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녹색평론 통권 제 76호에서 뽑아 실은 것이다. 지적 재산권에서 자유로운 문서는 아니지만, 좋은 내용이 멀리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원저작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싣는다. – 2006년 2월 15일, 직지지기 김민수
- 이진아1
좋은 집을 고르는 기준-'생기'와 '살기'
우리는 우리가 살 집을 고를 때 어떤 점을 기준으로 하고 있을까?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은 경제적 형편이지만, 이것과 함께 직장과의 거리, 아이들이 있다면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유리한 곳, 쇼핑을 하기 좋은 곳, 기타 교통사정, 자기가 익숙한 곳, 조용하고 전망이 좋은 곳 등등을 고려해서 일단 위치가 정해진다. 요즘 들어 공기가 좋은 곳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지만, 아직 이것을 최우선 순위로 삼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이렇게 해서 정해진 위치는 대개는 아파트 단지 안의 어느 아파트 한 칸일 것이고, 기타 다세대주택이나 단독주택으로도 주거공간이 확정된다.
공간이 주어지면 다음으론 어떤 모양새로 꾸밀까 생각하게 된다. 현대의 도시생활에서 집 바깥의 공간까지 소유하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으니, 대개는 실내의 외관을 꾸미는 데 투자가 집중된다. 연령의 고하를 막론하고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잡지에서 인테리어 장식란이 차지하는 비중, 아파트 상가에 촘촘히 들어선 집 꾸밈 관련업소를 보면, 요즘 사람들이 자기가 사는 공간의 외양에 얼마나 많은 투자를 하는지 잘 알 수 있다. 벽지, 바닥재의 선택에서 가구, 커텐 ·카페트 등 소위 홈패션 제품, 인테리어 소품까지, 내 집 꾸미기가 우선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모습'이다.
지금과는 사는 모습이 전혀 달랐던 예전에는 집을 고를 때 어떤 기준으로 했을까? 물론 논밭이나 일터 등 생계수단을 제일 먼저 기준으로 삼았겠지만,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명당', 즉 좋은 자리라는 기준이었다. 어떤 것이 명당이냐 하는 데 대해서는 수백년간 하나의 학문 분야를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연구의 축적이 있었다. 소위 '풍수지리학'이다. 풍수지리학은 주로 음택(陰宅), 즉 무덤의 자리를 찾는 데 응용이 되었던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양택(陽宅), 즉 집을 지을 때도 반드시 풍수지리학적으로 여러 가지를 검토해서 자리를 정하고 설계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요즘 사람들은 풍수지리학을 미신 비슷한 정도로 간주하기도 하지만, 사실 풍수지리학은 생태학·지질학적 조건을 종합적으로 본다는 점에서 요즘의 환경과학과 비슷하게 합리적인 학문이며, 그런 조건이 인간의 사회 ·경제적 생활에 미치는 영향까지 연계해서 본다는 점에서 더 실용적이고 통합적인 학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소쿠리' 지형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사방이 산이나 구릉으로 둘러싸여 있는 움푹 꺼진 지형을 말한다. 소쿠리 모양의 땅에 집을 지으면 처음에는 재물이 모이지만 곧 흩어지므로 별로 바람직하지 못하며, 꼭 이런 지형을 선택하게 되었을 때는 일단 재물을 모은 후 빨리 떠나야 한다는 것이 풍수지리학의 가르침이다.
