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표지

유기농법 유감

해마다 발생하는 산불 때문에 여의도 면적의 몇십 배에 달하는 생태계가 파괴되어 가고, 초목과 함께 사라진 다람쥐, 고라니, 토끼를 다시 보려면 50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산불예방을 촉구하는 공익광고가 있다. 50년. 내가 살아온48년을 생각하면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작년에 산불이 난 곳의 생태계가 다시 살아나려면 내가 이 세상을 떠나고도 한참이나 세월이 더 흘러야 한다는 얘기다.

산불이 난 뒤 생태계는 초토화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황폐해진다. 나무와 풀은 말할 것도 없고 토양 속에 살던 미생물까지 전멸한다. 생태계 전체가 파괴되는 것이다. 그러니 장마비가 조금만 내려도 토양이 유실되고 산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 죽은 땅에 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미생물이 다시 살아나기까지는 50년은 아니더라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대규모 산불이 날 때마다 학자들 사이에서는 자연을 하루라도 빨리 되살리기 위해서는 인공조림을 해야 한다는 의견과 자연이 스스로 복원하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리는 것 같다. 그러나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나는 산불로 황폐해진 땅에 곡물 씨앗을 뿌리라고 권하고 싶다. 즉, 식물의 특성을 적용시키면 자연상태로 방치하거나 인공조림을 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복원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식물은 무기물을 먹고 자란다. 미생물의 분비물이나 시체가 바로 무기물이다. 그렇다면 산불이 난 곳에는 무기물이 풍부할 수밖에 없다. 적어도 식물의 먹이만큼은 널려 있다. 그런데 산에 자생하는 나무나 식물은 초기 생육 과정이 느려 처음에는 더디게 자라지만 오랫동안 생명을 유지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인공조림으로는 그다지 빠른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대신 우리 농산물은 초기 생육이 매우 빠른 식물이다. 게다가 먹이인 무기물이 많은 곳이라면 그 성장 속도는 더 빨라질 게 틀림없다. 헬리콥터를 동원하여 수수, 옥수수, 조 같은 씨앗을 뿌리면 삭막하던 땅이 초록빛으로 금세 무성해질 것이다. 그 작물들이 뿌리를 내리면 2차식물이 자리잡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외부에서 날아온 잡초나 나무 씨앗들이 바로 이듬해부터 발아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지는 것이다. 그러니 첫해에는 엄청난 양의 농산물을 공짜로 수확하는 것과 동시에 토양 유실을 막고 파괴된 자연의 복원 속도를 앞당길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런 원리를 이용한 사람들이 화전민이었다. 그들은 불이 난 땅에서는 적어도 2∼3년 동안 농사가 잘된다는 사실을 알고 일부러 땅에 불을 질렀다. 그런데 요즘에 와서는 그 원리조차 까맣게 잊고 막상 필요한 순간에도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새삼스럽게 산불과 생태계에 대해 들먹인 것은 아이디어를 자랑하려는 게 아니라 좀더 다른 뜻이 있어서이다. 무기물의 역할을 다시 한번 강조하기 위한 마음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유기농법에 대한 유감을 나름대로 표시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산불이 난 지역의 예로 확인할수 있듯이 식물의 먹이는 단연코 유기물이 아니라 무기물이다. 심지어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비료조차도 화학 무기물이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유기물이 식물의 먹이인 것으로 알고 유기농법의 우수성을 강조한다. 그것이 굉장히 유감스럽다.

유기농법이 과학농법보다는 그래도 자연을 덜 괴롭히는 방법이기는 하다. 하지만 말 그대로 덜 괴롭히는 것뿐이다. 식물의 생장 조건을 인위적으로 조절하고 간섭함으로써 자연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는 면에서는 그리 내세울 만한 농법이 못 되는 것이다. 그나마도 외국에서 수입한 유기물이 우리 땅에 얼마나 이로울까. 목초액이니 유기질 비료니 하는 것도 식물 처지에서는 전혀 달가워할 수 없는 먹이들이다. 아니 평화롭게 공존하는 미생물과 식물의 관계를 깨뜨리는 농법에 다름 아니다.

