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녹색평론 》 제77호(2004년 7-8월호)에 올려져 있는 글 <세계화와 이주노동자>를 직지지기 김민수가 직접 입력해서 올린 것 입니다. 이 글은 지적 재산권에서 자유로운 문서는 아니지만, 좋은 내용이 멀리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원저작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싣습니다. – 2010년 5월 9일 CEDT, 직지지기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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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와 이주노동자
강수돌1
이주노동자 - 현대판 노예
민주노총 평등노조 이주노동자 지부장으로서 명동성당 농성투쟁단 공동대표를 맡고 있던 네팔 출신 샤말 타파(32) 씨가 출입국사무소 공무원들에게 강제연행되어, 지난 4월 1일2 강제출국 당했다. 내전 상황인 네팔로 강제출국될 경우, 신변안전이 우려된다며 노동‧인권단체들이 그의 강제추방을 극력 반대했지만, 한국정부는 외교 관례에도 어긋하는 반도덕적인 조치를 기습적으로 단행한 것이다.
샤말 타파 씨가 한국땅을 처음 밟은 것은 10년 전인 1994년 5월. “네팔에서는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를 구할 수 없어요. 그러다 몇년만 고생하면 기술도 배우고 돈도 벌 수 있다는 신문광고를 봤지요.” 네팔 트리뷰완대학 경제학과 2학년을 마친 그는 가족을 위해 산업연수생으로 한국행에 올랐던 것이다.
“(처음에 연수생으로) 플라스틱 사출공장에서 일했는데 주간 11시간, 야간 13시간 일해도 월급은 40만원밖에 안됐어요3. 게다가 실제로 손에 쥐는 돈은 25만원4뿐이었지요.” 나머지는 도망치지 않으면 귀국할 때 돌려준다는 ‘강제적립금’이었다. “몇달 후 집안에 급한 일이 생겨서 앞으로는 적립 안했으면 좋겠다고 사정했지만 거부당했습니다. 우리는 노동자가 아니라 노예였어요.” 차라리 ‘불법체류자’가 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 그는 연수업체를 나와 석재공장, 양계장을 전전하며 불법(미등록) 노동자로 일했다.
돈 적고 일 많은 해외 한국기업
중국인들이 자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에 대해 낮은점수를 줬다고 한다. 중국정부 최고의 싱크탱그(두뇌집단)인 국무원 발전연구센터가 여론조사 기관인 링뎬(영점零點) 리서치그룹에 맡겨 외국기업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다(중국 경제주간기 <21세기 경제보다>에 최근 보도). 즉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우한 등 4개 대도시의 시민과 외국기업 직원들로 구성된 응답자들은 한국기업에 3.21점을 주어 조사대상 6개 국가 중 5위를 기록했다.
대표적인 한국기업의 한 중국인 직원은 “한국인 상사들은 일이 없는데도 일거리를 안겨다주는 고약한 습성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 중소기업을 최근에 그만둔 한 직원은 “중소기업인만큼 한국인 사장이 생일 때 식사대접도 해주고 평소에 사장 댁에 불러 식사를 나눌 정도로 분위기는 좋았다”고 말했다. 이 직원은 그러나 언어문제로 의사소통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더욱이 인재를 찾으려 하면서도 돈을 제대로 쓰려 들지 않으니 문제라고 지적했다. 위안웨(원악袁岳) 링뎬 리서치그룹 회장은 “한국기업은 호감도, 친화도, 업무 등 여러가지 부분의 조사에서 거의 최하점수가 나왔다”며 “궁국인들은 한국기업에서 일하기를 가장 꺼리는 것으로 나타내났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제와 생존경쟁
위에서 간단히 살핀 두가지 이야기는 1990년대 이후 한국경제의 실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일지리 때문에 ‘해외취업’을 나간 반면, 1980년대 말 이후 한편으로는 해외에서 ‘이주노동자’가 대거 들어왔고 다른 편으로는 중국이나 동남아 등지로 ‘해외투자’가 증가했다.
