이 우려하는 목소리들도 많이 들립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새삼스럽게 박정희 시대를 그리워하는 대중적 정서가 확산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주목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군사통치가 종식되고 소위 민주화가 웬만큼 이루어진 지도 이제는 꽤 여러 해가 흘렀는데도, 아니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박정희 시대에 대한 향수가 짙어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러고서야 과연 우리가 친일문제를 포함하여 현대사의 파행(跛行)을 정당하게 극복하고,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사회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는지 걱정이 됩니다.
물론 그동안 여러 다른 매체를 통해서 박정희 시대에 대한 검토는 다양한 시각에서 많이 시도되어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특히 요즘 돌아가는 세태를 보면서 저는 이 문제에 대한 좀더 근원적이고 철저한 비판적 검토 없이는 적어도 한국사회에서는 어떠한 진정한 개혁도, 진보도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선 오늘 이런 자리라도 한번 마련해보면서 본격적인 논의를 우리 나름으로 시작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실은, 이번에 제가 이런 좌담회를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얼마 전에 나온 천규석 선생님의 책《쌀과 민주주의》가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책의 서장에서 천 선생님이 모처럼 마음먹고 최근의 주요 정치적‧사회적 현안에 대해 거침없이 발언하고 있는데, 그걸 읽으면서 결국 근본적인 문제는 민주주의의 문제로 돌아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우리가 그동안 너무도 쉽게 민주주의를 말해왔지만, 정말 우리의 기초적 생존의 토대에 관련해서 우리가 얼마나 진지하게 민주주의를 생각해왔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자면 지금 우리가 운위하는 민주주의의 역사를, 멀리까지는 못 간다 하더라도, 적어도 좀더 깊이 근원적인 관점에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아무튼 지금 시점에서, 이라크 파병이라든지 쌀 개방 문제라든지, 또 지금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제기되고 있는 수많은 정치적‧사회적 현안들이 결국은 박정희 시대를 제대로 평가하고 청산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는 것은 새삼스럽게 강조할 필요가 없는 문제일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유신정치 시대는 20년도 더 전에 끝났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지금도 죽은 박정희가, 혹은 박정희의 유령이 이 나라를 통치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모든 게 본질적으로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어떤 점에서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물론 겉모습으로는 많이 달라진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그동안 언론상황이 크게 달라진 것은 틀림없어요. 군사정부 하에서는 언론자유를 위협하는 가장 큰 굴레가 국가권력이었는데, 지금은 언론이 그런 점에서는 별로 구속을 느끼는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지금 언론자유에 가해지고 있는 핵심적인 압력은 국가권력이 아니라 기업이거나 언론 자신의 경영논리입니다. 그런 면에서 세상이 많이 달라진 건 분명해요.
그런데, 그런 달라진 상황에도 불구하고, 가령 들끓는 반대여론을 무시하고 이라크 파병이 결행된다든지, 새만금을 비롯한 대규모 환경파괴가 국책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주저없이 확대되는 분위기라든지, 이런 것을 보면 우리사회가 환경과 평화의 세기를 향해 나아가기는커녕 도리어 과거보다 더 심각한 퇴보를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 모든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정책들이 우선 먹고사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경제지상주의와 안보논리, 그러니까 이른바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쉽게 합리화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과연 현 상황이 얼마만큼 박정희 시대와 다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경제가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국면에서 소위 경제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제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박정희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다른 방식을 생각할 만한 능력이 이 사회의 주류 혹은 지배엘리트들 사이에 있는 것 같지 않아요. 실제로 약간의 민주적인 제도가 확립이 되고 국가권력의 직접적인 폭력이 상당히 줄어들었다고 하더라도―물론 그것이 작은 문제는 아니지만―결국은 우리가 생존을 영위하는 근본적인 방식이 모든 사태의 뿌리를 이루는 관건이라고 한다면, 그런 점에서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문제가 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경제문제든 환경문제든 제가 보기에는 이대로 가면 결국 파국에 부딪칠 게 너무나 분명해요.
권력을 장악하거나 장악하려고 하는 인물들의 이름이 달라진다고 해서, 또는 그들을 지지하는 집단들의 계급적 성향이 약간 달라진다고 해서―그것도 물론 작은 문제는 아니겠습니다만―상황이 변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사람에 따라서는 세상 많이 달라졌다, 많이 좋아졌다 할 수도 있겠고, 실제로 소위 진보적인 사람들 가운데서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습니다만, 저희들《녹색평론》의 시각에서 보면 오히려 상황은 절망적으로 가고 있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 들고, 특히 요즘 경제문제의 해법이라고 내놓는 정부의 방침을 보면 더욱 암담한 기분이 듭니다.
박정희라는 개인에 관해서도 우리가 생각해볼 것이 물론 있겠지만, 오늘 굳이 “박정희 시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고 제목을 단 것은,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중요한 현안들을 짚어보는 데 있어서도 박정희 시대는 단지 지나간 시대의 문제가 아니고 현재 상황과 직결되어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우선 박정희 내지는 박정희 시대에 대해 각자가 생각하고 계신 것을 대체적으로 말씀해 주시면서, 지금 우리가 부닥치고 있는 현안들에 관련해서 좀더 구체적으로 박정희 시대의 유산 내지는 현재성을 점검해보는 게 어떨까 합니다만…
신보연
그러면 우선 김 선생님께서는 ‘박정희 시대’를 어떤 시대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김종철
저한테 묻지 말고 먼저 말씀을 좀 하시지…(웃음) 많은 사람들이 대개는 분석적인 어법으로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박정희 시대는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측면에서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러나 한민족의 숙원인 경제발전이라는 측면에서는 다대한 공로를 세웠다.”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며칠 전〈중앙일보〉에 실린 백낙청 선생의 짧은 시평도 이 문제를 거론하고 있었는데, 그 글의 제목이 ‘지속불가능한 발전의 유공자’로 되어있어요. 얼른 보면 시니컬한 비판조의 제목인데, 그럼에도 굳이 ‘유공자’라는 단어를 붙인 데서도 엿볼 수 있듯이, ‘지속불가능한 발전’이라 하더라도 어쨌든 ‘발전’을 이룩해낸 공로는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런 생각을 담고 있는 글이었어요. 박정희라는 독재자의 철권통치를 통해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크게 훼손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이룩한 경제발전의 공로와 그로 인해 들어올려진 국가적 위상을 무시하는 것은 공정한 비판이 될 수 없다고 보는 생각이지요. 아마도 이것은 지금 꽤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박정희와 그 시대를 평가하려는 지식인들의 전형적인 논리를 대표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실제로 대개가 그렇지 않습니까. 박정희를 호되게 비판하는 사람들도, 민주주의와 인권을 심각하게 짓밟았지만 경제발전의 공로는 인정해줘야 되지 않겠나, 이게 일반적으로 하는 얘기들인데요. 이것이 과연 옳은 소린지에 대해서도 말씀을 나눠보시지요.
권혁범
저는 그 이전에 아주 단순하게 생각해서 이런 점을 따져 보았으면 합니다. 소위 ‘박정희 시대’에 수량적인 의미에서 경제발전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누구의 공로냐 했을 때, 왜 시선이 박정희라고 하는 지도자에 쏠리게 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물론 경제적인 정책을 구상하고 그것을 실행하는 주체세력이 있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지만, 그 성격과 목표 등은 따지지 않고, 또한 피땀 흘려서 일한 노동자나 농민 이야기는 항상 빠져버리고 엘리트 집단, 소위 ‘산업화 세력’만이 거론되거든요. 그 산업화 세력이라는 말에는 노동자나 농민의 희생이라고 하는 의미는 전혀 안 들어가 있고, 경제엘리트나 박정희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 공화당 세력만이 포함된다는 겁니다. 또하나는 그 경제발전의 부정적 유산, 산업화가 남긴, 아니 지금도 견고하게 유지하는 암흑에 대해서는 침묵한다는 겁니다. 저는 일단 그런 문제의식을 좀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천규석
나도 권 선생님 얘기에는 어느 정도 동감을 하긴 합니다. 예를 들어서 박정희가 이루었다는 소위 경제발전이 실상은 수많은 노동자와 농민들의 희생, 피땀을 통해 이루어진 거다, 물론 그런 얘기는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국가경영의 ‘목표’가 대통령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봅니다. 더구나 박정희 정권과 같은 독재체제에서는 그런 목표 설정과 추진에서 주도권이 박정희에게 집중되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거든요.
박정희는 사실상 나하고 동시대 인물인데요. 박정희 시대를 몸으로 살았다고 할 수 있거든요. 그 시대를 살면서 내 개인적으로는 그 시대가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극복’의 대상이었습니다. 내 관점에서 볼 때 농촌공동체가 가장 심각하게 깨어지는 단초를 제공한 사람이 바로 박정희거든요. ‘새마을운동’ 같은 것도 농촌공동체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 결국 전통적인 농촌문화와 공동체를 파괴한 것에 불과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소위 객관적인 어법으로 공과 과를 분석하기 이전에 거부감부터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나로서는 박정희는 철저히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지 조금이라도 계승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그 시대에, 그리고 이후에 소위 ‘민주화운동’ 했다는 사람들, 소위 4‧19세대부터 386세대까지, 이런 사람들은 우리보다야 훨씬 이론적으로 더 무장되고 공부도 많이 하고 그랬는지 몰라도, 지금 와서 이런 사람들이 박정희보다 한술 더 뜨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요.
박정희는 그 막강한 국가권력을 통해 공동체를 파괴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인류의 역사란 결국은 기층공동체 파괴의 역사입니다. 민중의 자치적이고 평화로운 공동체를 계속 파괴해온 역사더라고요. 그런데 박정희 시대에는 국가권력이 공동체를 파괴하고 민중의 삶을 수탈했는데, 지금 와서는 여기에 시장권력까지 합세를 해서 협공으로 민중의 공동체를 거덜내고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금의 권력자들과 지배엘리트들―그들 가운데 대부분은 소위 과거의 ‘민주화운동’ 세력이고 ‘진보주의자’들인데요―이 주도하고 부추기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 국가권력을 장악한 사람들은 과거 자신들이 반대했던 박정희 정권의 패러다임을 버린 게 아니라 그것을 더욱 강화하고, 국가권력에다가 시장권력까지 가세를 시켜서 민중의 삶과 공동체를 더욱 참혹하고 가속적으로 파괴하고 있다고 봅니다. 지금 이 사람들은 박정희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것을 계승하고 강화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강수돌
박정희 시대를 흔히 “정치적으로 독재이긴 하나 경제적으로 놀라운 성장을 한 것은 사실”이라는 식으로 평가하는데요. 저는 정치와 경제가 그렇게 분리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경제라는 말의 어원인 ‘경세제민’이라는 말이 원래 “세상을 잘 다스려 백성들을 (잘 먹고살게) 구한다”라는 뜻을 갖고 있듯이 정치가 경제요, 경제가 정치이기 때문이지요. 백성들이 잘 먹고살게 되는 상태 또는 그렇게 가는 과정, 그것이 곧 민주주의요, 바른 경제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박정희 시대는 독재의 방식으로 가진 자 혹은 기득권층(특히 재벌)을 더 잘살게 했다는 점에서, 우리사회에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극복되지 못한 패러다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보연
박정희 정권이, 그나마 정통성을 가지고 있었던 장면 정부를 쿠데타로 엎고 집권을 하다 보니까 그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게 필요했을 겁니다. 거기서 민주주의와 바꿀 수 있을 만한 게 결국은 경제개발, 돈벌이, 잘사는 것, 이런 이데올로기였는데요. 가령 대표적으로 새마을운동이 한마디로 ‘잘살기 운동’이었거든요.
그렇다고 할 때 저는 이런 생각이 들어요. 우선, 그 잘살기 위한 방식이 민주주의와 바꿀 만한 것이었는가 하는 것, 그리고 계속된 경제개발 과정이 정말 잘사는 과정이었는가 하는 것이지요.
