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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닮은 임신, 태교 그리고 출산
“아비의 낳음, 어미의 기름, 스승의 가르침은 모두 필요하다. 하지만 병을 잘 고치는 의사는 병이 생기기 전에 치료하듯 교육을 잘 시키는 사람도 태어나기 전부터 가르치니 태어나서 받은 스승의 십 년 교육은 뱃속에서 받은 어미의 열 달 기름에 미치지 못하고 어미의 열 달 기름은 아비의 낳음 하루만 못하다.”
정조 24년 사주당 이씨가 쓴 「태교신기」에 나오는 글귀이다.
최근 태교명상음반을 낸 김도향씨는 이것을
잉태할 당시 부모의 영혼상태와 파장이 비슷한 영혼이 끌려오기 때문에 임신 전부터 태교를 해야 한다고 표현했다.
그렇게 임신 전부터, 임신 순간, 또 낳는 그 날까지의 모든 행위들이 아이의 육체적 건강뿐 아니라 정신과 영혼의 건강까지도 결정짓는다는데….
그렇다면 어떠한 마음자세로 어떤 방법을 통해 잉태하고 낳고 기를 것인가.
몇 가지 글을 통해 ‘한 생명의 깃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왜 아기를 집에서 낳았어요?
임영신 씀.
집안 일이나 산후 조리나 아기 돌보는 일이나 아직은 서툴다는 임영신님. 서툴기 때문에 몸은 더욱 바쁘지만 그간 해 왔던 대전애육원 돕는 일도 놓지 않았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전국 어디든 찾아가 만나고 함께 공부하는 적극적인 그녀는 웃음소리마저 시원해 그 소릴 들으면 쳇증이 가시는 듯 하다.
겨울 나무들이 제 살을 헤쳐 여린 봄 꽃잎들을 피워 무는 사이 저는 엄마가 되었습니다. 주사 하나 맞는 일도 무서워 눈물바람을 하던 제가 온몸의 뼈마디가 열리고 세포들이 모두 열려 제 몸에 길 하나 내는 해산의 언덕을 지나왔습니다.
한 사람의 생에 시원(始原)이 되어 준다는 일이 이토록 가파른 통증일 줄은 몰랐습니다. 고통의 정점을 지나 내 몸이 생명의 문이 된 순간, 그 생명이 내 배 위에서 뜨거운 체온으로 만져진 순간 태어난 것은 아기가 아니라 엄마로서의 저였습니다. 그렇게 아기는 우리를 여자에서 엄마로 남자에서 아빠로 거듭나게 하며 생의 한 강을 건너 저희에게 왔습니다.
임신 - 신의 임재
임신, 신의 임재(臨在)라 하지요. 가만히 내 속에 생명을 움틔우기 시작한 날부터 아기는 내 말과 마음과 몸을 향해 늘 깨어 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내 먹는 것이 그대로 아기의 몸이 되고 내 말과 마음의 생각이 아기의 마음바탕을 빚어간다는 사실 앞에서 경외 없이 어찌 일상을 꾸려갈 수 있겠습니까.
서툰 살림살이, 여물지 못한 손끝으로 지어내는 밥이며 빨래들이 아직도 풋내 가득한 결혼 생활에 어느 날 문득 아기가 찾아왔습니다. 말하고 글쓰고 책읽는 삶에서 밥짓고 빨래하는 삶까지 두루 제 삶을 에우르며, 나 그 동안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살아내었나 가만히 되짚어 봅니다. 내가 마음에 담고 생각으로 뿌리 내리던 모든 것과 내가 꾸려 가는 살림의 간극 위에서 한 걸음 떼어 놓기가 어렵던 시절, 박노해 시인의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읽었습니다. 감옥에서도 새벽에 일어나 명상을 하고 시를 짓고 영어 공부를 하며 안으로의 길을, 스스로의 운동성을 더욱 아름다운 생명력으로 치환해 가는 한 시인은 제게 이렇게 말을 걸어 왔습니다. “몸 통하지 않는 진리는 모두 거짓입니다.”
나는 그 동안 내 입술과 머리를 거쳐간 숱한 진리로부터 얼마나 비켜 서 있었던가. 그것을 읽고 말할 줄 아는 것으로 마치 내 삶이 그러한 것처럼 가장(假裝) 혹은 과장을 일삼았던 제게 시인이 건네 준 경책(警責)은 마음을 깊이 갈아 엎었습니다. 밥상에서, 집안을 쓸고 닦는 손끝에서, 우리의 주고받는 대화에서, 장바구니에서 묻어나지 않는 삶의 자세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곧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하지요. 허나 생각하는 대로 살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요.
