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터에 떠도는 글월을 다듬어서 올립니다.

홍길동전이라(정 명기 77장 본)

조선국(朝鮮國) 세종대왕(世宗大王) 즉위 십오년에 홍화문(弘化門) 밖에 한 재상(宰相)이 있으되, 성(姓)은 홍(洪)이요 명(名)은 문이니, 청렴강직(淸廉强直)하며 덕망(德望)이 거룩하니 당세(當世)의 영웅이라. 일찍 용문(龍門)에 올라 벼슬이 한림(翰林)에 처하였더니 명망(名望)이 조정(朝廷)에 으뜸됨에 전하 그 덕망을 승(勝)이 여기사 벼슬을 돋우어 이조판서(吏曹判書)로 좌의정(左議政)을 하였으니, 승상(丞相)이 국은(國恩)을 감동하여 갈충보국(竭忠報國)하니, 사방에 일이 없고 도둑이 없음에, 시화연풍(時和年豊)하여 나라가 태평하더라.

일일은 승상이 난간(欄干)에 기대어 잠깐 졸더니 한 풍(風)이 길을 인도하여 한 곳에 다다르니, 청산(靑山)은 암암(巖巖)하고 녹수(綠水)는 양양(洋洋)한데, 세류(細柳) 천만 가지 녹음(綠陰)이 파사(婆娑)하고 황금 같은 꾀꼬리는 춘흥(春興)을 희롱하여 양류간(楊柳間)에 왕래하며 기화요초(琪花瑤草) 만발한데, 청학(靑鶴) 백학(白鶴)이며 비취(翡翠) 공작(孔雀)이 춘광(春光)을 자랑하거늘, 승상이 경물(景物)을 구경하며 점점 들어가니, 층암절벽(層岩絶壁)은 하늘에 닿았고 구비구비 벽계수(碧溪水)는 골골이 폭포(瀑布)되어 떨어지는데, 길이 끊어지고 갈 바를 모르더니, 문득 용(龍)이 물결을 헤치고 머리를 들어 고함하니 산학(山壑)이 무너지는 듯하더니, 그 용이 입을 벌리고 기운(氣運)을 토하여 승상의 입으로 뵈이거늘 깨달으니 평생(平生) 대몽(大夢)이라. 내념(內念)에 헤아리되, “필연(必然) 군자(君子)를 낳으리라.” 하며, 즉시 내당(內堂)에 들어가 시비(侍婢)를 물리치고 부인을 이끌어 취침(就寢)코자 하니, 부인이 정색(正色) 왈(曰),

승상이 생각하신즉 말씀은 당연하오나 대몽(大夢)을 허송(虛送)할까 하여 몽사(夢事)를 이르지 아니하시고 인(因)하여 간청(懇請)하시니, 부인이 옷을 떨치고 밖으로 나가시니, 승상 무료(無聊)하신 중에 부인의 도도한 고집이 애닯아 무수히 자탄(自歎)하시고 외당(外堂)으로 나오시니, 마침 시비(侍婢) 춘섬이 상(床)을 들이거늘, 좌우(左右) 고요함을 인하여 춘섬을 이끌고 원앙지락(鴛鴦之樂)을 이루시니 적이 울화(鬱火)를 덜으시나 심내(心內)에 못내 한탄하시더라.

춘섬이 비록 천인(賤人)이나 재덕(才德)이 순직(純直)한지라. 불의(不意)에 승상이 위엄(威嚴)으로 친근(親近)하시니 감(敢)히 위령(違令)치 못하고 순종한 후로는 그달부터 중문(中門) 밖에 나가지 아니하고 행실(行實)을 닦으니, 그달부터 태기(胎氣) 있어, 십삭(十朔)이 당함에 거처하는 방에서 운무(雲霧) 영롱(玲瓏)하며 향(香)내 기이하더니 혼미(昏迷) 중에 해태(解胎)하니 일개(一介) 귀남자(貴男子)라. 삼 일 후에 승상이 들어와 보시니 일변(一邊) 기꺼우나 그 천생(賤生)됨을 아끼시더라. 이름을 길동이라 하니라.

아이 점점 자람에 기골(氣骨)이 비상(非常)하여, 한 말을 들으면 열 말을 알고 한 번 보면 모르는 것이 없더라.

일일은 승상이 길동을 데리고 내당(內堂)에 들어가 부인을 대하여 탄식 왈,

부인이 그 연고(緣故)를 묻자오니, 승상 양미(兩眉)를 빈축(嚬蹙)하여 왈,

인하여 몽사(夢事) 설화(說話)하시니 부인이 추연(惆然) 왈,

세월이 여류하여 길동의 나이 팔세라. 상하(上下) 다 아니 칭찬하는 이 없고 대감도 사랑하시나, 길동은 가슴의 원한이 부친을 부친이라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함에 스스로 천생됨을 자탄(自歎)하더니, 추칠월(秋七月) 망일(望日)에 명월(明月)을 대하여 정하(庭下)에 배회(徘徊)하더니, 추풍(秋風)은 삽삽(颯颯)하고 기러기 우는 소리는 사람 외로운 심사(心思)를 더욱 돕는지라. 홀로 탄식하며 왈,

하며 탄식 왈,

하며, 인하여 강개(慷慨)함을 이기지 못하여 칼을 빼어 들고 달빛을 좇아 검무(劍舞) 희롱(戱弄)하더니, 이 때에 대감이 추월(秋月)의 명랑함을 사랑하여 창을 열치고 월색(月色)을 구경하다가 길동이 제 방에서 나와 배회(徘徊)하며 칼춤 춤을 보시고 대왈(對曰),

시동(侍童)을 명하여 부르시거늘, 길동이 즉시 칼을 빼어 가지고 대감 전에 나아가 절하여 뵈오니, 대감이 가로대,

길동 부복(俯伏) 대왈,

대감이 다시 문왈(問曰),

길동이 공경(恭敬) 대왈,

하고, 인하여 슬피 울거늘, 대감 마음에 긍측(矜惻)하여 왈, ‘십세(十歲) 소아(小兒)가 세상 고락(苦樂)을 짐작(斟酌)하고 항상 서러워하니 만일 제 뜻을 위로하면 마음이 방탕(放蕩)하리라.’ 하며 크게 꾸짖어 왈,

하신대, 길동이 대감 꾸중을 들음에 다만 눈물만 흘리고 난간(欄干)에 복(伏)하였더니, 식경(食頃) 후(後)에 대감이 물러가라 하시거늘, 길동이 침방(寢房)으로 돌아와 눈물 씼고 모친(母親) 침소(寢所)로 들어가 어미를 붙들고 왈,

언파(言罷)에 눈물이 비 오는 듯하거늘, 그 어미 대경(大驚) 왈,

한데, 길동이 대왈,

하거늘, 그 어미 가로대,

길동이 왈,

그 어미 길동의 말을 듣고 비회(悲懷)를 이기지 못하여 서로 위로하더라.

원래 곡산모(谷山母)는 곡산(谷山) 기생(妓生)이라. 대감이 시첩(侍妾)을 삼아 총애(寵愛)하더라. 주옥취잠(珠玉翠簪)은 아니 가진 것이 없음에 마음이 방자(放恣)하고 뜻이 교만(驕慢)하여, 가상하(家上下)에 혹 불합(不合)한 일이 있을시면, 한 번 참소(讒訴)에 생경지폐(生梗之弊)가 나는지라. 이러한고로 남이 천(賤)히 되면 좋게 여기고, 귀(貴)히 되면 시기(猜忌)하더라. 대감이 용몽(龍夢)을 얻어 길동을 낳으심에, 인물이 비범하고 풍채(風采) 탈속(脫俗)하여 영웅의 기상이라 칭찬하고 사랑하심을 보고, 그로 말미암아 총(寵)을 춘섬에게 앗기올까 앙앙(怏怏)하던 차에 대감이 가로대,

하더라. 곡산집이 슬하(膝下)에 일점(一點) 혈육(血肉)이 없어 가장 무료(無聊)하더라.

길동이 점점 자라남에 가중(家中) 상하(上下)의 기리는 소리 전파(傳播)하니, 지혜(智慧) 흩어 요악(妖惡)한 무녀(巫女) 상자(相者)를 체결(締結)하여 길동을 해(害)하라 하니, 무녀(巫女) 상자(相者) 등 날마다 왕래하며 계교(計巧)를 장(壯)할새, 초란이 가로대,

하니 무녀 상자 등이 재물을 탐(貪)하여 사생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희왈(喜曰),

하거늘, 초란이 대희(大喜)하여 가로대,

하고, 즉시 은자(銀子) 오십 냥(五十兩)을 주어 보내니, 무녀(巫女) 하직하고 돌아가 동심(同心)하여 상자(相者)의 집에 가 이르대, 지금 홍승상 댁 시첩(侍妾) 초란이 하던 말을 설화(說話)하고 은자(銀子)를 뵈인대, 소인(小人)의 욕심이 재물을 보면 몸을 돌아보지 아니하는지라. 즉시 무녀를 따라 홍승상 댁에 이르니 초란이 대희(大喜)하여 초면지예(初面之禮)를 행하고 주찬(酒饌)을 내어 대접하며 저의 전후(前後) 소원을 이르대, 상자(相者) 흔연(欣然)히 허락하고 돌아가니라.

