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녹색평론》 제83호(2005년 7-8월호)에 올려져 있는 글 <’박정희시대’ 평가의 문제>를 직지지기 김민수가 직접 입력해서 올린 것 입니다. 이 글은 지적 재산권에서 자유로운 문서는 아니지만, 좋은 내용이 멀리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원저작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싣습니다. – 2010년 5월 4일 CEDT, 직지지기 김민수

‘발전‧개발’ 논리에 대한 의문 – 백낙청의 <박정희시대를 어떻게 생각할까>를 읽고

우리사회에서 ‘박정희’라는 말은 어느새 ‘경제성장’ 혹은 ‘경제개발’의 상징적 기호가 되어버렸다. 바로 여기에 박정희(시대)를 평가하는 데 있어 우리 시대 ‘진보적’ 지식인이 느끼는 곤혹스러움이 있는 게 아닐까 한다. 즉 박정희(시대)의 독재나 인권탄압은 지탄받아 마땅하지만 그(시대)가 이룩한 경제발전의 성과는 인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우리사회 저변에 깔린 인식이 있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사회는 전자의 측면에서 박정희를 비판하는 진영과 후자의 측면에서 박정희를 옹호하는 진영으로 양분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백낙청 선생은 ‘진보적 지식인’의 이러한 고민과 딜레마를 돌파하고자 한다.

선생이 지적한 대로 박정희 평가의 “상반된 양면을” 종합화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바 크지만, 이런 식의 주장 자체는 딜레마의 극복이나 돌파라기보다는 오히려 양자를 ‘절충’함으로써 그 딜레마를 봉합하는 성격이 짙은 게 아닌가 한다. 때문에 이를 일러 ‘안이하지 않은 억지 균형잡기’라고 불러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절충’이 백낙청 선생에 의해 처음 시도된 것은 아니다. 이미 김대중 정부 때부터 ‘박정희 살리기’는 시작되었는바, ‘개발의 아버지로서 박정희 = 경제개발의 유공자 박정희’와 ‘인권유린과 탄압의 대명사 박정희 = 정치적 독재자 박정희’는 모순적으로(이때 ‘모순적’이란 말은 변증법적 지양을 염두에 둔 말이 아니라, 모순의 일차적 의미 그대로 논리적으로 양립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봉합되기시작했다. 김대중 정부 주도의 박정희 기념관 건립 시도는, 박정희 정권에 의해 가혹한 탄압을 받았던 유신시대 민주화 투사들의 박정희와의 화해 움직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그때 ‘현실적으로’ 재바른 정치인들은 거개 박정희 기념관 건립을 찬성했지만,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다수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박정희 살리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반대하지도 못한 채 어정쩡한 태도로 관망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남한 지식인 사회의 비판적 지성을 대표한다는 《창작과비평》의 백낙청 선생에 의해 박정희를 모순적으로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우리는 이를 양립 불가능한 화해 시도라 생각한다)이 일고 있다. 백 선생의 이러한 시도는 일면 긍정적 측면을 지니지만 이에 대한 비판적 점검도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거칠게나마 몇몇 의문점을 제기해보려 한다.

“지속 불가능한 발전의 유공자”

백낙청 선생의 논의에서 무엇보다 먼저 검토해야 할 사안은 선생도 ‘발전’ 혹은 ‘개발’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점이다. 선생은 “민주화 자체”가 장기적 측면에서 “경제발전”의 한 동력일 수 있다는 흥미로운 지적을 통해 박정희만이 아니라 민주화 운동(세력)도 “발전의 유공자”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이러한 선생의 주장은 경제발전을 박정희 쪽의 공(功)으로만 돌렸던 기존의 편견을 교정(矯正)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지적임에 틀림없지만, 그것이 기본적으로 ‘발전주의’ 혹은 ‘개발주의’에 주박(呪縛)돼 발전‧개발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비판적 검토는 생략돼 있다는 점에서 여전한 한계를 지닌다고 생각된다. 기실 선생이 이번《창작과비평》에 발표한 글은 지난 해 <중앙일보>(2004.8.12) 시평 “지속 불가능한 발전의 유공자”(이하 “시평”)에서 이미 그 핵심적 내용이 진술된 바 있다. 지난 “시평”과 이번 글에서 백 선생이 사용하는 “지속 불가능한 발전의 유공자”라는 말은 “지속 불가능”했기에 박정희식 경제발전 모델은 실패했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지속 불가능”하긴 했지만 경제발전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유공자”라 말해도 좋지 않겠는가, 라는 긍정적 평가에 무게가 실린 말이라 여겨진다. 그런데 선생의 말을 과연 이렇게 해석할 수 있을까? 이러한 의구심을 염두에 두기라도 한 듯 선생은 이렇게 일러두고 있다.

