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녹색평론 통권 제 80호에서 뽑아 실은 것이다. 지적 재산권에서 자유로운 문서는 아니지만, 좋은 내용이 멀리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원저작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싣는다. – 2005년 10월 20일, 직지지기 김민수.
- - 한국의 전통적 생태사상의 21세기적 음미
-- 박희병1
1
나는 요즘 들어 생태주의와 평화주의는 그저 밀접한 관계 정도가 아니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전근대 동아시아 철학의 어법으로 말한다면,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一而二, 二而一)인 바로 그런 관계가 아닌가 싶다.
생태주의적 견지에서든 평화주의적 견지에서든 지금의 한국사회는 그리 좋게 보이지 않는다. 환경친화적으로 영위되지 않는 사회가 평화적사회이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고, 또한 평화로온 삶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결여되어 있거나 박약한 사회에서 환경친화적인삶이 모색되기는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간 한국사회는 압축근대화를 통한 경제성장을 이루어왔다. 한국인은 이 과정에서 성장제일주의 내지 성장 강박중 같은 것을 내면화하게 된 듯하고, 급기야 그것은 한국인의 의식세계에서 일종의 '신화'랄까 '원형'을 이루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그래서 교육에서든, 사람살이에서든, 어떻게든 남을 꺾고 경쟁에서 이겨'성장'하려는 마음만 가득한 것 같다. 개인의 성장과 사회의 성장이 나쁜것은 아니지만, 다른 것을 돌보지 않거나 다른 가치를 억압하거나 배제하면서 오로지 성장만 추구하는 것은 개인의 차원에서건 공동체의 차원에서건 정상적이지도 않을뿐더러 바람직한 일도 아닐 것이다. 흔히 한국인, 혹은 한국사회는 역동적이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이 말은 액면 그대로 꼭 좋게만 받아들일 것은 아니다. 그 '역동성' 속에는 살벌함과 광기, 성장이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일종의 편집증적 병리현상 역시 포함되어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나는 이즈음 현 정부가 공표하고 있는 각종 밀어붙이기식 개발주의 프로그램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한국의 전통적 생태사상에 대한 음미는, 서양만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생태주의적 마음과 지향이 있었다는 것을 내세우거나 확인하는 게 목적이 되어서는 안될 터이다. 오늘날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생태주의 사상이라면 서양 것 우리 것을 구분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생태사상의 영역에서까지 국수주의나 민족주의의 폐단이 끼어들게 해서는 안될 줄 안다. 우리 것을 중시하는 차원의 일환으로 한국의 전통적 생태사상을 강조할 경우 자칫 신비주의와 복고주의에 함몰될 위험이 없지 않다. 이런점을 고려할 때 한국의 전통적 생태사상에 대한 음미는, 작게는 지금의한국인이 '나'와 '남'의 관계를 성찰하며 친환경적 마음, 친환경적 삶을모색해 나가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할뿐더러, 크게는 동아시아인 더 나아가 세계인에게도 어떤 시사와 도움(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을 주는 일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2
생태주의와 평화주의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확장하는 데 도움을 주는전근대 시기 한국의 사상가로는 우선 홍대용(1731-1783)을 꼽을 수 있다. 홍대용은 <의산문답>이라는 저술에서 자기 생각의 얼개를 밝혀 놓고 있다. 지금부터의 논의는 바로 이 저술에 바탕을 두고 있다.
