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은 반역이다
- 이선관, 녹생평론 86호에서 뽑음.
내가 아는 영문학 강사가 있었네
돈 없고 빽 없고 사교술이 없어 교수가 되지 못한
그런 위인이었네
하루는 내게 이런 말을 하더군
이 선생 시 중에
"살과 살이 닿는다는 것은"
그것을 우연히 영역으로 번역을 해보니
이렇게 번역이 되더군
"피부와 피부가 접촉한다는 것은"
그때 나는 한글이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 글인 줄 뒤늦게 알았네
번역이 반역이네
그러더니 글쎄 그 친구
아예 영어 강사를 내팽개치고
시골로 들어가 버렸네
이 시를 읽고
- 나는 시가 아니라, 내가 집사람에게 "당신 번역이나 좀 해 보지? 아주 잘 할 것 같은데?"라는 말을 꺼낼 때 마다 들어온 대답이었다. 이 시를 읽고 나서는 무릅을 탁 치는 깨침이 있어 검색을 해 보았더니, 같은 제목으로 책도 나와있었다. [[ISBN(8991510175, h)]]
이 책의 저자는 다음과 같이 썼다.
유럽과 미국의 대학에서 행해지고 있는 동양학 연구가 '번역'을 그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것과는 달리, 기이하게도(!) 우리 대학의 서양학 연구는 번역을 연구 업적으로 인정조차 하고 있지 않으며, 그 결과 주요 학술 고전에 대한 연구번역은 일부 학자들의 여가 선용 차원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우리는 "번역은 반역이다"라는 한가한 탁상담론에 머물러 있을 여유가 없다. 오히려 '번역을 할 것인지 반역을 할 것인지' 두 갈래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 박상익
- 나는 이 분의 말에 온몸으로 찬성한다. 왜?
나는 일본이 우리를 강점한 역사적 사실을 너무나도 가슴아프게 느끼고 있다. 그리고, 그 이후 그 치욕의 역사를 씻기위해 지식인들이 느꼈을 감정, 즉 "조선이, 우리가 일본에 비해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이 늦어서 저 왜놈들에게 땅과 나라를 빼앗기는 수모를 당했구나!". 그 통한을 서구 문물에 대한 동경으로 풀어내지만, 영어, 독어, 불어 들로 쓰여진 이른바 원전을 번역할만한 문화적 소양이 안되었을 것은, 수천년 넘게 중국을 섬겨온 것이나, 일본에 30년이 넘에 일본어 교육을 강요받았다는 사실만 보아도 너무나도 당연한 바탕인 것이다. 그래서 한것이 일본이 일본풍으로 일본말로 번역한 서구문물을 그대로 우리말로 '번역'을 해서 우리 나라에 서구 문물을 소개하기에 이른 것이다. 아마도 그것이 최초의 '반역'이었으리라. 이제는 다시 반역을 해야 할 때인 것이다.
중국글자로 쓰인 우리 조상의 얼은 요즘 우리글로 다시 뽑아내고, 외국어를 아름다운 우리말로 반역하는 것이든, 우리말을 외국어로 반역하는 것이든, 이제 중국글자를 포함한 외국어를 아는 모든 한국 사람은 치열하게 반역을 해야 한다. 그것이 역사 바로세우기에 다름아니다. - 2006.2.8 00:58AM EST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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