그것은 그간의 한국 가본주의가 가진 구조적 모순이 ‘노동자 의식’과 ‘노동운동’의 증대로 더이상 봉합되기 어려웠기 때문에 나온 고육지책이다. 한 마디로, 노동인권과 자연환경의 무분별한 침해를 기초로 건설되어진 고속성장 및 세계시장 진출 패러다임은 그 기초에서는 물론 그 전개과정에서 사회적 정당성과 효율성이 더이상 보장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중대한 시만사회운동 및 노동운동이라는 도전에 직면하여, 내적으로는 이주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등을 십분 활용하고, 외적으로는 가난한 나라의 노동력과 자원, 해외시장을 십분 활용하여 또다시 새로운 형태로 세계시장에서 물질적 부를 축적하려는 시도는 그렇게 성종적일 것 같지 않다. 물론 10대 재벌 등 이른바 세계적인 초우량기업은 어느 정도 승승장구하지만 그것조차 세련된 경영능력이나 신제품, 신기술 등의 혁신에 기초하기보다는 수많은 중소영세기업과 그 노동자들, 그리고 자사 노동력의 극대 활용 등이 필수적 전제조건이다.
생각건대 지구상의 200개 나라가 고루 잘사는 곳이 되려면 단일한 세계시장을 놓고 ‘생존경쟁’을 벌이는 지금의 패더라임을 계속해서는 안된다. 생존경쟁이란 이미 약자나 굼뜬 자, 가난한 자, 못 배운 자가 패배하게 되어 있는 게임이다. 그런데 모든 사회는 이 생존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20%의 강자만 살게 되고 80%의 약자는 못살게 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런데도 이런 냉혹한 현실에 괴로워하며 저항하기보다는, 당연하게 주어진 것으로 보고 “나도 노력하면 강자가 될 수 있다.”고 희망을 가지니, 결국 스스로 속기 쉽다.
차라리 ‘경제성장’을 포기해야
2001년 6월 어느날이었다. 연수업체 협의회 대표자들인 24명의 중소기업 사장들이 분개한 얼굴로 내 연구실에 들이닥쳤다. 분위기가 대단히 위협적이었고 이성적 대화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동료교수가 말리려던 와중에 심한 언쟁이 붙기도 했다.
사건의 발단은 그 직전에 방연된 KBS의 <취재파일 4321>이라는 프로그램이었다. 그 중 첫 내용이 한국내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노동 및 생활 실태에 관한 르포였다. 특히 불법취업자로 추정되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폭행이나 산업재해 등 비인간적 모습이 보도되었고 “왜 이런 불법취업자가 양산되는가”에 대한 물음이 제기되었다. 그 속에서 나의 인터뷰 내용도 나왔다. 그런데 특히 내 발언내용이 연수생 사용주들에게는 “현실을 심각히 왜곡하고 있고” 사용주들 모두가 “외국인을 부르조아적으로 착취하는 나쁜 사람”이라는 인상을 온 국민에서 던져주었기 때문에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다(연구생 사장단 중 K씨). 다음은 방송내용이다.
— (기자) 불법취업이 전체의 60% 이상이 되는 이유, 또 연수생으로 왔다가 불법체류자로 빠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 답변: 첫째로, 인력난으로 한 30만명이 필요한데도 5만명밖에 수입을 안한다는 거죠. 그래서 합법적으로 취업할 수 있는 기회가 너무 좁아요. 두번째로 연구생 제도가 차라리 불법취업하는 것보다 임금도 적게 받고, 행동에 제약도 있어 기숙사에 처박힌 감옥생활 비슷한걸 해야 하고, 그 다음에 산재를 당한다든지 폭언‧폭행을 당한다든지 인권문제도 있고 이런 측면에서 사업장을 이탈할 수밖에 없는 내재적 요인이 있습니다. 그래서 연구생으로 있다가 마지막 무렵이 되면 도망가는 확률이 50-60% 넘죠.
이 발언에 그들에 따르면 “현실을 왜곡하는 것”이라 한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들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사람 중에 이 설명이 현실의 왜곡이라 보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러나 사용주들은 ‘걔네(연구생)’들에게 정당한 임금과 인간다운 대접을 했는데 마치 자기들도 나쁜 사람인 양 취급받았다고 분개하며 주장했다. 그러나 과연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위해 분개하는지 잘 알고나 있었을까.
물론 ‘모든’ 기업가들이 ‘나쁜’ 사람들은 아니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말한 것도 아니다. 나는 (이주)노동자의 인권문제나 노동권문제는 전체 노동자 중 그 비중이 대단히 커야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단 한건이라도 생기게 되면 그것이 어떤 원인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모두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사안이라 강조했다. 그것은 우리 자신도 해외로 나가면 외국인이요 이주노동자가 되기 때문이다. 즉, 이주노동자 문제는 ‘모든’인간의 문제인 것이다.
