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녹색평론》제113호 2010년 7-8월호에 실린 글로서 <연두농장 이야기> 내용을 옮겨온 것 입니다. 아직 지적 재산권에서 자유로운 문서는 아니지만, 좋은 내용이 멀리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원저작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싣습니다. – 2010년 9월 25일 CE직지지기 김민수.

연두농장 이야기

“내일 분식집을 계약해요. 농장 일을 그만두려고요.”

그녀는 애초부터 농사는 하기 싫다고 했다. 다른 대안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한다고 했다. 시골에 내려가는 것도 싫다고 했었다. 도시가 좋다고 했다. 그러던 그녀가 식당을 한다고 한다.

“응, 그래? 자네는 식당을 하고 싶어 했으니까 자네에게는 잘된 일이네. 이번 금요일까지만 하게. 식당에 취직하는 것도 아니고 식당을 직접 운영하는 일인데, 하루라도 빨리 준비해야지.”

주간회의 시간, 뜬금없는 얘기가 나왔다. 갑작스럽게 그만둔다는 말에 ‘왜 그만두나냐’, ‘아쉽다’, 이런 말을 하지 않고,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단박에 ‘그렇게 하게’라고 한 내 태도에 다른 친구들은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인수인계를 해야 하잖아요?”

일반적으로 회사를 그만둘 때 인수인계 과정을 가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무, 행정 등 분업화되고 전문화된 일을 하는 경우에는 인수인계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함께 농사를 해온 경우에는 그런 과정이 필요하지 않다.

“인수인계라는 특별한 절차가 필요있나요? 지금 하고 있는 일든은 다 알고 있잖아요. 공동으로 해왔는데. 특별히 혼자만 알고 있는 것이라면 모를까.”

집단농장의 장점은 다 갈이 일을 나누어서 하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한명에게 일이 집중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데 집단공동체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자동화된 틀로2 생각한다. 일이란 익숙해지는 것이며 서로가 익혀가는 것인데, 의식은 여전히 분업화, 전문화, 기계화를 생각하고 있다.

떠나는 자, 남는 자

오늘도 한사람이 다른 길을 찾아 떠난다고 했다. 아마도 곧 또 한사람이 그럴 것이다. 아니 그러길 바ㄹ난다. 어차피 철학이 다르고 같이 맞추어ㄹ 갈 의사가 없는데 동거를 할 이유가 없다. 그도 별 뾰족한 수가 없어서 그래왔다는 것을 안다. 하루빨리 자신의 길을 찾아가길 원한다. 단순히 ‘경제적 자립’에만 목적을두었다면 그들이 원하는 대로 자활의 기회를 보다 적극적으로 만들어주었을 것이다. 적어도 예전에는 그랬다.

그러마 만 2년 전, 사람들을 모아놓고 결의를 하였다.

“농(農)의 삶을 살고, 최소한의 화폐로 농운동가로 살 사람만 남고 떠나라. 떠나는 사람에게는 다른 대안을 줄게”라고.

그렇게 남은 사람들이었다.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살겠다고 한 사람들에게 지독하게 학습을 시켰다. 이 삶이 왜 대안인가에 대해서 사회, 경제, 역사, 문화 등을 통해 이면을 보게 하고, 신문의 행간을 읽는 방법, 우리가 지향하는 농사방법, 수많은 주요 흐름들 등을 익히게 했다. 그리고 우리가 선택한 삶이 많은 사람들의 삶의 대안이 될 것이며, 여기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것은 현실로 다가왔다. 대기업을 다니다가 그만두고 귀농공부를 하겠다는 사람들, 전문직종에 있으면서 행복할 이들이 삼삼오오 연두농장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연두에 1차 귀농을 하였고, 연두에서 공부하고 시골로 가서 지낼 수 있도록 나와 계획을 세웠다. 정착할 곳만이 아니라 그들이 가서 해야 할 일에 대해 같이 논의하고, 돌아다녔다. 시골로 간 그들은 지금 시골생활의 즐거운 소식을 전해주고 있다. 물론 그들은 돈이 항상 부족하지만 지금의 행복과 바꾸고 싶어 하지 않는다. 6년 전에 내가 신념에 차서 노래를 불렀던 것이 현실이 된 것이다.