몸 통하는 진리
아기를 맞이하는 새해 초입, 꽃 시절을 보내고 열매의 시절을 시작하는 한 해의 삶을 계획하며 남편과 함께 지닌 화두는 ‘몸 통하는 진리’ ‘생각하는 대로 사는 삶의 연습’이었습니다.
그 첫걸음으로 밥상을 바꾸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새 생명에게 밥이 되어 주기 위해선 먼저 우리 몸에 쌓인 독을 씻어내리고 자연치유력을 키워야 하니까요. 1일 2식, 현미밥에 야채식으로 바꾸며 우리의 대화는 밥상에서 화장실로 옮겨 갔습니다. 밥상 위에서는 마주앉아 밥을 먹어도 서로 거친 밥을 씹느라 말할 겨를이 없어 침묵만 한동안 흐를 뿐이었습니다.
하루에 한 번 먹으면 한 번 똥을 누고 두 번 먹으면 두 번 똥을 누어야 건강한 삶이라는 가르침에 하루에 몇 번 똥을 누는지, 똥의 상태는 어떤지가 주된 대화 내용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쌀알이 그대로 나오던 것이 시간이 지나 씹는 일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똥 색깔이 변하고 하루 두 번 먹으면 두 번 똥 누는, 아니 낳는 일상이 시작되었습니다.
둘째 걸음은 부모로서의 마음공부와 해산을 위한 준비였습니다. 아기를 가지면 성격이 못된 여인도 유순해질 만큼 사람의 기운이 맑아진다고 합니다. 자신의 속에 깃든 생명을 통해 밖으로 향하던 에너지가 안으로 모아져 자신을 살피게 하는 ‘내관’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아이를 낳고 나서 그 기운을 잃어버리고 아이에게 매이고 집착하는 삶으로 빠져드는 것은 그 때의 좋은 기운이 아이에게서 나왔다고 착각하지 때문이랍니다. 사실 그 기운은 자신을 살피고 조율하는 내관의 힘이었기에 자신을 향한 내관을 잃지 않으면 계속 사랑과 감사의 기운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지요. 아기를 사랑하기는 쉬워도 그 사랑에 깨어 있어 그것을 ‘무역의 애정’으로 치환해 내는 일은 쉽지 않을 터였습니다. 아기를 향한 우리의 사랑이 애착으로 빠져들지 않도록 마음을 지켜보는 깨어 있음을 향한 경계는 더없이 어려운 과제였습니다.
셋째 걸음은 폭력 없는 출산을 위한 준비와 육아를 위한 공부였습니다. 영성이 깃든 출산, 아기의 생명에너지를 지켜 주는 출산, 아기를 한 인격체로 존중해 줄 수 있는 육아를 위해 마음을 모으고 있는 저희에게 자연의학적 출산법, 영성적 육아 등에 관한 소중한 정보들이 모여지기 시작했습니다. 남편과 함께 여러 책을 읽고 때로는 책을 지으신 분들께 연락해 직접 찾아 뵙고 조언을 듣기도 했습니다. 폭력 없는 출산으로 아기를 맞이하는 일, 아기의 생명력을 믿고 자연치유력을 손상하지 않도록 기르는 일… 그에 관한 책들을 읽고 선생님들을 찾아 뵙는 일은 차라리 쉬었습니다. 정작 어려운 것은 이 현실과 제도 속에서 우리가 듣고 본 대로 아기를 낳고 키운다는 일이었습니다.
왜 아기를 집에서 낳았어요?