나는 90년대 초 독일 기업가들이 언론에 나와 ‘외국인’ 노동자들을 적극 옹호하며 칭찬한 사실을 대조적으로 기억한다. 1990년에 자본주의적으로 통일된 독일이 동독이나 동유럽에서 넘어온 대량의 실업자로 구직난, 주택난 등 몸살을 앓자 신(新)나치 세력들이 발흉했다. 그 구호는 한마디로 “외국인 나가라!”였다. 그러나 독일 기업가들은 “외국인 노동자는 독일경제의 밑바닥층을 형성하며 튼튼한 기초가 되고 있다. 만약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부홍도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얼마나 ‘솔직한’ 발언인가. 자본가로서 노동력이 필요했다면 그들을 소중히 아끼고 잘 보살피는 것이 더 자연스런 것 아닌가.
한편, 우리 기업과 경제를 위해 어느 정도 차별은 눈감아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리도 경계해야 한다. 바로 이런 논리가 일제 식민지 지배의 배경이었고 오늘날 미국 등 모든 부유한 나라에서 인종주의 또는 사회적 차별의 논리적 근거가 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걔네들이 최저임금만 받아도 자기 나라에서는 많은 임금이에요. 그리고 외국인도 한국인처럼 똑같이 대접해주라면 나는 무얼 먹고 사나요? 외국 유학간 아이들 비싼 등록금도 꼬박꼬박 보내야 하고, 기사 월급도 줘야 하고...정낙 나 자신은 별로 쓰지 못하면서 허리띠를 졸라매는데, 당신 같은 사람이 한가하게 인권이나 평등 타령이나 하고 있으니 이거 원, 그러니 한국경제가 엉망이 되는 거 아니예욧!” (연수생 사장단 중 L씨)
곰곰히 생각컨데, 나는 인간의 존엄성과 생태계를 파괴하는것을 토대로 해서 이뤄지는 경제성장이라면 차라리 과감히 ‘포기’하는 것이 낫다고 본다. 백번 양보해서 지금까지는 우리가 속았다 치더라도, 그래서 어쩔수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앞으로는 더이상 안된다. 그런 의미에서 진짜베기 ‘경제위기’나 ‘세계공황’이 어서 와야 하고 그래서 지금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끝장나야 비로서 새 패러다임이 시작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완전히 끝나기 전에 새로운 패러다임의 싹을 틔우고 조심스레 키워내야 한다. 그래야 죽어가는 패러다임이 완전히 끝나는 순간 새로운 싹을 제대로 키울 수 있다. 또 새싹을 제대로 키우다 보면 낡은 패러다임은 자연스레 소멸한다.
한쪽은 인력난, 다른 쪽은 산업예비군
현재 한국에는 이른바 ‘3D 업종’(더럽고 워험하고 힘든 일을 하는 업종)에서 약 50만의 노동력이 부족하다. 이 일자리를 40만 이주노동자들이 메우고 있다. 이들은 3D 이외에, 일 자체가 지루하고 비전이 없으며 저임금으로 일하기에 ‘6D 노동자’라 불리기도 한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이런 일자리에 가서 충성을 바쳐 일하기를 싫어한다. 자신이 원하는 일자리는 거의 없고 오라는 일자리는 가기가 싫다. 전체 실업률 중에서 청년실업률은 평균 수준을 훨씬 넘는다. 요즘은 이른바 일류대 출신도 취업난을 겪을 지경이다. 그렇다고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기는 싫다. 그래서 중소영세 기업자들은 ‘인력난’을 호소한다. 여기서 말하는 ‘인력’이란 앞서 말한 ‘6D’ 조건 속에서도 말 잘 듣고 일 잘하는 노동력을 말한다.
이런 일자리를 기꺼이 찾아나선 이주노동자들은 관연 어떤 사람인가. 사실은 그들도 우리와 꼭 마찬가지로 인간답게 살고 싶어한다.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느낌과 감정이 있으며 의견과 주장이 있다. 그들도 꿈이 있고 인간 본연의 존엄성을 추구한다. 그들도 희로애락을 알며 분노하고 저항할 줄도 안다. 그런데도 언뜻 보면 기꺼이 악조건을 감수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 고향에서의 삶의 조건과 한국에서의 삶의 조건, 구체적으로는 임금 수준이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한국 임금이 저임금이지만 자국의 임금은 더 저임금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그들은 몇년만 고생하면 목돈을 모아 좀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믿고 죽기 아니면 살기로 (합법이든 불법이든) 이주노동자가 된다.