제가 자란 시절이 바로 박정희 시대였는데요. 그때 초‧중‧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돌아보면 제가 초등학교 4, 5, 6학년 때까지는 누구나 그랬지만 밥을 제대로 못 먹었어요. 자주 굶고 깡보리밥도 먹고 그랬지요. 그러다 중학교 고등학교쯤 되면서 밥을 제대로 먹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저는 초등학교 때 서울 상도동에 살았는데요, 봉천동까지만 가면 어느 개울에서든 마음놓고 헤엄을 치고 놀 수가 있었어요. 한강에서도 수영을 할 수가 있었지요. 그런데 초등학교 5, 6학년쯤 되었을 때 한강에 나가보면 똥덩어리들이 떠내려오고 강물에 발을 담글 수가 없을 정도로 오염이 되어버렸어요. 30여년이 지난 지금은 웬만한 시골의 개울도 다 마찬가지가 되어버리지 않았습니까. 과연 이것이 잘살게 된 것인가.
저는 어릴 때 자주 굶긴 했어도 그렇다고 굶어서 죽지는 않았잖아요. 하지만 밥을 제대로 먹게 된 대가로 아이들이 마음놓고 물장구 칠 맑은 개울이 이 땅에 하나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면 이것이 과연 잘살게 된 것인가. 그리고 지금 인구의 거의 90퍼센트가 도시지역에 몰려 살면서, 이렇게 오염된 공기를 마시고, 자연과 벗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이것이 과연 잘사는 것인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김종철
재미있는 것은, 이승만 정권 말기에 원조 관계로 미국 사람들에게 계획서를 써내면 좀더 유리한 조건으로 한국정부가 원조를 받게 될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있었다고 해요. 그때 경제관료들이 계획서를 쓰자고 했는데, 대통령이 반대를 했다고 그래요. 반대논리가 뭐냐 하면, 계획경제라는 것은 공산주의에서나 하는 거다, 우리가 자유민주주의 국가인데 계획경제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그런 논리였다고 해요. 이승만이라는 사람이 이런 면에서는 일관성이 있었다고 할까요. 그러나, 아무튼 그때 공식화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계획경제의 시나리오는 있었던 거예요. 장면 정부 때도 마찬가지고.
잘 알려져 있는 얘기지만, 박정희가 머릿속에 가지고 있었던 근대화의 모델이라는 게 일본의 메이지유신 이후의 천황제 국가주의에 기반을 둔, 위로부터의 파쇼적 근대화였습니다. 그것이 골수에 박혀 있었던 거지요. 실제로 군사쿠데타 직후에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된 박정희가 맨 처음 한 게 뭐냐 하면 야스오카(安岡正篤)라는 일본인과의 접촉을 시도하는 일이었어요. 야스오카라는 인물은 일본에서 전전에도 그랬지만, 특히 전후에는 일본 자민당 정권의 배후에서 실질적으로 일본 정계나 재계의 실력자들의 스승 노릇을 한 사람이라고 해요. 그런데 이 사람의 핵심적인 사상이라는 게 천황주의, 일본 중심의 아시아주의라는 겁니다. 그런 인물을 박정희가 제일 존경하고 있었다는 거지요. 박정희가 일본에 갔을 때 가장 처음 만난 사람도 이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 사람에게서, 앞으로 한국의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수출주도형으로 가야 한다는 충고도 나왔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원자재 가공해서 수출 위주로 가고, 재벌을 육성해서 그것을 중심으로 성장정책을 전개하라는 아이디어, 또 종합상사라는 개념도 그 사람에게서 나왔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박정희라는 사람이 일본의 천황제 국가주의에서 효율적인 부국강병의 원리만을 보았다는 점인 것 같아요. 그로 인해 우선 조선이 식민지가 되고,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가 유린되고, 또 일본 자신이 태평양전쟁이라는 무모한 전쟁모험 끝에 결국 초토화되어 버린 역사적 사실에는 철저히 외면하고 있어요. 파국이 와도 좋고, 멸망해도 좋으니까, 생존의 기반에 대한 장기적인 고려는 전혀 없이 무작정 개발하고, 성장에 매진해서 농업사회를 버리고 공업사회로 가야 한다는, 지난 수십년간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기본 논리도 바로 박정희의 이런 사고방식에서 비롯했다고 해도 되겠지요.
강수돌
김 선생님 말씀대로 일본에서 메이지유신 이후 국가 주도적인 경제성장, 경제발전 개념이 관철되어온 과정이 한반도에도 무비판적으로 적용된 것이 아니었나 싶고요. 특히 조선말 같은 경우는 개화파가 그런 아이디어를 수용하고, 식민지 과정을 거치면서 일제의 개발 내지는 성장 패러다임으로부터 피해를 당하는 한편 그것을 닮아가는 형태로 재생산이 되어왔고, 박정희는 그걸 현실로 구체화한 주역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박정희에게서 처음 싹이 트고 만들어졌다기보다, 그것을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도 물론 있었겠지만, 한국사회의 근본을 보면 이미 그 싹들은 이전부터 죽 이어져 왔고 특히 식민지 피해를 받는 과정에서 목화나 쌀이나 콩을 공출로 뺏기고 서러움을 당하는 과정 속에서, “나도 저런 식의 발전을 통해서 일본처럼 강자가 되어야 하겠다”고 하는 그런 생각이 대중적으로 뿌리를 내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과 집단적 사고가 박정희식 개발독재를 가능하게 했던 토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바로 그 과정이야말로 우리가 경제학 교과서에서 배운, 1차보다 2차, 2차보다 3차 산업으로 이동하는 게 그게 발전이다, 라고 하는 엉터리 이론을 수용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진정한 반성도 없이, 아까 천 선생님 말씀대로, 지금 와서는 국가권력에다 시장권력까지 가세해서 이런 과정을 더욱 가속화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개발의 논리, 멸망의 이데올로기
권혁범
강 선생님 말씀하신 것에서 좀더 세계사적인 방향으로 시야를 넓혀서 생각을 하자면, 그 방식이 후발 혹은 후후발 자본주의 국가들의 보편적인 근대화 방식이라고 하는 거죠. 그런 과정에서 보면 여러가지 차원의 문제가 있는데, 이 문제를 우리가 깊이 파고 들어가면 결국 자본주의적인 방식, 서구적인 방식, 근대화 문제의 범위를 어떻게 바라볼 거냐 하는 것을 다루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인데요. 물론 그걸 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그 전에, 박정희 시대 때는 실제적인 정책의 차원에서 어떤 옵션 같은 게 있었겠느냐, 이런 것도 좀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이것을 좀 분리해서 이야기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또하나는 박정희 시대 경제발전을 얘기할 때, 자꾸 국내적인 상황에서만 얘기를 하게 되는데 그 당시에는, 지금 많이 알려진 상황이지만, 세계자본주의가 주변부와 중심부로 이원화 되어있는 상황에서 준주변부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필요하게 되는 상황이 50년대 말 오게 되잖아요. 그래서 준주변부의 역할을 떠맡게 될 그러한 국가단위가 필요했던 건데 거기에 응하는 조건이나 주체 등이 한국에 형성되어 있었다, 이런 식으로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만약에 이게 순수한 내적인 문제라고 한다면 한국의 경제성장이나 발전이 굉장히 예외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가 않거든요. 싱가포르, 대만, 브라질 같은 데서 진행된 것과 약간의 방식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특히 아시아권에서 일어나는 공통적인 현상이었거든요. 강력한 지도자를 중심으로 해서 수출주도형의 경제정책을 세워가지고 압축적인 산업화를 했던 것은 공통점이니까 그것을 단순히 박정희 개인이라든가 혹은 한반도의 특수한 상황이라든가 하는 차원에서, 좀더 세계자본주의로 시야를 넓혀서 봐야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보연
저는 박정희 얘기를 하면서 ‘근대화’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보는데요. ‘근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 보자면, 산업혁명이야말로, 말하자면 재생불가능한 방식으로 들어가는 초입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한국에서 박정희 시대야말로 그러한 근대, 즉 재생불가능한 방식을 아주 고스란히 구현해낸 시절이었던 셈입니다. 다시 말해서 박정희는 그러한 근대를 국내의 다른 정치가 혹은 정치세력에 비해, 뿐만 아니라 외국의 다른 어떤 지도자들에 비해서도 훨씬 효율적으로 실현한 ‘공헌’이 있다고 봅니다만, 제 입장에서 보면 재생불가능한 생활방식을 효율적으로 실현했다는 것, 그것을 위해 효율적으로 자연을 파괴했다고 볼 수 있거든요. 이런 관점으로 보지 않는다면 박정희 시대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은 불가능하다, 나아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개발주의, 경제지상주의를 도저히 극복해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종철
그러니까, ‘발전’의 시작이 곧 ‘멸망’의 시작이었다는 말이군요.
강수돌
우리가 또하나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러면 어떻게 해서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그런 ‘멸망의 이데올로기’가 가능했을까 하는 것인데요. 그것이 가능한 조건이 있었다고 저는 봅니다. 해방 이후 정국에서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되어서는 안되겠다 하는 세력은 이미 대부분 북으로 넘어갔지요. 그리고 남은 사람들 중에 말 안 듣는 사람들은 6•25전쟁을 통해서 완전히 군사적으로 작살을 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민중을 국가 동원체제에 고분고분 따르는 존재로 만들기 위해서, 교육 시스템을 통해 군대식 교육을 효율적으로 시켜온 거죠. 이렇게 해서 성장지상주의, 효율지상주의가 집단적 사고의 틀을 형성하게 되었고 ‘하면 된다’ 또는 ‘안되면 되게 하라’는 식의 엉터리 자신감이 주입되었고 또 ‘세계 제일 국가’를 만든다는 자기 최면에 걸리게 된 것이지요. 이건 동시에, 다른 근본적 대안에 대한 생각과 토론을 사전에 배제하는 효과를 갖게 되었다고 봅니다. 바로 이런 조건들이 박정희 개발독재 내지는 ‘멸망’의 시작을 가능하게 했다고 봅니다.
그런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은 “나라의 부르심에 복종하는 것이 우리 앞길을 위한 것이다”라고 하는 집단적 행위방식을 갖게 된 게 아닌가 합니다. 정부나 국가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감시하고, 레드 컴플렉스라든지 좌경용공 담론들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면서 배제해 나가고…그런 식으로 일체의 ‘다른 길’의 가능성의 싹을 거세해왔던 것인데요. 지금까지 국가권력이 그렇게 해오던 배제의 역할을 지금은 세계화된 시장의 힘을 빌려 조금더 간접적인 방식으로, 또 절차적 민주주의를 도입함으로써 좀더 세련된 형식으로, 대안적인 길의 선택을 배제해 나가는 것이 바로 지금 현 단계가 아닌가 싶거든요.
권혁범
아까 제가 ‘옵션’이란 얘길 했는데요. 김 선생님께서도 진정한 경제발전에 관해 질문을 던지셨는데, 그것은 사실 모든 국가의 산업화에 다 적용될 수 있는 질문입니다. 미국, 영국 할것없이 우리가 던져볼 수 있는 질문인데요. 강 선생님 말씀대로, 박정희 시대가 세계자본주의에 편입되는 기점이 됐다는 점에서 우리가 얘기를 할 수 있는데, 그렇지만 이것은 이리로 갈 수 있었는데 저리로 갔었다, 라고 얘기를 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분배’와 관련해서는 그런 선택의 옵션이 있었다고 얘기할 수가 있겠죠. 좀더 분배지향적, 평등지향적인 자본주의 형태, 즉 ‘복지국가’라든지 하는 그런 형태나 혹은 중소기업 중심의 발전모델을 선택할 수 있지 않았느냐 하는 그런 차원에서는 우리가 이야기할 수가 있겠지만, 지금 우리가 생태론에서 얘기하는 그런 옵션의 차원에서는 사실 그 당시에 대해서는 묻기가 어렵다는 뜻이죠.