이튿날 대감이 부인으로 더불어 길동을 칭찬 왈,

하신대, 부인이 정히 대답코자 하시더니 문득 일위(一位) 여자 의표(儀表) 비상(非常)해 보이는데 밖에서 들어와 당하(堂下)에 재배(再拜) 아뢰거늘, 대감이 가로대,

그 여자 답왈(答曰),

하거늘, 부인 그 자태(姿態) 명명(明明)함을 사랑하여 정하(庭下)에 좌(座)를 주고 주찬(酒饌)을 내어 대접한 후에, 대감이 가로대,

그 여자 심중(心中)에 암희(暗喜)하여 대감부터 상하노소(上下老少)를 한 번 보고 폄논(貶論)하되, 선후(先後) 길흉(吉凶)을 일일이 아뢰대, 대감과 부인이 칭찬을 마지 아니하시고 길동을 가리켜 가로대,

하신대, 상녀 이윽히 보다가 일어나 절하고 가로대,

부인은 잠잠하시고 대감이 가로대,

여자 이윽히 보다가 물러앉으며 놀라는 체하고 긍긍(兢兢)하거늘, 대감과 부인 이윽히 분부 왈,

상녀 주저(躊躇)하다가 대왈,

부인 가로대,

그 상녀 좌우 번거함을 불평하는 척하여 이르지 아니하거늘, 대감이 조용히 내당(內堂)에 들어 상녀를 청하여 물으신대, 상녀 그제야 가만히 여쭈오대,

하거늘, 대감이 듣기를 다함에 말씀을 식경(食頃)이나 못하시다가 이로대,

상녀 소왈(笑曰),

대감이 탄식하고 은자(銀子) 백 냥(百兩)을 주어 왈,

상녀 고두사례(叩頭謝禮)하고 돌아가니라.

대감 이 말로 좇아 길동이를 동작(動作)을 살피며 글을 읽히되, 충효겸전(忠孝兼全) 찬(讚)하고 왕망(王莽) 동탁(董卓) 류(類)는 천추(千秋) 난신적자(亂臣賊子)라 가히 본받지 못하게 하고, 쓸데 없는 자식이라하여 천대(賤待) 자심(滋甚)하거늘, 길동이 평생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후원(後園) 심당(深堂)에 재주를 감추고 밤낮으로 손오병서(孫吳兵書)와 육도삼략(六韜三略)이며 천문지리(天文地理)를 익히더니, 수월(數月)이 지내매 일일은 대감이 탐지(探知)하고 더욱 근심하여 가로대,

하고, 일가(一家) 문중(門中)을 모아 차사(此事)를 구하고 아이를 죽여 환(患)을 없게하리라 하시더라.

이 때 무녀(巫女) 상자(相者)로 하여금 대감이 천륜지정의(天倫之情誼)를 의심케 하고, 한 특재라 하는 자객(刺客)을 청하여 천금(千金)을 주고 정을 맺어 길동을 해(害)하라 하더라.

일일은 초란이 대감께 고왈(告曰),

대감이 대성(大聲) 왈,

초란이 염용(斂容) 대왈,

대감이 눈썹을 찡그리고 가로대,

엄명(嚴命)하시니 초란이 황공(惶恐)하여 다시 참소(讒訴)치 못하더라.

대감이 이 일로 마음이 주야(晝夜) 위구(危懼)하나 부자지정(父子之情)을 측은히 여겨 후원(後園)의 수간(數間) 별당(別堂)을 소쇄(掃灑)하고 길동을 있게 하니, 초란은 사람 신(身)을 불평(不平)케 한고로 길동 한(恨)이 골수(骨髓)에 박혀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서안(書案)을 의지하여 주역(周易) 육십사괘(六十四卦)며 음양조화(陰陽造化) 천문둔갑(天文遁甲)을 모를 것이 없는지라. 대감이 길동의 탈속(脫俗) 비범(非凡)한 줄을 알으시나 상녀(相女)의 말을 들으심에 자연 마음이 변하여 가로대,

하시고 심사(心思) 자연 불평(不平)하나, 자식을 불쌍히 하고 침식(寢食)이 불안하여 기부(肌膚) 수척(瘦瘠)하고 혜옴 환난(患難)하여 길동으로 말미암아 병이 점점 침중(沈重)하시니3, 가만히 길동을 죽여서 대감의 마음을 위로하시면 좋을까 하고, 또 계교 없음을 한탄하더라. 초란이 부인께 고왈(告曰),

부인이 가로대,

초란이 암희(暗喜)하여 왈,

하시거늘, 부인과 길현이 눈물을 흘리며 가로대,

한대, 초란이 암희(暗喜)하여 제 방으로 와 특자를 청하여 술을 권하며 후사(後事)를 설화(說話)하며 왈,

하고 은자(銀子) 백 냥(百兩)을 주니 특자 대희(大喜)하며 은자를 받고 왈,

하고, 밤을 기다려 죽이려 하더라.

이 때 초란이 특자를 보내고 내당에 들어가 부인께 고한대, 부인이 탄식 왈,

길현이 답왈(答曰),

하고,

부인이 종야(終夜)토록 번민(煩悶)하니 잠을 이루지 못하더라.

각설. 이때 길동이 고요한 별당(別堂)에 앉아 등촉(燈燭)을 밝히고 주역(周易)을 잠심(潛心)하더니 야색(夜色)은 삼경(三更)이라. 서안(書案)을 밀치고 정히 취침코져 하더니, 문득 창 밖에서 까마귀 세 번 울고 가거늘, 길동이 놀라 가로대,

하고 생각하되, ‘까마귀 곡곡 세 번 울고가니 자객(刺客)이라.’ 하는 글이 있으니, 이는 다른 사람 칼로 찌를 괘(卦)라. 심중(心中)에 내념(內念)하고 가로대, ‘어떠한 흉인(兇人)이 나를 해(害)하려 하는가.’ 소매 안으로 한 괘(卦)를 얻으니 선흉후길지상(先凶後吉之相)이라. ‘아무러나 방신지계(防身之計)를 행하리라.’ 하고, 방중(房中) 사진(四陣)을 벌리고 그 방위(方位)를 바꾸어 남방(南方) 이허중(离虛中) 괘(卦)는 북방(北方)으로 옮기고, 북방(北方) 감중련(坎中連)은 남방(南方)에 붙이고, 동방(東方) 진하련(震下連)은 서방(西方)에 옮기고, 서방(西方) 태상절(兌上絶)은 동방(東方)에 붙이고, 건방(乾方) 건괘(乾卦)는 손방(巽方)에 옮기고 손방(巽方) 괘(卦)는 곤방(坤方)에 옮기고, 곤방(坤方) 곤괘(坤卦)는 간방(艮方)에 옮기고서라. 동서남북(東西南北)을 각 방위를 바꾸어 육정육갑(六丁六甲)을 가운데 두고 때를 기다리더라. 이는 둔갑장신(遁甲藏身)하는 비계(秘計)라.

