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월간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입력한 글월입니다. 저희집 젓째를 일신 조산원에서 낳았습니다. 몇 월호였는지는 나중에 올리겠습니다. 자료를 정리하는 중에 발견해서 이곳에 올립니다. - 2009/3/29 MinsooKim
조산원은 미개인들만 오는 곳?
글메김꾼 이혜영
“아이 참, 그런 얘기는 부끄러워서 못하는데…. 큰일났네. 부산에서 학교 졸업하고 서울 와서, 그게 25년 전이니까 73년도네요. 간판도 없이 입구에다 ‘오늘부터 개업합니다’하고 종이 쪽지를 붙여 놨거든요. 세상에 그 날 누가 애가 놓으러 올 줄 알았나. 주사약도 없고 임산부용 패드도 없는데 새벽 1시에 누가 문을 쾅쾅 두드리는 거예요. 아이고 곧 애가 나올 것 같다는 거예요. 차마 처음 애를 받는 거란 말을 못해서 산모를 눕혀 놓고 가까운 병원 응급실에 가서 통사정을 해 가지고 준비물을 얻어 왔어요. 덜덜 떨면서. 어찌나 무섭던지.
아, 그래 가지고 숨이 턱에 닿아서 돌아오니까, 산모가 손가락으로 배 아래쪽을 막 가리키는 거예요. 이렇게.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어요. 그래도 할 수 없이 치마를 들추고 팬티를 내리는데, 글쎄 아기 얼굴이 쑥―나와 있는 거예요. 생각해 보세요. 아이구.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어서 아기를 받아 탯줄을 잘랐죠. 아기를 받은 게 아니고 줏은 거나다름없었어요. 남의 속도 모르는 애기 아빠는 고맙다고, 고맙다고 하면서 진료비를 주는데 내가 한 게 있어야 그걸 받죠. 부끄러워서 도망다니느라 혼났어요. 그 애가 벌써 어른이 다 됐어요.“
서울 답십리 4거리 뒷골목으로 접어들면 요즘 세상에 누가 찾아올까 싶은 조산원 간판이 씩씩하게 붙어 있다. 서란희(50세) 원장은 25년 전에 이 곳 일신조산원을 개업해 이제껏 셀 수 없이 많은 새생명을 받아냈다. 20여 년 전만 해도 서울에 7∼8백 개의 조산원이 있었지만 이제 남은 곳은 고작 12개 뿐. 조산원의 문을 두드리던 사람들은 반짝반짝 빛나는 대리석 멋드러지는 제일 비싼 병원, 제일 유명한 의사를 찾아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못 먹고, 못 입던 시절, 돈 몇 만 원이 없어서 병원에서 쫓겨난 사람들, 병원에서는 안 되겠다는 난산 중의 난산을 맞은 사람들이 서씨를 찾았다. 심지어는 쌈박질로 머리가 터져 문 앞에 쓰러져 있는 사람, 칼부림으로 손등이 찢겨나가 달려온 사람들도 그녀는 내칠 수가 없었다. 위기에 내몰린 사람들은 도와야 한다는 게 그이가 아는 전부였기 때문이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어요. 한밤중에 길가에서 어떤 남자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요. 몸이 퉁퉁 부은 만삭의 여자가 길바닥에 쓰러져 있고, 그 남편은 만 원짜리 석 장을 갈기갈기 찢으며 허공을 보고 짐승처럼 소리를 지르더니 그 돈을 다 날려 버리는 거예요. 그 사람들은 젊은 노동자 부부였어요. 부인이 임신중독증에 걸려 제왕절개를 해야 하는데 보증금 10만 원에 월세 3만 원짜리 방에 사는 사람들한테 수술비 50만 원이 있을 리가 없지요. 가진 돈이라고는 그 때 찢어 버린 3만원이 다였던 거예요. 병원에서 내몰리고 그렇게 울부짖고 있었던 거죠.”
서씨는 자연분만을 해 보기로 했다. 혈압은 높고 몸은 부은 데다 요도가 막힌 산모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의료사고로 구속될 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다행히도 건강하게 사내아이를 낳았다. 그 아들이 어느덧 스무 살. 지금도 그 부부는 가난하다. ‘가난하지만 아들이 공부를 잘해 주니 사람 취급 받고 산다’는 그들을 보면 지금도 뿌듯한 보람이 솟아난다.