사실,우리 전통 농사에서도 유기물이 전혀 쓰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40∼50대 농촌 출신이라면 지금도 기억하는 풍경 하나가 있을 것이다. 서리 내린 가을 아침, 재래식 화장실에서 퍼 담은 유기물을 커다란 똥장군에 담아 지고 논으로 나서는 아버지들의 모습. 그 모습을 떠올리면 늘 함께 떠오르는 것이 들판 가득 하얗게 내려앉은 서리와 아버지의 숨결 속에서 뿜어져 나오던 입김이었다.

알고 보면 서리와 입김, 그리고 똥장군은 깊은 연관이 있다. 조상 들은 유기질 거름 주는 시기를 따로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 시기는 바로 서리가 내린 늦가을부터 초겨을 무렵이었다. 논밭에는 보리나 밀이 파릇파릇 올라오고 밭에는 마늘, 상추가 싹을 내미는 때였다. 인분은 반드시 가을이 끝날 무렵에 주었던 것이다. 왜 가을인가. 봄이나 여름에 인분을 뿌리면 작물이 잘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잘 크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죽어버린다. 그만큼 인분이 독하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유기물과 작물의 관계가 그리 원만하지만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서리 내린 뒤에는 마늘, 보리, 양파, 상추 할 것 없이 인분을 바로 부어줘도 죽지 않았다. 대신 잡초만 말라죽었다. 그 까닭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서리의 작용을 이해해야 한다.

서리는 일종의 자연 제초제라고 할 수 있다. 서리가 내리면 제아무리 팔팔하던 잡초도 하얗게 말라죽는다. 서리를 분수령 삼아 자연의 동식물은 일대 헤쳐 모여를 감행하는 것이다.

서리는 잡초를 제거하는 효과 외에도 곤충류 중에 월동하는 종과 월동을 하지 않는 종을 완전히 분류시키는 작용을 한다. 해충의 경우도 그 시기면 이미 산란을 끝내고 생을 마감한다. 설사 아직 살아있는 녀석이 있다 해도 서리를 이겨내지는 못한다. 그 신비한 자연의 살균, 제초, 살충 작용으로 말미암아 들판은 잠시 치열한 전투를 중지하고 깊은 휴식에 들어가는 것이다.

관찰한 바에 따르면 짚단 밑에서 겨울을 나는 거미나 보리, 상추, 시금치처럼 서리가 내려도 살아남을 수 있는 동식물은 적어도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녀석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참으로 오묘한 자연의 힘이 아닌가 싶다.

이처럼 유기물은 서리가 내리면서 기온이 떨어지는 환경에서만 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유기물은 서리를 견디는 작물에 투여하면 좋은 영양분 역할을 한다. 겨울에 유기물은 끊임없이 얼었다 녹기를 되풀이하는 토양 속에 흡수된다. 물론 비가 적게 오는 계절이니 유기물이 유실될 염려도 없다.

서리가 필터 작용을 하여 좋은 균은 스며들게 하고 안 좋은 균은 뽑아내면서 안전망 노릇을 해줄 때에야 비로소 유기물도 제 구실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땅에 맞는 진정한 유기농법이다. 그 밖의 계절에는 무기물만이 진정한 식물의 먹이라고 할 수 있다. 자칫하면 애써 공급해준 유기물이 토양과 식물에 제대로 흡수되지 못한 채 유실되어 오염원 역할만 하고 말 수도 있다.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유기농법이 아니라 무기농법이 우리 땅에 어울리는 친환경농법인 것이다.

결코 현재 유기농법으로 농사짓는 사람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들도 나름대로 자연이 좋아하는 농사를 짓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다만, 유기농법을 빙자하여 이런 저런 장삿속을 채우려는 사람들을 경계할 따름이다. 예를 들어 온갖 산업 쓰레기며 생활 쓰레기로 실효성도 없는 유기물을 만들어 농심을 우롱하는 사람들을. 그리고 그나마 제대로 된 유기농법을 실천하지도 않고 때 되면 농약, 비료 다 쓰면서도 유기농산물이라는 이름표를 붙여 소비자 가격만 올리는 일부 생산자를.