그러나 그 꿈은 한국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부서진다. 임금도 임금이지만, 산업재해를 당하거나, 아니면 아예 인간 취급도 받지 못하거나 열등인간 취급을 받을 때 그들은 배신감을 느낀다. 마침내 그들도 일부는 앞서 말한 샤말 타파 씨처럼 ‘노동자’임을 선언하고 스스로 조건을 바꾸기 위해 운동전선에 나섰다.
한편, <중앙일보>의 한 기자는 2004년 5월 말, 재미 교포들의 새로운 발상을 소개했다. 한국의 넘쳐나는 노동력을 여전히 ‘기회의 땅’인 미국의 여러 지역으로 내보내자는 것이다. 한국은 좁고 인구가 많은 대신, 미국은 넓고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으니 해볼 만다하는 것이다. 예컨데 미국 중부의 인디애나주는 크기는 남한만한데 인구는 400만명에 불과하다. 우리의 10분의 1이다. 중서부의 콜로라도주는 한반도만한 크기에 인구는 700만명이다. 특히 콜로라도의 주도(州都)인 덴버 광역시는 주민이 200만명인데 그 중 교포는 3만명 정도다. 여기서 지역언론사를 운영하고 있는 이는 “한 천만명 정도가 한국에서 쏟아져 들어와도 흔적도 없이 흡수할 수 있다. 그만큼 미국은 크고 수용능력이 있다”고 한다. “청년실업, 사오정실업, 노년인구 문제들을 미국 이민으로 풀겠다는 진취적인 이민정책을 한국정부가 취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주변의 교포들과 함께 “덴버로 이민 오세요!”라는 광고를 국내에 낼 작정이라 한다. 물론 미국은 특수 기술이나 많은 자금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관대하게 문을 연다. 그러나 하루하루 먹고살기 힘든 노동자들이나 졸업 뒤 취업문을 아무리 두드려도 소용없는 청년실업자들에게 미국의 문은 낙타 앞의 바늘 구멍이나 마찬가지다.
자율과 연대의 새로운 삶
앞서 말했듯이 각 나라마다 ‘발전’의 격차가 있고 이것이 사람들에게 ‘따라잡기’ 경쟁을 부채질하는 한 그 어떤 통제와 구속이 있더라도 사람을은 국경을 넘어 이동한다. 나아가 그러한 ‘발전’이란 것이 주어진 자연환경과 사회관계를 파괴하면서 단순히 자신과 가족만을 위해 물질적 부를 축적하는 것으로 정의될 때, 그러한 국경 이동은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더욱 늘어난다. 국제이주기구에 따르면 21세기 들어 세계 인구의 약 3%인 2억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국제 이주를 하여 산다. 35명에 1명꼴인 셈이다.
그렇다면 과연 지구의 60억 인구 모두가 미국 대도시 시민 수준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 그것은 물적 차원 측면에서도 불가능하지만, 자본주의 경제에 사활을 걸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정치적 측면에서도 불가하다. 자본이 그 지배력을 발휘하는 한 평등한 생활은 위험하게 인식된다. 격차와 자별이 존재해야 ‘동기 부여’가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길들여져 있기도 하다. 또 그렇게 경쟁과 차별이 존재해야 자본은 우와 열을 모두 효과적으로 통치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국경선, 국적, 나라 등 이 모든 것은 사람(지배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누가 주인이고 누가 손님인가. 우리 모두가 주인인 동시에 손님이 아닌가.
만일 우리가 이런것을 제대로 인식하고 그에 기반하여 삶을 철저히 재구성한다면 자본은 이미 우리 삶 속에서부터 극복될 수 있다. 마침내 자본은 구조적으로도 극복될 것이다. 개인을 넘어 사회로, 사회를 넘어 지역으로, 지역을 넘어 세계로 이러한 근본적 구조변화가 일어난다면 우리는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진정 자율적이고 연대적인 새 삶을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의 외침에 귀 기울여야
2004년 4월 29일, 방글라데시에서 온 이주노동자 고(故) 카이사르 후세인(32세) 씨의 뒤늦은 장례식이 있었다. 후세인 씨는 대구 성서공단에서 일하던 중 4월 9일, 과도한 업무로 인해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숨졌지만, 체불임금과 장례비, 퇴직금 등의 문제로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20여 일을 지체한 상태였다. 평소 후세인과 가장 친했던 한 이주노동자는 추모사를 통해 “외국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한국에 오지만, 그들은 죽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다시 고향으로 행복하게 돌어가기 위해서 오는 것”이라며 “아직도 함께 자고 함께 일했던 동료가 차가운 몸으로 누워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고 슬퍼했다. 그러나 대구 성서공단 지역 이외의 그 어느 곳에서도 후세인의 과로사에 대해 깊은 슬픔을 느끼는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부분은 또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 묵묵히 일을 할 뿐이다. 다음 차례가 누구일지도 모른 채.