오늘날의 말로 다시 풀어보자. 소쿠리 지형은 규모가 크지 않은 분지를 말하는 것이다. 옛날의 상황에서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을 테니까 땅이 기름지고 공기가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집의 수가 늘어나고 난방, 취사, 기타 여러 과정에서 오염이 발생하면 어디로 빠질 데가 없어 금방 환경이 나빠질 것이다. 그러면 땅도 곧 척박해지고 생산의 주체인 사람들도 체력과 지능이 떨어질 테니까, 한때 환경이 좋았을 때 근면과 총기로 재산을 모았다 하더라도 금방 재산이 흩어지고 불운이 겹칠 것이다. 이렇게 소위 '과학의 시대'에 사는 우리와는 개념을 형성하는 방식이 달라서 그렇지, 풍수지리학 가르침 자체의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환경이 점점 악화되어가는 요즘 같은 때일수록 더욱 그 의미를 되새겨야 할 필요가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풍수지리학의 대가인 최창조 선생님은 "사람에게 생기(生氣)와 살기(殺氣)를 알아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모든 풍수지리학의 가르침이 필요 없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다시 말하면 풍수지리를 꼼꼼히 따지는 이유는 그 공간이 '사람을 살려주는' 터인지 '사람을 죽이는 터'인지, 그걸 식별하기 위해서라는 뜻이다. 어떤 터에는 집을 짓고 살면 거기 사는 사람들이 그 터에서 나오는 삶의 기운을 받아서 부지런하고 총명하며 건강하고 자손도 번창하고, 어떤 터에 집을 짓고 살면 그 터의 죽음의 기운 때문에 거기 사는 사람들이 의욕이 떨어지고 불화가 잦아지며 되는 일이 없어 결국 우환이 겹쳐 패가망신하게 된다는 것이 풍수지리학의 전제다.
그런데 그런 기운은 보통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눈으로 보이는 집 주변의 생태학적 지질학적 상태를 살펴보아 어떤 모양새인 땅은 생기가 있는 땅이고 어떤 모양새인 땅은 생기가 없는 땅이라 고 간접적으로 추론하는 것이다. 남향, 배산임수, 좌청룡 ·우백호, 집터에서 보았을 때 눈앞에 보이는 지형이 반듯하고 편안할 것, 이런 조건들을 잘 따지면 해가 잘 들고 바람을 막아주며 생활용수 및 농업용수가 원활히 공급되고 토양의 영양상태가 좋으며 지형의 뒤틀림이 없어 수맥과 지맥의 교란을 피할 수 있는 좋은 터를 고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미신으로 치부해 거들떠보지도 않는 조상들의 가르침은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중요한 요인을 알아볼 수 있게 훈련을 해주는 것이었다.
여기 비해 요즘 우리들이 집에서 중요시하는 조건은 거의 전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이다. 몇 평형인가, '구조'가 마음에 드는가, 내장재는 고급인가, 붙박이 설비들의 외양이 고급스러운가 등등 '보이는 모습'을 위주로 따져서 사고 난 다음에도 어떤 모양으로 꾸밀지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관심 대상이 된다. 오크 가구, 앤티크 가구, 컨트리 스타일, 소호 스타일 등등 집 꾸밈 모양새에 관한 유행의 갈래도 여러 가지고 여기에 관련되는 크고 작은 산업도 엄청나게 성업을 하고 있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우리사회에서 거의 보기 힘들었던 이런 '집 꾸미기' 경쟁에는 몇 가지 특징적인 경향이 있다. 첫째는 집 꾸민 모양이 자신의 삶의 질과 수준을 나타낸다고 믿는다는 점이다. 둘째는 집 꾸밈새에 유행이 있어서 유행에 따라 자주 바꾸어주게 된다는 것이다. 셋째는 집 꾸밈새가 전체적으로 하나의 스타일을 나타내고 있어서 스타일에 맞는 것으로 세부적인 점까지 자꾸 수정 ·보완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경향들 때문에 여러 가지 결과가 발생할 것이다. 물론 불필요한 금전 지출이 따를 것이고 자원과 에너지 낭비가 심할 것이며 폐기물 발생량도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다. 그렇지만 이 글에서 가장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은 이 과정의 결과로 남는 장식재·가구·섬유제품에서 발생하는 유해물질에 대한 것이다. 새로 꾸민 공간 안에 이런 물질들이 가득 차게 되면 그 안에 사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앞서 아픈 집에서 상세히 본 바와 같다.