홍대용은 먼저 인간의 자기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자신의 사유를출발시킨다.2 홍대용에 의하면, 인간의 입장에서 볼 경우 인간이 '물'(物, 이 말은 인간 이외의 일체의 생물을 뜻하는 말이다)보다 낫지만, 거꾸로'물'(物)의 입장에서 볼 경우 '물'이 인간보다 낫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홍대용은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인간중심주의를 해체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과 '물'은 각각 자기의 입장만 내세우며, 자기 관점에서 자기가 중심이라는 것만 강조하는 것으로 그쳐야 하는가? 홍대용은 그렇게생각지 않았다. 그는 인간과 '물'의 상대적 관점을 지양하면서 동시에 포괄하는 개념으로 '하늘'을 설정하고 있다. 그리하여 '하늘'의 관점에서본다면 인간과 '물'이 동등하다고 말하기에 이른다. 그렇다면 이 '하늘'이란 무엇인가? 생명의 궁극적 소이연, 모든 생명이 그로부터 말미암는 궁극적 원인을 말할 터이다. 오늘날의 말로 바꾸어 말한다면 그것은 곧 존재의 궁극적 근거로서의 '자연'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홍대용은 인간과 '물'이 그에 의해 성립하게 되는 궁극적 존재근거로서의 '자연'이라는 개념을 상정함으로써 인간의 자기중심주의를 허물고 인간과 '물' 의 존재론적 동등성을 이론적으로 정초(定礎)하는 한편, 인간과 '물'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 지평을 열 수 있었다. 이것이 저 유명한 홍대용의 '인물균'(人物均, 인간과 '물'은 동등하다) 사상이다. 홍대용은 이 '인물균' 사상에 의해 인간을 인간중심주의로부터 해방시키면서 인간과 '물', 인간과 자연, 나아가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전혀 새로운 사유를 모색해 가게 된다.
홍대용의 '인물균' 사상을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적용할 경우 그것은'나'와 '남'의 존재론적 동등성에 대한 주장으로 된다. 그리하여 '나'의 자기중심성과 '남'(그것은 또다른 '나'이다)의 자기중심성을 동시에 부정하면서, '나'와 '남'의 공존과 공생을 승인하는 사상으로 된다. 홍대용은 주자학만이 절대적 진리체계로 간주되던 18세기 중 ·후반을 살면서도 여느유학자와는 달리 주자학에 비판적 태도를 취하면서 주자학 이외의 사유체계들, 이를테면 양명학이라든가 불교라든가 노장사상(老莊思想)이라든가 묵가(墨家)라든가 서학(西學) 등을 적극적으로 긍정하면서 이들 사상역시 '징심구세'(澄心救世, 사람의 마음을 맑게 하여 세상을 구한다는 뜻)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처럼 홍대용은 당시 이단으로 간추되던 사상들을 당대의 여느 학자들과는 다른 태도로 대하고있는바, 이는 '인물균' 사상을 사회적 차원에서 적용한 결과라 이를 만하다.
홍대용은 '인물균'이라는 생태주의적 사상을 나와 남의 관계라는 사회적 차원으로만 확대시킨 것은 아니다. 거기서 훨씬더 나아가 종족과 종족, 민족과 민족의 관계에 대한 성찰로까지 자신의 사유 지평을 확대시켰다. 다시 말해 '인물균'을 일국적 단위에서만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계적 규로에서 확인하고 있다. 홍대용은 먼저 전통적인 화이론(華夷論, 중국이 문명의 중심으로서 우등하며 중국 주변의 민족은 변방이며 열등하다는 이론)의 해체를 꾀하고 있다. 중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중국이 중심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의 입장에서 본다면 또한 자기 나라가 중심이 되는바, 따라서 기실 중심은 없다는 것이 홍대용의 논리다. 중심이 없다는 말은 딱히 주변이 없다는 말도 되며, 또한 모두가 중심이라는 말도 될 수 있다. 홍대용은 이로써 중심과 주변의 이분법, 중국 고대에 완성되어 수천년 동안 동아시아를 규율하면서 중국 중심의 질서를 재생산해온 저 견고하고도 의심받지 않던 이데올로기를 일거에 깨뜨려버린 셈이다. 하지만 유의해야 할 점은, 홍대용이 중국중심주의를 부정했지만 그렇다고 자국중심주의를 주장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홍대용이 이론적으로 해명하고자 한 것은 어떤 종류의 자기중심주의도 정당한 것일 수 없다는 것, 그것은 편협한 것이며 인식의 자기국한성에서 초래된 것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이 점에서 본다면 홍대용은 중화주의의 부정만이 아니라 당시 조선에서 통용되고 있던 또다른 자기중심주의인 소중화주의(청나라는 오랑캐의 나라이니 조선만이 중화를 계승한 유일한문명의 나라라는 주장으로서, 중화주의의 변형이랄 수 있다)의 극복도 동시에 꾀하고 있는 셈이다.