그렇다고 우리가 60년대를 살고 있는 게 아닌 이상, 오늘날의 관점에서 우리가 그 옵션에 대해서 묻지 말아야 된다는 얘기는 아니고, 오히려 지금 우리가 박정희 시대를 완전히 재평가해야 되는 그런 시점에 와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아까 박정희 시대와 지금의 차이를 비교하는 차원에서 생각해본다면, 저는 과거 박정희 시대를 개발독재라고 한다면 지금은 ‘개발민주주의’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자유민주주의’를 명분으로 개발을 무제한적으로 밀고 나가는 체제가 한국의 21세기에 완전히 정착되어 나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정치적인 차원에서는, 아까도 말씀하셨지만, 굉장히 혁명적인 변화가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누구나 그랬겠지만, 그 당시 대학을 다닌 저로서는 사실 70년대 중반에는 지금과 같은 정치적인 상황이 올 것이라고는 상상을 못했거든요. 이것은 분명히 혁명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지요.
천규석
나는 생각이 좀 다른데요. 과거 박정희나 그 이전의 일제 잔재 세력이 지금의 새로운 기득권 세력으로 정치권력이 교체됐다는 면에서 굳이 말하자면 민주적으로 되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철저히 민중의 입장에서 봤을 때에는 근본적으로 똑같다고 봅니다.
권혁범 선생이, 박정희 시대를 ‘개발독재 시대’라고 한다면 지금은 ‘개발민주주의 시대’로 구별할 수 있다고 했는데 물론 정권의 교체가 과거 군사정권처럼 쿠데타나 공포적 수단으로 이뤄지지 않고, 선거라는 절차에 따라 외견상 평화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그런 구분을 해볼 수도 있겠지요. 정치적이고 절차적인 면만 따지면 어느 정도 민주화된 것도 사실이고요. 그러나 개발 자체가 지속가능하지도 평화적이지도 않는, 자연과 인간에 대한 폭력이 아닙니까. 또 그것이 민중의 자발적 요구와 주도로 이뤄진 것이 아니고 소수 지배자들에 의해 세뇌되고 강제된 것이라면 ‘개발’에다 ‘민주주의’를 갖다붙이는 것 자체가 모순이고 극단적으로 말해 기만적이라는 느낌이 드는군요.
우스개로 말하면 박정희는 차라리, 박정희를 비판하면서 그의 개발논리만을 확대 재생산하는 지금의 ‘개발민주주의자’들보다는 오히려 노골적이라서 솔직했다는 생각마저 들어요.
권혁범
솔직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요. ‘민족적 민주주의’니 하면서 수사(修辭)를 많이 사용했으니까. (웃음)
선거, 민주주의, 권력
김종철
박정희 때도 그랬고 아마 지금도 상당히 많은 지식인들이 공개적으로 얘기는 안하지만 “먹고살 만해야 민주주의가 된다”, 그런 고정관념을 갖고 있잖아요. 민주주의니 인권이니 평화니, 그런 가치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먹고살 형편이 되어야 한다, 경제발전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거든요. 지금도 경제위기 상황이 심화된다면서 다른 것들은 좀 유보해도 된다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잖아요.
그런데, 이야기를 조금 돌려서, 지난번 총선을 통해 민주노동당이 의회에 진출하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이 많이 했던 얘기가 있잖아요. 예전에 진보당 이후 근 반세기 만에 우리나라에서 이른바 진보정당이 공식적으로 의회에 진출할 수 있게 되었다고요. 그런데 진보당의 조봉암 선생이 정치적으로 이승만 정권을 위협하던 게 언제 일입니까. 아주 부패하고 무능하기 짝이 없었던 자유당 때, 한국사회가 경제적으로 극심한 곤란을 겪을 때였잖아요. 그런데도 그때 자유당 정권이 위협을 느낄 정도로 진보당이 민중사회에서 정치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었단 말이에요. 그때 경제 수준으로 본다면, 민주주의고 뭐고 아무것도 안돼야 될 거 아니에요.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이미 그 가난한 시대에, 그 이후 고도 경제성장기를 거쳐 반세기나 지나서야 겨우 실현될까 말까 한 것과 비슷한 수준의, 혹은 그 이상의 수준의 민주주의적 현실이 있었다고 할 수 있어요. 적어도 진보정당의 위상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말이에요.
또 한편, 물론 박정희 정권이 추진한 재벌 중심의 산업화 노선은 가령 대만의 산업화 노선과 비교해도 상당히 다르지만, 그러나 본질적으로 산업화라는 것이 그 자체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있는 것이냐, 다시 말해서 ‘민주적인 산업화’라는 것이 있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다시 말해서, 산업화 자체가 원천적인 폭력이란 말이에요. 제가 보기에는, 산업사회를 유지하고 있는 한 민주주의는 결국 공허한 수사에 지나지 않는 것 같아요.
저는 우리가 형식적이라고 하지만 상당한 민주화가 이루어졌다고 하는 지금 이 시점에서, 더욱더 민주주의의 문제를 좀더 근본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가령 의회나 삼권분립이라는 제도를 유지하고, 보통선거에 의해서 정기적으로 개인이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게 허용되었다고 해서 그게 민주주의냐. 물론 박정희 시대에는 이것마저 없었으니까 대단한 진전이라고 해야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우리의 상황이 과연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고 있는 상황인지는 좀더 깊이 따져보아야 할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러면, 왜 실질적인 민주주의로의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물론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저는 통속적인 신념과는 반대로 소위 근대화, 산업화가 심화되면 될수록 민주주의는 점점더 실현 불가능한 현실이 되기 쉬운 게 아니냐, 그런 생각이 듭니다.
천규석
흔히들 지금은 민주주의가 실현되었다고 하는데 도대체 나는 그걸 인정할 수가 없어요. 예를 들어, 그렇다고 아주 옛날로 올라가면 곤란하겠지만, 일제 때나 한말이나 아니면 박정희 시대 이전의 마을공동체를 보자고요. 물론 외부의 큰 권력이 빼앗아가고 수탈하고 그 권력의 지배를 받았지요. 국가가 있는 이상 마찬가지이긴 한데요. 그런데 농촌공동체 시절의 마을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사람들이 사는 꼴은 다 비슷했어요. 물론 한 마을에 논 서른마지기 가진 사람도 있고 두마지기 가진 사람도 있고 하나도 없는 사람도 있고, 가진 것의 차이는 있었지만 그러나 지금처럼 사는 꼴이 크게 차이가 안 나고 다들 비슷하게 살았는데요. 어느 정도의 경제적 평등이 민주주의의 전제조건이라면, 가난했다고 하는 그때가 오히려 지금보다 더 민주적이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의사결정 과정의 민주성도 그래요. 가령 마을에서 대소사를 의논하는 마을회의(동회)를 하면요, 하루면 끝날 수도 있지만 현안이 해결 안되면 1주일도 끌고가고 한달도 끌고간다고요. 전원합의가 이루어질 때까지 매일 그렇게 모이는 거예요. 그런 민주주의가 지금 어디 있습니까. 하나도 안 남아 있잖아요. 민주주의라는 것이 밑바닥, 풀뿌리에서 올라오는 것인데, 그렇게 보면 나는 갈수록 이 사회가 민주주의와는 멀어진다고 생각해요.
아무튼 그러니까 두가지 면에서 박정희는 비판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하나는 그가 경제개발, 경제발전, 산업화를 이루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사실상 발전이 아니라 한마디로 파괴였다는 것입니다. 경제의 대규모 물량화에는 물론 성공했지만, 그것은 지속이 불가능한, 파괴를 통한 일시적인 물량화일 뿐이었고 지속가능한 생존의 터전을 완전히 깨부순 파괴였다는 거지요. 다시 말해 그것을 통해 ‘미래’가 없어진 거잖아요. 물질적인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다른 한편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자치민주주의의 토대라고 할 수 있는 마을공동체를 박정희가 완전히 파괴해 버렸다는 겁니다.
김종철
흔히 박정희 정권이 민주주의에 있어서는 마이너스 업적을 세웠고, 산업화나 경제개발에서는 플러스 업적을 세웠다 하는데, 그렇게 이 둘을 떼어놓고 볼 게 아니라, 표리일체의 관계에 있는 것으로 봐야지요. 천 선생님 말씀대로 산업화 그 자체가 진정한 민주주의의 기반을 파괴해왔다는 것이지요. 흔히 우리가 박정희 시대를 개발독재 시대라고 부르지만, 원리상 독재에 의하지 않은 개발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지금 보십시오. 새만금이든, 천성산이든, 부안 핵폐기장 문제든, 이 모든 환경문제의 근저에는 예외없이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할 만큼 정책결정 과정에서 강압적이거나 불투명한 절차가 개재하고 있거든요.
물론 박정희식의 개발은 유례가 없을 만큼 심각한 인권탄압과 민주주의 훼손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좀더 부드러운 방식의 개발을 상정하지 못할 것은 없지만, 근본적으로 모든 개발, 경제성장이라는 것은 그 자체, 민중의 삶과 생명과 자연에 대한 엄청난 폭력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 같아요. 이렇게 생각해볼 때, 저는 박정희 시대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 민주주의의 파괴와 산업화의 공로라는 것을 분리해서 얘기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봅니다. 요즘 흔히 민주화 세력과 산업화 세력 운운하면서 이 둘의 결합에 대해서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제가 보기에 그건 넌센스예요. 이것은 양립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우리가 계속해서 경제성장, 개발을 추구하는 한, 그게 국가권력의 지도에 의한 것이든 시장원리를 중심으로 한 것이든 그런 개발, 성장은 기본적으로 폭력과 파괴의 과정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거기에 민주주의가 실현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생각합니다. 아까 제가 지금도 박정희 시대는 계속되고 있다고 한 것은 그런 의미입니다.
그런데, 지금 천 선생님이나 제가 말하는 민주주의는 이른바 대의제 민주주의,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요즘 흔히 말하는 것은 대개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의미하고 있지만, 그게 진정한 민주주의라고는 할 수 없지요.
조금 다른 얘기지만, 저는 요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영남대학교에서 20년 넘게 있었는데요. 원래 대구에 있던 두개의 사학을 5.16재단이 통합해서 만든 학교가 영남대입니다. 그래서 박정희가 교주였죠. 1980년 이후 마치 사유재산을 상속하듯이 그 딸이 재단이사장으로 취임하여 학교주인 행세를 했는데, 우여곡절 끝에 교수들과 학생들의 노력으로, 몇해 뒤 그 재단을 물러나게 하고, 그후 영남대는 사실상 교수들이 직접 학교를 운영하는 ‘자치대학’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최초로 총장을 직선제에 의해 선출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박정희 시대에는, 그리고 군사정권이 끝나기까지에는, 우리가 직선제만 쟁취하면 민주주의가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막상 영남대에서 총장 직선제를 도입한 뒤로, 지금 네번째 총장입니다만, 갈수록 자질이 의심스러운 사람이 총장이 되고 있어요. 학내 민주주의도 말뿐이지, 권력의 집중현상은 예전에 비해서 나아진 게 거의 없어요. 사실, 영남대만 이런 게 아니라, 이것은 지금 직선제로 총장을 뽑는 한국의 대학의 일반적인 현실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래서 왜 이렇게 되는가, 제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물론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우선 선거를 하게 되니까 학교 내에 패거리 정치라는 게 형성되고, 선거가 있기 훨씬 전부터의 온갖 음성적 선거운동은 말할 것도 없고, 야합, 향응, 뒷거래 따위 치사한 짓들이 저질러지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정말 존경을 받을 만한, 사심이 없는 사람이 총장이 된다는 건 처음부터 거의 불가능한 현실이 되어버렸어요. 이런 시스템 속에서 대학이 협잡꾼들의 소굴이 안되는 게 이상하겠지요.
그래서, 문제는 결국 개개인의 사람됨을 떠나서 시스템 자체에 있는 게 아니냐, 다시 말해서 선거제라는 게 본질적으로 진정한 민주주의와는 어울릴 수 없는 게 아니냐, 그런 생각을 안할 수 없어요. 우리는 대부분 선거를 하면, 그게 곧 민주주의라고 믿어버리는 습성이 있잖아요. 그러나, 실제로 가만히 따지고 보면, 선거라는 것은 민주주의를 빙자한 속임수가 아닌가, 선거제도를 가지고는 민주주의가 되는 건 백년하청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강수돌
마치 제도화된 종교들이 더이상 종교의 근본을 지니지 못하는 것처럼, 제도화된 민주주의가 더이상 민주주의의 근본을 별로 구현하지 못하고 있지요.