이 정도면 선생의 진의(眞意)를 오해하거나 왜곡하는 우(愚)는 범하지 않았다고 생각되므로, 이제 구체적인 논의에 들어가기로 한다.

근대화와 식민화

우리는 우선 지속 가능한 발전‧개발이 가능하다는 백낙청 선생의 주장에 근본적 물음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지속 가능한 발전‧개발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자연 ‘자원’이 뒷받침되어야 함은 주지의 사실인바, 이를 여하한 방식으로 해결할 것인가가 선생의 논지를 정당화하는 주요한 사안 중 하나일 것이다. 그동안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가장 중요한 ‘자원’인 석유는 이미 향후 10년 이내에 최대 생산 클라이맥스에 도달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와 있고, 이에 더해 사회주의권의 붕괴 이후 “지속 불가능한 발전”이라도 급속히 추구하려 하는 중국 및 ‘저개발’ 국가들의 발전주의를 염두에 둘 때, 어떤 방식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개발이 가능할지 선생의 해법이 퍽 기대되는 것이다. 그러나 선생은 이에 대해 어떤 구체적 답변도 제시하지 못한 채 추상적으로 진술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다음 두가지 측면을 간과하거나 오해하고 있다는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법하다.

첫째, ‘근대화=산업화’(이는 당연히 ‘발전주의’ 혹은 ‘개발주의’와 동궤의 의미로 전용될 수 있다)에 대한 오해 혹은 편견이다. 선생은 이른바 ‘이중적 근대 기획’, 곧 경제성장으로 상징되는 ‘기술의 근대’화와 민주주의 및 인권신장 등으로 상징되는 ‘해방의 근대’ 기획을 믿고 있으며 특히 ‘기술의 근대’와 ‘해방의 근대’가 모순 없이 통합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역사적 근대를 되돌아볼 때, ‘기술의 근대’와 ‘해방의 근대’가 행복하게 통합된 사례를 발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양자의 통합으로 운위되는 이중적 근대 기획은 적어도 ‘역사적’으로는 모순된 기획이거나 실패한 기획이라 할 수 있다. 달리 말해 ‘해방의 근대’는 여전히 요원한 희망 사항일 뿐이라는 것이다. 산업화 초기 프랑스 혁명의 “자유‧평등‧박애”라는 ‘해방의 근대’ 이념이 전면화되고 그것이 근대의 소중한 가치로 전세계에 각인되었다는 점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해방의 근대’는 선업문명체제로서의 ‘기술의 근대’의 지배하에 무력화된 지 오래며, 우리에게 남겨진 근대란 엄밀히 말해 ‘기술의 근대’뿐인 것이다.

만약 오늘날 우리에게 자유‧평등‧박애라는 근대의 해방적 요소가 실현되고 있다면, 우리 삶은 보다 생동감 있고 자발적이며 행복해야 할 것이며, 실질적 민주주의 역시 삶의 저변에 뿌리내렸어야 할 터이다. 하지만 ‘근대화’가 성취되었다는 오늘날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갈수록 심해지는 경쟁 속에 내몰린 채 ‘낙오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공포’를 매일 체험하고 있지 않은가? 자발적 행동의 능력을 상실한 채 시스템화된 틀 속에서만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기계적 삶’, 곧 인간적 행복과는 무관한 ‘멋진 신세계’의 삶을 꾸려가고 있지 않은가? 사실이 이러하다면 이른바 ‘근대화’(지금 이 말은 ‘세계화’라는 단어로 변주되고 있다)란 ‘해방의 근대’를 말살하면서 ‘기술의 근대’만을 확장해온 기제라 이해해도 좋지 않을까?