'살기'를 불러들이는 문명
눈에 보이지 않고 냄새도 거의 나지 않아서 인간의 지각으로는 별로 느끼지 못하지만, 이 물질들의 작용은 한마디로 '살기(殺氣)', 즉 사람을 죽이는 기운 그 자체다. 아픈 집에서도 말한 것처럼 이런 살기는 지구상에 만연하기 시작한 지 반세기 정도밖에 안되기 때문에 옛 사람들의 가르침에도 나와있는 게 아니며, 최신의 정보를 종합해보아야 겨우 그 정체의 일부를 짐작하기 시작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반세기 동안의 경험과 정보만으로도 얼마나 이 살기가 치명적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예전 우리 조상들은 삶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는 '살기'를 피하기 위해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했는데, 이제 우리는 '살기'를 집안에 모아 들이기 위해 엄청난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이 새것을 좋아하고 집 꾸밈을 유행에 맞추어 완벽한 미관으로 완성하기 위해 들이는 노력은, 한편으로는 엄청난 '살기'를 돈을 주고 사서 자기가 사는 공간에 계속 투입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런 어리석음은 비단 한 가구 단위의 개인적 선택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한동안 이 사회를 풍미했고 지금도 그 열기가 마찬가지로 지속되고 있는 '화장실 꾸미기' 캠페인을 비롯해서, 공공 공간을 불필요하게 새로 장식하고 환경 호르몬이 나오는 합성 방향제를 농도 짙게 산포하는 관행 역시 한편으로는 불필요한 에너지와 자원의 소비를 낳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공간에 머물러야 하는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살기를 모아 들인다는 점에서 심각하게 재고해봐야 할 문제다.
더 규모가 큰 주거계획에서도 이런 어리석음이 무비판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소쿠리 지형에는 집을 많이 지어서는 안 된다는 수 백년 동안의 가르침은 그런 게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지 못할 정도로 무시되고, 좁은 분지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뿐 아니라 그 주변 지역에도 계속 아파트 공사가 진행된다. 과천, 분당, 산본,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수도권 대규모 아파트 단지는 다 분지형 지형에 건설된 것이다. 이런 곳에 살아 본 사람들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처음에는 공기가 좋은 줄 알았는데, 해가 다르게 뿌연 분진의 농도가 심해진다는 것을. 이러고도 '인류 지성의 진보'를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왜 우리가 '아픈 집'으로 인해 그 엄청난 피해를 보는지 이제 분명해진 것 같다. 우리가 사는 공간을 선택하고 유지할 때 '눈에 보이는' 차원만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인간의 감각 중에 가장 발달한 것이 시각이며,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감각 중에서 시각을 가장 중시한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보는 것이 믿는 것', 동서양의 격언들이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시각만 있는 것이 아니다. 후각도, 통각도 있으며, 이런 감각의 차원을 넘어서는 '느낌'이 누구에게나 있다.
우리 옛 조상 중 누군가가 타임머신을 타고 와서 새로 지어 싹 꾸민 아파트에 들어가게 되었다면 아마 몇분 이내에 튀어나올 것이다. 숨이 답답하고 눈이 아려서 견디지 못하겠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집을 새로 꾸민 사람들은 몇 시간이고, 하루종일이라도 그런 집에서 지낼 수 있다. 시각적으로 너무 만족감을 주기 때문에 다른 감각이 위험신호를 계속 보내도 집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어서, 또는 하기 싫어서 그럴 것이다.
우리시대, 우리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 중에서도 이런 유해물질을 알아채는 감각이 살아있거나, 단순히 분해능력이 떨어져서 유해물질 농도가 높은 공간에서는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은 대개 "지나치게 예민하다", "별나다"는 핀잔 속에 자신이 느끼는 고통을 함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눈으로 보아 아름다운 것, 세련된 인테리어에 대한 가치평가는 우리사회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왜 이렇게 현대인에게 시각의 비중이 커졌는가 하는 것은 또 하나의 주제가 될 것이고 이 글의 의도와는 거리가 있다. 다만 지금까지 이런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전개해온 까닭은 현대의 주거공간 및 거기에 대한 우리의 의식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 것인지, 왜 그런 위험이 만연하고 있는데도 우리가 잘 느끼지 못한 것인지를 명확하게 이해해서 어떻게 하면 그런 위험을 피할 수 있을 것인지를 생각해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건강주택을 위한 노력-유해물질 넘어서기
지금까지의 얘기에서 어느 정도 가닥이 보일 것이다. '생명의 집'을 선택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시각 의존성'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시각이 잘못 인도할 수도 있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어떤 것의 안내를 따라야 할까?