천규석
선거라는 것은 엘리트들이나 지배자들이 민중을 편갈라놓고 싸움하게 만들고, 그러면서 자기들은 그 배후에서 권력 획득을 노리는 정치놀음이라고요. 근본적으로 패거리 정치인 것이고, 돈과 명망이 있는 사람들만 당선될 수 있는 ‘정치 쇼’이지요.
김종철
지금 정부가 김영삼 정권 이후에 벌써 세번째 소위 민주정부잖아요.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점점 나아지기는커녕 갈수록 태산이라는 느낌이 들거든요. 하여간 이 선거제도가 곧 민주주의는 아닌 것 같아요. 가령 희랍의 아테네 민주주의는 노예제를 근간으로 한 문제가 많은 민주주의였지만, 어쨌든 로마의 독재정치나 그후의 어떠한 공화국 정체나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비교해 보더라도, 적어도 서양에서는 역사적으로 가장 뛰어난 민주주의였다고 평가를 받는데, 그게 반드시 광장에 시민들이 모두 나와서 결정을 하는 그런 직접민주주의를 실시하였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요. 아테네 민주주의의 본질적 특성은 대표자나 행정관을 선출하는 데 있어서 선거제가 아니라 추첨제, 즉 제비뽑기를 했다는 데 있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귀족정(貴族政)에서는 선거를 하고, 민주정(民主政)에서는 제비뽑기를 한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민주정치를 했던 희랍의 도시국가에서는 제비뽑기로 선출을 한 것과 대조적으로 독재정치를 하였던 로마에서는 철저히 선거를 했다는데, 이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권혁범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서 근본적으로 민주주의가 과연 뭐냐 하고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데, 그렇다고 형식적인 민주주의, 절차적인 민주주의가 중요하지 않다거나, 과거 독재체제하고 별반 다를 게 없다, 이렇게 얘기하기는 물론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당장 저만 하더라도 그 시대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으니까요. (웃음)
그런데 다만 개인의 권리를 중요시하는 그런 절차적인 민주주의, 그에 대한 이해도 우리는 조금 잘못되어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존 스튜어트 밀의 책만 보더라도, 말하자면 자유민주주의의 고전인데, 거기에도 ‘다수결주의’ 같은 말은 안 나오거든요. 그의 사상은 어디까지나 소수자, 소수 의견에 대한 존중이거든요. 그런 점을 생각하면 우리사회가 절차적 민주주의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조차도 잘못되어 있다고 봐요.
어쨌든 그런 걸 우리가 부르주아 민주주의라 할 때, 그런 입장이 갖고 있는 의미는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오늘날《녹색평론》이 지향하는 입장에서 제기할 수 있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한계나 문제점 같은 것을 함께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도 아까 말씀하신 대로 이 산업화 자체가 굉장히 폭력적인 과정인 동시에 위계서열화하는 과정이라고 봐요. 예를 들면, 생명간의 위계질서, 그리고 인간 안에서의 위계질서를 인위적으로, 폭력적으로 만들어내고, 그것을 유지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래디컬 민주주의를 얘기한다고 하면 ‘민주적인 산업화’, 이런 것은 없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 측면에서는 우리가 미국이나 영국 같은 소위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산업화 과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시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한가지 생각해야 될 것은 “민주적인 산업화는 불가능하다”라는 것은 우파들도 주장한다는 것이지요. 물론 우리와는 전혀 다른 각도, 다른 맥락에서 말이지요.
신보연
선거와 민주주의에 대해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 사고의 중심, 삶의 중심, 다시 말해 우리 생활에 직접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국가’로 되어있으니까 국가의 지도자를 뽑는 게 중요해지잖아요. 그래서 대통령을 뽑아야 되고, 그런데 그러려면 유권자 약 이천 몇백만이 투표를 해야지, 다 모여서 토론할 수는 없잖아요. 어쩔 수 없이 투표를 한단 말이에요. 앞에서 말씀하신 대로 투표를 하지 않고 일일이 토론으로 하려고 하면,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단위가 국가가 아닌 마을공동체, 지역으로 작아지는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국가의 대표, 대통령은 어쩔 수 없이 지금처럼 선거로 뽑더라도 그것은 사실상 큰 의미를 가지지 않고, 대신 우리 삶에 직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오히려 마을과 지역, 이렇게 작은 단위여서 그 대표를 뽑거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직접 모여 토론을 하고 제비뽑기를 하는 그런 규모로 가야 한다는 거지요. 우리 동네 이장 뽑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며칠이고 모여서 누구를 이장으로 뽑을지 토론한다, 그렇게 되면 그것이야말로 실질적인 민주주의가 아니겠느냐, 이렇게 생각합니다.
강수돌
근본문제는 결국 권력이 풀뿌리에게 있지 않고 중앙집권화 되어있다는 점, 풀뿌리 민중 또는 시민이 권력을 직접 행사하기보다는 대의제를 통해, 대리로 행사하기로 된 그 구조 자체가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고 봅니다. 그리고 선거제에 관해 조금만 덧붙이자면, 이것은 ‘결과를 중시하는 패러다임’과 ‘과정을 중시하는 패러다임’의 차이라고 보거든요. 비단 투표행위인 선거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즉 어떤 문제를 놓고 이야기하는 과정, 토론하는 과정, 각자 고민하고 서로 부대끼면서 좀더 나은 대안을 찾아보려고 하는 이런 ‘과정을 중시하는 패러다임’과, 효율성과 시간적인 제약, 경제적인 제약을 고려해서 뭐든 빨리 결정하고 어떻게든 성과를 내자, 라고 하는 ‘결과 중심의 패러다임’의 차이가 있다고 보고요. 선거제는 분명히 후자의 패러다임에 기반을 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 후자, 즉 ‘결과를 중시하는 패러다임’은 산업혁명 이후의 근대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내면화해온 효율지상주의 근대화 패러다임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 과정에서 직접 권력을 행사해야 될 주체들이 자기들을 통치할 엘리트들에게 권력을 이양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걸 민주주의라고 생각해왔다는 것입니다. 권력의 주체인 시민들이 스스로 탈권력화해 왔다는 것을 자각하고, 이제 그 권력을 되찾는 운동을 하는 것, 스스로 토론과 결정의 주체로 나서는 것, 이것이 앞으로 진짜 민주주의의 내용을 이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권혁범
절차적인 민주주의와 실질 민주주의, 이런 개념을 쓰기도 하는데요. 절차적인 민주주의, 가령 선거를 중심으로 하는 시스템 등의 한계가 뚜렷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그것조차도 제대로 실현하고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절차적인 민주주의를 통해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여러가지 형태의 민주화가 있는데, 예를 들면 그것이 가장 잘 돼 있어야 할 각급 학교나 대학 캠퍼스라고 하는 공간이 사실 ‘동토의 왕국’이잖아요. 사실은 한국사회에서 가장 독재가 광범위하게 자리잡고 있는 공간이 바로 학교인데요. 그런 차원에서 보더라도 절차적이고 합리적인 민주주의는 그것 나름대로 더욱 꾸준히 발전하고 진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선거제가 가진 문제점을 많이 지적하셨는데, 사실상 이런 이야기는 결국 권력이 집중되어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되는 것이거든요. 따라서 제가 보기에는 선거를 하는 것이 좋으냐 나쁘냐, 이런 문제라기보다는, 선거제라 할지라도 그것이 권력을 분산하는 방식으로 가느냐 그렇지 않느냐 이런 측면에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 선거제라든지 대의민주주의라든지 하는 것이 인구가 많은 사회규모에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것은 길게 말할 필요도 없거든요. 문제는 그런 형식을 매개로 하면서 우리가 권력의 분산, 즉 권력을 풀뿌리 민중이 되찾아오는 쪽으로 가고 있느냐 하는 것이고, 그런 방향으로 간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심화과정인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껍데기뿐인 민주주의이겠지요.
김종철
박정희 시대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여기까지 왔는데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듭니다. 박정희 시대의 큰 과오, 혹은 부정적인 유산 가운데 중요한 것 하나는 우리가 혹심한 탄압과 독재에 오래 시달려오는 바람에, 민주주의를 너무 형식적인 민주주의로만 생각하게 되는 그런 습관을 아주 깊게 갖게 되었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실질적인 민주주의, 정말 민중의 삶의 내용을 기준으로 삼아서 민주주의를 생각해야 될 텐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제도적으로나 절차적으로 서구에서 빌려온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아울러서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민중의 구체적인 삶의 질보다는 GNP가 얼마니까 선진국에 접근했다 혹은 아직 멀었다, 이런 식으로 마치 국제사회에서 근대적 산업국가로서의 자격증을 얻는 것이 우리의 생존의 목적인 것처럼 생각하도록 세뇌가 되어온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런 식으로, 안이하게 민주주의와 경제를 생각하는 사고습관이 우리사회, 특히 지식인 사회에 널리 퍼져있지 않은가 싶고, 그 결과 우리가 지금보다 정말 차원이 다른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생각할 수 있는 상상력이 심히 고갈돼버리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이것이 결국은 야만적인 군사독재의 후유증 못지않게 고도 경제성장이라는 ‘공로’를 통해서 박정희 시대가 우리에게 남겨준 가장 치명적인 유산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민중의 자생력과 개발 파쇼
신보연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박정의 시대에는 대다수의 민중들이 사실 개발을 원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가난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니까 개발을 해야 한다는 것은 민중 대다수가 바라던 것이고 그런 욕망을 기반으로 박정희 정권이 효율적으로 개발정책을 집행했던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만.
천규석
나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물론 민중들이야 가난에서 벗어나 잘 살고 싶어했지요. 그러나, 우리는 자생력이 없으니까 수출주도형 사회로 가야 하고 그러니까 공업을 중심으로 개발을 해야 한다는 ‘개발 에데올리기’는 박정희와 지배엘리트을이 세뇌시킨 것이지 민중 스스로의 욕망은 아니었다고 봐야. 그 문제는 사실 당시 민중이 처한 가난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먼저 이야기해야 할 문제인데,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겪어야 했던 식민지로서의 수탈과 6‧25전쟁으로 인한 초토화 때문에 민중들이 먹고 살기 어려웠던 것 아닙니까. 그 처참한 상황에서도 농민들이 어떻게든 스스로 살아남은 것은 물론, 우리사회를 먹여살린 것 아닙니까. 그렇게 우리 민족이 살아남은 것은 사실상 농민의 힘 덕분인데요. 그런 농민들의 힘, 농촌사회를 무시하고 우리 민중사회가 애당초 가난했고 자생력이 없었다고 단정하는 것은 말이 안되는 소리지요.
신보연
그러나 세뇌를 통해서든 어쨌든 농민들이나 노동자들의 표를 박정희가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어느 정도의 ‘동의’를 얻었던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겠는데요. 단순한 독재를 넘어서 동의를 기반으로 한 폭력의 성격을 ‘개발 파쇼’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말하자면 상당 부분 민중의 잘못된 동의에 입각한 과정이었고, 폭력적인 개발이 진행되면서 박정희 정권 후반부에 정치적 반대세력의 성장, 특히 노동자들의 성장과 이로 인한 저항에 부딪치면서 그후 정치적으로는 부르주아적인 민주화로 가게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 자체에 대한 욕망은 사회적으로 제어되지 않고 계속 진행되어온 것이라고 봅니다. 1990년대가 되어서야《녹색평론》을 비롯해서 환경운동 등이 성장하면서 ‘개발’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게 아닌가 합니다. 그 전에는 경제개발, 경제성장이 곧 잘사는 것으로 동일시되는 데 거의 아무런 문제제기가 없었던 것 아닌가 싶은데요.