이와 동시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또다른 사실은 근대화 = 산업화를 위해서는 수탈되거나 약탈되는 지역 및 민중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는 엔클로저를 통해 원시자본을 축적했던 영국의 산업화 = 근대화 과정은 물론이거니와 식민지를 경험한 남한 자본주의의 100년 역사가 증명하는 바이기도 하다. 결국 근대화는 그것이 내부로부터냐 외부로부터냐 하는 차이는 있을지언정 식민화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근대화는 그것이 내재적이든 왜재적이든 식민화 과정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식민경영을 수행한 일본제국과 개발독제를 이끈 박정희의 공로는 공히 근대화 = 식민화를 ‘모범적으로’ 수행했다고 말할 수 있다.2 때문에 “지속 불가능한 발전의 유공자”라는 수식어는 ‘식민화 = 근대화의 유공자’라는 말로 바꿔 불러도 전혀 문제되지 않으며, 그런 의미에서 박정희시대에 대한 백낙청 선생의 평가는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의 주장과도 어느 정도 맥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서의 ‘식민화’란 “지속 불가능한 발전”을 압축한 단어일 것이다. 요컨대 발전‧개발을 전제한 지속 가능성이란 장밋빛 희망사항에 불과하며, 어떤 식의 발전‧개발이든 식민화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지속 불가능하기는 마찬가지라 할 것이다.

둘째, 세계 자본주의체제 자체의 속성을 오해하거나 아니면 낭만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선생은, 박정희시대의 “지속 불가능한 발전”이든 이후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지속 가능한 발전”이든 그것이 모두 세계 자본주의체제의 당대적 요구였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박정희시대의 고도성장, 곧 “지속 불가능한 발전” 계획은 세계 자본주의체제를 안정화하려는 미국과 이에 종속된 일본의 동아시아 전략의 일환이었으며, 지금 운위되는 “지속 가능한 발전” 역시 철저히 세계 자본주의체제의 당대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이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지속 가능한 발전”의 가능성 여부를 논외로 하더라도,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관념(환상)이 없이는 지금과 같은 신자유주의적 세계경영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지속 가능한 발전”은 자본주의적 세계체제를 기속 가능하게 하기 위한 또하나의 성장전략에 불과한 것이다. 이 점에 대한 철저한 인식 없이 “지속 가능한 발전”이 마치 바람직한 목표인 양 설파한다면 이는 박정희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전혀 주체적이지 못한 수동적이고 타율적 논리에 스스로를 내맡기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이는 민족 주체의 자율적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백낙청 선생 평소의 지론과도 상반되는 결과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것인바, “지속 가능한 발전”이 세계화를 주도하는 제국적 이데올로기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보편성 없는 “지속 가능한 발전”

그런데 근대화 = 산업화에 대한 오해나 세계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불철저한 이해 못지않게, “지속 가능한 발전”에 대한 선생의 주장은 ‘보편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데 그 문제점이 있지 않나 싶다. 기실 어떤 이론이든 보편성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한낱 말장난에 그치거나 아니면 자기 이익을 위해 타인을 속이는 행위가 돼버리기 쉽다. 예컨대 핵무기를 소유한 미국이 새로운 핵무기를 지속적으로 개발하는 것은 괜찮지만 복한이나 이란이 핵무기를 가져서는 안된다거나, 남한은 경제개발을 해도 좋지만 중국이나 인도는 지구생태계를 위해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논리는, 아무리 그럴듯한 수사로 포장한다 하더라도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일 것이다.

선생은 “환경친화적인 새로운 경제모델”의 창출을 당면한 긴급한 요구 조건이라 말하며 “지구 전역에 걸쳐 환경파괴가 박정희시대에 비해 훨씬 더 급박한 수위에 달했을 뿐 아니라, 동아시아 특히 거대한 중국의 고속 성장으로 환경파괴는 전혀 새로운, 아마도 말기국면에 들어섰다”고 평가한다. 이어 “일본의 선례를 남한이 후발주자에 맞게 재생한 패턴에 따라 중국의 경제성장이 진행된다면 - ‘중국식 사회주의’의 구호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될 위험이 다분한데 -이제까지 우리가 알던 지구는 영영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하며 “생태계의 이름으로 경제발전 자체를 외면하지는 않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안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299쪽)