홍대용은, 지구는 둥근바 중국도 서양도 모두 세계의 중심은 아니며, 세계의 각 민족이나 국가는 일종의 수평적 관계망을 이루고 있는 대등한 존재들이라 인식하였다. 주체와 타자라는 말로 바꾸어 말한다면, 홍대용은 근대 서유럽 철학처럼 주체와 타자를 대립적으로 마주세우지 않고, 주체와 타자를 수평적 관계 속에 병치시킨 게 된다. 이는 주체를 중심화, 절대화함으로써 타자를 배제하고 억압해간 서구의 근대철학과는 달리, 타자를 또다른 주체로 승인하고 존중한 의의를 갖는다. 서유럽 근대철학의 이런 사유구조가 서유럽의 내셔널리즘, 나아가 그 식민주의 내지 제국주의와 연결된다면, 주체와 타자를 수평적 관계망 속에 병치시킨 홍대용의 철학에서는 주체는 주체대로 정당하게 인식하면서도 타자 역시 존중하면서 정당하게 인식하는 길이 열린다. 이 점에서, '주체철학'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주체'를 강조한 서유럽의 근대철학이 타자에 대한 억압과 배제, 타자에 대한 지배와 폭력을 뒷받침한 사상이라는 혐의를 벗기 어려운 데 반해, '인물균'이라는 생태주의적 존재론에 기반하고 있는 홍대용의 철학은 침략이나 지배가 아닌 상생과 공존을 적극적으로 모색한 사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홍대용의 생태주의적 사상이 평화주의 사상으로서의 면모를 약여하게 드러내는 곳이 바로 이 지점이다. 즉, 홍대용은 한 국가와 다른 국가, 하나의 민족과 다른 민족은 자기중심성을 벗어나 상대방을 자기와 대등한 존재로 인정함으로써 서로 공존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던바, 이러한 사유는 평화의 실현을 궁극적 가치로 삼은 것으로서, 평화주의적 국제관계, 평화주의적 국제정치학의 이념적 기초를 마련한 것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홍대용의 사상에서 생태주의와 평화주의의 내적 관련은 비단국제정치학의 영역에서만 확인되는 것은 아니며, 인간과 '물'의 관계라든가 인간과 인간의 관계, 한 사상과 여타 사상의 관계에서도 두루 확인된다. 즉, 홍대용의 '인물균' 사상이 보여주는 인간과 '물'의 공존이라든가'물'에 대한 존중이라는 생태주의적 지향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폭력적 ·지배적 성향을 완화하면서 인간에게 보다 겸손하고 평화로운 심성을 가져다 준다는 점에서, 평화주의와 연결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홍대용이 인류사를 자기대로 회상하는 자리에서, 인간과 '물'이 조화롭게 공존하던 시절에는 인류의 삶이 평화로웠지만, 인간이 '물'을 약탈하고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가 발생하게 되었고 문명의 어두운 그늘이 드리우기 시작했다고 본 것은 우리의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한다. 이처럼 인간과 '물'의 관계에서뿐 아니라, 사회적 관계에 있어서도 홍대용은 타자의 승인, 다른 생각과 다른 사상의 승인에로 나아갔다. 자기만이 옳다거나, 자기가 중심이고 절대적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남도 옳을 수 있고, 남의 생각과 사상에도 취할 점이 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긍정하는 쪽으로 나아간 것이다. 