천규석
개발에 대한 문제제기가 전혀 없었던 것이 아니고 당시의 당면 과제인 반독재 민주화운동에 모든 것이 매몰되어 그에 대한 문제제기가 아직 하나로 전선화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요. 내 개인적인 경우, 친구들이 민주화 투쟁으로 감옥에 갈 때―친구들이 그 감옥살이가 곧 ‘별’이 되어 그 뒤에 이른바 민주정권 때 한자리씩 해먹은 계기가 되었지만―나는 파괴당하고 있는 이 농촌공동체를 부여안고 내가 하던 그 힘겨운 농사일이 곧 내 나름의 민주화운동이라고 자위했거든요. 그리고 시장체제를 전제한 농산물 제값받기운동이나 농협장과 대통령 직선제 쟁취운동 등을 이슈로 하는 농민운동과 민주화운동에 일찍부터 회의를 느꼈고요. 그래서 그로부터 일찍이 이탈하여 유기농운동과 새로운 공동체운동 등으로 관심을 옮겼지요.
노동운동의 논리와 진보주의
김종철
신보연 씨는 과거에 노동운동에도 깊이 관여하셨고, 지금은 민주노동당에 몸담고 계신데요. 노동문제 혹은 노동운동에 관해서 이야기를 좀 나누어 보도록 하지요. 어제도 노동부 장관이 “노동문제는 기본적으로 그 외부적인 요인이 아니라 노조 내부의 문제다”라는 언급을 했다던데요. 아무튼 박정희 시대의 그 폭압적인 탄압밖에는 없었던 시절과 비교해서 지금은 노동운동의 상황도 많이 달라졌다고 볼 수 있을까요? 그리고 지금 노동운동의 논리, 방향이 전체 민중의 실질적인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천규석
나도 덧붙여서 묻고 싣은데요. 지금의 노조운동, 노동운동이 그 운동 자체나 노동자들끼리가 아닌 우리사회 전체에서볼 때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운동이냐 하는 겁니다. 내 생각을 말하자면, 노동자들은 지속불가능한 산업화 자체를 인정하고 그것과 공존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산업화 자체가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고. 그렇다면 노동자들은 근본적으로 지속불가능한 생활방식과 비민주성에 기반을 두고 있는 존재가 아니냐는 거지요. 그렇다고 한다면 노동운동의 한계라는 것은 명백한 것이 아닙니까?
신보연
제가 현재 노동운동에 몸담고 있는 처지는 아니라서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좀 한계가 있는 이야기가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저로서도, 지배자들과 자본가들이 그동안 경제개발을 해왔던 과정, 그리고 그와 함께 노동자들이 분재를 요구해왔던 과정은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특히 노동운동이 더 많은 분배를 요구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이 사실 아주 고민스럽고 제 개인적으로는 아직 해결이 안됩니다.
물론 그렇다고 무의미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적어도 인간이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권리를 확장해 나간다는 점에서 보면 노동운동을 통해 생산현장에서 민주화는 상당히 진척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제와 조금 빗나가는 얘기가될지는 모르겠는데, 이제 노동운동은 더 많이 분배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단위의 경제운영 방식과 관련해서, 소유구조 자체를 변화시킬 것을 요구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또 노동현장을 근본적으로 민주화시키기 위해 소유권 내지 경원권 자체를 민주화시킬 것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일자리 창출 문제가 화두가 되고 있잖아요. 그런데 지금의 일반적인 일자리 창출 방식을 보면, 조금 단순하게 말해서 국가가 자본가한테 돈을 줘서 그 자본가에게 노동자들이 빌붙어서 먹고살게 만드는 이런 방식입니다. 결국 노동현장에서 자본주의적 인간관계를 단순 확대한다는 말입니다. 자본가가 한 인간을 고용하면서도 노동력만 고용하는 것처럼 의제화해서 그 사람을 구속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본질 아닙니까. 그런 측면에서 보면 자본주의적 인간관계 속에 사람을 편입시켜 버리면 거기서 민주주의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 한계 안에서 조금더 평등하게 만들기 위한 운동이 노동운동이라고 할 수있겠는데요.
그런데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 자본가에게 돈을 주고 이것으로 노동자들을 고용하게 하는 방식이 아니라, 어차피 국가의 예산을 지출하는 것이라면 그 돈을 자본가한테 주지 말고 바로 노동자들한테 줘서, 노동자들이 스스로 협동조합을 만들어 자주적이고 협동적인 방식으로 운영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훨씬더 낫지 않느냐는 겁니다. 이것은 하나의 예입니다만, 아무튼 이제는 근본적으로 소유구조 자체를 민주화시키는, 다시 말해 민주적으로 소유하게 만드는 이런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과 같은 소유관계, 소유구조 속에서 노동현장이나 노사관계가 민주화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강수돌
예, 기본적으로 저도 동감합니다. 제 생각에는 지금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노사관계의 민주화는 거의 한계 수준에 이른 것이 아닌가 싶어요. 물론 독일이나 스웨덴 식처럼 비교적 민주적인 노사관계를 생각할 수 있고, 그 정도 되어야 최고 지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조차 치열한 세계 경쟁 아래서는 대단히 불안정한 것이지요. 궁극적으로는 자본과 임노동의 관계, 즉 노사관계 자체가 지양되지 않고서는 더이상의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문제는 그러한 사회로 어떻게 나가갈 것인가, 현재 시점에서 어떤 방향으로 접근해야 하는가 하는 것일 텐데요.
그 이전에 좀 더 현실적으로 중요한 것은, 지금의 상황에서 노동자 혹은 노동운동이 농민 및 전체 민중과 어떻게 연대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라고 봐요. 특히 《쌀과 민주주의》 서장에서 천규석 선생님도 제기하신 문제지만, 과연 농민과 노동자자 이해의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거지요. 지식인들의 이론적인 차원이 아니라, 현실을 살아가는 민중의 입장, 당사자의 입장에서 과연 연대의 토대를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이것이 참 고민스런 문제입니다. 예컨데 휴대폰 회사의 노동자들조차 경쟁력 없는 농업은 포기하고 휴대폰 많이 팔아 잘살면 되지 않느냐 하는 식의 에데올로기를 쉽게 내면화하거든요.
권혁범
과거 좌파의 통념, 즉 산업노동자들이 미래 지향적인 주체세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더이상 의미가 없다는 자기 인식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노동운동이나 진보운동 내부에 그런 인식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는 생각이 들고요. 따라서 노동운동 중심, 노동운동 지향적으로 사고하는 방식들에 전환 혹은 변화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또하나는, 이 문제는 극우 언론에서 걸핏하면 끄집어내어 우려먹기 때문에 말하기가 퍽 조심스러운데요. 한국의 노동운동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분화되고, 정규직‧비정규직으로 나누어지고, 남성‧여성 갈라지고, 이렇게 해서 사실상 대기업‧정규직‧남성 노동자들이 중소기업‧비정규직‧여성 노동자들을 소외시키고 억압하는 방식으로 노동운동이 가고 있다는 비판이 최근 몇 년 사이에 많이 쏟아지고 있는데요. 이런 점에서도 어떤 실천상의 변화가 긴급하게 요구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신보연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대기업 노조가 스스로 대중적으로 각성을 해서 상황이 바뀔 수는 없다고 봅니다. 오히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기 스스로 조직을 해서 투쟁을 해나감으로써만, 대기업 노조들을 견인할 수 있다고 봐요.
그런 점에서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은 다릅니다. 민주노동당은 정치적 결사체고, 민주노총은 정치의식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을 중심으로 모여있는 대중조직이거든요. 정당과 조합 간의 고전적인 관계대로라면, 이 계급대중의 정치적인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정당인데, 이 정당이 그 계급의 이익에 매몰되느냐 아니면 민중 전체를 포괄하고 보다 근본적인 사회개혁으로 나아가느냐 하는 것은 정당 내부의 끊임없는 토론과 노선투쟁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할 수 있지요.
사회민주주의와 복지국가
김종철
제가 옳게 이해를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한국의 소위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지향하는 사회 체제가 일반적으로 사회민주주의적인 체제를 말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대체로 그런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사회민주주의 체제라는 것은 간단히 말하면 ‘함께 잘 사는 사회’를 지향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저로서는 ‘함께 잘사는 사회’로 가자고 해서는 과연 지속가능한 사회, 생태적으로 건전하고 평화로운 사회가 이 지구상에 보편적으로 실현될 수 있을지 회의적이거든요. 그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얘기를 하자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녹색평론》이 창간 때부터 핵심적인 메시지 비슷하게 내걸어온 게 ‘고르게 가난한 사회’라는 개념입니다. 물론 이것은 저희의 독창적인 생각이 아니라 간디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고민 끝에 내린 결론, 물론 잠정적인 결론이라고 해야겠지요. 아무튼 우리가 별로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쉽게, ‘함께 잘사는 사회’로 가자고 흔히 얘기하지만, 바로 거기에 멸망의 뿌리, 죄악의 근원이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어요. 며칠 전에 서울에서, 요즘 평화유랑단을 이끌고 전국을 돌며 반전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계신 문정현 신부님을 만났는데, 그분이 대뜸 저를 보자마자 하시는 말씀이, 그동안 민주화운동을 하고, 또 환경운동, 평화운동을 해오면서 얻은 결론이 뭐냐 하면 결국 모든 것의 뿌리는 우리가 남보다 잘살자고 하는 욕심이라고요, 그래서 《녹색평론》이 얘기하는 ‘고르게 가난한 사회’ 말고 해답이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런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소위 진보적인 성향의 사람들 중에, 특히 지식인들이 이러한 사회민주주의적인 노선, 다시 말해서 복지국가 체제에 대해서 근본적인 의문 없이 그것을 쉽사리 사회발전의 모델로서 받아들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 천 선생님이 먼저 말씀을 좀 해주십시오.
천규석
이번에 낸 책에서도 조금 이야기했지만, 저는 역설적으로 비(非)복지로 가야 진짜 복지사회로 간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개눈에는 똥만 보인다고, 저는 농사꾼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밖에 없는데요. (웃음) 예전에 마을공동체가 살아있을 때는요, 우리가 지금 굳이 복지라는 말로 다루는 모든 문제들이 마을공동체 안에서 자주적으로 다 해결이 되었어요. 가령 지금 복지라는 명분으로 국가와 사회가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정신장애인들끼리 따로 수용하고, 폐결핵 환자는 폐결핵 환자들끼리 수용하고, 소위 복지예산을 투입해서 시설을 세우고 격리수용해서 복지를 ‘베푸는’ 이런 방식이 필요가 없었다는 거예요. 가장 기분 나쁜 말이 ‘노인문제’라는 말인데, 아니, 도대체 ‘노인’이 왜 문제입니까. 그래서 기껏 내놓는 복지정책이라는 것이 실버타운 같은 것을 세워서 나같은 노인네들은 같은 노인네들끼리 소복히 모아놓는 거 아닙니까. 아니들은 또 아이들만 저기다 따로 모아놓고. 이게 어떻게 사람이 사는 세상입니까. 한 마을 안에 몸이 성한 사람도 있고 불편한 사람도 있고 늙은이도 있고 어린아이도 있고, 이렇게 어울려 살아야 차별도 없어지는 거잖아요. 지금처럼 자꾸 따로따로 분리하고 ‘관리’하다 보면, 반드시 거기에 국가권력이 터무니없이 개입하고 또 시장이 개입하게 되거든요. 그러면 국가주의와 시장이 갈수록 행패를 부리게 되고, 우리는 복지라는 사슬에 묶여서 우리끼리 돕고 사는 힘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되는 겁니다. 한마디로 복지국가 체제라는 것은 민중의 자치와 자립과는 상반되는 것이에요.