선진제국인 미국에서 가장 위험스럽게 여기는 것이 중국의 군사력이 아니라 중국의 ‘경제성장’이라는 점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에 속한다. 자본주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세계 제1의 잠재 시장인 중국이 더욱 개발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그 개발로 인해 지구 전체는 생태적 공멸의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다는 딜레마, 이것이 세계 자본주의의 핵심적인 고민일 터이다. 남한경제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수출주도형 경제개발 모델에 따르면 중국시장은 더 많이 개발되어야 하지만 그 개발로 인해 ‘지속 불가능성’은 더욱 가속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난제에 대해 백낙청 선생은 양자 모두 승리할 수 있는 윈-윈 전략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혹은 “덜 지속 불가능한 발전”) 모델을 제시하는데, 이는 결국 자본주의를 지속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지속 불가능한” 중국의 개발은 제어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중국이 이 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성장을 포기하거나 그 속도를 늦추는 자본주의란 없다

지금까지 우리는 백낙청 선생의 주장에 대해 근본적 지점에서 몇몇 의문을 제기해왔다. 그렇다면 선생의 주장 가운데 우리가 수용할 만한 내용은 없는 것일까?

“성장동력을 중시하더라도 부자나라 따라잡기를 지상목표로 삼고 최대한의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자기방어적 성장을 꾀하는 전략”(292쪽)을 펼쳐야 한다는 선생의 언급은 발전‧개발주의에 대한 성찰적 태도를 제시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차분히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만약 선생의 “자기방어적 성장”(혹은 “최소한의 경쟁력 확보”나 “방어적인 경쟁력 노선”)이라는 개념을 근대화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성장에 대한 일종의 제한을 가해야 한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면, 이는 ‘성장의 한계’를 지적하며 무분별하고 비합리적인 발전주의의 폐해를 예견한 이반 일리치(Ivan Illich)의 다음 주장, 곧 발전‧개발이 일정 한도를 초과할 때 발전되고 개발될수록 오히려 폐해만을 양산하다는 산업주의체제에 대한 근본적 비판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어적 성장”이란 선생의 주장은 “방어적”이라는 말에 그 핵심이 있다기보다는 분명 “성장”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의구심을 갖게 한다. 비록 선생은 “방어적 성장” 전략 (혹은 “지속 가능한 발전” 전략)을 통해 ‘일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도 가능하다고 믿고 싶겠지만, 그 전략이 성장에 대한 환상에 붙들려 있는 한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왜냐하면 선생의 바람과는 달리, 성장의 환상에 기반한 자본주의는 속도를 늦추거나 멈추는 순간 그 체제 자체가 붕괴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곧 인간적 존엄과 생태적 지속을 위해 성장의 속도를 늦출 수 있는 자본주의란,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꿈이거나 아니면 명실(名實)이 상부하지 않는 모순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자본주의체제에서 성장이란 필연적으로 무한성장‧무한경쟁의 논리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선생의 “방어적 성장” 전략은 순진한 발상이 아니면 자본주의체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소치가 아닐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이 내세운 “방어적” 자세는 그 진의와는 상관없이 현재의 무한성장주의를 성찰적으로 되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분명 긴요하고 필요한 태도일 터이다.

무엇이 올바른 현실주의인가

그런데 이러한 전략적 구상과 함께 필수적으로 제시되어야 할 것은 이를 실현하기 위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방법론일 터이다. 그렇다면 선생이 제시하는 방책은 무엇일까?

백낙청 선생의 해법은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이중과제’라는 평소의 지론이다. 선생은 “한번 낙오하면 항구적인 약자로 전락”하거나 “약자는 강자로부터 사람대접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을 오늘날의 “세계체제의 현실”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을 그대로 추수하기 전에, 세계화라는 약육강식의 이 현실이 정의(正義)에 기반해 있는지 불의(不義)에 기반해 있는지, 최소한의 윤리적 물음은 던져보아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의 물음도 던지지 않고 어떤 주저함도 없이 냉큼 주어진 현실을 껴안는 것은 자칫 기회주의적인 현실추수주의로 귀결될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만약 이 세계가 불의(不義)에 바탕한 세계라면 이에 굴북하지 않고 인간적 위엄과 존엄을 지키며 끝까지 싸워가는 자세야말로 기회주의적인 현실추수주의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우리가 믿는 현실주의가, 그리고 선생이 강조하는 현실주의가, ‘현실추수주의’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은 무엇이여야 하는가. 불의의 세계에 굴북해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하며 주어진 현실을 추수하기보다는, 스스로 인간일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나가는 일 아니겠는가? 선생이 강조하는 현실주의의 길 역시 이와 다르지 않으리라 믿는다.