지난 호에서 소개했던 유해물질에 대한 얘기의 흐름을 따라보자. 제일 먼저 우리가 내세울 수 있는 길잡이는 유해물질에 대한 정보에 익숙해져서, 이런 물질을 많이 발생시킬 만한 공간을 피하는 것일 테다. 새로 지은 건물을 피하는 것이 제일 우선일 것이다. 실제로 환경의식 수준이 앞선 유럽에서는 시멘트 건물은 지은 지 5년까지는 아주 싸게 임대되는 곳이 많다고 한다. 다음으로는 건물 내부수리, 특히 미관만을 위한 수리는 아주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올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눈으로 보아 아름답고 유행에 앞서는 공간보다는 좀 낡고 손때가 탔더라도 편안한 공간을 선호하는 의식이 갖추어져야 할 것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건물을 새로 짓거나 내부 미장을 새로 꾸미는 일을 전혀 안 할 수는 없으니까 건축 자재나 인테리어 내장재로서 유해물질 방출이 거의 없거나 아주 적은 재료를 개발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선진국에서는 이 방면의 작업이 상당히 진전되어 있는 곳이 많다. 미국에서는 각 지자체별로 새로 집을 지을 때 '고효율 빌딩(high-performance building)', 혹은 '생명력 고양 주택(life-enhancing housing)' 등의 개념으로 새로운 주거공간에 대한 교육 및 실천 보조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안전한 건자재, 리사이클링해서 쓰는 재료, 자연의 원리를 이용한 채광 및 공기순환 등이 중심이 되고 있다. 각 사업체별로 유해물질이 많이 나오지 않는 재료, 유해물질을 적게 쓰는 공법 등을 개발하여 성업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일본에서는 1990년대 말부터, 통산성에서 건설회사를 상대로 '건강주택' 아이디어를 공모하여 채택된 방법으로, 소비자가 주택을 주문할 때 국가가 보조해서 적절한 가격에 건강주택을 지을 수 있도륵 하고 있다. 역시 자연적인 원료의 사용, 바닥 난방, 태양열, 공기순환 펌프 등을 이용한 에너지 절약 및 환기 관리 등이 주된 내용이다.
우리나라에도 최근 건강주택 바람이 불어 안전한 소재라고 광고되는 제품이 상당히 나오고 있지만, 옥과 돌을 구분하기 힘들다. 많은 제품들이 지금까지 쓰이던 유해 소재에 옥, 황토, 숯, 혹은 수액, 심지어는 합성 방향제까지도 약간 섞어서 만들어 오히려 더 해로울 수 있는 합성제품인데도 불구하고 순수 천연소재인 것처럼 과대광고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황토집이 건강주택의 대명사처럼 되어 인기가 높아지고 있지만, 황토 자체는 내구성이 약해, 이를 보완한다고 안이하게 합성 접착제를 섞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오히려 건강에 해로운 건자재를 만드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집에 아토피 환자가 있거나 해서 특히 건강에 신경을 쓰는 가정 중에서 상당히 안전하다고 할 수 있는 바닥재, 벽지, 접착제, 용제 등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가고 있지만, 이런 제품들은 대부분 일본이나 유럽에서 직수입된 것이다. 완전히 안심하고 쓸 수 있으며 현대적 공법에도 적용할 수 있는 자재를 만드는 데는 더 많은 연구와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올바른 제품이 많이 만들어지려면 무엇보다 제품의 안전성을 식별할 줄 아는 소비자의 안목이 중요하다. 선전을 많이 한다고, 혹은 대기업에서 만들었다고 무조건 믿고 살 것이 아니라, 어떤 물질이 안전하며 또 유해한가를 제대로 구별하기 위해 소비자 측에서도 많은 연구를 할 필요가 있다.
황토집에 살던 버릇 아파트까지 간다
이렇게 실내의 오염원인 유해물질의 발생을 줄이면서 한편 환기를 잘 해주어서 실내에 오염물질이 쌓여 농도가 높아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얼마 전 TV에서 반영된 '새 집 증후군' 관련 다큐멘터리에서도 나왔지만, 실내의 독성물질 오염도는 바깥보다 수십 배에서 수백 배까지도 높아질 수 있다. 그 다큐멘터리를 본 독자라면 기억할 것이다. 새 집으로 이사 와서 심한 아토피 증세에 시달리던 학생이, 그 집에 24시간 기계로 가동되는 환기장치를 설치하는 것만으로 어떻게 증세가 개선되었던가 하는 것을. 그리고 관찰력이 예리한 시청자라면 환기장치가 설치되기 전후 몇 개월 사이에 생긴 학생 어머니의 얼굴 모습의 변화도 간파했을 것이다. 슬픈 듯 지친 듯 보이던 몇 개월 전에서 활짝 미소 짓는 몇 개월 후의 변화를.