아기를 낳고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딸이예요? 아들이예요?’가 아니라 “도대체 왜 아기를 집에서 낳았어요?” 였습니다. 무어라 대답할지 한참을 망설이다가 “아기 낳는 일에 환자가 아니라 주인으로 참여하고 싶어서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병원은 병원에 들어서는 순간 이미 아이를 낳는 전과정에 대해 병원의 규칙을 따르도록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의 철학과 맞든 안 맞든, 아기에게 해가 되든 안 되든 순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정작 출산의 주체는 아기와 엄마이지 의사는 아닙니다. 의사는 만약의 위험을 대비한 수술과 산후의 처리를 도울 수 있을 뿐입니다. 아플만큼 아파야 열리는 삶의 길은 온전히 엄마와 아기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어둡고 고요한 자궁 속에만 있던 아기의 눈에 비춰지는 병원의 강한 조명, 분만실의 시끄럽고 낯선 소리, 온갖 화학 약품 냄새들은 아기의 시각과 청각과 후각에 큰 손상을 입힌답니다. 태어나자마자 열 달 동안 의지해 온 탯줄을 싹둑 잘리우고 엄마로부터 떨쳐져 거친 손길에 의해 거꾸로 들어올려지고 체중을 재는 등의 산후처리는 아무리 위생적이고 세심한 손길로 한다 해도 아기에겐 모두 고통으로 폭력이 되고 말겠지요.
달에서 지구에 오는 것 만큼이나 힘들고 먼 길이라는 좁은 산도(産道)를 지나 세상에 온 아기는 너무 넓고 낯선 곳에서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그 때 아기를 엄마 품에 꼭 안아 심장소리를 들려주며 어루만져 주면 아기는 이내 안심을 하고 천천히 적응을 해 간답니다. 탯줄 역시 급하지 않게 아기가 충분히 폐의 호흡에 익숙해진 후에 잘라 주고 조용한 음악, 낮은 조명 속에서 아기를 가만히 안아준 채로 충분히 있으면 아기의 심장에 뚫려 있는 난공원이 폐쇄되고 아기는 온전한 폐호흡을 시작한답니다. 그 이후 따스한 물에 천천히 부드럽게 목욕을 시켜 주고 엄마 곁에 뉘어 주면 아기는 천천히 세상을 향해 여행할 용기를 북돋우게 됩니다.
엄마 젖은 아기를 낳고 2∼3일 후에야 나오는데 이 기간은 하늘이 준 단식기간이라고 합니다. 아기는 이 기간을 충분히 견딜 만큼 에너지를 비축해서 나오기 때문에 젖이 나올 때까지 아기에게 물만 먹이면서 기다리면 아기는 몸 안의 태변을 충분히 배출해 알레르기나 소화기 질환에 걸릴 확률이 적어지고 몸도 튼튼해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끝내 우리가 원하는 방식대로 아기를 받아 줄 병원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가장 초보적인 요구인 남편의 분만 참여도 라마즈 교육을 받아야 하는 두세 군데의 큰 병원 외에는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조금 위험하더라도 집에서 출산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주위의 많은 이들이 우려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20∼30년 전까지만 해도 병원이 아닌 집에서 익숙한 이들의 목소리와 낮은 조명, 바로 안아 주는 엄마의 품 속에서 아기가 태어나지 않았습니까.
해산, 그 고통의 벽을 문으로
수소문 끝에 조산원 할머니를 모셔와 집에서의 출산을 준비했습니다. 일체의 약물투입 없이 아기에게 익숙한 공간, 낯익은 분위기 속에서 첫 만남을 갖기 위해 남편은 아기가 뱃속에서 많이 들었던 음악을 틀고 낮은 조명을 위해 촛불도 준비했습니다. 이웃들에게 집에서 아기를 낳으니 소리를 지르더라도 놀라지 말라고 부탁을 했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시아버님은 집 앞에 차를 대기해 놓으셨습니다. 깨끗이 청소한 집에서 산파 할머니와 시어머니, 남편이 함께 해산을 준비했습니다.
옛 사람들은 해산은 엄마가 하는 것이 아니라 아기 스스로 길을 여는 것일 뿐이라고 믿었다 하지요. 아기가 세상에 나올 준비가 다 되었을 때 아기의 몸에서 나오는 호르몬이 엄마의 몸에 진통을 일으키고, 그 진통이 절정에 다다를 때 몸은 길을 열고 아기는 온 힘을 다해 생의 첫 발을 내딛게 된다구요. 더욱 신비로운 건 고통이 가장 심한 그 순간에만 온몸이 열려 아기가 나올 수 있는 문이 되어 준다는 사실입니다. 고통의 순간에 열림을 향해 마음을 모으지 못하고 고통으로 빠져들면 고통은 더욱 길어지고 길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고통이 열어 주는 문, 문이 되어 주는 고통, 그 속에 생의 첫발을 내디디는 길이 놓여 있습니다. 겨울을 지난 나무만이 봄꽃을 피우듯 고통을 통과한 생명만이 생을 시작하는 것이겠지요. 삶 역시 안온함을 버리고 고통 속으로 목숨을 건 한 발을 내디딜 때 벽을 문으로 만드는 열림을 경험하는 것이니까요.