우리 땅의 생리를 알고 식물의 특성을 안다면, 굳이 없는 돈 들여가며 유기물을 공급해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을 뿐이다. 그냥 논밭의 순환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기만 하면 굳이 따로 거름을 넣어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내 경험을 바탕으로 들려주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이 논리는 나의 독단이 아니라 내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들의 아버지들이 찬서리를 밟아가며 몸소 보여주신 지혜를 다시 확인한 것에 다름 아니라는 걸 밝혀둔다.

채소 궁합 맞추기

가을 걷이가 끝나갈 즈음 나는 또 하나의 농사를 준비한다. 벼를 수확하고 보리와 밀을 파종한 다음에는 밭으로 나가는 것이다. 내년 봄을 준비하는 채소들이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태평농법에서는 모든 농사가 가을부터 시작된다. 채소 농사도 마찬가지다.

흔히들 밭작물은 몇 년씩 계속해서 심으면 연작 피해가 발생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 또한 식물의 상호작용과 특성에 맞춰 재배하면 크게 걱정할 사항이 못된다. 지금부터 나와 함께 태평농법으로 채소 농사를 지어보자.

먼저 우리 밥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단골 양념인 마늘을 심어야겠다. 아주 간단하다. 흙을 부드럽게 해준다는 핑계로 로터리를 칠 필요도 없다. 논과 마찬가지로 밭에서도 흙을 살리려면 그 기계부터 멀리하는 것이 좋다. 토양 살충제니 제초제니 비료니 모두 다 필요 없다. 어차피 아침마다 서리가 내리면서 잡초와 해충을 알아서 막아 줄 테니까 말이다. 비닐 멀칭도 필요 없다. 추운 겨울이니 비닐로 마늘을 감싸서 따뜻하게 보호해야겠다는 마음은 가상하지만 마늘 처지에서 보면 그게 오히려 괴롭다. 첫째는 뿌리가 산소를 호흡할 수 있는 통로를 막아버리니 괴롭고, 둘째는 따뜻한 곳을 찾아 모여드는 벌레들 때문에 괴롭다. 차라리 겨을 찬바람을 맞더라도 마음껏 숨 쉬면서 꿋꿋하게 살아가는 쪽이 훨씬 편하다. 실제로 마늘은 흙속에 뿌리 두 개만 내리면 영하로 떨어지는 혹독한 추위도 잘 견딘다. 다만 생장을 잠시 멈출 뿐이지 얼어 죽는 일은 없다.

선심을 쓰는 대신 마늘 심을 땅을 깨끗이 걷어내는 일만 하지 않으면 무척 좋아한다. 이전에 콩을 심었던 자리라면 남아 있는 콩깍지나 콩대를 걷어내지 말고 그대로 두라는 뜻이다. 그것들을 의지하여 살아나갈 미생물을 위해서 말이다.그쯤이면 마늘 심을 준비는 훌륭하게 끝난 셈이다.

이제 마늘 심을 밭으로 가서 이랑을 높여준다. 흙속에 산소가 더 많이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방법이다. 그리고는 마늘쪽 한 배 반쯤 깊이로 구멍을 뚫어준다. 그리고 그 자리에 마늘쪽을 넣는다. 그게 끝이다. 흙을 덮어줄 필요도 없다. 흙을 덮으면 산소가 부족해서 순이 못 올라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벌레가 들어갈 염려도 있다. 그냥 구멍 속에 넣어두기만 하면 마늘은 혼자서 뿌리를 내리고 겨울을 보낼 것이다. 너무 추우면 얼어서 말랑말랑해지기도 할 테지만 죽지는 않는다.

다만 그 상태로 방치하면 한 가지 걱정되는 일이 있다. 이듬해 봄이 되면 비닐을 덮지 않았기 때문에 잡초가 비온 뒤 죽순 올라오듯 자라날 것이다. 마늘밭이 아니라 온통 풀밭이 될 게 뻔하다. 그러나 밭에 물을 조금 준 뒤 상추씨를 뿌리면 그 사태를 미리 막을 수 있다. 상추씨가 바로 내년 봄 잡초를 막아줄 일꾼인 것이다. 겨울에 심은 상추밭에서는 절대로 잡초가 자라지 못한다. 넓은 잎으로 빛을 차단시켜 주기 때문이다 마늘과 함께 뿌린 상추씨가 떡잎을 내밀고 겨우내 조금씩 조금씩 자랄 것이다. 그러다가 봄이 되면 활짝 잎을 키운다. 잡초는 이제 막 순을 내밀 시기지만 상추 잎이 떡 버티고 있으니 그만 도리가 없어진다.