이 때 특자 비수를 옆에 끼고 후원 담을 넘어 길동거처하는 초당(草堂) 난간(欄干) 앞에 이르러 보니, 사창(紗窓)의 촉영(燭影) 희미하고 인적이 고요하거늘, 잠을 들면 죽이고저 하더니 문득 까마귀 남(南)으로 좇아 창 앞으로 지나가며 슬피 울거늘, 특자 마음에 대경(大驚)하여 가로대,

하고, 몸을 날려 초당 처마에 붙어 방중(房中)을 살펴보니, 일개 선동(仙童)이 책상을 의지하여 팔괘(八卦)를 희롱하며 진언(眞言)을 염송(念誦)하니 문득 음풍(陰風)이 심하며 정신이 산란(散亂)한지라. 특자 괴히 여겨 칼을 더욱 굳게 잡고 탄식 왈,

마음이 울울(鬱鬱)하여 돌아가고자 하다가 다시 생각하되, ‘내 세상에 나매 사해(四海) 팔방(八方)을 두루 편답(遍踏)하되 한 번 실수함이 없었거늘, 어찌 조그만 유생(幼生)을 두려워하여 일생 재주를 돌아보지 아니하리오.’ 하고, 손에 비수(匕首)를 들고 언연(偃然)히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길동은 간 데 없고 일진음풍(一陣陰風) 일어나며 뇌성벽력(雷聲霹靂)이 천지진동(天地震動)하더니, 홀연(忽然) 방중(房中)이 변하여 망망광야(茫茫廣野) 되어 무수한 돌무더기 층층첩첩(層層疊疊)하여 살기충천(殺氣衝天)한데, 청산(靑山)은 암암(巖巖)하고 녹수(綠水)는 잔잔(潺潺)하여 물소리 쟁쟁(錚錚)하거늘, 특자 정신을 수습치 못하여 생각하되, ‘내 아까 길동을 해하려 하고 방중에 들어왔더니 어떤 연고로 첩첩산곡(疊疊山谷)이 되었는고.’ 몸을 돌려 피하고자 하다가, 아무데로 갈 바를 몰라 동서(東西)를 분별치 못하여 시냇물 가에 앉아 탄식 왈,

하며, 비수를 품에 감추고 시냇물을 좇아 한 곳에 이르니, 길이 끊어지고 층암절벽(層岩絶壁)은 반공(半空)에 달렸으니, 진퇴유곡(進退維谷)하여 바위 밑에 앉아 사면을 살피더니, 문득 청아(淸雅)한 옥저(玉笛)소리 동편(東便)에 들리거늘, 괴이하여 눈을 들어보니 일위(一位) 소년이 청포옥대(靑袍玉帶)에 나귀를 타고 옥저(玉笛)를 불며 오거늘, 특자 몸을 피코자 하더니, 그 소년이 옥저를 그치고 특자를 향하여 가로대,

하거늘, 특자 황망(慌忙)히 살펴보니 이는 곧 길동이라. 생각하되, ‘내 길동을 취(取)하려 하고 이에 왔더니 일이 낭패(狼狽)되었으나 대장부(大丈夫) 영사(寧死)언정 어찌 삼척소아(三尺小兒)에게 굴복하리오.’ 하고 고성대질(高聲大叱) 왈,

하고, 언파(言罷)에 칼춤 추며 달려들거늘, 길동이 대로(大怒)하여 즉시 죽이고자 하나 손에 척촌지검(尺寸之劍)이 없는지라. 몸을 날려 공중에 올라 풍백(風伯)을 부리니, 이윽하여 음풍(陰風)이 일어나며 궂은 비는 박으로 담아 뿌리거늘, 사석(沙石)이 날려 특자 눈을 뜨지 못하거늘, 특자 바위를 의지하여 길동의 재주를 탄복하며 정히 도망코자 한대, 갈 바를 알지 못하여 대성통곡(大聲痛哭) 왈,

하고 탄식을 마지 아니하더니, 길동이 공중에서 내려와 바위(8)에 앉으며 꾸짖어 왈,

하거늘, 특자 그역편하여5 복지(伏地) 애걸 왈,

하고 애걸하거늘, 길동이 이 말을 들음에 분기충천(憤氣衝天)하여 특자의 가진 칼을 앗아 손에 들고 대질(大叱) 왈,

하고, 언파(言罷)에 검광(劍光)이 번득하며 특자의 머리 방중에 내려지는지라.

길동이 칼을 들고 밖에 나와보니 은하수는 서(西)로 기울어지고 희미한 달빛은 몽롱(朦朧)하여 수회(愁懷)를 돕는지라. 바로 관상녀의 집에 이르러 풍백(風伯)을 불러 관상녀를 잡아다가 특자를 죽인 방에 던지고 크게 꾸짖어 왈,

하거늘, 상녀(相女) 정신을 차려보니 길동이 칼을 들고 꾸짖거늘, 상녀 애걸 왈,

하거늘, 길동이 대책(大責) 왈,

하고, 언파(言罷)에 칼을 날려 베더라.

각설. 길동 특자와 관상녀를 베고 분기충천(憤氣衝天)하여 바로 들어가 초란을 죽이고자 하다가 다시 생각하되, ‘영인부아(寧人負我)언정 무아부인(毋我負人)이로다.’ 하고, ‘차라리 망명도주(亡命逃走)하여 사절인사(謝絶人事)하고 몸을 산림(山林)에 부쳐 부운유수(浮雲流水) 같은 세월을 보냄이 옳다.’ 하고, 바로 대감 침소(寢所)에 들어가 하직을 하고 집을 떠나려 하더니, 이 때 대감이 기침(起寢)하여 창 밖에 인적(人跡) 있음을 보고 놀래어 창 틈으로 엿보니, 길동 계하(階下)에 복지(伏地)하였거늘, 대감이 괴히 여겨 문왈,

길동이 일장통곡(一場慟哭)하고 여쭈오대,

하고 눈물을 흘리거늘, 대감이 대경(大驚) 왈,

길동이 대왈,

대감이 생각하되, 길동은 범류(凡類)한 아이 아니라 아무리 만류(挽留)하여도 듣지 아니할 줄 짐작하고 위로 왈,

길동이 답(答) 고왈(告曰),

대감 침음양구(沈吟良久)에 왈,

하신대, 길동이 재배(再拜) 왈,

하고, 통곡하거늘 대감이 재삼(再三) 위로 왈,

하고, 손을 잡고 무한(無限) 한탄(恨歎)하시거늘, 길동이 유체(流涕) 왈,

대감이 흔연(欣然)히 허락하시고 악수(握手) 생별(生別)하니 어린 아이 모자(母子) 이별함 같더라. 길동이 다시 절하고 왈,

하고 언파(言罷)에 몸을 일어 나가거늘, 대감이 측은히 여기나 무슨 연고(緣故) 줄을 아지 못하여 마음 불안하시더라. 길동이 그 어미 침소(寢所)에 들어가 이별을 하여 왈,

그 어미 길동의 손을 잡고 유체(流涕) 왈,

길동이 두 번 절하고 하직하니, 모자붙들고 목이 메어 말을 못하다가 눈물을 거두고 나오니, 달은 서산(西山)에 기울어지고 금계(金鷄)는 새벽을 고하니 강개(慷慨)함을 이기지 못하는지라. 길동이 슬픔을 머금고 문 밖에 나오니, 운산(雲山)은 첩첩(疊疊)하고 해수(海水)는 양양(洋洋)하여 그지 없는 해안(海岸)이 광대(廣大)하여 소식이 망망(茫茫)하다. 아지 못게라. 생(生)이 어찌 이리 될 줄 알리오.

각설. 초란이 자객(刺客)을 보내고 날이 밝도록 기다리니 그리 소식이 없는지라. 괴히 여겨 사람으로 탐지(探知)하니, 길동은 간 데 없고 자객 신체(身體) 목 없이 방중에 있고 또 관상녀(觀相女)의 신체(身體) 있거늘, 대경(大驚)하여 들어가 고하니, 초란이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급히 내당(內堂)에 들어가 부인께 고(告)한대, 혼불부신(魂不附身)함에 길현을 불러 길동을 찾으라 하신대, 길현이 대경(大驚)하여 두루 방문(訪問)하되 종적(蹤迹)이 없는지라. 악연(愕然)함을 이기지 못하여 대감께 고왈(告曰),

대감이 대경(大驚) 왈,

하시거늘, 길현이 감(敢)히 은휘(隱諱)치 못하여 바로 고하여 왈,

대감 노(怒)한대,

하시고,

하고, 하인을 분부하여 가로대 두 신체(身體)를 치우고, 엄히 분부하여 가로대,

하고, 초란을 죽이려 하시다 생각하되, ‘일즉 길동을 무양(無恙)코저 하여 차(此)일을 발설(發說)하면 좋지 못할 것이오, 타인(他人) 알면 살인지죄(殺人之罪)를 면치 못하리라.’ 하시고 가만히 멀리 구축(驅逐)하여 자취를 없게 하리라 하시더라.

각설 홍화문 밖에 있는 관상녀(觀相女)의 부모 여식(女息)을 잃고 사방으로 찾되 종적이 없노라. 동네 사람들이 이르되, 풍운(風雲)에 싸여 승천(昇天)하였다 하더라.