그런 반면 기존의구성원3들은 몇 가족이 시골 갈 준비를 할 때 같이 가자고 했다. 이곳은 여전히 땅이 불안정하고 땅값이 비싸니 시골에 가서 자족하는 농사를 짓는 게 좋겠다고 했다. 나는 그들의 생활, 그들의 의식이 준비가 된 줄 알았다. 하지만 그들은 도시를 떠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여전히 돈이 많아야 행복하다고 했다. 영어수학을 잘하도록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야 잘사는 거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연두는 다른 대안이 생길 때까지의 울타리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것이 예전 자활근로 시절의 연두농장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기초생활수급자들의 ‘무조건적인 경제적 자립’을 위한 울타리가 아니라, 농의 가치를 생활에서 익히고 자신의 삶의 철학으로 현실화하려는 이들의 학습과 실행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바뀌었다.

‘진정한 자활’을 찾아서

6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오갔다. 오간 사람들을 세어본 적은 없다. 낙오된 사람들이 시장에 다시 도전장을 내밀어봐야 질 수밖에 없는 판 4에 놀아나리라는것, 더구나 농업으로 경제적 자립을 하려는 경우조차 환금성이 주가 되는 농사로는 역시 자본주의시장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것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설혹 성공을 하더라도 그것은 돈이 돈을 먹는 것이며, 산업처럼 더 큰 규모가 작은 규모를 먹어치우게 될 것이라는 것과,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궁극적으로는 행복하지 않은 돈의 노예가 될 것이라는 것, 그래서 ‘진정한 자활’이란 소비를 지양하고 자기 손으로 직접 식의주를 만드는 데에 있다는 것, 기업으로부터 멀어지는 생활에 있다는 것을 역설하였다. 그 과정에서 실제로 연두 식구보다 외부 사람들이 연두의 가치에 매력을 느끼고 생활방식을 바꾸는 일이 더 많았다.

그만큼 연두 식구들을 바꾸어나가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취미가 아닌 생업으로서 농사를 짓고 살아가는 연두 식구들에게는 오히려 더 많은 것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 삶은 현실이다. 현실이 돈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고정된 의식과 생활이 돈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하고, 소비로부터 멀어지는 생활만이 우리가 살아갈 길이라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올해 4월 노동부 지원이 마감되면서 ‘자급자족’이라는 가치를 다시금 들었다.

“이제 제대로 시작이에요. 힘겹더라도 다 같이 힘들고 다 같이 행복을 나누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 그리고 시골이든 이곳이든 돈으로부터 멀어지는 생활방식을 실현하며 살아갈 사람들만 남으세요.”

일자리 구성원을 포함해서 20여명의 사람들 중에서 처음에는 12명이 남겠다고 했다. 나는 이미 이때 8명 정도가 남으리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지금은 순차적으로 떠나 10명이 남아있다. 최종적으로 9명이 남을 엇이다. 그렇게 판단하는 이유는 농의 가치와 생활을 삶으로 받아들이고 실행해나갈 신념을 가진 이들이 현재까지 8명이기 때문이다. 처음에 남겠다고 한 사람들 중에는 농사에는 별 관심이 없고 그저 대안이 없어서 남은 사람들이 몇명 있었다. 그들은 천천히,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떠났다. 내부에서는 보다 강한 ‘자족’의 가치를 내걸었다.

생할수급자 자격을 유지하는 기존 구성원3들은 여전히 정부로부터 보충급여를 받으니 자금자족이라는 것이 실제 현실로 와닿지 않는다. 공동체에서 60만원을 받아도 가외로 보충급여를 받게 된다. 하지만 연두공동체에 있는 다른 이들은 그 돈만으로 살아간다. 새로운 화두가 생긴 셈이다. 지금까지 용인되어왔던 것까지도 내려놓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궁극적 자활’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떠났거나, 떠날 것이다.