잡초 때문에 귀찮을 일도 없이 쑥쑥 잘 자란 마늘을 수확해서 좋고, 곁들여 상추쌈까지 푸짐하게 먹을 수 있으니 봄밭에 선 농부의 마음도 그만하면 부러울 게 없이 넉넉할 것이다. 더구나 겨울을 지낸 상추의 맛은 또 어떤가. 약간 쏘는 듯하면서 고소한 것이 그것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알 수 없다.

혹, 마늘 대신 양파를 심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심는 방법은 마늘과 다르지 않다. 씨를 파종하든 모종을 심든 구멍만 뚫어주고 흙은 덮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상추씨 대신 시금치씨를 뿌린다. 시금치가 하는 역할은 상추와 비슷하다. 다만 채소를 심을 때에도 궁합을 맞춰주는 것이 좋다. 내 경험으로 보아 마늘은 상추와, 양파는 시금치와 함께 있을 때 가장 궁합이 잘 맞는다.

논에서는 보리와 밀이 자라나고 밭에서는 마늘과 상추, 혹은 양파와 시금치가 사이 좋게 크는 동안 봄이 오고 여름이 온다. 마늘 수확기가 점점 다가오는 것이다. 그 사이 상추는 잎만 뜯어서 먹고 줄기는 밭에 그대로 놓아두는 걸 잊지 말자. 상추 꽃대는 다음 작물이 자랄 때도 그늘을 드리워서 잡초가 자라지 못하도록 해준다. 하지가 가까워지면 마늘을 수확한다. 대개는 호미나 기계로 캐지만 심을 때부터 흙과 미생물을 활발하게 살린 태평 농사꾼의 밭에서는 손으로 뽑아도 전혀 힘들지 않을 만큼 흙이 부드럽다.

가볍게 마늘을 뽑아낸 자리에 이번에는 눈 딴 감자를 심어보자. 마늘 뽑아낸 자리에 감자를 차례차례 놓기만 하면 된다. 다만 마늘을 심었던 자리에 그대로 다 심으면 너무 촘촘해지므로 40∼50cm 간격으로 띄엄띄엄 놓는다. 감자를 심지 않은 빈 자리가 아깝다면 그곳에는 콩을 심는다. 겨울에 심었던 상추나 시금치가 꽃대를 높이 올려서 그늘을 드리워줄 테니 잡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감자 사이사이에 콩을 심는 데는 또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감자잎에는 벌레가 유난히 많다. 그런데 그 곁에 콩을 심어주면 벌레가 온통 콩잎으로 모여든다. 벌레에게 감자잎 대신 콩잎을 내주는 것이다. 콩은 벌레가 뜯어먹든 황소가 뜯어먹든 잎을 많이 뜯길수록 많이 열린다. 자칫, 벌레가 있다고 약을 쳐주면 콩은 열리지 않고 잎만 무성해질 수 있다. 이제 감자는 감자대로 크고 콩은 콩대로 잘 크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알뿌리가 토실토실해지고 콩이며 참깨가 타글타글 익을 때까지는 밭에 나갈 일이 없다. 농약 칠 필요도 없고, 비료를 줄 필요도 없고, 김맬 일도 없으니 그저 태평하게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마침내 때가 되면 밭으로 가서 참깨와 콩부터 걷어온다. 나중에 고구마나 감자를 캐면 넝쿨은 확확 걷어내되 그 자리에 그대로 두는 걸 잊지 말 아야 한다. 그걸 양분 삼아 살아가면서 농사에 도움을 주는 고마운 농사꾼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고구마랑 감자를 캐낸 자리에 이번에는 무나 배추를 심는다. 그리고는 김장철이 될 때까지 밭에는 또 사람 손길이 필요 없어진다. 그러다가 서리가 내리고 선듯선듯 찬기운이 감돌면 김장 채소를 거둬 들이면 된다. 무, 배추 빠져나간 자리에는 또다시 마늘이나 양파가 자리잡는다. 대신 상추와 시금치는 일삼아 심지 않아도 그만이다. 지난 여름. 꽃대가 한창 올랐다 진 다음 씨앗이 넘치도록 떨어졌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다음 겨울에도 밭에는 마늘과 상추가, 양파와 시금치가 새봄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만하면 우리가 먹을 채소는 충분히 길러낸 셈이다. 그런데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무슨 까닭인가. 마늘, 양파, 상추, 시금치, 고구마, 감자, 참깨, 콩‥‥‥ 그러고 보니 고추, 고추가 빠졌다.