이러한 ‘지혜로운 현실주의’를 실천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구체적인 방법론이 필요할 터이다. 그런데 선생이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는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이중과제’는 거시적 구상일 뿐 현실을 타개할 ‘지혜로운 현실주의’와는 거리가 있으며, 선생의 글 어디에도 ‘이중과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방법론은 발견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선생의 글을 통해 ‘지혜로운 현실주의’의 실천적이고 구체적인 방법론을 기대했던 우리로서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러한 지적에 대해 선생이 억울함을 호소할 수도 있다. 선생의 글은 다분히 원론적이고 따라서 거시적 함축을 전할 뿐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거시적 제안에도 일말의 구체성이나 실천성이 암시적으로라도 포함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것이 《창작과비평》의 ‘현실주의’가 아니던가. 게다가 선생 스스로도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 책임감 없는 “생태주의적 발상”의 소유자들에게 보다 현실적으로 책임 있는 자세를 갖추라도 충고하지 않았던가.

“발전 자체가 곧 파괴”라거나 “경제성장 또는 산업화 자체가 악(惡)”이라는 등 “생태주의적 발상”을 단순화하고 왜곡하고 있다는 점을 논외로 한다면, 선생의 비판은 그 자체 책임있는 답변을 내놓을 것이라는 암시를 전해준다는 점에서 자못 기대를 품게 한다. 하지만 선생 스스로 책임 있는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이 앞서 살핀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이중과제”라는 추상적 구상일 뿐 그외 어떤 구체적 해법이 아니라는 점에서 기대는 이내 실망으로 바뀐다. 지금 우리가 문제삼고 있는 것은 구체적 방법론이지 추상적이고 거시적인 목표가 아니지 않은가?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이중과제”라는 답안은 만병통치약이긴 하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일 수 있다. 더구나 이런 추상 수준의 논리로는 과도한 주관화를 수반할 위험성이 있는 것은 물론 그것이 사람들의 눈을 흐리게 하는 ‘거짓 희망’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신중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대안들-식량과 에너지의 자급

그러다면 선생이 비판하고 있는 “생태주의적 발상”의 소유자들(이는 평화주의자, 생태주의자, 반세계화주의자 등 다양한 이름으로 변주될 수 있다)의 경우는 어떠한가. 다소 때늦은 감이 있지만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식에 초대돼 방한했던 요한 갈퉁(Johan Galtung) 교수의 다음 제안은 “최소한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구체적인 방법론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주의를 요한다.

갈퉁 교수의 논리는 기존의 경제발전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전복시킨다. 농업을 말살하는 대가로 첨단 과학기술산업 및 생명조작산업에 온힘을 쏟으며 박정희(시대) 이래 근 반세기를 “수출만이 살 길이다”는 수출 신화에 세뇌당해온 사람들로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주장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선망하고 ‘따라잡으려는’ 선진제국들은 자국 농업 육성책 및 에너지 자급책을 마련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준비해왔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우리의 식량자급률이 30%도 안 되는데 비해 미국 133.5%, 영국 99.6%, 프랑스 194.5%, 독일 123%, 캐나다 162.8% 등 우리가 선진제국이라 인식하는 나라들은 거의 100% 내외의 식량자급률을 확보하고 있으며, 에너지 문제와 관련해서도 유럽연합의 경우 2050년까지 에너지 소비를 2000년의 절반 이하로 줄이고 그 가운데 90% 이상을 재생가능 에너지로 전환시킨다는 시나리오를 세웠는가 하면 미국도 석유 정점에 대비하기 위해 국가적 차원의 전략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4