허나 고통을 향해 깨어 있는 일, 고통 속에서 제 몸에 문 하나 여는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생에 그렇게 길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또 있을까요.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고 참을 수 없는 통증에 세포들까지 신음하던 그 긴 시간들. 허리가 끊어지고 몸은 터져나갈 것 같은 통증들은 이미 의지와 인내를 넘어선 곳에까지 다다르는 것들이었습니다. 몇 분 간격으로 밀려왔다 밀려가는 통증을 바라보며 극한에 다다른 몸을 다스리느라 힘을 주기 위해 천을 잡았던 손은 껍질이 벗겨지고 눈은 튀어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자궁이 열렸는데도 아기는 산도에서 머리만 보인 채 나오지 못하고 몇 시간을 머물렀습니다. 더 오래 지체되면 아기도 산모도 위험하다며 병원에 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염려가 오가기 시작했습니다. 저 역시 더 이상 쏟을 힘도 없을 만큼 지치고 고통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그 동안 한 걸음 한 걸음 준비해 온 해산을 포기하고 수술대로 향하기엔 평생 한번뿐일 아기의 소중한 기회를, 또 우리가 준비해 온 시간들을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것만 같아 다시 한 번 마음을 곧추세웠습니다.
아기가 지닌 생명의 강인함과 내 몸이 지닌 열림의 가능성을 믿으며 다시 몸을 일으켜 앉았습니다. 앉은 채로 생명의 무게를 실어 마지막 힘을 다하기 시작하자 남편은 등 뒤에서 온 힘을 다해 배를 눌러 주었습니다. 그 순간, 가장 뜨거운 고통이 내 몸을 터뜨리며 뜨거운 생명이 쏟아 내렸습니다. 그렇게 제 살 헤치고 뼈들을 열어 젖히며 한 생명 이 세상 여행의 첫걸음을 시작했습니다.
사선을 넘어 태어난 아기의 목에는 두 겹의 탯줄이 엉긴 채로 감겨 있었습니다. 세상을 향해 나오려는 아기의 발목을 탯줄이 잡아당기고 그 당김에 목이 조인 채 산도의 압박을 견뎌야 했던 아기는 너무 힘겨워 뱃속에서 이미 태변을 쌌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오랜동안 나누어 온 서로에 대한 신뢰, 생명의 힘에 대한 신뢰가 없었더라면 그 힘겨운 길을 아기도 저도 넘기 어려웠을지 모르겠습니다. 고통 속에서 손을 놓아 버리고 싶은 순간들에 징검다리가 되어 준 것은 함께 공부하고 나누었던 대화들이었습니다.
칠순을 넘기신 작은 체구의 조산원 할머니(나이를 여쭙기 전까지는 환갑을 조금 넘긴 어르신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아기를 낳은 우에 다시 아이와 산모를 보러 들르신 길에 이야기를 누나다 보니 72세의, 그것도 산파만 50년 이상을 하신 노익장이셨다.)는 아무 것도 잡을 것이 없는 방 안에서 저를 돕기 위해 몇 시간 동안이나 기저귀 천을 가슴에 감고 제 온몸과 힘을 받아내셨습니다. 병원에 갔다면 물을 것도 없이 수술감이었다며 산파 할머니는 혀를 차십니다. 난산이었지만 아기와 저는 그렇게 고통을 견디고 이기며 벽을 문으로 밀어 올렸습니다.
다시 누워 뜨거운 아기를 배 위에 가만히 안아 보았습니다. 나오는 길이 너무 힘겨워 자지러지게 울던 아기는 배 위에서 여린 팔을 모으고 웅크린 채 제 손길 속에서 점점 울음이 잦아듭니다. 아빠가 들려 주는 음악과 할머니의 미소, 엄마의 체온 속에서 아기는 지나온 길의 힘겨움을 달래며 그렇게 생과 사의 경계를 넘어온 긴 여행길의 고단함을 씻어냈습니다. 늘 듣던 조용한 가족들의 말소리, 숨소리 속에서 씻기고 얼리우며 엄마와의 살맞춤으로 첫밤을 보냈습니다.
꽃 중의 꽃, 사람꽃
아이가 제 몸을 통해 지구여행을 시작한 날로부터 어느 새 한 달이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엄마가 되었어도 안은 품새며 어르는 손짓들이 여물지 못해 아이는 자주 보채고 불편해 합니다.