차설(此說). 길동이 한번 문 밖에 남에 일신(一身)이 표박(漂泊)하여 사해(四海)로 집을 삼고 세월을 보내더니, 일일은 한 곳에 이르니 산천(山川)은 명랑(明朗)하고 경개(景槪) 절승(絶勝)한지라. 길동이 태산(泰山) 험로(險路)로 좇아 들어가며 좌우(左右) 산천(山川)을 살펴보니, 층암절벽(層岩絶壁)은 반공(半空)에 달려있고 산수(山水)는 잔잔(潺潺)하고 청송녹수(靑松綠樹) 울창(鬱蒼)한데 기화요초(琪花瑤草)는 객(客)을 보고 길을 인도(引導)하는 듯 하거늘, 풍경(風景)을 탐(貪)하여 점점 들어가니 석양(夕陽)은 장령(藏嶺)하고 숙조(宿鳥) 투림(投林)이라. 도로 나가고자 하나 길이 끊어지고 더 가고자 하나 돌아갈 길이 없는지라. 진퇴유곡(進退維谷)하더니 난데없는 표주(瓢舟) 물 위에 떠오거늘 심중(心中)에 대희(大喜)하여 왈,

하고 시내를 좇아 들어가니, 평원광야(平原廣野)한대 일망무제(一望無際), 산천(山川)은 명랑(明朗)하고 지형(地形)도 평탄(平坦)한대, 백여(百餘) 대촌(大村)이 즐비(櫛比)하고 그 가운데 고루거각(高樓巨閣) 있거늘, 그 집을 향하고 들어가니 마침 천여(千餘) 원(員) 사람이 들어오는지라. 대연(大宴)을 배설(排設)하고 공론(公論) 분분(紛紛)하거늘, 길동이 좌말(座末)에 나가 공론을 들으니, 원래 이 촌중(村中)은 도적(盜賊)의 굴혈(窟穴)이라. 서로 행수(行首)를 정(定)치 못하여 공론이 분분(紛紛)하거늘, 길동이 생각하되, ‘내 망명도주(亡命逃走)하여 의탁(依託) 무처(無處)하더니 오늘날 하늘이 도우심이라. 영웅(英雄)의 기(氣)를 펴게 함이라. 어찌 다행치 아니하리오.’ 하고, 언연(偃然)히 좌우(左右) 말(末)에 나아가 예(禮)를 전하고 가로대,

하거늘, 모든 도적들이 술이 대취하여 공론이 분분하다가 난데없는 총각 아이 들어와 행수(行首) 자청(自請)함을 보고 하졸(下卒)을 불러 내치라 하니, 하졸이 일시에 달려들어 끌어내치며,

하고 동구(洞口) 밖에 내치거늘, 길동이 할 길 없어 물러나와 나무 깎아 방(榜)을 썼으되,

하더라. 이때 하졸 중에6 한 사람이 보고 가로대,

하고, 하졸을 불러 길동을 청하여 상좌에 앉히고 술을 권하며 왈,

길동이 대희 왈,

하거늘, 제인(諸人)이 가로대,

길동이 대소 왈,

하거늘, 중인(衆人)이 다 옳이 여겨 길동을 이끌고 비석 있는 곳에 가니, 길동이 나삼(羅衫)을 걷고 돌을 들고 수십 보를 행하다가 내려 놓되 조금도 신고(辛苦)함이 없거늘, 모든 사람들이 배사(拜謝) 왈,

하고, 인하여 술을 권하며 길동을 상좌에 앉히고 차례로 현신(現身)하며 안책(案冊)을 봉(封)하여 올리거늘, 길동이 군사를 명하여 백마(白馬)를 잡아 먼저 사람이 각각 피를 마시고 종(終)토록 사생(死生)을 동락(同樂)하기로 맹세를 정하고 가로대,

한대, 모든 군사 일시에 청령(聽令) 왈,

하거늘, 길동이 대희(大喜)하여 하졸을 불러 무예(武藝)시키며 마상(馬上) 재주로 바로2 무예(武藝) 십팔기(十八技) 하며 일일(日日) 연습하니, 수월(數月)이 못하여 군용(軍容)을 정제(整齊)하고 위령(威令)을 세우더니, 일일은 하졸을 불러 분부하오대,

한대, 하졸이 일시에 청령(聽令)하고 물러나는지라. 길동이 노새를 타고 하인 수삼(數三) 인(人)을 거느려 재상가(宰相家) 자제(子弟) 모양으로 선명히 갖추고 나오며 이르대,

하고, 청포옥대(靑袍玉帶)에 표연(飄然)히 나오니 완연(宛然)한 재상가의 자제라. 노새를 바삐 몰아 해인사 동구(洞口)에 들어가 일변(一邊) 노문(路文)하였으니,

하였겠다. 중들이 대희(大喜)하여 가로대,

제승(諸僧)이 일시에 동구 밖에 나와 맞아 절에 들어 합장재배(合掌再拜)하고 왈,

하거늘, 길동이 정색(正色) 왈,

중들이 고두청령(叩頭聽令)하고 차담(茶啖)을 정히 차려 들이거늘, 길동이 다 먹은 후에 법당(法堂)에 들어가 노승(老僧)을 불러 왈(曰),

한대, 제승(諸僧)이 합장복례(合掌復禮)하거늘, 길동이 절을 떠나 동구에 돌아오니 모든 군사 맞아 사례하더라. 명일에 백미 삼십 석을 절에 보내 왈,

하고, 길동이 모든 하졸을 불러 분부 왈,

하고 한대, 모든 하졸이 일시에 응낙(應諾)하거늘, 길동이 하인 수삼 명을 거느리고 노새를 몰아 해인사에 이르니 제승이 동구 밖에 대후(待候)하였다가 영접하여 절에 들어가거늘, 길동이 노승을 불러 왈,

노승이 대왈,

하거늘, 제승(諸僧)이 어찌 대적(大賊)의 흉계를 알리오. 행여 떠나면 죄벌(罪罰) 있을까 하여 상하노소(上下老少) 없이 다 벽계에 모였는지라. 길동이 제승으로 더불어 좌정(座定)할새, 신반(新飯)을 받들어 올리거늘, 상(床)을 각 받은 후 선반주(先飯酒)를 마시고 차례로 전하더니, 제승이 황공하여 각각 한 잔씩 먹은 후에, 길동이 나삼(羅衫)을 걷고 흔연(欣然)히 밥을 먹더니 두 술이 지남에 모래를 가만히 입에 넣고 밥을 씹으니, 모래 (9)깨어지는 소리에 놀래어 제승이 사죄하고 각각 손을 맺어 사죄하거늘, 길동이 눈을 부릅뜨고 크게 꾸짖어 왈,

언파(言罷) 하인을 불러 분부하되,

한대, 하졸 등이 일시에 달려들어 결박하거늘, 제승(諸僧)이 비록 의심이 있으나 어찌 양반의 영을 거역하리오 하고, 혼불부신(魂不附身)하여 황공점두(惶恐點頭)할 따름일레라.

이 때 모든 적졸이 동구 밖에 복병(伏兵)하였다가 제승을 결박함을 보고 일시에 달려들어 절을 수탈(收奪)할새 완연(宛然)히 제 것 가져가듯 하였거늘, 제승이 거동을 보고 아무리 잡고자 하나 사지를 동였으니 어찌 요동하리오. 소리만 지를 따름이오. 이렇듯 하여 동구 요란하거늘, 이때 나무하는 중 하나가 절을 지키다가 불의에 대적을 만나 후원 담을 넘어 도망하여 합천 읍중에 들어가 관문(官門)을 두드리며 급히 고하니, 관가(官家)에서 대경(大驚)하여 대강 들은 후 즉시 관졸(官卒)을 보내어 도적을 잡으라 하고 또한 읍중(邑中) 백성을 조발(調發)하여 후응(後應)하라 하니, 장교(將校) 수백(數百) 군(軍)을 거닐어 나오니라.

이 때 모든 적졸이 수(0)다(數多)한 재물 수탈하여 우마(牛馬)에 싣고 정히 돌아가고자 하더니, 멀리 바라보니 일진군마(一陣軍馬) 들어오는데, 기치창검(旗幟槍劍)은 일월(日月)을 희롱(戱弄)하고 고각함성(鼓角喊聲)은 천지진동(天地震動)하거늘, 모든 적졸(賊卒)이 갈 바를 알지 못하여 독에 든 쥐 같더라. 적졸 등이 도리어 길동을 원망하거늘, 길동이 대소(大笑) 왈,

하거늘, 하졸이 일시에 내닫거늘, 길동이 법당(法堂)에 들어가 몸에 장삼(長衫)을 입고 머리에 송낙을 쓰고, 동구(洞口) 밖에 나와 높은 데 올라 관군 오는 양(樣) 보고 크게 외쳐 왈,

하고, 장삼 소매로 북편 산곡(山谷) 가리키니 관군이 오다가 바라보고 남편 큰 길을 버리고 북편 적은 길로 좇아 가거늘, 길동이 그제야 둔갑(遁甲)하여 동구(洞口)에 돌아오니, 이 때 날이 오시(午時)라 하였거늘, 술과 밥을 갖추어 기다리더니 일락서산(日落西山) 함에 모든 도적이 우마(牛馬)를 몰아 들어와 치하 왈,

길동이 대소(大笑) 왈,

하더라. 모든 적졸이 대연(大宴)을 배설(排設)하고 가져온 재물을 계수(計數)하니, 누거만(累巨萬) 냥(兩)이라. 잔치를 파(罷)하고 인하여 동구(洞口) 별호(別號)를 하여 할미당이라 하고, 팔도(八道)에 다니며 무도(無道)한 자 있으면 재물을 탈취하며 불쌍한 자 있으면 구제하나 성명을 이르지 안하더라.