그런데 이 두가지 사안에 있어 이 땅의 “생태주의적 발상”의 소유자로 지칭되는 분들 역시 오래 전부터 비슷한 주장을 해왔다는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녹색평론》은 91년 창간 때부터 일관되게 소농(小農) 중심의 농업회생정책을 주창해왔고, ‘대구한살림’의 천규석 선생이나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홍순명 선생 등 농촌 현장에서 생명농업운동을 주도해온 분들 역시 산업화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소농(小農) 중심 사회로 전환되어야 한다며 이를 위한 구체적 방안까지 일러주곤 했다. 뿐만 아니라《석유시대, 언제까지 갈 것인가》로 잘 알려진 이필렬 교수는 풀뿌리 시민 주도의 ‘에너지대안센터’를 중심으로 석유문명(화석에너지에 기반한 산업화 문명)에 대한 비판과 그 극복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요컨대 남한 주류사회나 ‘진보적 지식인’ 사회에서 주목하지 않았을 뿐, 남한사회 “생태주의적 발상”의 소유자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식량과 에너지 자급을 위한 구체적 실천방안을 마련해왔던 것이다. 따라서 지금 산업화 = 근대화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우리의 구상(그리고 백낭청 선생의 ‘이중과제’의 달성)에 실질적 장애요인이 되는 것은,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방안이 있음에도 그것을 일언지하에 무시해버리거나 아니면 으레 불가능한 제안이라고 일축해버리는 ‘발전주의자’들의 편견인지도 모른다. 편견 없이 사태를 목도하는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혜안(慧眼)이 지금 우리사회에 절실히 요구되는 것도 이 때문이라 할 것이다.

발전‧개발의 근원적 문제 - 인간적 존엄의 박탈

한편 식량과 에너지 문제에서 한 걸음 나아가 ‘개발’과 ‘발전’이 그 자체 선(善)한 것인가, 라는 ‘발전주의’ 자체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이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 경제개발의 환상을 탈신화화하는 데 노력해온 더글러서 러미스를 참고하는 것도 유익한 일일 것이다. 러미스는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에서, 19세기 이래의 산업자본주의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이 개발주의자들의 통념과는 달리 열심히 일하지 않았기 때문에 빈곤에 시달리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일러주고 있다. 러미스의 고찰에 따르면 경제성장 혹은 경제개발은 부(富)를 근대화했을 뿐만 아니라 빈곤도 근대화했다. 근대화 = 산업화된 대도시의 ‘깨끗하고 세련된’ 고층빌딩 사이엔 그와 동시에 ‘불결하고 위험하며 악취를 풍기는’ 슬럼이 존해하는데, 슬럼이란 근대화 이전에는 결코 존재한 적이 없는 산업문명체제만의 독특한 공간인 것이다. 결국 ‘발전’과 ‘개발’은 깨끗한 빌딩만을 발전‧개발하는 게 아니라 악취 나는 슬럼도 발전‧개발한다. 달리 말해 근대화를 통해 ‘빈곤은 빈곤으로서 발전’해오고 있는 것이다. 공장이나 빌딩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일이 근대적이듯 고층빌딩의 유리창을 닦거나 화장실을 청소하는 슬럼 주민의 일도 고도의 근대적인 일자리라는 것이다. 실은, 근대적 부와 근대적 빈곤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표리일체의 관계에 있다. 근대화에 의해 이루어진 부란, 빈곤의 근대화에 의해 성취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발전의 동력은 기실 빈곤에 기반한다는 사실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세계 경제 시스템이란 불평등을 전제로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구조, 달리 말해 경제적 불평등이 없으면 작동할 수 없는 시스템이라는 사실을 재차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5

그런데 ‘발전‧개발’의 환상이 주는 폐해는 비단 경제적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데 보다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 근대화 = 산업화 = 세계화가 진전될수록 더 많은 이들이 더욱 궁핍해졌고, 궁핍하지 않은 이도 삶의 기쁨이나 행복감은 현저히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인간적 존엄은 물론 타인에 대한 연민과 사랑 등 인류문명이 지켜온 고귀한 덕성과 지혜마저 상품으로 전락해버린 상품전체주의 시대에서, 그러한 가치를 운위하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런 농담이 되어버렸다. 우리가 근원적 의미에서, “산업주의체제가 배격되야야 하는 것은 그것이 궁극적으로 빈곤이나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좀더 근본적으로 인간이 인간다운 위엄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본조건을 갈수록 망가뜨리기 때문”이라는 이반 일리치의 지적에 귀기울여야 하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녹색평론》 1997년 11-12월 통권 제 37호, <상투성과 기계에 맞서는 현인>》

