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1910-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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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길 /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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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에 있는 이상 작품

1910 (출생)

9월23일(음력 8월20일)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서 부 김연창2과 모 박세창3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남. 본적은 백부 김연필의 집인 통인동(옛 통동) 154번지. 본명은 김해경4. 본관은 강릉.

1912 (2세)

젖을 떼고 밥을 먹기 시작하자 친부모의 슬하를 떠나 아들이 없던 백부 김연필5의 집으로 들어가 23세까지성장.

1917 (7세)

4월, 누상동에 있는 신명학교6 제1학년에 입학. 이때부터 그림에 재질 보임. 담배 '칼표' 껍질에 그림을 모사7하기 시작했음.

1921 (11세)

3월, 신명학교 4년 졸업. 백부의 교육열에 힘입어 그해 4월, '조선불교중앙교무원'에서 경영하는 동광학교8에 입학. 줄곧 우등생 성적을 유지했다 함.

1924 (14세)

동광학교가 보성고보9로 병합. 동교 4학년에 편입학. 이 해에 교내 미술전람회에 유화「풍경」입상. 동광학교 시절처럼 우등을 유지하지는 못 함. 이 학교 출신으로는 이헌구, 김기림, 김환태, 이강국 ,임화, 유진산, 워용석, 김상기 등이 있었으며 미술교사로 고희동이 있었음.

1926 (16세)

3월 5일, 보성고보 17회 5학년 졸업. 그해 4월 동숭동에 있는 경성고등공업학교10 건축과(서울공대의 전신) 1학년에 입학. 건축과 합격자는 12명이었으나 해경(이상)은 유일한 한국인 학생이었고('유상우'라는 한국인 학우가 있었으나 2학년 진급시 낙제함) 줄창 수석을 다투는 우수한 성적을 보임. 해경의 말만 듣고는 한국 사람인지 일본 사람인지 분간하지 못 할 정도로 유창한 일어11 실력이었다 함. 이 때부터 고공12의 미술부에서 마음대로 그림을 습작했음. 건축과에서 주당 4시간씩 미술을 배움. (당시 한국에서 미술을 할 수 있는 곳은 경성고공뿐이었다고 함), 현미빵을 교내에서 팔아 학비를 보탬.(누이 김옥희의 증언)

1927 (17세)

미술에의 집착을 가지고 보낸 고공 1여년동안 경성고공 문예 회람지《난파선》의 편집을 주도. 손수 표지를 그리고 글씨를 쓰고 목차도 꾸미고 자신의 글도 발표함. 이즈음부터 백지에 세필13의 시 (바늘 끝같은 날카로운 만년필 촉으로 쓴 활자같은 정자)와 아포리즘이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함.

1929 (19세)

3월 경성고등공업학교14 3학년 8회 졸업. 이 때 자신이 장정·편집을 맡은 한국인 학생 17명을 위한 졸업 앨범 안에 '이상15'이란 필명이 뚜렷이 나타나 있음. 이어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수로 취직 후 근무. 의주통 전매청 청사의 공사 현장 일을 맡아봄. 이 때부터 장편소설「12월 12일」의 창작을 시작 함. 11월에는 관방16 회계과 영선계로 옮김. 12월에 조선 건축회지《조선과 건축》회지 소화5년도 표지도안 현상모집에 1등과 3등으로 당선됨.

1930 (20세)

처녀작 장편소설「12월 12일」을 《조선》에 이상17이란 필명으로 발표. 2월∼12월까지 9회에 걸쳐서 연재. 4회때 <작자의 말>을 실어 자신의 의도를 드러냄.

1931 (21세)

단편소설 「휴업과 사정」을 《조선》4월호에 보산18이란 필명으로 발표. 7월에 처녀시 〈이상한 가역반응〉,〈파편의 경치〉,〈BOITEUX·BOITEUSE〉,〈공복〉등을, 8월에 일문시 『조감도』, 10월에 『삼차각설계도』를 각각 《조선과 건축》에 김해경의 본명으로 발표. 이들 작품들 말미에는 날짜가 표기되어 있음. 서양화 「자화상」을『선전19』9회전에 출품하여 입선함. 이 무렵 곱추화가 구본웅20을 알게 됨.

1932 (22세)

《조선과 건축》회지 소화 7도 표지도안 현상모집에서 제4석에 당선. 비구21란 필명으로 단편소설「지도의 암실」을《조선과 건축》3월호에 발표. 이해 5월 7일 백부 사망.(종로 구청에 보관된 제적등본, 이상의 작품 내용, 증언등에 나타나 있음.) 7월 이상22이란 필명으로 된 시「건축무한 육면각체」를 발표.

1933 (23세)

3월, 심한 각혈로 총독부 기수직을 사임. 통인동 백부의 집과 유산을 정리하여 효자동에 방 둘에 부엌이 하나있는 초가집 한채를 사서 가족을 이곳으로 옮기고(백부의 집에서 옮겨 온 조모와 친부모, 두 동생과 자신을 합하여 여섯 식구.) 23년만에 친부모 형제들과 함께 생활 함. 백모는 계동으로 이사. 요양차간 배천 온천에 서 기생 금홍과 알게됨. 상경한 후 유산을 처분하여 서울 종로 1가에 다방 <제비>를 개업(7월 14일). 금홍23을 제비의 마담으로 앉히고 동거생활 시작. 이태준, 박태원, 김기림, 정인택, 윤태영, 조용만 등이 제비에 출입하여 이상24의 문단 교우가 시작됨. 7월부터 국문으로 시 발표. 정지용의 소개로「이런 시」,「꽃나무」,「1933. 6. 1」을 《카톨릭 청년25》(2호, 7월)에,「거울」을 《카톨릭청년26》(5호, 10월)발표.