각설. 이 때 합천 관졸(官卒)이 북편 산을 겹겹이 싸고 수백 리를 추적하되, 도적의 자취 없는지라. 할 길 없거늘 돌아와 사연을 관가에 고한대, 합천 원(員)이 대경(大驚)하여 나라에 장문(狀聞)하되,

하였거늘, 상(上)이 크게 근심하사 팔도(八道)에 행관(行關)하시되,

하였더라. 팔도(八道) 방백(方伯)이 행관을 보고 대경(大驚)하여 도적을 잡으려고 하더라.

각설. 이 때 길동이 할미당에 있어 대연을 배설하고 매일 즐기더니 일일은 하졸 등을 불러 의논 왈,

하고,

하고 가로대,

하거늘, 모든 하졸이 일시에 응낙하더라.

수월(數月)이 지남에 길동이 제군더러 의논 왈,

하고,

제졸(諸卒) 청령(聽令)하고 물러나는지라. 길동이 이날 밤 삼경에 현덕릉에 이르러 군사 수십 명을 가려 시초(柴草)를 수운(輸運)하여 능성(陵城) 해자(垓字) 밖에 쌓고 불을 지르니 능상(陵上)에 미치지 않게 하고 불을 지르니라. 이 때 화광(火光)이 충천(衝天)하니 참봉(參奉)과 능승군이 망지소조(罔知所措) 하거늘, 길동이 성중에 들어가 관문(官門)을 두드리며 크게 외쳐 왈,

하거늘, 감사(監司)잠이 몽롱(朦朧)한 중에 이 말을 듣고 대경(大驚)하여 바라보니 화광이 충천한지라. 대경한지라. 하여 일변 군사를 급히 능소로 보내라 하니, 성중이 요란하여 남녀노소(男女老少) 없이 황황(遑遑)히 분주히 나오니 창곡(倉穀)의 수직(守直)하던 군사도 다 나가고 없는지라. 이 때 모든 적졸을 불러 급히 탈취하라 하니, 제군이 일시에 달려들어 창곡과 병기를 탈취하여 가지고 북문(北門)으로 내달아 동구 돌아오니, 벌써 동방(東方)이 밝는지라. 길동이 가로대,

하고, 방(榜)을 써주며 왈,

한대, 제졸이 그 방을 보니, 하였으되,

하더라. 제졸이 대경 왈,

길동이 대소 왈,

하거늘, 군사 연고를 모르고 밤에 가 명역문에 붙이고 돌아오니라.

이 때 길동이 길동 초인(草人) 일곱을 만들어 각각 육갑(六甲)으로 혼백(魂魄)을 붙이니, 여덟 길동이 팔을 뽐내며 서로 말을 하니 어느 놈이 참 길동인 줄을 알지 못할레라. 여덟 길동을 팔도(八道)에 분발(分發)할새, 한 길동이 일천 군(軍)씩 거느려 가게 하니 모든 군사 각각 길을 떠날새, 팔도(八道) 감사(監司) 성명과 각 읍(各邑) 수령의 이름이며 조선 팔도를 역력히 하여 주니, 군졸 등이 길동이 재주를 탄복하며 일변 의심하더라.

이 때 함경감사 불을 구하고 들어오니 창고 군사 급히 고하되,

하거늘, 감사 대경하여 팔방으로 발포(發捕)하여 도적을 잡으라 하되, 종적을 모르더니 북문지기 급고(急告) 왈,

하고 방서(榜書)를 드리거늘 감사 보고 대경 왈,

하고, 각 읍(各邑)에 행관(行關)하되,

하였거늘, 수월(數月)이 되어도 종적을 알지 못함에 시고(是故)로 나라에 장계(狀啓)하되,

하였거늘, 상(上)이 남필(覽畢)에 대경하사 팔도에 행관하였으되,

하고, 또 사대문(四大門)에 방을 걸었으되 잡는 자 없는지라.

이 때 길동이 초인 일곱을 만들어 각각 보내고 저도 할미당에 있어, 각 도(各道) 각 읍(各邑) 수령이 사(私)로 봉송(封送)하는 재물을 탈취하니 소동(騷動) 각 도(道)에 낭자(狼藉)하며, 또 백관 수령이 잠을 자지 못하고 창곡 군기를 지키나, 길동의 수단이 바람을 부르며 비를 청하는 조화 있음에, 백주(白晝)에 풍우(風雨)를 대작(大作)하여 사람마다 눈을 뜨지 못하거늘, 창곡(倉穀)을 조석(朝夕) 없이 도적하여 가거늘, 팔도 조정에 연속하여 팔도 장계(狀啓) 일시에 조정에 이르니, 하였으되,

하였거늘, 상이 가로대,

하시거늘, 계하(階下)에 한 신하가 출반주(出班奏) 왈,

하거늘, 모두 보니 이는 포도대장(捕盜大將) 이흡이라. 상이 대희하사 즉시 경군(京軍) 수백 명을 조발(調發)하여 주거늘, 이흡이 궐하(闕下)에 하직하고 군사를 거느려 성 밖에 나와 각각 흩어 보내며 왈,

언약하고 떠나니라.

각설. 이흡이 홀로 행(行)하여 김포(金浦) 육십 리를 나와 저물거늘, 주점(酒店)으로 좇아 유숙(留宿)코자 하더니 문득 일위(一位) 청포(靑袍) 소년이 나귀를 타고 동자(童子) 수인(數人)을 거느려 주점에 들거늘8, 이흡이 문왈,

그 소년이 가로대,

그 소년이 대왈(對曰),

이흡이 흡연(洽然) 대왈,

청포 소년이 왈,

이흡이 왈,

청포 소년,

하고, 표연(飄然)히 몸을 일어 밖으로 나가거늘, 이흡이 뒤를 좇아 한 곳에 이르니 그 소년이 천만(千萬) 장(丈)이나 한 바위에 올라 앉으며 왈,

단권(單卷)이라

각설(却說)이라.

올라 앉으며 왈,

하거늘, 이흡이 생각하되, ‘제 아무리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할 용맹이 있은들 내 한 번 하면 제 어찌 항거하리오.’ 하고, 힘을 다하여 두 발로 차니 그 소년이 몸을 움직여 돌아 앉아 왈,

하고, 첩첩산곡(疊疊山谷)으로 들어가니 산천이 험악하고 초목이 무성하여 동서를 분별치 못할레라. 그 소년이 쉬 길동을 잡을까 하더라.

각설. 이 때 이흡 소년을 따라 첩첩산(8)곡으로 들어가니 봉만(峯巒)이 차아(嵯峨)하고 석경(石逕)이 험악한대 사람의 자취 없는지라. 그 소년이 돌아서며 가로대,

하거늘, 이흡이 대왈,

한대, 그 소년이 왈,

한대, 이흡이 대왈,

하거늘, 그 소년이 미소부답(微笑不答)하고 표연(飄然)히 산곡(山谷)으로 들어가거늘, 이흡이 홀로 앉아 적막 기다리더니 일락서산(日落西山)하고 월출동령(月出東嶺)하니, 모든 시랑(豺狼)은 전후(前後)에 옹위(擁衛)하고 휘파람 부는 소리 좌우 소란하니, 이흡이 진퇴유곡(進退維谷)하여 큰 나무를 의지하여 앉았더니 홀연 훤화성(喧譁聲) 들리며 산곡에서 들리는 소리 요란하거늘, 마음이 경황(驚惶)하여 살펴보니 수십 군졸(軍卒)이 오거늘, 이흡이 대경하여 정히 몸을 감추고자 하더니 군사 일시에 달려들어와 결박하여 꾸짖어 왈,

언파(言罷)에 철사(鐵絲)로 목을 옭아 풍우(風雨)같이 잡아 가거늘, 이흡이 혼불부신(魂不附身)하여 수십 리를 가더니, 이곳은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이라. 심중(心中)에 생각하되, ‘내 아직 죽지는 아니하였으나 어찌 살아 가리오.’ 정신을 진정하고 살펴보니, 의의(依依)한 궁궐(宮闕) 무수한 군사 황건(黃巾)을 쓰고 철퇴(鐵槌)를 들고 왕방울 차고 문 밖에서 요란하거늘, 이흡이 사생(死生)을 분별치 못하고 업드려졌더니, 문득 대상(臺上)에서 한 소리 지르며 이흡을 족불이지(足不履地)하게 잡아들여 계하(階下)에 꿇리고 꾸짖어 왈,