그렇게 환기가 중요하다면 창문 열고 환기를 시켜주면 될 것 아닌가 생각이 들겠지만, 현대식 주택에서 환기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환기에 신경 써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사무실이 많이 들어가 있는 공공 건물 중에는 창문이 붙박이식으로 되어 아예 열리지 않거나 열린다 하더라도 거의 통풍이 되지 않는 구조로 된 곳이 많다. 아파트 중 층수가 높은 곳에서는 조금만 창을 열어도 바람이 워낙 세게 불어 늘 창문을 열어 놓기는 곤란한 곳이 많다. 아파트 저층이나 단독주택, 저층 상가건물 같은 곳은 문이나 창문을 열어놓으면 매연, 하수구의 악취, 분진 등 각종 오염물질이 들어와 실내오염원에 더해지는 곳이 대부분이다. 겨울에는 찬바람이 들어와서, 여름에 에어컨을 틀 때는 너무 더워져서 창문을 못 열어놓게 되기도 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과거 우리나라의 주택은 황토가 기본 골격을 이루고 창문과 문은 나무틀에 창호지를 발랐으며 지붕에는 황토를 메운 위에 기와나 볏짚 엮은 것, 나무껍질 등을 덮어서 만들었다. 이런 소재들은 모두 통풍이 잘 되는 천연물질들이다. 과거에도 우리나라에는 중국 황하 침식의 영향으로 황토 먼지가 많은 편이었을 테니까, 먼지를 실어나르지 않는 남동풍이 부는 여름만 빼면 대개는 문과 창문을 꼭꼭 닫고 살았다. 그러면 흙먼지는 들어오지 않고 황토벽, 창호지, 지붕 소재를 거쳐 정화된 공기만 실내에 들어오니까 환기에 따로 신경을 쓰지 않아도 언제나 쾌적한 실내 공기를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오면서 우리가 모방하기 시작한 서양식 건물의 경우에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이런 건물들은 시멘트 콘크리트로 기본 골격을 하고 유리 창문과 철제문으로 완벽하게 외기를 차단하기 때문에 문과 창문을 꼭 닫아두면 실내공기가 바깥 공기와 전혀 소통이 되지 않는다. 이런 상태에서는 실내 장식재, 가구, 기타 생활소품에서 나오는 유해물질이 계속 축적되며 산소는 줄어들고 잘 보충되지 않는다. 심지어 아파트에서는 주방이 실내에 있어 가스레인지 연소시 산소가 엄청나게 소비될 뿐 아니라 유해 배기가스가 배출된다. 실내에 석유나 가스 난방 기구를 쓰게 되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현대 건축물에 있어서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환기장치는 난방 장치만큼이나 필수조건이다. 대부분 서구사회에서 건축물들은 각각의 규모에 맞는 환기장치가 설계 당시부터 만들어져 있다. 각 방의 천장에 환기창이 따로 달려 있어 거기서부터 강력한 공기순환 펌프에까지 이어지는 환기 파이프가 난방 및 급수 파이프보다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에서 쟝 르노가 CIA 본부 건물에 몰래 잠입할 때 이용하는 굵은 사각 금속관의 통로 같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 통로의 끝에는 공기 펌프가 달려 있어 내부의 오염된 공기를 바깥으로 내보내고 외부의 공기를 필터를 거쳐 정화시켜 내부로 투입하는 장치가 달려 있다. 여름에는 냉각기를 통해 공기를 식혀서 들여보내고 겨울에는 히터를 통해 공기를 데워서 들여보낸다. 소규모 개인주택에도 규묘만 작을 뿐이지 이와 비슷한 환기장치가 되어있다.