돈으로부터 멀어지는 삶

나의 첫번째 책 <연두>는 기초 생활수급자들과 함께 보건복지부 지원을 받으면서 재냈던 희로애락의 삶을 기록한 책이다. 무조건적인 ‘엄마의 역할’이었다. 실제로 오랫동안 기초생활수급자로 있던 이들은 ‘경제적 자립’을 두려워한다. 자활을 거부하기도 한다. 이들은 주 5일 근무에 오전 9시에서 6시까지 일을 하고 최저생계비를 받는다. 그 외에도 교육, 의료, 각종 공과금에서 혜택을 받고, 심지어 손전화5 사용비용도 50%6 삭감 받는다. 쓰레기봉투는 공짜로 나온다. 쌀도 식구수대로 나온다. 쌀이 남아 돌아 떡도 해 먹고 팔기도 한다. 그러니 실제 혜택은 최저생계비 이상이된다. ‘짭짤’하다. 식당에서 일하는 것보다 낫다. 그래서 이런 제도는 ‘자활’을 방해하기도 한다. 안주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사지가 말짱한 이들이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 들어오기도 한다.

나는 손전화 사용비용 반값 할인이라는 정책을 들었을 때, 항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초생활수급자들의 소비를 더욱 부추기고, 그렇게 해서 생기는 이익은 기업이 챙기기 때문이다. 4~5년을 그렇게, 다양한 기초생활수급자들과 함께 살아왔다. 실망도 많이 했다. 그들의 생활을 들여다보면 나보다 훨씬 사치스럽고 소비적이었다. 회의도 많이 일었다. 그런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제도의 잣대로 인해 기초생활수급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가는 이들은 오히려 제도를 잘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부정 수급자도 있었다. 대부분은 눈을 감고 떡고물을 먹고 있었지만, 나는 ‘이건 범죄야’하고 하면서 자격을 박탈하는 일까지 했다. 물론 원망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 세상이 그러한 것처럼 그 속에도 다양한 구석7이 있었다. ‘내가 왜 이런 일을 하나, 그냥 나 혼자 내 방식대로 살면 될 일을’이라는 생각을 한두번 한게 아니었다.

그러나 삶이 아주 힘겨운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은 길을 모르거나, 길을 알더라도 잘 알지 못하거나, 길을 배우고 싶어도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이들이다. 사실 소수의 그들이 이었기에 내가 버틸 수 있었는지도 모는다. 배움에 신나해하고, 다만 한가지도 소중하게 여기는 이들. 그들은 앞으로 농사를 지으면 살겠다고 했다. 진심이라고 믿는다.

<연두>라는 책의 부제 ‘도시를 경작하다, 사람을 경작하다’는 아무리 생각해도 아주 건방진 제목이다. 농사는 무엇보다도 사람농사가 중요한 법이다. 농사도 사람이 짓기 때문이다. 사람을 경작한 지 겨우 6년, 사실 경작이라는 말 자체를 사용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수입년 익은 그들의 생활방식과 사고를 바꾼다는 것 자체가 내 중심적이지 않은가? 그들이 변하지 않는 데서 오는 어려움보다 사람을 경작하겠다고 나선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더 크게 든다.

농사로 알콜중독자를 치료해보겠다고 일을 같이 하다가 결국 감당할 수 없어 알콜중독치료벙원에 가보라고 권유한 사람이 이었는데, 연두를 떠나 일주일의 행복한 방탕생활을 한 그를 주검으로 재하기도 했다. 이리 저리 육보시를 하면서 남편은 충격으로 죽고 그 후 한 남자에게 정착을 했는지, 가끔은 얼굴을 마주치던 이도 있었다. 알콜중독, 신경쇠약, 의처증까지 가진 남편으로부터 도망 나와 우리 집에서 며칠 살았던 그녀는 연두의 다른 남성과 눈이 맞아 갑작스럽게 행적을 감추었고, 대신에 그의 남편이 칼을 들고 나타나 거친 말을 쏟아내며 수개월 동안 나를 괴롭히기도 했다. 이렇게 떠난 이들은 대부분 다시 자본주의 시장으로 편입되어 노동력을 팔면서 도시와 네온사인의 휘황함을 부러워하며 도시를 배회하고 있다.

“6년 동안 해오면서 이제는 안정이 되었지요?”

오늘 KBS 라디오(radio) 인터뷰(interview)에서 받은 질문이다.

“안정이라는 것이 물질적 안정을 의미한다면 여전히 불안정해요. 구성원도 가끔식 변하구요. 다만 몇년 전과 확실히 다른 것은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들, 가치관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다는 점이죠.”

“가치와 ㅊㄹ학이라, 어떤 철학인가요? 농철학인가요?”