하고, 하졸 불러 분부하되,

하거늘, 좌우 하졸 일시에 달려들어 착가(着枷)하니 이흡이 황망(慌忙) 중에 난간을 붙들고 통곡 왈,

하고 기절하거늘, 좌우 대소하고 꾸짖어 왈,

하고, 언파(言罷)에 하졸을 명하여 잡아맨 것을 끌러 올려 앉히고, 술을 권하여 왈,

또 이튿날 사람 두엇을 잡아다가 계하(階下)에 꿇리고 꾸짖어 왈,

하고, 일시에 해박(解縛)하여 술을 먹이고 이흡을 위로 왈,

하고, 사오 잔을 권하니 이흡이 그제야 흩어진 정신을 수습하여 눈을 들어보니 과연 주점에서 만났던 청포소년일레라. 이흡이 고개를 숙이고 감히 말을 대답지 못하고, 권하는 술을 사양치 못하여 취하도록 먹고 앉았더니, 청포 소년 일어나 하인을 다시 살리거늘 그 신기함을 탄복하더라. 이윽고 또 술을 권하거늘 감히 사양치 못하여 수 배(數盃)를 먹으니 대취하여 대청 난간에 의지하여 잠을 깊이 들었더니, 문득 취한 술이 깨어 갈(渴)함을 참지 못하여 일어나고자 하나 감히 요동치 못하는지라. 가만히 정신을 차려보니 가죽 부대(負袋)에 험한 나무에 걸려있거늘, 겨우 부대를 열고 나와보니 이흡이 처음에 떠날 때 데리고 가던 하졸과 한가지로 가죽 부대에 넣어 일자(一字)로 나무에 걸렸거늘, 차례로 끌러 앉히고 이르대,

하며 두루 살펴보니 장안(長安) 북악산(北嶽山)일레라. 어이없어 산(山)을 굽어보니 춘몽(春夢)을 깨닫지 못하는듯 하거늘, 이흡이 가로대,

하인이 답왈,

하거늘, 이흡 듣고 탄식 왈,

하더라.

각설. 이때 왕상(王上)이 팔도에 행관하나 길동 잡으려 하는 계교(計巧)를 듣지 못하여 탄식 왈,

하더라.

차설. 길동이 팔도에 종횡하며 가어사(假御使)로 그른 고을은 선참후계(先斬後啓)하되, 각 읍 수령이 빙공영사(憑公營私)하고 준민고택(浚民膏澤)하기로 길동 어사(御使)되어 선참후계(先斬後啓)하는지라. 이 때는 계유(癸酉) 팔월(八月)이라. 안찰어사(按察御使) 일시에 내려와 관헌(官憲)의 출척(黜陟)을 임의로 하니, 각 읍이 황황분주(遑遑奔走)하고 의혹하여 명령이 서지 아니하니 백성이 소동하는지라.

일일은 팔도 장계 일시에 들어왔거늘 보니, 하였으되,

하거늘, 왕상이 보시고 탄식 왈,

하신대, 계하(階下) 일원(一員) 대신(大臣)이

하거늘, 상이 옳히 여기사 즉시 홍모를 금부 나수하라 하시고 길현을 패초(牌招)하신대, 선전관(宣傳官)이 어명을 받아 홍승상의 집에 이르니, 이 때 홍승상 길동이 나간 후로 어디가 작변(作變)하는가 염려하여 자연 병이 되어 날로 침중(沈重)하였는지라. 장자 길현이 벼슬을 살고 부친 병석을 떠나지 아니하더니, 일일은 문득 밖에서 나졸(邏卒) 임(臨)하고 어명(御命)으로 대감(大監)을 착가(着枷)하여 금부로 나수하고 선전관(宣傳官)은 길현을 패초(牌招)한대, 길현이 탑전(榻前)에 들어가 황공복지(惶恐伏地)하니, 상(上)이 진노(震怒)하사 가로대,

하신대, 길현이 머리를 옥계하(玉階下)에 두드리며 왈,

아뢰온대, 상이 효성을 감동하사 홍모를 다시 추존(推尊)하여 우의정을 복직하시고, 길현으로 경상감사를 제수하시고 일년 말미를 주어 길동을 잡아들이라 하신대, 길현이 사은숙배(謝恩肅拜)하고 즉일(卽日) 발행(發行)하여 경상(慶尙) 감영(監營)에 도임(到任)하고 각관(各官) 방곡(坊曲) 괘서(掛書)하였으되,

하였더라.

각설. 이 때 감사(監司) 각 관(官)에 방문(榜文)을 전하고, 도임 삼 일에 마음 산란하여 침식이 불안함에 공사(公事)를 전폐(全廢)하고 정히 근심하시더니, 문득 삼문(三門) 밖이 요란하며 군사 고하되,

하거늘, 감사 괴히 여겨 동협문(東夾門)을 열고 들어오라 하니, 그 소년이 몸을 나귀 등에 부쳐 하인 수십 명이 옹위(擁衛)하여 바로 정하(庭下)에 이르러 절하여 보이거늘, 반드시 이웃 수령인 줄 알았더니 자세히 보니 이는 매일 유념(留念)하던 길동이라. 감사 대경하여 좌우를 치우고 내달아 손을 잡고 방성통곡(放聲痛哭) 왈,

언파(言罷)에 눈물이 비오는 듯하거늘, 길동 고개를 숙여 대감 안부를 묻잡고 왈,

하며 통곡 왈,

말을 다 함에 입을 봉(封)하고 다시 묻는 말에 통 대답지 아니하거늘, 감사 이튿날 나라에 일변 장계하고 길동을 항쇄족쇄(項銷足銷)하여 연장을 갖추어 주야(晝夜) 올라가니, 각 도 각 읍 백성들이 길동의 신출귀몰한 재주를 들었는지라9 잡아온단 말을 듣고 거리거리 구경하며 길이 행(行)치 못할레라.

각설. 이 때 팔도 감사 나라에 장문하되 (8)길동을 착송(捉送)하는 사연이거늘, 만조백관(滿朝百官)이 일변(一邊) 기다리며 만성(滿城) 인민(人民)이 망지소조(罔知所措)하여 오기를 바라더니, 그 날이 당함에 팔도에서 길동을 항쇄족쇄(項銷足銷)하여 장안에 이르니 팔 길동의 한 변화를 뉘 능히 알리오. 일변 금부(禁府) 나수(拿囚)하고 나라에 주달(奏達)한대, 상이 대경하사 능연각에 전좌(殿座)하시고 만조백관(滿朝百官)을 거느리고 친문(親問) 놓고자 하실새, 금부(禁府) 나졸(邏卒)이10 여덟 길동이 서로 말을 하여 왈,

하며, 이렇듯 다투다가 필경(畢竟)은 한데 어우러져 싸우거늘, 상이 다시 국문(鞠問)하시나 죄인을 알 길이 없는지라. 도리어 일대 장관일레라. 상이 우승상 홍모를 불러 왈,

하시거늘, 승상이 복지(伏地) 주왈(奏曰),

말을 마치며 길동을 불러 왈,

언파(言罷)에 승상이 계하(階下)에 업드러져 피를 토하고 기절하거늘, 좌우 대경하고 왕상도 놀래사 대신을 명하여 구하라 한대 생도(生道) 없는지라. 여덟 길동이 눈물을 흘리고 낭중(囊中)에서 대추같은 환약(丸藥) 두 개씩 내어 갈아 입에 들이오니 승상 양구(良久)에 인사(人事)를 진정(鎭靜)하여 일어나 앉거늘, 여덟 길동이 눈물을 흘려 왈,

말을 마치며 여덟 길동이 일시에 다 엎드러져 죽으니라. 좌우 백관(百官)이 의혹하여 죽은 것을 상고(詳考)하니, 다 초인(草人)이요 참 길동은 간 데 없는지라. 상이 대노하사 금선(錦扇)으로 용상(龍床)을 쳐 가라사대,

하신대, 만조백관(滿朝百官)이 길동의 신출귀몰(新出鬼沒)한 재주 칭찬 아니하는 이 없는지라. 뉘 감히 잡기를 대답하리오 하더라.

이 날 오후에 사문(四門)에 방을 붙였으되,

하고, 하였거늘 상이 백관 모아 의논하신대, 제신(諸臣)이 합주(合奏) 왈,

하거늘, 상(上)이 제신의 소견을 듣고 가라사대,

하신대, 만조백관(滿朝百官)이 하나 응한 자 없는지라.

이 적에 길동 장안에서 지내되 혹 별연도 타며, 옥교(玉轎)도 타며 완완(緩緩)히 왕래하되 아는 자 없는지라.