문제는 언제나 선진사회를 모방할 때 눈에 보이는 부분만 모방하는 우리나라 풍토에서 지어지는 서양식 건축물이다. 겉모양만 본뜨고, 난방시설 같은 것은 할 수 없이 하지만 환기장치는 전혀 필요없는 것으로 간주되어 아예 설계 당시부터 빼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형 건물에는 '공조장치'라고 해서 이런 구조를 마련하도록 법으로 규정되어 있지만, 실제에서는 전기요금 및 관리유지비 절감을 위해서 잘 사용되지 않는다. 주택이나 아파트 같은 사적인 건물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그런 구조 자체가 없다.
그런데 황토집에 살면서 문을 꼭꼭 닫는 버릇은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난히 문과 창문을 열심히 닫는다. 바깥 공기를 오염시키는 자동차 매연과 먼지는 인간의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니까 그걸 피하기 위해서 그러는 면도 있을 것이다. 이에 비해 실내 공기의 주 오염원인 일산화탄소, 포름알데히드 등 맹독성 물질은 냄새도 모습도 없어 감각으로 느껴지기 힘들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다수가 거의 하루종일, 전혀 환기가 되지 않은 채 독성물질이 쌓여있는 공간에서 공부나 업무와 씨름할 운명에 처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작업능률이 오르고 건강상태가 좋아진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이런 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24시간 환기를 임의로 조절하기 어려운 공공건물에서는 환기장치의 설치와 효과적인 관리를 의무화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인공적으로 환기를 하는 장치는 에너지가 많이 쓰이므로, 될 수 있으면 자연의 순환 원리를 이용하여 에너지와 자원이 절약되도록 개축하는 것도 방법이다. 새로 짓는 건물은 대형건물이라 할지라도 자연의 원리를 이용한 환기와 난방 장치를 도입하여, 기계적인 방법을 점차 대체해갈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줄 필요가 있다.
사적 주거공간에 대해서는 소규모라도 이런 장치를 도입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기술이 이용 가능해질 수 있도록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살고 있는 사람이 환기의 중요성을 인식해서 끊임없이 집안에 신선한 공기가 유입되고 오염물질은 배출되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공기정화기나 숯 등 오염물질의 흡수 ·정화를 할 수 있는 장치에 대해서도 많은 배려를 해야 할 것이다.
'생명의 기운' 느끼기
실내에서 발생하는 유해물질 외에도 집을 건강하고 생기있게 만들거나 아니면 생기를 꺾게 만드는 요인들이 많이 있다. 잘 알려진 것을 들자면 주변의 공기오염, 건물의 향, 전자파, 수맥, 건물의 높이 등이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요인으로는 토양의 성질, 지자기장 등을 들 수 있다.
공기가 좋은 곳에 살면 삶이 충만해진다는 것은 요즘엔 상식이 되어있지만 여기에도 함정은 있다. 대개 공기가 좋은 곳은 수목이 많이 있는 구릉지이다. 이런 곳에서는 수목관리를 하기 위해 나무 살충제를 쓰는 경우가 많은데, 이로 인해 아예 나무가 없는 곳에서 사느니만도 못할 정도로 건강이 손상된다. 또 이런 곳에서는 단속 공무원의 눈을 피해 웬만한 쓰레기는 태워버리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므로, 이로 인한 오염문제도 심각하다. 다른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공기가 좋은 곳을 찾아온 거주자들의 의식이 깨어서 이런 오염원을 감시, 저지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건물의 향과 층수, 전자파에 대한 것은 충분히 눈으로 식별하고 피할수 있는 문제이지만, 문제는 수맥이다. 건물 지하에 물의 흐름이 있을 때, 그 물의 맥이 방사하는 파장이 강해서 인간 신체의 파장을 교란시킬 수 있는데 이것을 수맥파라고 한다. 수맥파 중에는 십만헤르츠 이상의 강력한 파장을 내는 것도 많으며 그 파장은 아무리 높은 고층건물이라도 벽과 바닥을 타고 전달되어) 변함없는 영향을 미친다. 수맥파가 있는 곳에 잠자리나 책상 등이 있어 장시간 머무르게 되면 심각한 정신적 ·신체적 건강의 이상을 초래할 수 있다. 아주 큰 수맥이 있다면 건물에 금이 가는 등 대형 건축이 불가능하므로 별로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소소한 수맥은 그렇게 눈에 보이는 징표도 주지 않으면서 장기적으로는 건강과 사회적 능률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새 집을 선택할 때나, 이유 없이 건강이 자꾸 나빠지며 심리적으로도 부정적이 되어서 수맥의 영향이 의심될 때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일 것이다. 수맥을 감지하는 능력을 타고 나서 훈련으로 그것을 강화시킨 사람들이 아직 우리 주변에 의외로 많이 있다. 서점에서 수맥 관련 책을 찾아보고 신뢰가 가는 저자에게 연락하면 본인 스스로 도와주거나 다른 전문가를 추천해주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런 방법으로 도움을 찾을 수 있다.