요즈음 그이의 조산원을 찾는 이들은 수술하지 않고 자연분만을 원하는 사람들과 알음알음으로 찾아오는 시골사람들이다. 서씨를 찾는 산모는 다음 번엔 무조건 남편과 함께 와야 한다. 계면쩍어하는 남편을 앉혀 놓고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이렇다.
“아기 머리에는 안테나가 있어요. 그게 아빠한테로 향해 있는 거예요. 엄마만 태교를 하는 게 아녜요. 아빠가 어디 가서 노름을 하는지, 나쁜 마음을 먹고 있는지, 슬퍼하는지, 기뻐하는지, 아기는 다 알아요. 그게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해지는 거예요. 건강하고 착한 아기를 얻으려면 부인도 사랑하고 아껴 주세요.”
그 때부터 산모, 남편, 가족과 서씨가 한 몸이 되어 출산을 준비해 나간다. 남편의 변화에 제일 즐거워하는 것은 산모. 골반 모형과 태아처럼 만든 인형으로 아기의 상태를 보여 주고 어떻게 몸이 열려 아기가 나올 수 있는지를 설명하며 자신감을 심어 준다. 출산일에는 아빠와 함께 서로 손을 맞잡고 아기를 기다린다.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간호사가 안고 휙 가버리는 게 아니라 엄마 품에 가 편안히 안긴다. 그리고 나서 서씨가 탯줄을 자르는데 간혹 임신 중에 바람을 피우던 남편이라면 가위를 불쑥 남편에게 내밀기도 한다. 그러면 남편은 떨리는 손으로 탯줄을 자르면서 눈물을 흘린다. 핏덩어리 자식을 손수 받으며 생명에 대한 경외를 느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으랴.
산모는 출산 후 이삼 일 정도 분만실 옆에 마련된 방에서 몸조리를 할 수 있다. 입원실인 셈이다. 아담한 방이 세 개. 아기와 엄마가 함께 있도록 꾸며져 있다. 방은 그리 깨끗하지도 또 지저분하지도 않고 그야말로 내 방 같다. 산모와 아기의 편안함을 위해서는 그저 평소와 같은 게 제일 좋다는 것이다. 서씨의 배려가 따스하게 느껴지는 방이었다. 퇴원 후에도 부모들은 누구보다 아기의 발육과정을 잘 아는 서씨에게 아기의 변이 너무 묽다거나, 젖을 잘 빨지 못한다거나 하는 상의를 해온다. 그렇게 자신이 받은 아기를 함께 키워가는 것이다.
그녀는 이제껏 돈을 위해 이 일을 한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진료비는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형편 따라 주는 대로 받아왔다. 고마움의 표시로 정성스럽게 포장된 손수건을 받기도 했고, 집에서 키운 예쁜 호박을 받기도 했다. 20년 전에 내지 못한 진료비를 편지와 함께 붙여오는 사람도 있었다. 평생 아기 받는 것밖에 모르고 살아온 그이는 친구들에게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으로 놀림을 받기도 한다.
“아기를 받으려고 산모를 바라보면 제 눈의 일정한 틀 같은 것 안에 아기의 모습이 보여요. 산모와 아기가 그 틀 안에 모두 들어오는 거예요. 옛날에는 한 달에 백 명이 넘는 아기를 받아내기도 했어요. 조산술은 학교에서 배운 게 아니라 산모들이 가르쳐 준 것이지요.”
어렵던 시절에 서럽고 힘들게 아기를 낳아야 했던 어머니들은 우리 딸만은, 우리 며느리만은 누구보다 편하게 출산을 맞았으면 하는 보상심리에서 인간미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종합병원으로, 유명한 산부인과로 무턱대고 찾아간다. 조산원은 미개인들이나 가는 지저분한 곳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임신과 출산을 치르는 데는 무엇보다도 산모와 아기 그리고 주변사람들 사이의 믿음과 사랑의 교감이 중요하건만 몸집만 커진 병원 의료체계가 자꾸 사람을 소외시키는 건 아닌지.
서란희 원장은 자신이 운영하는 이곳이 마지막 조산원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이 일을 하늘이 주신 소임으로 알고, 봄이면 개나리를 꺽고 가을이면 낙엽을 모아 그녀를 찾아 주는 사람들과 그들의 아기와 함께 계절 이야기를 오래오래 하고 싶은 것이다.
일신조산원: 02-2244-28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