나의 두번째 책 <숲과 들을 접시에 담다>를 읽어본 사람들은 ‘농철학’이라는 말을 한다.

“예, 농철학이죠. 진정한 자활을 하겠다는 거죠. 종속적인 식의주 생활, 소비가 일상인 생활, 돈의 노예가 되는 그런 생활에서 자립하겠다는 거죠. 자연과 어우러져 살면서.”

‘연두’를 떠난 자, 떠나고 있는 자 – 그들은 자신이 선택한 삶 속에서 연두의 삶이 행복했음을 다시 알게 되거나 남아있는 연두 식구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동경하게 될 것이다.

저항의 삶, 생태적 상상력

“난 아마도 영원히 비주류로 살게 될 거야.”

나는 주류인 적도 없고 주류가 되려고도 하지 않는다.

“누나, 누나가 래디컬이라고 소문났던데? 생태근본주의자래.”

“그래? 근본주의자든 뭐든 어떻게 말하든 괜찮아.”

신념을 드러내면 학계든 운동판이든 ‘어떤 파’, ‘어떤 주의’라고 재단하곤 한다. 예전 1980년대의 학생운동, 노동운동 시절부터 겪어오는 것인데, 이게 새삼스러울 이유는 없다.

“과거를 돌아보는 거야? 과거로 회귀하자는 거야?”

친구가 묻는다.

“’오래된 미래’가 있잖아. 과거, 현재, 미래가 어딨어? 그 모두가 지금 현재에 동시에 공존하고 있는데.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이분법적인 서구적 사유체계에 경도되는 거야.”

농사를 지어보니 농사는 수탈이다. 연두농부학교에 농사공부를 하러 온 사람들에게 ‘농사는 수탈이다’고 하니 이들은 어안이 벙벙하다. 나는 여기서부터 문명과 농에 대한 얘기를 풀어나간다. 귀농이란 것이 무엇인가? 이건 낭만으로만 대할 수 없는 일이다. 농사에 대한 철학이 중요하다. 환상 없이 시작해야 한다. 귀농해서도 돈에 익숙한 생활방식 그대로 산다면 힘겨운 농사가 될 것이며, 자연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탈하는 농사를 짓게 될 것이다. 인간은 심지어 태어날 때부터 자연을 수탈하도록 학습한다. 기독교의 ‘원죄’라는 것이 그런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농사는 최대한 자연을 닮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소비자’란 말은 없어져야 하며, 착한 소비자로만 남아있어서는 안된다. 어떤 방식으로든 생산과정에 참여해야 한다. 내가 하는 얘기의 요지는 대체로 이런 것들이다.

이번에 낸 <숲과 들을 접시에 담다>라는 책을 보고 누구는 나를 ‘좌파 농’이라고 한다. 농에는 좌우가 없다고 하면서도 나에게는 ‘좌파 농’이라는 말을 한다. 참 재밌다. 농의 생활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결국 반자본주의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 아닌가?

나는 처음부터 농사를 지을 때 비닐과 타협하지 않았다. 한여름 햇볕에 대한 불만이 었어도, 농장식구들의 볼멘소리에도 그 원칙을 고집스럽게 지켜나갔다. 지금은 내가 ‘비닐을 깔까?’ 하면 그들이 오히려 난리다. 원칙을 고수한 결과다. 만약 처음에 타협했다면 지금도 비닐에 의존한 농사를 짓고 있을 것이다. 비닐이 없는 농사를 지은 덕분에 약이 되는 잡초음식을 알게 되지 않았는가. 나는 생태적 상상력이 풍부한 편인 것 같다. 어떤 일을 하면서 그 일의 맥을 잡아내면 가지들이 이리저리 쑥쑥 뻗어나간다. 기연불연(其然不然)이다.

“변 대표 머릿속에는 쉴 날이 없을 거야. 하나 생각하면 두세가지가 생각나지?”

주변에서는 이런 말들을 한다. 그래서 그런지 잘 잊어버린다. 그런 나를 자위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생각할 것들이 많으니까 머리가 꽉 차 있잖아. 잊어버려야 비워지지. 비워야 채워지는 것처럼.”

잘 잊어버리는 것은 비우는 것의 일환이다. 한꺼번에 많은 것을 머리속에 넣으니 자연스럽게 되려면 잊어버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농장에서 자연을 접하면서 하는 일, 즉 땀을 흘리는 일은 몸과 마음을 쉬는 일이기도 하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농사란 일상의 수행과도 같다.