지자기맥도 수맥과 비슷한 영향을 주는 요인이다. 땅에는 자기적인 성질이 있어 파동을 내는데, 오랫동안 땅 위에 살아온 사람들은 신체의 파동이 땅의 파동에 맞추어져 적응되어 있다. 그런데 단층, 습곡 등 지형의 기형성으로 인해 땅의 자기장이 불안정해져 있는 곳에서 인간이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되면, 신체의 파동과 맞지 않아 역시 수맥파가 주는 영향과 비슷한 것을 받게 되어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지자기맥은 수맥보다 훨씬 약하므로 건강한 사람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체질적으로 약하고 민감한 사람은 그로 인한 부정적인 영향을 받기 쉽다. 수맥을 잘 식별할 수 있는 전문가라면 지자기맥도 느낄 줄 아는 경우가 많으므로, 같은 방식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집을 선택할 때 이런 것까지 일일이 따져서 하기는 힘들며, 믿을 수 있는 전문가를 찾기도 어렵고, 찾았다 해도 전문가라도 실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것 자체가 또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이런 '지나침'을 피하고 싶다면, 오히려 문제를 아주 단순화하는 데서 답이 나올 수도 있다. 즉, 우리 모두에게 잠재한 능력인 '생명의 기운에 대한 감수성'을 개발하는 것이다.
개나 닭과 같은 동물들은 절대로 수맥이나 지자기맥, 전자파가 있는 곳 등에서 자지 않는다고 한다. 왠지 불편한 느낌이 있으면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다. 그런데 개를 묶어 놓으면, 만일 그 자리가 불편한 곳이라면 처음에는 낑낑대고 짖기도 하며 서성거리다가, 할 수 없이 적응해서 그곳에 자리잡는다. 인간에게도 마찬가지로 자기자신의 생명의 기운을 살리는 자리와 그렇지 않은 자리를 본능적으로 구별하는 힘이 있다고 한다. 문제는 그런 힘을 무시해버리면 퇴화해버린다는 것이다.
나이 드신 할머니들 중에는, 집을 구할 때 어딘지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이 있고, 이게 내 집이다 하는 생각이 들면 사라고 권하는 분들이 있다. 집을 구하러 다니면서 왠지 끌리는 느낌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는 경험일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무시하고 더 넓은 평수, 더 마음에 드는 외관에 치중하거나, 심지어 요즘 거의 광적인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의 사치스러운 문화에 대한 동경 같은 데 좌우된다면, 생명의 기운을 느끼는 감수성은 무시되어 점차 퇴화하게 될 것이다.
이런 감수성은 그 자체로서 독립된 것이 아니라 생명을 중시하는 생활태도 전체와의 상호작용 속에 더욱 개발되고 온전해지는 것이다. 외관상 풍요로운 현대 물질문명에 대한 선호, 남에게 뒤질까 하는 두려움에서 쫓아가는 전체주의적 행태를 벗어나서, 올바른 식생활, 적절한 운동, 자신의 영혼을 들여다보는 명상을 습관화하고, 생활을 단순하게 하며 사람들과의 진정한 교류를 추구하는 사람에게 축복처럼 주어지는 것이다. '아픈 집'은 현대 물질문명의 무분별한 외양 따라잡기에서 오는 필연적인 결과 현상 중의 하나이다. '생명의 집'을 찾아가는 길은 그런 물질지상주의를 극복하여 진정한 삶을 추구하는 도정에 다름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