우리가 '평화주의'라는 개념을 좀더 확장해 사용한다면, 이런 태도 역시 평화주의 속에 포함시킬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평화는 자기중심성을 벗어나 타자를 인정하는 데서 비로소 성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인물균'에서 출발한 홍대용의 생태주의는 관용과 포용의 평화주의로 귀결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요컨대 생태주의는 평화주의를 낳고 있고, 평화주의는 생태주의에로귀환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유의해야 할 점은 홍대용의 생태주의와 평화주의가 시사하고 있듯, 양자는 모두 현실에 대한 철저한 비판과 성찰, 그리고 몹시 역설적이지만, 현실에 대한 예리한 긴장감 위에서만 구축되고 모색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3
홍대용과 함께 주목되는 또 한사람은 최한기(1803-1877)다. 최한기는'기학'(氣學)이라는 자신만의 독특한 학문체계를 수립하였다.3 기학은 그속에 자연과학과 인문학, 사회과학을 아우르고 있다. 이 점에서 기학은 그 스케일이 굉장히 클 뿐 아니라, 그 담고 있는 문제의식 또한 대단히 넓다. 최한기는 자신이 수립한 이 기학을 통해 중국 고대 경전의 각주(脚註)로서의 성격을 갖는 조선의 전통적 학문을 전면 부정하면서 학문의 과제, 방법, 목표를 새롭게 제시하였다. 최한기 기학의 최저부(最低部), 다시 말해 최한기 기학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것은 기(氣)라는 개념이다. '기'는 최한기가 전개한 인식론과 존재론의 궁극적 근거다. 최한기는 이 '기'라는 개념을 근거로 근대 세계의 문턱에서 자기대로 창의적인 상상력을 펼치며 자신이 구상한 근대적 세계상(世界像)의 큰 밑그림을 그려보였던 것이다. 이 큰 그림에는 자국과 다른 나라의 관계, 자국과 세계의 관계, 정치의 요체, 세계시민에게 요청되는(혹은 주어져야 할) 보편적 윤리덕목 등에 대한 진지한 구상이 담겨 있다.
최한기는 천지우주의 '기'가 크게 세 범주에서 작용하는바, 하나는 일신운화(一身運化)요, 둘은 통민운화(統民運化)며, 셋은 천지운화(天地運化)라고 했다. 일신운화는 개인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기의 운행을 말하며, 통민운화는 사회를 이루는 인민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기의 운행을 말하고, 천지운화는 개인과 인민과 천지만물을 망라하는 범위에서 이루어지는 기의 운행을 말한다. 이 세 운화는 서로 밀접히 관련되는바, 일신운화는 통민운화를 '승순'(承順, 받들어 따른다는 뜻)해야 하고, 통민운화는 천지운화를 승순해야 한다고 했다. 천지운화란 쉽게 말해 '자연의 흐름'을 뜻한다. 그러므로 세 운화의 승순에 대한 최한기의 언명은, 개인과 사회는 자연의 흐름을 거역해서는 안되며 그에 자신을 맞춰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으로 고쳐 말할 수 있다. 말하자면 자연의 섭리, 자연의 규율을 인간 행위와 가치판단의 최종심급(最終審級)으로 설정하고 있는 셈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최한기가 구축한 기학의 생태주의적 면모가 뚜렷이 드러난다.