강수돌
천 선생님 말씀 들으면서 생각이 나는데요. 최근에 만난 한 미국 교수가 이런 얘기를 해주시더군요. 자기가 영국 런던에 갔다가 무거운 짐을 들고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탔대요. 그런데 뒤에서 급히 뛰어 올라오던 사람이 지나치면서 팔을 치는 바람에 중심을 잃고 뒤로 자빠졌데요. 아주 위험한 상황이었죠.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고 굴러 떨어졌는데, 그러자마자 순식간에 안전요원이 호각을 불면서 뛰어오더니 연락을 착착 해가지고 앰뷸런스에 실어 병원 응급실까지 착 데려가더래요. 그래서 그 당시엔 영국의 복지 시스템이 대단히 좋다고 감명을 받았는데, 나중에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 짧은 시간에 사고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적어도 지하철역 안에서는 모든 사람이 CCTV 같은 걸로 철저히 감시받고 있다는 것이고, 또 응급실까지 재빠르게 연계되어 의료 조치가 이루어질 정도로 시스템이 기계와도 같이 움직이긴 하나 어딘지 모르게 인간적 친밀감(사람 냄새)이 부족하더라는 거지요. 가령 바로 현장에서 벌어진 상황에 대해 주위 사람들이 서로 돕고 보살피는 친밀감도 없었고, 병원에서는 기계적으로 진단하고 치료하더라는 거예요. 일종의 ‘복지 머신’이라고나 할까요. 언젠가 김 선생님도 하신 말씀이지만, 이것은 마치 병원, 즉 호스피탈 안에 호스피탤더티, 즉 환대(친절)는 없다는 그런 이야기와 맥이통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권혁범
두분 선생님 말씀에 동감을 하면서도, 우리사회에서 지금 ‘복지’가 어떤 맥락에서 다루어지고 있는가 하는 것을 현실적으로 본다면 조금 다른 이야기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뭐냐 하면 사회민주주의를 기초로 하는 복지국가에 대해서 우리가 이 자리에서 상당히 비판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일리가 있긴 하지만, 그러나 한국사회 전반적으로는 안타깝게도 분배문제, 복지문제를 조금만 이야기하려고 하면 빨갱이나 반(反)시장주의자, 반(反)자유주의자로 몰고가는 그런 강고한 전선이 이미 형성되어 있거든요. 우스개로 말하자면, 천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공동체 중심의 논리는 오히려 그런 보수우익들이 역으로 이용해먹기 딱 좋은 논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 면에서 <조선일보>같은 데서 천 선생님의《쌀과 민주주의》 같은 책을 왜 대대적으로 선전하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웃음)
아무튼 지금, 그나마 사회민주주의나 복지국가를 지향하려고 하는 세력이 한국사회에 얼마만큼이나 되나, 사실은 굉장히 미약한 존재인데, 그 미약한 존재들이 현 정권의 일부가 되어서 추진하려고 하는 그 정책, 아주 작은 정책의 변화조차도 용인하지 않으려는 막강한 권위주의적 시장주의 세력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 막강한 시장주의 세력 때문에 오히려 진보적인 지식인들은 더 나아가는 비전을 내다보지도 못하고, 자꾸 국가의 긍정적인 역할을 통해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겠다는 복지체제에 대한 환상에 같히게 되는 거지요. 그러나 보니 좀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면 자꾸 오해가 일어나는 이분법적인 현상이 되풀이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으로는 사실 복지국가의 모델은 다른 것이 아니라 결국은 시장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것인데요. 왜 복지국가 모델로 가야 하느냐, 그 논리를 보면 시장 게임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열패자(劣敗者)들을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문제거든요. 다시 말해 복지국가 모델이라는 것은 그 열패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죠. 복지국가라고 하는 건 시장 게임과 불가분의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고 아까 얘기한 근대화나 산업화의 논리와 보안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 대해서 인식을 해야 되는데 우리사회가 전반적으로 그 인식도 부족하고, 또 워낙 사회가 극우적인 편향 속에서 살다 보니까, 그것을 위한 작은 노력조차도 엄청난 저항에 부딪히곤 하는 것 같습니다.
김종철
적시에 좋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소위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신봉하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우리들이 나누는 얘기가 이용당할 가능성에 대해서 경계를 잘 해야지요. 우리가 하는 이야기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옹호하자는 얘기가 절대 아니거든요. 그런데,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놓는 상황에서 약자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국가에 있는 것은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가가 복지체제를 구현한다는 명분으로 어디까지 민중의 구체적인 삶에 개입해 들어올 수 있는지, 들어와도 되는지 잘 따져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지금 현재 우리시화가 복지국가로부터는 아직 멀리 떨어져 있고, 실제로 이러한 사회민주주의적인 체제를 의식적으로 지지하는 이데올리기적 힘도 미약하지만, 많은 지식인들이 마음 속에 그런 체제를 모델로 삼고 있다면, 언젠가는 현실화될 거라고 봅니다. 그럴 때, 마치 군사독재때 우리가 직선제를 쟁취하면 곧바로 민주주의를 실현할 것처럼 생각했던 것처럼 지금 복지국가 체제를 기본논리로 삼아 운동하는사람들이 사회적으로 큰 발언권을 얻게 되면 결국은 이 사회에서 그게 주류논리가 될 텐데요. 물론 그런 상황이 도래하기 전에 한국경제가 망하지 않고 버틸 수 있을지 의심스럽지만 말입니다.
우리사회에서 극우세력의 탐욕과 준동에 우리가 이용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물론 늘 경계를 해야 하겠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우리가 이런 근본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령, 다수 지식인, 진보적인 사람들이 복지국가 체제를 지향하고 있는 데 대해서 그것을 그냥 묵인해 버린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마을문화 혹은 공동체 중심 문화는 영원히 회복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공동체문화의 기반은 급속도로 붕괴되어 가고 있는 상황인데, 이게 갈수록 회복이 불가능해질 게 분명하거든요.
물론 과거의 공동체로 단순히 되돌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게 또 바람직한 것도 아니겠지요. 중요한 것은, 과거의 혈연 중심의 공동체와는 다른, 타인들끼리도 의도적인 노력에 의해서 우리가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운동을 통해서, 가령 생태공동체라든지 다양한 종류의 협동조합운동이나 혹은 지역통화운동과 같은 자립적이고 협동적인 경제 생활 방식을 확산해가는 운동을 통해서, 비록 예전과는 다른 형태의 것이라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공동체적인 자립과 자치의 생활공간을 형성해 가야 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민주주의도 되고, 인간다운 삶도 가능해지고, 생태적으로 건강하고 평화로운 사회에 대한 전망도 서지 않겠는가 하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권혁범 선생님은 그동안 ‘공동체’라는 것에 대해서 약간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 오셨는데요. (웃음) 공동체의 억압성을 경계하면서 무엇보다 개인의 주체성과 자각 같은 것을 중시하는 쪽의 입장을 꾸준히 펼쳐오셨는데요. 이 문제에 대해서 좀 말씀을 해주시지요.
국가, 시장, 공동체
권혁범
공동체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은 요새 많이 나아졌습니다. (웃음) 아무튼 천규석 선생님의 글들, 특히 이번에 나온《쌀과 민주주의》는 제가 깊은 감명을 받았는데요. 이런 글들 속에서 천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그런 마을공동체가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어울려 살 수 있는 단위라는 생각에는 저도 물론 공감합니다. 이것은 단지 낭만적인 향수도 아니고 실제로 저도 어린 시절 마을공동체의 기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얘기고요.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작은 공동체가 갖고 있었던 지독한 억압성, 폐쇄성, 가부장성, 이런 것 때문에 저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상처를 많이 받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상처들이 자라면서 공부를 하는 과정에 접한 이론들과 결합되어서 일종의 알레르기 반응으로 나타나는 것 같아요. 좋은 공동체라면 이것이 다양한 개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가야 되는데, 이게 실제로는 대부분 나이 많은, 남자 어른들의 헤게모니가 관철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공동선’의 이름으로 다양한 개체적 삶, 개인의 밀실, 전위적 반문화, 이런 것을 쉽게 무시하는 경향도 보이고요. 그런 작은 공동체가 한국뿐만이 아니라 사실 다른 나라에도 많고, 그런 불합리한 점들이 공동체와 ‘토착’의 명분으로 은폐가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저 나름대로는 그런 문제점을 지적해온 것입니다. 예를 들어, 페미니스트 그룹 ‘또하나의 문화’ 같은 데서 지향하는 개인주의 문화적 공동체의 내용을 기존 생태‧농민 공동체운동에서 얼마나 수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저는 마을공동체 이전에, 국민국가라는 거대공동체를 가장 반대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리고 당연히 시장주의에 대해서도 비판적이기 때문에 결국 앞으로 우리사회가 나아가야 될 방향은, 앞에서 우리가 한참 이야기했지만 작은 단위의 다양한 공동체들간의 문화적‧경제적 네트워크라고 봅니다. 그런 단위에서 기본적인 경제는 농사를 중심으로 영위되어야 한다는 것도 길게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그런 점에서 저 나름으로는 한국의 지식인들, 특히 유학 갔다온 지식인들이 농민과 농사에 대해 치열한 관심이 없는 것― 저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만 ― 을 문제로 삼곤 합니다.
신보연
여기 계시는 분들이 대체로 소규모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작은 마을공동체 중심의 사회로 재편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시는 것 같은데요. 그런데 저는 솔직히 말하면 그런 이야기를 《녹색평론》에서 읽을 때마다, 그렇게 나아가기 위한 ‘이행수단’을 무엇으로 보고 있는가 하는 것을 묻고 싶어요. 아까 작은 단위에서부터라도 선거 대신 제비뽑기를 해야 한다 하는 말씀도 나오고 했습니다만, 그 제비뽑기조차도 절대로 그냥 되지는않잖아요. 왜냐하면 지금 중앙권력을 쥐고 있는 세력들이 그 권력을 절대로 그냥은 내놓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마을 단위의 제비뽑기라는 것도 그다지 의미가 없는 것 아닙니까. 권력의 분산‧이양과 직졀된 문제이니까요. 저는 어떤 형태로든지 투쟁을 통해서 민중이 권력을 획득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보는데, 그렇다면 권력을 분산시키고 아래로 가져오기 위한 수단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면에서 보면 저는 지금 시기가 아주 호기(好機)라고 봐요.
지금 국가적으로 보면 절차적 민주주의가 실현되었다고 할지 모르지만, 지방도시, 지자체로 가면 완전히 박정희 시대가 재현되고 있습니다. 지방자체 단체장들이 권력을 거머쥐고 개발 파시즘을 휘두르고 있어요. 가령 제가 사는 파주시에 경기도와 파주시가 추진하고 있는 LG필립스 LCD 협력공단 같은 경우에, 경기도지사 손학규 씨가 “법 다 지켜가면서 어떻게 공기(工期)를 맞추느냐?” 하는 식으로 공무원들을 다그쳐댔다고 합니다. 이건 제가 지어낸 말이 아니고 지난 8월 13일에 있었던 경기도 지사와 주민들과의 간담회에서 그가 실제로 한 말입니다. 아마 간담회 녹취록에 남아있을 겁니다. 공단 입지선정을 위해 꼭 필요한 공청회였는데, 법으로 정해진 14일이라는 공고기간도 안 지키고 3일만에, 그것도 아침 9시에 공청회를 시작해서 16분 20초 만에 해치워버리는 바람에 주민들이 분노해서 항의를 했거든요.
말이 나온 김에 조금더 설명을 하자면 경기도와 파주시가 파주시 문산읍에 LG필립스 LCD 협력공단을 조성하려 하는데 그 공단입지가 주거지와 학교에서 불과 5-25미터 너비의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붙어있어 공해위험이 있으니 조금 떨어진 곳에 지으라는 것이 문산주민 대다수의 의견이거든요. 그런데 LG필립스가 내년중에 제7세대 LCD 제품을 생산해야 하는데 거기 맞추기 위해 주민들의 의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바람에 싸움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밀어붙이기 식에 대해서 주민들이 대응들을 잘 해요. 예전과는 달리 집회 및 시위의 자유가 있으니까요. 금방 싸움이 일어나요. 그렇게 지방권력과 싸우는 과정에서 공동체적인 기풍이 살아나고, 그 속에서 민주주의가 실현이돼요. 특히 도지사를 앞에다 놓고도 주민들이 항의하고 할 말은 하고 이러면서, 과거처럼 도지사의 권위 앞에 주눅이 들거나 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발언을 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저는 이런 과정을 통해서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저는 이미 잃어버린 공동체를 의도적으로 다시 형성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고, 민주주의의 신장과 함께 작은 규모의 자치를 위한 투쟁과정 속에서 공동체는 새롭게 형성되고 거기서 민주주의가 훈련된다고 봅니다. 그러한 과정을 촉진하기 위한 프로그램 같은 것을 내놓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가 이야기해온 풀뿌리 민주주의나 마을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사회로 가는 전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종철
너무 낙관적이지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지난호《녹색평론》에 실린 권정생 선생님 글 보면 아시겠지만, 작은 지역에서의 그런 싸움이 결코 만만한 게 아닙니다. 더구나 농촌지역일수록 노인들만 있고, 싸울 힘이 있는 사람이 없잖아요. 아무튼 중요한 말씀인 것은 분명하지만.