일일은 경상감사에게 엄지(嚴旨)를 내리오신대,

하였거늘, 감사(監司) 교지(敎旨)를 보고 송구하여 육방관속(六房官屬)과 근읍(近邑) 수령에게 분부하여 길동 잡기를 성화(星火)하더라. 이날 밤 삼경에 선화당(宣化堂) 들보의 위에서 일원(一員) 소년이 내려와 절하여 뵈옵거늘, 대경하여 귀신인가 하였더니 자세히 보니 이는 곧 길동이라. 크게 꾸짖어 왈,

길동이 울며 답왈,

감사 또한 의혹하고 이튿날 길동을 항쇄족쇄(項銷足銷) 하고 수레 위에 싣고 철사(鐵絲)로 무수히 동여 요동치 못하게 하고, 장교 수십 인을 명하여 분부하되,

하시니, 모든 장교 청령(聽令)하고 길동을 압령(押領)하여 수레를 풍우(風雨)같이 몰아가니 길 가에 구경하는 사람 무수하더라. 수일 만에 경성(京城) 근처에 들어가니 원근(遠近) 백성 남녀노소 없이 다투어 구경하더라. 길동 잡히어 가되 조금도 얼굴을 변치 아니하고 다만 술만 취하여 수레 위에 누었으니 구경하는 백성들이 그 연고를 알지 못하더니, 남태령(南泰嶺)을 넘어 동자기(銅雀)를 당하여 물 건너 남대문(南大門)에 다다르니, 좌우(左右)에 도감포수(都監砲手)들이 총(銃)을 일시에 장약(裝藥)하여 가지고 첩첩(疊疊) 싸고 들어 오더니, 중도에 이르러 길동이 문득 장교에게 일러 왈,

하고, 인하여 한 번 몸을 요동하여 용맹을 쓰니 동인 철사 썩은 줄같이 끊어지고 수레 풍비박산(風飛雹散)하여 길동이 몸을 날려 공중에 솟아 구름 사이로 소리개같이 달아나니, 좌우 도감포수들이 미쳐 손을 놀리지 못하여 하늘만 바라볼 따름일레라. 압령 장교를 엄형(嚴刑) 주아지 못하시고,11

하시나이다. 상이 만조백관을 모아 길동 잡을 계교를 정할 제 제신(諸臣)이 주왈(奏曰),

하거늘, 상이 옳게 여기사 길동으로 병조판서를 제수(除授)하시는 유지를 내려 사대문(四大門)에 걸고 일변(一邊) 병조판서 하인을 사방으로 흩으시더라. 이적에 동대문(東大門)으로 일위(一位) 소년이 홍포옥대(紅袍玉帶)하고 초헌(軺軒)을 타고 들어오며 이르대,

하니, 병조(兵曹) 하인이 일시에 옹위(擁衛)하여 완연히 장안(長安)으로 들어가 궐하(闕下)에 사은숙배(謝恩肅拜)하고 여쭈오대,

하고, 언파(言罷)에 구름 사이로 표연(飄然)히 가거늘, 상이 차탄(嗟歎) 왈,

하시고 왈,

하시고, 즉시 팔도에 사문(赦文)을 내리어 길동 잡는 관자를 거두라 하시니라. 길동이 한 번 궐하(闕下)에 하직하고 돌아간 후에 다시 작폐(作弊)함이 없더라.

각설. 이 때는 병인(丙寅) 추구월(秋九月) 망일(望日)이라. 금풍(金風)이 소슬(蕭瑟)하고 월색(月色)이 고요한대 북으로 향하는 기러기 소리 처량한지라. 왕상(王上)이 추월(秋月) 명랑(明朗)함을 사랑하사 환자(宦子)를 데리고 후원(後園)을 배회하시더니, 문득 일진청풍(一陣淸風)이 일어나며 공중에서 옥저(玉笛) 소리 들리더니 일위(一位) 소년이 내려와 복지(伏地)하거늘, 상(上)이 대경(大驚) 문왈(問曰),

그 소년이 복지(伏地) 주왈(奏曰),

하거늘, 상이 대경 왈,

길동이 왈,

상이 마지 못하여 허락하시고 가라사대,

길동이 주왈(奏曰),

상이 가라사대,

하신대, 길동이 얼굴을 들고 눈을 뜨지 아니하거늘, 상이 가라사대,

길동이 주왈,

상이 강권(强勸)치 못하시고 물러가라 하시되, 길동이 일어나 사배(四拜) 왈,

말을 마치며 몸을 소소와 일진음풍(一陣陰風)을 타고 옥저를 불며 구름 사이로 표연(飄然)히 가거늘, 상이 길동의 신기한 재주를 신기히 여기사 그 이튿날 선혜청(宣惠廳) 당상(堂上)에게 전지(傳旨)를 내리사,

하시니, 당상(堂上)이 즉시 역꾼을 조발(調發)하여,

하신대, 문득 상류(上流)에서 수십 척 배 들어오더니 백미를 실어 가거늘, 한 역군이 물은대 답왈,

다 실은 후에 길동이 서향(西向)하여 재배(再拜)하고 가로대,

하니 역군이 대경하여 즉시 나라에 주달(奏達)하대, 상이 대소(大笑) 왈,

하신대, 모두 그 연고를 알지 못하더라.

각설이라. 이 때 길동이 수만 군졸을 거느리고 조선을 하직하고, 삼천 석 백미를 싣고 강호(江湖)에 흘러서 망망대해(茫茫大海)를 건너 남경(南京) 근처에 들어, 도라 하는 섬 중에 창고를 짓고 군기(軍器)를 수보(修補)하여 양초(糧草)를 무수히 쌓고 매일 연습(鍊習)하더라. 길동이 군졸을 불러 왈,

하거늘 좌우 응낙하고 하직하니 또 분부,

하고, 모든 군사를 이별하고 길동이 배를 타고 수도(水道)를 월섭(越涉)하여 육지에 내려 향할새, 수십 리를 행하여 낙천 골을 다다르니 그 읍(邑) 중에 만석(萬石)꾼 거부(巨富) 있으되 명(名)은 백웅이라. 일찍 한 딸을 두어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무불통지(無不通知)하고 인의예절(仁義禮節)을 품었으니 진실로 여중군자(女中君子)라. 부모 애중(愛重)하여 옛날 두목지(杜牧之) 적선(謫仙) 같은 문장재사(文章才士)를 구하여 사위를 삼아 봉황(鳳凰)의 쌍유(雙遊)함을 보려 하더니, 일일은 홀연 풍우대작(風雨大作)하며 지척(咫尺)을 분별치 못하여 황망(慌忙) 중에 보니, 백웅의 딸이 간 데 없거늘, 백웅이 천금(千金)으로 사방에 흩어 주어 방방곡곡(坊坊曲曲)에 찾으되 종적(8)이 없는지라. 백웅이 주야 통곡하며 식음전폐(食飮全廢)하고 실성하여 다니며 왈,

하거늘, 길동이 이 말을 듣고 심중에 측은하나 할 수 없는지라. 인하여 망당산에 들어가 약을 캘새 점점 심산(深山)으로 들어가더니 일락서산(日落西山) 함에 돌아올 길이 희미한지라. 정히 산중에 방황하더니 문득 바라보니 사람의 소리 들리거늘 바라보니 화광(火光)이 충천(衝天)한지라. 길동이 인간이 있음을 다행히 여겨 찾아 들어가니, 수백 인이 모여 잔치하거늘 심중에 생각하되, ‘이게 비록 사람의 형용이 있으나 짐승의 무리 울금이라 하는 짐승이라.’ 길동이 생각하되, ‘내 반세상(半世上)을 천하에 두루 다니되 이런 짐승을 보지 못하였더니, 오늘날 이 곳을 보았으니 울금의 무리를 잡아 세상에 나가 사람에게 구경시키리라.’ 하고, 몸을 깊은 수풀에 감추고 활을 잡아 그 짐승 중 제일 상좌석(上座席)을 쏘아 맞히니 그 짐승 소리를 지르고 일군(一群)을 거느려 달아나거늘, 길동이 좇아 잡고자 하더니 마침 밤이 깊어 가는 길이 없는(9)지라. 큰 나무 있거늘 그 밑에 의지하여 밤을 지내고, 이튿날 내려가 보니 그 짐승이 피 흘렸거늘, 그 짐승 있는 곳을 좇아가더니 큰 집이 있으되 가장 웅장하거늘, 길동이 나가 문을 두드리니 수문장이 나와 문왈,