“이런 식의 근대화는 완성이 곧 자멸”

지금 우리는 지난 시기의 역사와 당대적 현실을 투철한 눈으로 직시할 필요가 있다. 과연 누구의 주장이 당대 현실에 대한 보다 합리적인 제언인지, 그리고 무엇이 오늘날의 제문제를 그나마 해결할 수 있는 현실타당한 제언인지, 냉철한 눈으로 꼼꼼히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진정 “이런 [가공할] 현실 속에서 생존을 유지하면서 그 현실을 바꾸는 일”(백낙청, 291쪽)에 책임있는 해답을 제시하는 이가 누구인지 철저히 검증해보자는 것이다. “지속 가능한 발전”이란, 20을 위해서는 설혹 가능할지 몰라도 80을 위해서는 애당초 불가능한 구상 아닐까? 그렇다면 80의 희생에 바탕한 20의 경제성장을 택할 것이 아니라 80의 행복과 민주주의를 위해 20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멈추어야 한다는 주장에 귀기울여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 당대 현실과 역사에 있어 투철한 직시의 눈을 가졌던 시인 김수영의 말을 음미하는 것으로 글을 맺으려 한다. 김수영의 예언적이고 시적인 메타포가 우리 마음을 울려, 여전히 ‘발전’과 ‘개발’의 환상에 주박되어 있는 우리의 흐려진 눈을 다소나마 맑게 해줄지도 모르겠기에.


엮인 글

참고 자료


평론_갈래, 녹색평론


  1.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전공부 강사. 서울대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1)

  2. 원주: 이 말은 기실 나의 주장이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백낙청 선생의 다음 언급을 참조. “더구나 박정희가 한반도에서 지속 불가능한 발전을 창안한 것도 아니다. 국권박탈과 인권탄압을 겸하면서 드디어는 항구적 전쟁체제로까지 나아감으로써 도저히 지속할 수 없는 개발을 수행한 선구적 모델로 일본 식민지 당국이 있었다. 박정희는 이 모델을 그가 설정한 항구적 냉전체제와 남북대결 체제에 맞게 적용하고 발전시켰는데, 이것도 공로라면 공로가 아닐 수 없다.” (293쪽) (2)

  3. 백낙청 선생이 지칭하는 이들 “생태주의적 발상”의 소유자는 막연하나마 일차적으로 《녹색평론》 2004년 9-10월호 <박정희 시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 (좌담)의 참석자가 아닐까 추측해 본다. 이 점에 대해서도 막연한 추측을 일삼게 하는 식의 언급보다는 구체적인 인물을 지적해 비판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백낙청 선생 스스로 당시《녹색평론》좌담회의 “모든 참석자들이 동일한 견해는 아니”라는 단서를 달고 있듯, 선생의 비판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점에서 자칫 공허한 비판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는바, 선생의 비판이 구체성을 띠기 위해서도 모호한 비판보다는 구체적 비판이 필요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3)

  4. 각국의 식량자급률 현황은 ‘2002년 농림부 농림업 주요 통계’ 자료의 인용이며, 에너지 문제에 대한 유럽연합과 미국의 상황에 대해서는 ‘에너지대안센터’의 자료를 참조했다. (4)

  5. 뿐만 아니라 더글러스 러미스는 민주주의와 개발 논리가 왜 양립할 수 없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러미스에 따르면 경제개발은 “사람들이 자유로운 상태에서는 결코 선택하지 않을 -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선택한 바 없는 - 여러 형태와 조건, 그리고 과도한 양의 노동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반(反)민주적”이다. 그는 미국식 경제발전 모델 및 껍데기뿐인 ‘미국식 민주주의’(=가짜 민주주의)의 허구성을 통렬히 지적한다. 그의 논지에 따르면 경제성장 혹은 발전 이데올로기는 우리에게 경쟁에서 낙오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주입시키는 한편 그로 인해 한없는 무력감을 낳게 하는 기제이다. 이처럼 공포와 무력감에 기반한 사회는 결코 민주적일 수 없다는 것, 즉 무력감을 느끼면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게 러미스 주장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5)

박정희시대 평가의 문제 (last edited 2011-11-17 01:03:10 by Minsoo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