우리가 “박정희 시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로 이야기하다가 여기까지 왔습니다만, 그 박정의 시대의 부정적인 유산 가운데 또하나 중요한게 우리사회에 뿌리깊이 자리를 잡은 민족주의, 국가주의가 아닐까 싶은데요. 제 느낌에는 이 민족주의 내지 국가주의가 박정희 시대에는 노골적이었지만, 지금은 좀더 세련된 모습으로, 아니 좀더 교활한 형태로, 예전보다도 더 심화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어요. 가령 이주노동자들이나 한국에 와있는 비서구인들을 근거없이 멸시하는 태도에서 단적으로 그걸 느낄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월드컵 때의 ‘붉은 악마’ 같은 현상도 결국은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드센 민족주의의 발현으로 볼 수 있거든요. 예전에는 우리가 식민지 경험도 있고, 전쟁후에 피폐한 상황에서 미국의 원조로 살면서 강자에 대한 열등감도 많았고, 그러다가 보니 자연히 민족의식이나 민족감정이라는 게 없을 수 없었지만, 박정희 이후에는 이게 아주 공격적인 것으로 변한 게 아닌가 싶어요.
실제로 박정희 개인을 보더라도, 소년시절부터 조선의 전통과 역사에 대해 엄청난 열등감을 느끼고, 심지어 민족과 민족문화를 뿌리로부터 개조해야 한다는 생각까지 노골적으로 자기의 자서전이라고 하는 책 《국가와 혁명과 나》에서 피력하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개발독재 과정에서 민중을 동원하면서 무차별로 써먹은 게 민족주의적 레토릭이었잖아요. 그래서 경제적 성공이 웬만큼 이루어지고, 소위 국제적으로도 한국이 어느 정도 인정받는 상황이 되면서 금방 자기보다 좀더 못사는 다른 나라 사람들을 멸시하고, 그들 앞에서 교만한 행동을 취하는 그런 추악한 한국인의 모습을 흔히 보게 되었습니다. 어떻든 우리에게는 우리와 문화가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우애, 협력적인 태도보다도 우선 배타적으로 적대시하는 버릇이 꽤 뿌리깊이 퍼져있다고 저는 봅니다만, 이런 현상도 저는 박정희 시대를 통해서 강화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부국강병론과 통일민족국가의 논리
권혁범
산업화라는 것이 대부분의 평범한 인민들에게 굉장히 낯선 현상인데 거기서 가장 중요한 게 뭐냐 하면 희생자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폭력적으로 위계질서가 생겨나는 건데, 그 과정이 정당하지 않잖아요. 그것을 정당한 것으로 만드는 이데올로기적 장치로서 ‘민족’이라는개념이 나오는 건데요. 그래서 노동자나 농민이나 부르주아나 엘리트나 다 ‘한 가족’, ‘온 국민’ ‘우리 겨레’라고 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민족주의가 동원되는데, 한국의 경우 박정희 시대에 국가주의하고 맞물리면서, 그것이 내면화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지요. 총화단결주의라고 하는 것이 그래서 나오는데요. 어떤 한 개인, 시민이 국가의 구성원으로 조직화되고 포섭되고 통합되는, 그러니까 국민이 되는 과정이죠. 그런 과정이 박정희 시대 때 본격화된 거고, 그게 철저하게 내면화되어서 오늘날에도 우리가 거기서 못 벗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의미에서 민족주의가 굉장히 폭력적인 것인데요.
또 하나는 산업화와 동시에 근대화라고 하는 것이 나름대로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민족국가를 형성하는 것과 결부되어 있는데, 그런 과정에서 ‘우리’라고 하는 개념이 생기는 거고요. ‘우리’를 만들면서 ‘타자’를, 즉 ‘남’을 만드는 것입니다. 남이라는 게 우리가 잘살기 위해서는 언제든 희생시키거나 짓밟아도 된다 하는 논리가 있고, 한국사회에 수많은 타자들이 있었는데 그런 타자들이 항상 배제되고 억압될 수 밖에 없었지만, 특히 이것이세계화 시대인 지금, 한국에 와있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억압과 배제와 차별로 나타난다고 저는 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지난호《녹색평론》에 <세계화와 이주노동자>라는 글에서 강수돌 선생이 잘 정리를 해두셨더군요.
김종철
윤건차(尹犍次)라는 재일 한국인 학자가 있잖아요. 이 사람이 몇 년 전에 서울대에 와서 한 1년 동안 있어나 봐요. 그래서인지 비교적 근년의 한국내 지식인들의 상황에 대해서 비교적 소상하게 아는 것 같은데, 이 사람이 한국의 지식인들의 동태를 얘기하는 도중에, 현재 한국의 사상계는 탈근대 담론이 유행하면서 민족주의를 혐오하는 경향이 상당히 강다하고 지적하더군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지금 한국사회에서 가장 큰 역사적 과제는 통일민족국가의 형성인데, 그 통일민족국가의 형성이라는 제일의적 과제에 비춰볼 때 민족주의를 부정한다는 것은 역사적 현실을 외면하는 처사다, 이런 논지예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권혁범
제가 보기에는 지금 젊은 세대나 배부분의 남한 ‘주민’들이 통일을 원하는 것 같은데요. 사실은 심각한 관심도 없고 그것을 위해 일할 마음도 없지만, 왜 통일을 원하느냐 하면, 제가 보기에는 간단해요. 통일이 되면 한국이 더 부유하고 강한 나라가 된다는 겁니다. 지금 남한 주민들이 갖고 있는 통일에 대한 상이라고 하는 것은 19세기 부국강병주의하고 조금도 차이가 없어요. 아니, 그것보다 어떻게 보면 더 강력할지도 모르지요. 그걸 위해서 당연히 민족주의가 필요한 거죠. 민족주의 동원하지 않고서는 그런 강력한 통일국가를 이룰 수 있는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저처럼 통일이 아니라 ‘탈분단’을 주장하거나,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더 보편적인 가치로 삼는 그런 의미에서의 통일과정을 이야기한다면, 반드시 부국강병주의와 충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해요. 한국사회에서는 ‘국민’하고 ‘민족’이라는 단어를 구별해서 쓰니까 이런 측면이 있다고 보는데요. 가녕 ‘민족해방’을 정치운동의 노선으로 삼는 민족주의자들은 설령 이주노동자들을 배척할지는 모르지만 북한 주민들은 끌어안으려고 노력하잖아요. 해외동포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요즘에 나타나는 현상들을 유심히 보면 지금 횡행하는 논리는 그런 의미에서 민족주의도 아니고 ‘대한민국주의’라고 봐야 할 것 같아요. 혹은 국민주의이든가. 가령 자신을 민족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젊은 친구들하고 얘기해 보면 북한 주민들은 어디까지나 ‘걔네들’이거든요.
그래서, 지금 한국사회에서 불고 있는 어떤 중심적인 동력은 정확히 말하면 ‘국민 중심주의’라고 해야 할 것 같아요.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자기자신을 스스로 포섭시킨다는 데 문제가 있고, 또하나는 일제시대 용어지만 ‘비국민’은 짓밟아도 좋다, 이런 논리가 횡행한다는 것입니다. 그 첫번째 희생자가 바로 이주노동자이고, 그 다음이 북한 주민, 또 연변에서온 조선족... 이런 식으로 되는 것이죠. 저는 이런 현상이 아주 위험한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최근에 낸 책의 제목도《국민으로부터의 탈퇴》라고 했던 것인데요. 우리 스스로 ‘국민’에서 탈퇴를 하자, ‘국민’이라는 낱말부터라도 제발 좀 쓰지 말자, 이런 주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아직도 진보든 보수든 한국사회에서는 죄다 ‘온 국민’ 단위로 말하고 생각하잖아요.
김종철
미국사회에 지금 저렇게 배타적인 애국주의가 창궐하는 것은 결국 미국 사람들이 ‘미국식 생활방식’이 제일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양보하지 않겠다고 고집하는 것과 직결되어 있잖아요. 세계의 부를 독점적으로 차지하고 무분별한 낭비를 구조적으로 강제하는 게 바로 미국식 생활방식인데, 그런 문제에는 아랑곳도 없이 무조건 미국식 생활을 고집하거든요. 이런 종류의 부국강병이라는 논리는 결국 간단하게 말하면 남들이야 어쨌든 나만 잘살아 보겠다 하는 욕망인데요. 이것이 바로 민족주의나 국민주의, 혹은 좀더 나아가 국가주의의 기초에 있는 감정이겠지요.
그런데 이런 경우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가령, 부국강병주의, 국가주의는 거부한다고 하면서도 좀더 세련되게, 혹은 좀더 지적으로 교묘한 논리를 구사하는 지식인 그룹이 실제로 있잖아요. 뭐냐 하면 박정희식의 개발이나 산업화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그러한 개발과 산업화를 통해서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꿈도 꾸지 못했을 대우를 우리가 실제로 외국인들로부터 지금 받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높아진 위상을 앞으로 무리를 해가면서 더 높이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더 떨어지지 않는 수준에서 유지하면서 좀더 인간적이고 좀더 친환경적인 사회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 이런 논리가 실제로 존재하거든요.
그리고 통일문제를 생각하면 저는 이런 생각이 드는데요. 실제로 언제 통일이 될지 우리가 알 수는 없지만, 남측 국가와 북측 국가가 ‘결합’해서 통일이 과연 될 수 있을까 근본적인 의문이 듭니다. 일방으로의 흡수통일이 지금 운위되고 있지만, 그런 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현실성도 문제지만, 결코 바람직스러운 사태는 아니라고 봅니다. 바람직스럽기로 말한다면, 한국사회에서 앞에서 말한 정말 민주적인 사회, 즉 작은 공동체들이 번성하고, 그리고 북한사회도 마찬가지로 더 작은 단위로 쪼개지고, 권력이 분산되어 자치‧자율적 공동체 단위의 생활이 활성화됨으로써 국가나 정부의 결합이나 흡수가 아니라 자치적인 공동체들끼리의 자유로운 연합이 된다면, 저는 그게 제일 바람직스러운 통일방식일 거라고 믿어요. 그렇게 된다면, 통일민족국가일 필요도 없고, 굳이 통일이라는 말도 쓸 필요가없을지도 모르지요. 정치학자로서 권혁범 선생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권혁범
저로서는 통일민족국가를 지향하는 흐름자체가 반(反)생태적, 반(反)공동체적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지금 진행되고 있는 역사의 큰 흐름이라는 것은 무시할 수 없다고 보는데요. 제가 보기에는 아마 북한도 중국식으로 갈 것 같아요. 시장경제가 결국은 한반도를 다 말아먹으면서 하나의 시장 단위로 만들고 나서야, 비로소 김 선생님이 말씀하신 그런 흐름들이 생겨나지 않겠는가 하고 저는 봅니다. 지금 남북한의 경제교류 같은 것도 보면 미래 지향적인 것이 전혀 없네요. 지금 중국이 가고 있는, 포스트 사회주의의 길이 북한의 미래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김종철
상당히 비관적인데요.
강수돌
현재 남분한 체제가 각기 상대방을 흡수통일하는 것은 어느 쪽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진정한 제3의 길은 남북한의 모든 풀뿌리가 방방곡곡 생동하는 마을공동체를 재창조하는 일 속에 있다고 봅니다.
