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

이 글은 직지 자유 문서이다. http://html.jikji.org/leesang/ 에 있는 내용을 이곳으로 옮긴다. - 직지지기 김민수 2005.9.8 00:26 AM EDT.

지은이

이상

출전

본문

바른 대로 말이지 나는 약수보다도 약주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술 때문에 집을 망치고 해도 술 먹는 사람이면 후회하는 법이 없지만 병이 나으라고 약물을 먹었는데 낫지 않고 죽었다면 사람은 이 트집 저 트집 잡으려 듭니다. 우리 백부께서 몇 해 전에 뇌일혈로 작고하셨는데 평소에 퍽 건강하셔서 피를 어쨌든지 내 짐작으로 화인 한 되는 쏟았건만 일주일을 버티셨습니다. 마지막에 돈과 약을 물 쓰듯 해도 오히려 구할 길이 없는지라 백부께서 나더러 약수를 길어 오라는 것입니다. 그때 친구 한 사람이 악박골 바로 넘어서 살았는데 그저 밥 국 김치숭늉 모두가 약물로 뒤범벅이었건만 그의 가족들은 그리 튼튼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그 먼저 해에는 그의 막내 누이를 페환으로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것은 미신이구나 하고 병을 들고 악박골로 가서 한 병 얻어 가지고 오는 길에 그 친구 집에 들러서 내일은 우리 집에 초상이 날것 같으니 사퇴 시간에 좀 들러달라고 그래놓고 왔습니다.

백부께서는 혼란 된 의식 가운데서도 이 약물을 아마한 종발이나 잡수셨던가 봅니다.

그리고 이튿날 낮에 운명하셨습니다. 임종을 마치고 나는 뒷곁으로 가서 5 월 속에서 잉잉거리는 벌떼 파리 떼를 보고 있었습니다. 한물 진 작약 꽃이 파리하나 가만히 졌습니다

익키! 하고 나는 가만히 깜짝 놀랬습니다. 그래서 또 술이 시작입니다.

백부는 공연히 약물을 잡수시게 해서 그랬느니 마니 하고 자꾸 후회를 하시길래 나는 듣기 싫어서 자꾸 술을 먹었습니다.

"세분 손님 약주 잡수세욧."

소리에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그 목로 집 마당을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어우러져서 서성거리는 맛이란 굴비나 암치를 먹어가면서 약물을 퍼먹고 급기야 체하여 배탈이 나고 그만두는 프래그머티즘에 견줄 것이 아닙니다.

나는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어떤 여자 앞에서 몸을 비비꼬면서 '나는 당신 없이는 못 사는 몸이오.'하고 얼러보았더니 얼른 그 여자가 내 아내가 되어 버린 데는 실없이 깜짝 놀랬습니다. 얘-이건 참 땡이로구나 하고 삼 년이나 같이 살았는데 그 여자는 삼 년이나 같이 살아도 이 사람은 그저 세계에 제일 게으른 사람이라는 것 밖에는 모르고 그만둔 모양입니다.

게으르지 않으면 부지런히 술이나 먹으로 다니는 게 또 마음에 안 맞았다는 것입니다.

한번은 병이 나서 신애-로 앓으면서 나더러 약물을 더 오라길래 그것은 미신이라고 그랬더니 뾰루퉁하는 것입니다.

아내가 가버린 것은 내가 약물을 안 길어다 주었대서 그런 것 같은데 또 내가 '약주 '만 밤낮 먹으러 다니는 것이 보기 싫어서 그런 것도 같고 하여간 나는 지금 세상이 시들해져서 그날그날이 심심한데 술 따로 안주 따로 판다는 목로 조합 결의가 아주 마음에 안 들어서 못 견디겠습니다.

누가 술만 끊으면 내 위해 주마고 그러지만 세상에 약물 안 먹어도 사람이 살겠거니와 술 안 먹고는 못사는 사람이 많은 것을 모르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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