나에게 두려움이란 없다

내 헨드폰 바탕화면엔 ‘묵연(默然)하라’라고 적혀있다. 수년째 나 자신에게 던지는 문구로, ‘말 없이 그러하라’라는 뜻이다. 내 친구의 핸드폰에는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라고 적혀있다. 이 문구도 내가 평상시에 즐겨 쓴다. 성경의 “갈전히 구하라, 그러면 너희 뜻이 이루어지리라”라는 말처럼. 40대 중반을 넘어선 우리는 ‘수행하는 삶’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온 길, 살아가야 할 길에 대해 분명한 가치를 가지고 ‘스스로에게 어떻게 되기’를 원하며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묵연하게, 간절히 원하면서.

내가 살아온 과정에 ‘두려움’이 있었을까? 두려움이란 것은 미래에 대한 것일 터인데 그것은 내 생애에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나는 언젠가부터 내가 하고 싶은 것은 기어코 하고야 말았다. 안정된 자리는 나에게 의미가 없었다. 나는 호기심이 발동하며 그 호기심을 풀어야 하고, 뛰쳐나가 몸으로 체험해야 한다. 경험주의적 철학을 가진 것도 아닌데, 마음이 가면 몸이 갔고, 몸이 가 있으면 미세한 마음의 움직임을 다시 읽어보곤 했다.

그래서 그런지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내 인상이 ‘열정적’이라고 얘기하곤 한다. 대전에서 복지운동에 평생을 바쳐오신 궐술용 님은 나를 ‘불꽃의 여인’이라고 일컫는다. 나를 보면 “불같이 자신을 태우는” 것을 느낀다고 하셨다. 내 기운이 바깥으로도 흐르는가 보다. 특별히 두려움을 느끼며 살아갈 일이란 내게 거의 없다. 나 자신에 대한 두려움말고는.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는 박경리 선생의 말이 살에 착 달라붇는다. 죽음을 자연스런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노인은 집착이 없다. 스트레스라는 것 또한 없다. 노인아라는 말 가체가 사실 그런 것이다. 한 평생을 갈무리하면서 자연에 순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면서 새롭게 생을 시작한 아이들을 돌보고, 고뇌하며 사는 자식들에게 ‘새옹지마’라는 말을 남기게 된다.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들, 지나고 나면 쓸모없는 것들에 목숨을 걸고 싸우거나 집착하여 몸과 마음을 상하는 사람들에게 노인들은 세상을 다 산 해맑은 ‘미소’를 내어준다. 가장 우려운것이 죽움이다. 그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무엇이 두려울꼬?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에 휩싸여있다. 그래서 보험도 들고, 축적을 하게 된다. 뭔가 두렵기 때문인데, 그것이 바로 죽음이나 ‘비참한 생활’이다. 타인과 비교하여 ‘비참한’ 것, 이 사회가 주는 경멸이나 박대 같은 것에 두려움을 가지게 되는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아직 발생하지도 않았거니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앤다면 그 어떤 것데 대해서도 두려움이 있을 리 없다. 그저 지금 살아가는 일이 중요하다. 나는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즉시 하기도 하지만 그냥 되어가는 대로 놓아두기도 한다. 인위적인 것이 필요하지 않다.

나는 외적인 두려움이 없기에 남들이 두려워하는 위험한 여행도 감행하고, 안정된 직업이나 자리에 연연해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나의 가치가 어디에 있느냐, 나의 철학이 무엇이냐가 결정의 기준이다. 예전에 선배들은 하던 일을 그만두고 해외로 배낭여행을 갔다 돌아오곤 하는 나에게 “이제 안정된 자리를 가지고 살아야 하지 않느냐”고 공공연하게 걱정을 해 주곤 했다. 그 당시에 그런 말은 돈 아니면 권력 또는 일상적인 부부생활을 의미했으리라. 농사를 짓겠다고 할 때도 주변에서는 걱정들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걱정을 듣지 않는다. 권력과 돈이 삶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직면하는 삶, 수행하는 일상

그렇다면 외적인 두려움이 없는 나에게 진정으로 두려운 것은 무엇일까? 바로 나 자신이다. 내가 나 스스로를 속이는 일이다. “나 자신에게 솔직하라.”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모든 것의 출발은 나 자신인데, 자신에게 솔직하지 않으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성찰을 게을리한다. 그래서 무슨 문제가 닥치면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알지 못하고 우왕좌왕한다.