천규석
하지만, 내가 보기에도 틀림없이 자본주의에 의해 흡수통일이 될 것 같아요.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진보운동을 해왔다는 사람들이 그러한 흐름을 눈앞에 두고도 아무런 발언을 못한다는 거예요. 통일운동은 진보주의자들이 주도했고, 그래서 통일운동하면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지금 저 사회주의를 통째로 자본주의가 집어삼키려고 하고 있는데도 그저 통일만 되면 좋다는 식으로 보고 있잖아요.
가령, 정주영이가 소 몰고 올라가고 현대가 금강산 개발하는 게 통일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그게 역사의 진보라고 보는 것 아닙니까. 심지어 통일에 대한 재벌의 기여도 인정해야 된다 이런 소리까지 하잖아요.
권혁범
그렇지요. 재벌을 통한 남북한간의 경제교류가 통일에 이바지 한다고 보니까요. 이것을 소위 민족주의자들도 공로로 인정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물론 안타깝기는 한데요. 그러나, 상대적으로 경제교류의 순기능이 있다면 그것은 한반도 평화의 문제겠지요. 근본적으로 산업화도 폭력이고 전쟁도 폭력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같다고 하겠지만, 단기적인 차원에서 전쟁은 그 피해가 너무나도 크고 참혹하기 때문에 그런 차원에서 경제교류를 통한 점진적인 시장의 통일, 이런 것이 갖고 있는 유일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사실 한반도 평화문제는 최근에도 굉장히 위험한 순간에 많이 돌입을 하지 않았습니까.
천규석
그러나 한반도 평화문제는 사실 미국놈들 마음에 달렸지, 그게 어디 우리 마음대로만 되겠습니까. 미국놈들이 미쳐 날뛰어서 폭탄을 퍼 부으면 별 수 없이 전쟁이 일어나는 건데...
권혁범
그래서 더욱 남분한의 문제는 ‘평화’로 접근해야지, 통일민족국가니 민족이 하나가 되어서 세계 앞에 당당하게 선다느니 이런 식의 논리로 가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동북아 중심국가’라는 말도 있지만, 따지고 보면 이 논리가 얼마나 폭력적인 겁니까.
그리고 저는 현실적으로 이런 생각도 합니다. 한때 남북한 교류가 막 시작될 때 북쪽에서 나오는 문건들을 봤는데요. 그것만 보면 북한에서는 국가사회주의적인 산업화 논리를 넘어서, 최소한 쿠바 정도의 의식 전환이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통일의 의미에 관해 짧은 글에서 이야기한 적이있습니다만, 결국은 북한에서의 생태주의적인 변화의 가능성은 남쪽 운동의 역량이 결정할 거라고 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결국 시장에 의한 흡수통일 방향으로 가건 다른 형태로 가건, 기본적으로 북쪽 내부에서 그러한 생태주의적인 방향으로의 전환이 자생적으로 일어나기는 어려울 거라고 보고요. 결국은 가까운 거리에 있고, 한 민족이라고 하는 ‘상상의 공동체’로 묶여져 있는 남쪽의 역량이 결국 그것에 영향을 미치게 되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남쪽에서 먼저 그러한 통일에 대해 비판적인 성찰이 일어나고 국가 단위가 아닌 지역 단위의 공동체적인 움직임이 활발해져야 한다는 거지요.
천규석
물론 미국의 일방적인 전쟁광기가 심하게 발작할수록 우리의 남북문제는 부국강병식 민족통일국가주의가 아닌 철저한 공존‧상생‧평화의 원칙에서 접근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데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쿠바 말씀을 하셨는데, 동구 몰락과 미국의 장기적 경제봉쇄로 고립된 쿠바가 자구책의 하나로 지속가능한 농업의 일부를 도입, 시험함으로써 마치 유기농의 매카처럼 되어있어요. 60년대까지 유기농의 전통을 이어온 우리나라에서도, 요새 이 방면에 관계있는 사람치고 쿠바를 안 다녀온 사람이 없을 정도지요. 물론 지면에 소개된 만큼 아직은 유기농이 쿠바농업의 주류는 분명 아니지만, 당국이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시도하는 것만도 신선한 충격과 희망을 주는 것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최근 북한의 변화는 이런 쿠바식의 자급자족적 대안보다 중국식 개혁개방을 통한 물량주의 모델로 귀착될 것이 거의 확실한 것 같아요.
사회주의는 흔히 관료주의로 망했다는데 관료주의의 뿌리가 국가주의라면 사회주의 멸망을 재촉한 것은 결국 국가주의이니까, 사회주의 국가들이 손쉽게 시장주의로 개혁개방해서 연명하겠다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자본주의도 국가주의와 시장주의가 타협한 물량화 덕택에 그 수명을 조금더 연장해가고 있긴 해도 생태적 한계, 즉 자원의 한계로 지속이 불가능한 체제라는 것을 누가 부인하겠어요. 그렇다면 이미 망했거나 실패한 국가사회주의 체제로의 통일은 물론이고, 아직 남아있는 자본주의 체제도 곧 망할 체제라면 우리가 굳이 어느 한쪽의 기성체제로 통일할 필요가없는 것이지요. 시간 차이일 뿐 어차피 망할 두 체제 중의 어느 하나의 체제로의 통일보다는, 김종철 선생 말대로 남북이 각기 지속가능한 농업 중심의 지역공동체들로 더 작게 갈라져서 지역적으로 연대하고 국제적 연대로 나아가는 길이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남는 진정한 통일과 살 길이 아닐까요? 흔히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닌 사회주의적 복지국가 사회를 인류를 구원할 제 3의 길로 상정합니다. 하지만 나는 지속 가능한 농업 중심의 지역자치 공동체의 연대를 통한 ‘아래로부터의 세계화’야말로 인류에게 유일한 희망인 진정한 제 3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남북교류와 협력을 통한 평화정착과 통일정책의 앞장에 서서 설쳐대는 남한의 이른바 진보적 엘리트를 보세요. 이들은 생태적‧공동체적 각성이 없는 부국강병식 국가주의를 신봉하는 감상적 민족통일주의자들이거나 사회주의적 복지국가주의자들이라는 데 문제가 있거든요. 바로 이런 이유들로 북한의 개방개혁을 강요하다시피 하는 현재의 남북교류와 협력은 매우 걱정스럽고, 그래서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경제위기와 박정희 망령
김종철
예. 다시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서 조금 정리를 해보도록 하지요. 박정희가 ‘지속불가능한 발전의 유공자’라 그랬지만, 지속불가능한 발전이라는 것을 지금 와서 알았다고 해서, 경제발전을 개발이나 성장이라고 생각하는 시각이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상황에서 이 방향을 지속가능한 것으로 만들 수 있겠는가. 지금 경제전문가들이나 정책 입안자들이 경제위기에 대처한다면서 내놓은 해법들을 보면, 오히려 그것들이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더욱더 심화시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건설경기나 부동산이나 골프장 건설로 경기를 부양해보려는 시책에 대해 우리가 비판을 하고 있지만, 이 체제 내에서 그와 다른 대안적인 방식이 있겠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본주의 경제는 결국 현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계속 외형을 확장하는 일을 반복하지 않을 수 없잖아요. 그러면서 분배냐 성장이냐 운운하는데, 이것도 말장난인 것 같아요. 분배나 성장이나 이것은 결국 한 덩어리도 가는 거지, 따로 갈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강수돌
지금의 경제위기라는 것이 일국의 위기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한데요. 그래서 각 나라에서 제시하는 해법들은 사실은 해법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지금 처한 현실, 혹은 경제체제가 직면한 전반적 문제를 도저히 해결할 수 없노라고 고백하지 못하고 은폐하려는 결과 고육지책으로 나온 땜질처방에 불과합니다. 이 체제의 기득권자들, 지배자들 스스로가 우리는 더이상 보편적으로 일자리를 제공할 수도 없고, 이런 방식으로는 대대손손 지속불가능하다고 고백을 하자니, 그렇게 되면 자기 기득권을 부정해야 되니까 계속 경제위기를 들먹이며 나름대로 합리화하느라 임기웅변을 하는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미봉책들이 삶의 위기를 진정으로 해결할 수는 없겠지요.
최근에 연구년 관계로 미국에 잠시 가 있었습니다만, 미국에서조차 생각있는 지식인들은 책이나 논문을 통해 그런 이야기를 자주 하고있습니다. 뉴욕시민 또는 LA시민과 같은 생활은 결코 세계적으로 보편화될 수 없는 생활방식이기 때문에, 자발적 검소함을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고요.
그러나 물론 대부분의 미국 시민들은 주류 이데올로기 속에 편입되어 있습니다. 아무튼 그래서이겠지만, 오는 미국 대선에서 부시가 확실히 질 것이라는 조짐이 그다지 뚜렸하지 않은 것을 보면 참으로 기가 막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게 어디 미국만의 문제이겠습니다까. 결국 ‘박정희 시대’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사회도 근본적으로 마찬가지 상황이지요.
권혁범
예전에도 해외에 나가서 오래 있다가 돌아오면 느꼈지만요, 이번에는 저도 한 1년 정도 나가 있었으니까 비교적 짧은 기간이었는데, 뭐가 가장 선명하게 느껴지는가 하면 한국사회가 얼마나 미친 듯이 바뀌는 사회인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고작 1년 만에 돌아왔는데 학교 정문부터 동네 음식점까지 참 많은 게 그새 바뀌었더라고요. 텔레비전 프로그램 같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거기 나오는 얼굴들까지. 바로 이것이 압축적인 성장을 이룬 한국사회의 속도를 보여준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일본 기자들이 자주 쓰는 말, ‘다이나믹 코리아’라고 한는 말을 한국사람들은 자꾸 좋게만 이해하려고 하는데, 이게 사실 시니컬한 표현이거든요. 다른 말로 하면 이건 사실 ‘미친 코리아’라는 의미예요.
김종철
그렇지요. 세계화 체제 속에서, 가령 미국사회가 큰 톱니바퀴라면 우리는 그에 맞물려 있는 작은 톱니바퀴니까, 저들이 한번 돌 때 우리는 백번은 돌아야 하니까요.
권혁범
그리고 또 하나 느낀 게 뭐냐 하면 과거의 한국에 비해서 어떤 가게를 가든지 굉장히 친절하게 대접을 하고 일을 빨리빨리 처리해줘요. 출입국 절차부터 그런 것 같아요. 이걸 다른 지식인들하고 얘길 해 보니까 대부분 좋다는 거예요. 그러나 이게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한국사회에서도 자본주의의 효율성의 극대화를 통해 일상적 삶을 본격적으로 억압해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기도 하거든요.
김종철
좋은 지적입니다. 시간도 많이 흘렀고, 오늘은 여기서 일단 마무리를 지어야겠습니다. 원래 좌담을 시작할 때에는 좀 더 다양한 문제에 걸쳐서, 가령 요즘 많이 얘기되고 있는 친일파 청산 문제라든지, 신행정수도 이전 문제라든지, 이런 문제들과도 관련해서 폭넓은 이야기를 기대했습니다만, 얘기를 나누는 도중에 자연히 오늘은 화제가 민주화와 산업화의 관계, 민족주의와 통일문제, 이런 데에 초점이 좁혀진 감이 있습니다. 이런 토픽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야기가 된 것 같지는 않고, 또 깊이 있는 이야기였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물론 사회자의 책임이었습니다만, 그래도 여기서 우리가 몇시간 동안 나눈 얘기는 한국의 현 상황에서 다른 매체에서는 듣거나 보기가 매우 어려운 그런 종류의 이야기라는 것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좌담이 의의는 있을 것이라 보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앞으로 좀더 생산적인 토론이 가능해질 것으로 믿습니다. 고맙습니다.
이 좌담은 지난 8월 17일 대구에서 열렸으며, 참석자는 아래와 같다.
- 천규석―대구한살림 이사.《쌀과 민주주의》등 저자.
- 권혁범―대전대 교수.《국민으로부터의 탈퇴》등 저자.
신보연―경기 파주 농민. 전(前) 민주노동당 환경위 준비위원장.
- 강수돌―고려대 교수.《작은 풍요》등 저자.
- 김종철―《녹색평론》발행인(사회).
기록 및 정리―김건우, 변홍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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