고추 얘기만 나오면 제아무리 태평한 나도 아직은 역부족함을 느낀다. 관행농법이 자리잡으면서 가장 약해진 품종이 바로 고추다. 요즘의 고추는 비료를 하지 않으면 크지도 않고 농약을 치지 않으면 버티지 못한다 특히 탄저병은 씨앗 속에 이미 바이러스가 침투해 있다고 믿어도 좋을 만큼 기승을 부린다. 종자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종자에 대한 얘기는 뒷장에서 다시 할 기회가 있을 테지만 아무튼 고추만큼 종묘 상인에게 톡톡히 이용당하는 작물도 드물다.

연구 끝에 나는 몇 년 전 고추 품종을 새로 만들었다. 계속 개량하는 중이지만 그나마 비료나 농약을 치지 않아도 버틸 수 있는 종자다. 최근에는 해남과 나주지역에 있는 회원들에게도 조금씩 나눠줄 만큼 번식시켰다.

그 고추를 심을 때도 궁합을 맞춰주고 있다. 바로 열무다. 열무는 고구마처럼 강한 햇빛을 좋아하지 않는 고랭지 작물이다. 하지만 고추가 그늘을 만들어주면 고랭지가 아니라도 맛 좋은 열무를 생산할 수 있다. 열무 외에도 고추는 가지와 궁합이 잘 맞는다. 가지꽃으로 수정한 고추는 크면서도 맛이 좋아 일석이조의 효과를 볼 추 있다.

이런 식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지만, 그래도 고추만 생각하면 답답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나 혼자만 튼튼한 종자를 만들어 키운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서이다. 시행착오를 겪고는 있지만 다행히도 회원들을 통해 차츰차츰 보급되고 있다는 사실이 유일한 희망이다. 마늘과 함께 우리가 가장 즐겨 먹는 고추만큼은 튼튼하게 지켜야겠다는 마음으로 씨앗은 무상으로 보급하고 있다. 회원들 또한 이웃들에게 조금씩이나마 나눠주고 있다.

아직은 너무나 미미한 수준이지만 작은 시냇물 줄기가 강을 이루듯 언젠가는 농약과 비료가 필요없는 튼튼한 고추가 우리 땅 가득 빨갛게 익어갈 날이 있으리라 믿는다.

그밖에 읽을 거리

이 책을 읽고

많은 분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입니다. 많이들 사서 보십시오.

이영문 선생님, 한번도 뵌적 없지만 큰 가르침, 잘 받았습니다. 감사드리며, 여기서는 이 책에 소개된 내용 일부를 알리고자 합니다. - 김민수

생산자가 지켜야 할 바른 먹거리 만들기 실천 방법

소비자가 지켜야 할 바른 먹기리 만들기 실천 방법

 다시 50년 전처럼 선진 농업 국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오직 자연을 살리는 길밖에 없다.  인위적인 방법은 모두 배제하고 자연적으로 농사지은 농산물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풍토가 되어야 비로소 선진 농업국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흙이 포슬포슬 살아나고 해가 갈수록 종자가 건강해지는 들판, 거기서 생산되는 먹거리 덕분에 몸도 가뿐하게 살아나는 세상, 그날을 준비하며 나는 계속 태평하게, 그러나 치열하게 농사를 지을 것이다. - 이영문, 이책에서 쓰신 "글을 마치며 - 30년의 후의 꿈에서" 뽑음.

꼭 꿈을 이룩하시기 바랍니다. 저도 제 꿈을 이루도록 열심히, 치열하게 살겠습니다. - 김민수

이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농사꾼 이야기 (last edited 2008-06-23 01:38:20 by Minsoo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