처음 젓을 빨리면서 갈라지고 부르터 피가 나오는 젖꼭지도 이제 아물어가고, 앉기 조차 힘들었던 몸에도 기운이 생겨 소소한 살림이며 일을 시작했습니다. 가끔 들르시는 어머니는 오실 때마다 아기 똥을 살피시며 아기 똥이 조금 묽거나 되기라도 하면 “에미가 가려 먹거라, 에미가 막 먹으면 애기 똥이 나쁘다” 나무라십니다. 아기의 똥을 통해 내 입으로 들어간 것들을 다시 살피듯 아기는 우리 일상에 임재한 하나님의 모습으로 우리의 모든 삶을 살피며 우리를 깨어 있게 합니다.
젖은 엄마의 피가 유방을 지나며 변한 것이라고 합니다. 젖을 먹으면서 아기는 젖만 먹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에너지를 먹는다는군요. 아기를 안은 엄마가 속으로 짜증을 내면서 입으로만 아기를 사랑한다고 말하면 아기는 이미 엄마의 짜증을 알아차린답니다. 태중에 있을 때나 품 안에 있을 때나 아기는 말이 아니라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런 아기 앞에서 저는 진실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내 말과 내 얼굴과 내 마음은 그동안 얼마나 분리되어 있었는지, 그 흐트러짐을 가만 가만 쓸어내리며 아기에게 한 마디 한 마디를 진실하게 건네는 연습을 합니다. 아기는 그렇게 저를 엄마로 인간으로 키워가고 있습니다.
여의치 않은 친정어머니 대신 저의 몸조리를 해 주느라 남편은 매일 미역국을 끓이고 밥을 짓고 빨래를 합니다. 사이사이 우는 아이를 돌봐 주고 똥기저귀도 빱니다. 아기에게 서툰 자장가도 불러 주고, 어린 시절 불렀던 노래들도 들려 주며 아빠연습을 합니다. 뱃속에서 날마다 아빠의 손길을 느끼고 목소리를 들었던 아기는 울다가도 아빠 음성이 들리면 아직 열리지 않은 시선이건만 아빠를 빤히 쳐다보다가 울음을 잦아내리곤 합니다.
문 밖으로 아기의 흰 기저기를 빨아 너는 남편에게 동네 아주머니 말 거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아기 예뻐요?” “네 예뻐요.” 남편의 눈부신 손 끝에서 기저귀가 파르륵 펴지고 우리집 앞엔 금줄보다 환한 빨래들이 널립니다. 몸조리 해주랴, 아기 돌보랴 입술이 부르튼 남편의 얼굴을 들여다 보며 사랑은 고통의 감내임을, 시린 물살을 함께 건너는 걸음임을 깊이 느껴 봅니다. 나의 아이가 태어났다고 말하지 말고 이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라고 말하라는 누군가의 경책을 가슴에 새기며 아이를 가만가만 안아봅니다.
아기를 낳던 날 곁에서 아기를 함께 받아 주신 어머니는 “꽃중에 사람꽃이 제일 예쁘다” 하시며 환히 웃으셨습니다. 제 온몸을 열어 피워올린 사람꽃. 내가 듣지 못하는 내 심장 소리를 듣고 자란 아이, 내가 먹어 보지 못한 내 피와 뼈를 먹고 자란 아이, 내가 들어가 보지 못한 내 몸 속에서 내 마음과 몸을 먹고 자란 아름다운 꽃 한 송이 피워 올려 한 생명의 봄을 열었습니다.
다시 봄꽃 나무들 앞에 가만히 내려섭니다. 꽃 한송이 피워 올리느라 얼마나 힘겨웠느냐고 다독다독 나무등걸을 쓰다듬어 봅니다.
* * *
아기 이름은 이늘봄입니다. 쬐그만 고추를 달고 나왔구요. 늘봄은 늘 깨어 있어 봄을 열어가는 삶이 되라는 뜻입니다. 늘 깨어서 보면 안으로 기운이 모아지고, 모아지면 존재가 따뜻해져 속 꽃 피워내는 봄의 시절을 살아가는 삶이 시작되니까요. 곧 군목으로 입대해야 하는 아빠(이도영)의 정성어린 보살핌 속에서 3.8킬로그램으로 태어난 늘봄이는 어느 새 5.5킬로그램으로 자랐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