미국을 오랫동안 연구하는 한 학자가 이렇게 말한다. “미국에서 흑인들이 비인간적으로 차별받으며 살 때 그 어떤 백인도 관심을 갖지 않았더라면 흑인들은 오늘날처럼 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러한 백인의 관심도 사실은 흑인들이 스스로 뭉쳐서 싸우지 않았더라면 전혀 얻기 어려웠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기본은 스스로 일어나는 것이며, 그런 바탕 위에 주위의 관심과 연대가 합쳐져야만 새로운 변화가 가능합니다.”
현재 한국에서는 종교기관을 포함한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이주노종자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갖고 일을 한다. 나아가 평등노조 산하에 이주노동자 지부가 생겨 자주적인 노동조합 활동도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은 멀다.
민주노총과 이주노동자 노조가 내접원을 그리기보다는 외접원을 그리며 만나는 정도에 불과하다. 또한 이주노동자 스스로도 일정 기간 동안 많은 돈을 모아 고향에 가서 작은 사업이라도 하고자 하는 열망이 강하다. 종교단체들은 선교 목적으로 접근하는 경우도 많다.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일을 하는 시민사회단체들도 산더미처럼 몰리는 일상적 노동상담에 돈, 시간, 에너지가 소진되고 운동의 전망을 발전시킬 여유를 찾기 어렵다.
그래서 당장 급한 일은 1) 이주노동자 운동의 전망을 세우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동일노동 농일대우”의 구호를 넘어 어디를 가나 인간다운 삶의 조건을 실현하는 것, 내국인 외국인 가리지 말고, 불법과 합법을 가리지 말고, 남성과 여성을 가리지 말고 인간다운 삶의 조건을 위해 함께 힘을 합치는 것이다. 2) 한국에서 곧 시행될 고용허가제의 가능성과 한계성에 대한 인식을 널리 공유하고, 사업장 이동의 자유와 노동3권5을 완전히 실현하도록 해야 한다. 3) 무리하게 강행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을 중지시키고 이주노동자 대표와 사용자 대표, 정부 책임자, 시민사회단체 대표 등으로 구성되는 ‘특별협의회’에서 미동록 노동자의 전면 합법화를 구체적으로 논의한다.
“일하라고 소리치는 사장을 뒤로 한 채 노동비자를 받고 당당하게 일하겠다고 공장 문을 박차고 나온 이주노동자, 형처럼 동생처럼 지내던 사장이 불법사람 고용해서 벌금 내느니 차라리 나가라고 했을 때 그 배신감에 농성에 들어온 이주노동자, 한국에 들어온 지 채 4년이 되지 않아 합법화 대상이 되었지만 본국으로 돌아갔다 오면 다시 일자리를 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형들의 말에 E-9비자도 포기하고 농성에 들어온 이주노동자...이곳 명동성당 들머리에는 각자 다른 삶의 이야기를 지니고 있지만 단 한가지 한국땅에서 노동자로,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단 하나의 희망을 쟁취하기 위해 이주노동자들이 텐트를 지키고 있다.”(변정필/서선영, 2004.6.9. 진보넷)
우리가 이 40만 이주노동자와도 더불어 살아가기 어렵다면 어떻게 60억 지구촌 식구들과 함께 갈 수 있겠는가.
하지만 방방곡곡 작은 시도들이 작은 공명을 일으키고 이것이 하나 둘 모여 큰 공명을 이루고 마침내 구조변화를 이눌 날도 올 것이다. 남녀, 국적, 이종, 국경 따위에 의한 온갖 차별과 경쟁이 사라지고 마을마다 인간냄새 풀풀 나는 새로운 사회, 그런 지구촌이 언젠가 가능하리라고 꿈꾸는 것은 과연 일장춘몽일까. 수많은 풀부리의 굳건한 움직임들과 그들 사이의 그물망들, 이것이 얼마나 활기차게 성장하느랴에 따라 60억 지구촌의 삶은 무척 달라질 것이다.
<<Jikji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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