연두노장을 운영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접하고 또 그들의 고충을 들으면서 느낀 것은, 바로 이 점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자신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도 자신의 문제를 돌보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니 2~3년이든 10년이든 세월이 지나도 똑같다. 근본이 바뀌지 않으니 고민하는 내용도, 갈구하는 것도, 상황과 만족도도 달라지지 않는다.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는 것은 그렇게 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럴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자신을 직면하기가 가장 두렵기 때문이다.

세상과 직면하기 전에 자신과 직면하는 것, 자신의 무의식까지도 끌어올려 분명히 바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의 어떤 가치나 철학도 나 자신의 가치나 철학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을 솔직하게 성찰하고 자신을 직면해야 한다. 성찰하는 계기는 다양하게 온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요즘 나는 수행하는 일상을 살길 바라고 있다. 조직을 끌어나가고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단호함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래서 때로는 이기적인 모습도 발견한다. 우선은 내게 이 일이 즐거워야 한다. 그래서 ‘무조건 보듬기’에서 ‘선택적 보듬기’로, ‘무조건적인 엄마’에서 ‘냉정한 엄마’로 바뀌어가고 있다. 그래서 스스로 뜨끔할 때가 많다. 조직이 점차로 비대해질수록, 일들이 내 등 위에 얹는 것이 많아질수록 내가 관료적으로 변해갈 수도 있다. 나는, 조직 또한 생명으로서 운이 다하면 사라져야 한다고 본다. 사명을 다하거나 사명을 완수할 힘이 없는데도 조직이 살아있으면 그 조직은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사용한다. 조직도 사람도 병이 든다. 그래서 사람이든 조직이든 초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초심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나의 초심은 다른 것이 아니라 농사를 짓고 싶어 했던 마음이다. 그 마음을 다시 가다듬는다. 땀을 흘리되, 수탈을 최소화하고, 즐겁게 농사하라는 것.

올해는 농장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풀이 무성한 밭을 보며 즐거워하면서도 풀을 매야 하는 것을 고뇌하면서, 작물이 없어지는 날을 위해 밭에서 부지런히 풀들을 익혀나간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묵연하게 살면서 간구하는 속에서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나는 기독교신자도 불교신자도 아니다. 단지 막연한 운명이랄까, 그런 것을 신이라고 표현한다. 신은 우리에게 생명의 이유를 준 것처럼 존재의 이유, 삶의 이유도 준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나는 ‘지금 여기’에서 최선을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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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_갈래, 녹색평론


  1. 변현단 – 연두농장 대표. 저서로 <연두>, <숲과 들을 접시에 담다>가 있다. ‘연두농장’은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생산공동체이자,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생태적인 철학과 생활문화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교육활동을 필치면서 농(農)운동을 벌이는 곳이다. 2005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해 조건부생활수급자 및 차상위자를 대상으로 하는 보건복지부의 자활근로사업으로서 시작했으며, 2009년 1월 자활공동체로 독립하였다. 지금은 도시농운동에 뜻을 두거나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적인 생활을 하려는 사람들이 모여서 ‘최소한의 화폐로 행복하게 살기’ 연습을 통해 진정한 자활공동체를 지향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1)

  2. 직지 주: 본디 ‘시스템(system)을’ 이었는데, '틀로'로 바꿨습니다. (2)

  3. 직지 주: 본디 '멤버(member)' 이었는데, '구성원'으로 바꿨습니다. (3 4)

  4. 직지 주: 본디 ‘게임(game)’이었는데, ‘판’으로 바꿨습니다. (5)

  5. 직지 주: 본디 ‘핸드폰(handphone)’이었는데 ‘손전화’로 바꿨습니다. (6)

  6. 직지 주: 본디 ‘퍼센트(percent)’이었는데 기호 ‘%’으로 바꿨습니다. (7)

  7. 직지 주: 본디 ‘스펙트럼(spectrum)’이었는데 ‘구석’으로 바꿨습니다. (8)

연두농장 이야기 (last edited 2011-11-25 20:23:07 by Minsoo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