최한기는 조선을 지배해온 교학(敎學)인 주자학에 반대했거니와, 일신운화에 있어 인간의 자연스런 욕망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그리하여 주자학에서 그토록 금지하고 억압했던 이욕(利慾, 이익과 욕망)을 긍정하면서 그것이 개인의 삶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다만 최한기는 지나친 이욕의 추구는 필경 사람을 망가뜨린다고 보아 개인의 분한(分限, 분수)에 맞게 이욕이 절제되어 추구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봤다. 이 경우 분한을 아는 것 및 절제는 천지운화, 즉 자연의 규율에 따르는 것이요, 그 반대는 자연의 규율을 이탈하는 것이 된다. 이처럼 최한기는 자연 '속'에서, 그리고 자연 '위'에서 이루어지는 개인의 삶이야말로 조화롭고 바람직한 것이며, 진정 인간적인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한편 통민운화와 관련하여 최한기는, 자연의 큰 섭리를 따르는 속에서 사회생활이 영위되고 국가가 경영되어야 하는바, 일부 특권층의 이익을 위하거나 억압적 방식으로 정치가 행해져서는 안되고, 인민의 뜻을 잘 받들어 그 살림살이를 보살피는 것이 정치의 요체라고 보았다. 최한기는 비록 현상적으로 확인되는 인민의 뜻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니 위정자가 이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는 단서를 붙이고 있긴 하나 그럼에도 기본적으로 민의가 곧 자연의 뜻인바, 그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된다고 보았다. 최한기의 이런 정치사상은, 비록 아직 초보적인 수준이기는 하나, 근대 민주주의 사상에 접근해 가는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주목되는 것은 이런 민주주의적 정치사상이 생태주의의 근간 위에서 구상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점은 우리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한다. 향후 한국의 민주주의를 더 높는 방향으로 발전시키고 더 내실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민주주의를 어떻게 생태주의 쪽으로 견인할 것인가, 민주주의와 생태주의를 어떻게 이념적으로 결합시킬 것인가, 또한 어떻게 생태주의를 민주주의의 생활적 기반이자 핵심적 실천 과정으로 이끌 것인가 하는 물음들이 이로부터 도출될 수 있다.
최한기는 '기'의 본질을 '화'(和)라고 보았다. 바로 여기서 최한기 기학의 평화주의적 지향이 유래한다. 최한기는 개인의 몸에서건, 일국의 정치에서건, '화'를 중시하였다. 뿐만 아니라, '화'는 지구와 세계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올바른 상태이자 가치라는 확고한 인식을 최한기는 보여주고 있다. '화'에는 '평화'라는 개념이 내포되어 있다. 다만 최한기는 평화(=화)를 어디까지나 천지운화, 즉 자연의 섭리에 의해 담보되는 것으로 사유했다는 점이 독특하다. 이 독특성은 최한기의 사유에서 생태주의와 평화주의가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의 관계를 이루고 있음을 말해준다.
최한기는 평화가 일국의 사회적 ·정치적 생활에서만 절실히 요청되는 것이 아니라, 국제관계를 비롯해 세계적 ·전지구적 규모에서도 절실하게 요청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일국의 평화란 단지 전쟁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데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인민이 그 최소한의 삶의 욕구를 충족하면서 사회적으로 화락한 삶을 영위해갈 수 있고, 공동체가 억압과 폭력을 밀어내고 조화와 균형을 일궈내는 상태를 가리킬 터이다. 최한기는 이런 평화를 이룩하는 데 정치가 관건적인 중요성을 갖는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최한기는 국제정치에 있어서도 평화의 이념에 의해 국가간의 관계 및 교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확신하였다. 지구상의 모든 국가는 비록 그 체제와 제도는 다를지라도 인민의 화락한 삶을 위해 애쓰는것을 정치의 요체로 삼는다는 점에서는 동일한바, 이 점에서 세계 각국은 평화롭게 교류하며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비록이상주의적 면모가 강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최한기의 이런 세계구상이 인류의 궁극적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이처럼 생태주의 위에 구축된 기학의 최종적 귀결이 평화주의에 있는만큼 최한기는 세계시민의 보편적인 윤리적 요청으로서 마침내 '조민유화'(兆民有和, 세계시민에게는 평화가 있어야 한다는 뜻)라는 강령을 내세우게 된다. '조민유화'. 이 명제는 기학이, 그리고 한국 전근대시기의 전통적 학문이 도달한 최고의 인식으로서, 단지 한국에서만 통용될 성질의 것이 아니고, 동아시아, 나아가 전세계가 귀를 기울여야 할 준칙이 아닌가 생각된다.