1934 (24세)

구인회에 입회 본격적인 문학활동 시작. 시「보통기념」을 《월간매신27》6월호에, 수필「혈서삼태」를 《신여성》6월호에 발표. 이태준의 소개로 한글 시「오감도」를 《조선중앙일보》에 발표(7월24일∼8월8일 까지 연재), 물의가 일어 15회 연재후 중단. (원래는 30편). 8월에 박태원의 신문 연재소설「소설가 구보28씨의 1일」(《조선 중앙일보》 8.1~9.19)이라는 작품에 하융29이라는 화명30으로 삽화를 그림. 단편소설 「지팽이 역사」(희문)《월간매신31》8월호에 , 시「소영위제」를《중앙》9월호에 발표. 제비의 경영 악화로 가족들 신당동(버티고개)의 빈민촌으로 이사함.

1935 (25세)

시『정식Ⅰ∼Ⅳ』을《카톨릭청년32》4월호에 발표. 시「지비33」를《조선중앙일보》9월15일에 발표. 9월 경영난으로 다방「제비」파산. 폐업 즈음 금홍과 헤어지고, 부모의 집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인사동에 있는 카페 <쓰루34>를 인수·경영하다 실폐. 여급 권순옥과 연애. 다시 종로 1가에 다방 <69>를 설계·개업· 경영하다 곧 실폐. (권순옥은 이상의 친구 정인택과 결혼) 이어 다방 <무기35>을 계획 했다가 개업 하기도 전에 타인에게 양도 당함. 성천, 인천 등지로 여행. 수필「산촌여정」을《월간매신36》(9월27일∼10월11일) 발표.

1936 (26세)

시『지비(紙婢) 1 2 3』를《중앙》1월호에 발표. 『역단』을《카톨릭靑年》2월호에 발표. 3월에 구본웅의 부친이 경영하던 창문사에서 구인회 동인지《시와 소설》을 편집. (이 동인지는 1집밖에 나오지 않음.) 창문사 나옴. 수필「서망률도」《조광》3월호,「조춘점묘」《每日申報》,「가외가전」,「여상」,「낙수」, 「Epigram」,「매상」등을 발표. 단편「지주회시」《중앙》6월호,「날개」《조광》10월호등을 발표. 전부터 알았던 구본웅 서모의 동생인 이화여전 출신 변동림과 신흥사에서 정식 결혼 후 황금정 셋방에서 비밀리에 동거생활 시작(6월 초순부터). 새로운 재기를 위하여 10월경(음력 9월3일) 일본 동경으로 떠남. 삼사문학(三四文學) 동인들과 간간이 어울림. 그 곳에서 「공포의 기록」,「종생기」,「권태」,「슬픈 이야기」 , 「환시기」등을 씀.(1년뒤, 환시기 2년뒤 발표) 시「위독」《조선일보》, 수필「행복」《여성》, 「추등잡필」《每日申報》등 발표. 「동해」《조광》등을 발표. 「봉별기」를《여성》(12월호)에 발표.

1937 (27세)

2월 중순경 사상 불온혐의로 일본 경찰에 유치. 3월에 건강이 악화되어 보석으로 출감. 동화「황소와 도깨비」《매일신보》(3월5일∼9일), 「19세기식」《삼사문학》(4월호),「공포의 기록」《매일신보》(4월15일∼5월15일),「종생기」《조광》5월호에 발표.「권태」《조선일보》(5월4일∼11일),「슬픈 이야기」《조광》6월호에 발표. 4월17일 오전 4시,동경제대 부속병원에서 객사. 향년 만 26년7개월. 그 전날(16일) 부친과 조모 사망. 아내 변동림에 의해 유해는 화장되어 아내가 유골을 가지고 5월 4일 환국하여 그의 친구들이 모인 가운데 같은 해 3월 29일 같은 폐결핵으로 사망한 김유정과 합동영결식을 치르고 영결식이 끝난 뒤 유해는 6월 10일 미아리 공동묘지에 매장됨. 후일 유실됨. 데드마스크를 떴으나 한국에서 유실됨.

1938

「환시기」《청색지》6월호에 수록.

1939

「무제」「실락원」「실화」「단장」「김유정」「병상 이후」「동경」「최저낙원」수록.

1939 이후

『이상전집 2권』임종국 / 『현대문학』 / 『문학사상』등에서 다수의 미발표 유고를 수록. 「12월 12일」「휴업과 사정」이 발표 되기 전까지는 「이상한 가역반응」을 처녀작으로 볼 때도 있었음.

  • 1 金箱

  • 2 金演昌

  • 3 朴世昌

  • 4 金海卿

  • 5 金演弼

  • 6 新明學校

  • 7 模寫-베낌

  • 8 東光學校-중학교 과정

  • 9 普成高普

  • 10 京城高等工業學校

  • 11 日語

  • 12 高工

  • 13 細筆

  • 14 京城高等工業學校

  • 15 李箱

  • 16 官房

  • 17 李箱

  • 18 甫山

  • 19 鮮展

  • 20 具本雄

  • 21 比久

  • 22 李箱

  • 23 錦紅

  • 24 李箱

  • 25 靑年

  • 26 靑年

  • 27 月刊每申

  • 28 九甫

  • 29 河戎

  • 30 畵名

  • 31 月刊每申

  • 32 靑年

  • 33 紙婢

  • 34

  • 35

  • 36 月刊每申

이상 (last edited 2008-06-23 01:38:44 by Minsoo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