4
사람들은 흔히 세계평화를 말할 때 칸트의 영구평화론에서 그 이념적 근거를 끌어온다. 그러나 칸트만이 세계평화를 말한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한국인 스스로가 잘 모르고 있는 듯하지만, 홍대용과 최한기는 생태주의적 사상의 기초 위에서 세계평화를 위한 원대하고도 근본적인 이념적 정초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이런 모색은 동시기의 일본과 중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중국은 대국이라는 의식에 사로잡힌 나머지, 타자를 정당하게 배려하는 쪽으로 자기/타자의 관계에 대한 인식론적 전환을 이룩할 수 없었다. 일본은 일본대로 지독한 자기중심주의에 빠져 결국 광적인 침략주의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으며 아시아 민중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재난을 초래했다.
홍대용과 최한기는 서유럽의 근대철학과 달리 주체/타자를 이분법으로 대립시키지 않고 둘을 수평적 관계망 속의 상호주체들로서 파악함으로써, 서유럽 근대철학처럼 중심과 주변, 문명과 야만, 유럽과 비유럽을 엄격히 구분하고 차등지으면서, 배제와 차별, 지배와 침략을 뒷받침하거나 방조하는 쪽으로 나아간 것이 아니라, 타자(=다른 주체)에 대한 성실한 이해와 포용으로 나아갔다. 홍대용과 최한기 사상에 내포된 평화주의의 핵심적 기저원리(基底原理)는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평화주의의 이 핵심적 원리가 궁극적으로 생태주의에 의해 담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홍대용과 최한기가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 주체는 부드러운 주체, 겸손한 주체이다. 이 주체 개념은 비단 국가 사이, 민족 사이, 인종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한 개인과 다른 개인의 사이에도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평화'에 기여할 이런 통찰의 근저에 생태주의적 마음이 자리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최한기의 이성 개념은 서구 근대철학이 구성해낸 이성 개념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서구 근대철학에서 이성은 자연 위에 우뚝 서있는 실체로서 자연을 지배하고 관리하지만, 최한기 사상에서 이성은 끊임없이 자연에 자기를 맞추어가면서 자연에 따라야 하는 것으로 규정된다. 이처럼 최한기의 사상에서는 인간의 이성조차도 자연의 일부분이며, 자연의 소리를 경청하면서 그에 승순(承順)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말하자면 최한기는 이성을 철저히 생태주의 위에 정초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이 이성은 이분법을 모르고, 자연와의 대립을 모르며, 타자에 대한 억압과 배제를 알지 못한다. 그것은 그 본질에 있어 자연적임과 동시에 평화적이며, 실체적이라기보다 관계적이다.
홍대용과 최한기의 이런 사상은 반전 평화주의, 침략과 식민주의에 대한 반대, 온갖 종류의 폭력에 대한 반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소중하다. 하지만 사회적 수준에서 볼 때 평화와 생태주의적 삶은 소망한다고 해서 거저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현실에 대한 저항과 비판을 통해서만 겨우 가능하다. 그러므로 폭력에는 단호히 반대하면서도 공동선을 향한, 그리고 평화를 위한 저항의 길은 적극적으로 열어두지 않으면 안된다. 이 경우 저항은 맹목적인 것이 아니라 평화주의와 생태주의에 의해 기율되고 견인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지금까지 말한 이런 이유에서 우리는 홍대용과 최한기의 생태주의 및 평화주의 사상을 21세기의 현시점에 새롭게 주목하게 된다. 그것은 비단21세기의 한국인이 나아가야 할 길을 비추는 사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21세기의 동아시아, 나아가 21세기의 지구촌 전체에 도움이 되는 사상이 아닌가 생각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