하거늘, 길동이 보니 그 짐승이거늘, ‘아무러나 내종(乃終)을 보리라.’ 새로 초면지예(初面之禮)를 행(行)하고 왈,

하니, 그 놈 기꺼 가로대,

하거늘, 길동이 대왈,

하거늘, 수문장이 대희 왈,

하거늘, 길동이 대왈,

수문장이 답왈,

하고 안으로 들어가더(0)니, 이윽하여 나와 길동을 인도하여 두어 문 지내어 들어가니 오색 풀로 담을 쌓고 그 위에 울금이 누었거늘, 길동이 나아가 예(禮)를 전하고 좌우를 살펴보니, 동편(東便) 협실(夾室)에 한 미인이 수건으로 목을 매어 죽으려 하니 또한 여자 둘이 붙들고 죽지 못하게 하는 중이라.<<FootNote(원문 입력자 주: 내용이 빠졌음. 서강대 30장본에는, “其傍兩女子 流涕而執之 使不得死. 吉童內心疑訝 與就乙臥處 視傷處 紿之曰, 於我有一箇仙藥 君食之 非但傷處之快差 因爲迎年益壽矣.” 라고 되어 있다. )>>

한데, 울금이 대희 왈,

길동이 낭중(囊中)에서 독약(毒藥)을 한 봉을 내어 술에 타 주니, 급히 받아 마시니 이윽하여 울금이 몸을 두르며 크게 소리하여 왈,

하고, 모든 동생 등(等)을 불러 왈,

하고, 인하여 죽으니 모든 울금이 일시에 칼을 들고 내달아 꾸짖어 왈,

하고, 달려 들거늘 길동이 대소 왈,

하되, 모든 울금 등이 대로(大怒)하여 일시에 내달아들거늘, 길동이 대적코자 하나 손에 일촌(一寸) 병(兵)이 없는지라. 응(應)하여 막을 길이 없어 사세 위급하거늘 몸을 날려 공중으로 달아나거늘, 길동이 할 길 없어 급히 육갑육정(六甲六丁)을 부르니 문득 공중에서 무수한 신장(神將)이 내려와 모든 울금 결박하여 땅에 꿇리거늘, 길동이 그 놈의 칼을 앗아 울금을 함몰(陷沒)하고 그 여자 삼 인을 죽이려 하니, 삼 인이 울며 애걸 왈,

하거늘, 길동 그 여자 삼 인의 거주성명을 물으니, 하나는 낙천의 백웅이 천금으로 구하던 딸이요, 두 여자는 정 조 양인(兩人)의 여자라. 길동이 이 세 여자를 데리고 돌아와 백웅을 보고 이 말을 한대, 백웅이 평생 서러워하던 여자를 찾으니 기쁜 마음을 어찌 다 측량하리오. 천금으로써 대연을 배설하고 향당(鄕黨)을 모아 홍생(洪生)으로 사위를 삼고, 일가(一家)의 칭찬하는 소리 낭자(狼藉)하더라. 이튿날 또 정 조 양인이 홍생을 청하여 사례하고 여자로써 첩을 정하니, 길동이 나이 이십 되도록 봉황(鳳凰)의 짝을 모르더니 일조(一朝)에 세 숙녀를 만났으니 극(極)한 정(情)이 새말하고13 백용 부처도 사랑하고 가산(家産)을 수습(收拾)하고 일가(一家)를 거느리고 겨도로 오니, 모든 군사 멀리 나와 맞아 원로에 평안히 다녀오심을 문후(問候)하고 행차를 옹위하여 제도에 무사히 돌아와 대연을 배설하고 주야 즐기더라.

세월이 여류하여 겨도에 들어온 지 거의 삼 년이라. 일일은 길동이 월하(月下)에 배회하더니 홀연(忽然) 천문(天文)을 살펴보니, 부모를 생각하더니 마침 기러기 울거늘 길동이 심회(心懷)를 정치 못하여 낙루(落淚)하거늘, 백씨 문왈,

길동 유체(流涕) 왈,

한대, 백씨 그 근본을 감춤이 없음을 장부로 알아 재삼 위로하더라.

길동이 일군을 거느려 일봉산으로 들어가 산맥(山脈)을 살펴 일좌(一坐) 명승지지(名勝之地)를 보고, 그 날부터 역사(役事)를 시작하여 좌우(左右) 산곡(山谷)과 분묘(墳墓)를 나라 능소(陵所)같이 하고, 돌아와 모든 군사를 불러 분부 왈,

하고, 즉시 백씨와 정 조 양인을 이별하고 소선(小船) 일 척(一隻)을 재촉하며, 길동은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소선으로 조선을 향하니라.

각설. 이 때 홍승상이 연기(年紀) 구십에 졸연(猝然) 득병(得病)하여 추구월(秋九月) 망일(望日)이라. 부인과 길현을 불러 가로대,

하고, 길동 어미를 불러 손을 잡고 눈물 흘려 왈,

하고, 언파(言罷)에 향탕(香湯)을 재촉하여 목욕하시고 의복을 갈아 입고 상(床)에 누워서 인하여 별세하시니 부인과 일가 망극하여 곡성(哭聲)이 구천(九泉)에 사무치는지라. 초종지례(初終之禮)를 극진히 하여 성복(成服)을 지낸 후에 명승지지(名勝之地)를 구하여 안장(安葬)코자 하니 사방 지사(地師)들이 구름 모이듯 하여 난분분(亂紛紛)하되 여의(如意)치 못한지라. 문득 시동(侍童)이 고하되,

하거늘, 좌우(左右) 조객(弔客)이 괴히하더라. 그 중이 와 영위전(靈位前)에 나아가 망극애통(罔極哀痛)하기를 마지 아니하거늘, 좌우 조객이 가로대,

울음을 그치고 대청(大廳) 나아가 눈물을 씼고 가로대,

좌우 자세히 보니 이는 곧 길동이라. 일변 놀라며 일변 반가워 통곡 왈,

하고 붙들어 내당에 들어가니, 부인 왈,

하시거늘, 길현이 고왈,

부인이 일희일비(一喜一悲)하여 길동을 붙들고 통곡 왈,

길동이 통곡 왈,

부인이 시비를 명하여 길동의 모를 부르니, 그 어미 이 말 듣고 전지도지(顚之倒之) 내당에 들어가 길동을 붙들고 통곡 기절하거늘, 모든 사람이 구하니라. 이윽고 정신을 진정하여 모자 서로 붙들고 그리던 정을 못내 슬퍼하더라. 길동이 왈,

장자(長子) 점두(點頭)하니라. 길동이 왈,

장자 왈,

하고, 이튿날 수삼 하인을 데리고 길동을 따라 한 곳에 이르니, 석각(石角) 중중(重重)하고 절벽(絶壁)은 층층(層層)한데, 앉히고 가로대,

길현이 좌우를 살펴보니 석각지지(石角之地)라. 길동의 지술(地術) 허탄(虛誕)함을 개탄하고 가로대,

하니, 길동이 탄식하고 가로대,

하고15, 한 쌍 백학(白鶴)이 날아가거늘, 그제야 크게 놀래어 길동의 손을 잡고 가로대,

길동이 탄식 왈,

길현이 대왈,

길동이 대왈,

하거늘, 길동의 형이 허락하고 돌아와 대부인(大夫人)께 사연을 고하니 부인이 또 허락하시니, 이튿날 행상(行喪)을 매며 발행(發行)할새, 길동이 부인께 여쭈오대,

대부인과 길현이 허락하시거늘, 상구를 모셔 서강(西江)으로 이르니 길동의 하졸이 바라며 선척(船隻)을 강변(江邊)에 대후(待候)하였더라. 즉시 상구(喪具)를 배에 모시고 본댁(本宅) 노자(奴子)를 도로 보내고, 다만 길동이 일행과 길현이 시종(侍從) 수십 인을 거느리고 망망대해(茫茫大海)에 순풍(順風)으로 인하여 수십 일만에 한 곳에 이르니, 배 수십 척이 대후하였더라. 길동의 일행을 맞아 잔치를 배설하고 상구(喪具)를 호송(護送)하여 섬 중에 들어가니, 수만 군졸이 나와 조문(弔問)하고 상구 메어 산상(山上)으로 올라가니, 좌우 산석(山石)과 분묘(墳墓)는 나라 능소(陵所)같이 하였거늘, 길현이 대왈,

묻거늘, 길동이 왈,

언파(言罷)에 군사를 호령하여 왈,

한대, 군사 일시에 관을 받들어 만년유택지지(萬年幽宅之地)에 모시고, 길동이 중의 복색(服色)을 벗고 상복(喪服)을 갖추어 어미와 길현을 모시고 분묘(墳墓)를 (8)하직 통곡한 후에 본부(本府)로 찾아오니, 백씨 등이 포진(鋪陳)을 배설하고 장자(長子)와 존고(尊姑)를 시접(侍接)하고 고부지예(姑婦之禮)를 행하고, 존구(尊舅)의 장사(葬事)를 위문하니, 길동의 신기함을 탄복하며 흔연(欣然)히 입잡2 하고 자부(子婦) 등을 사랑하더라. 빈객(賓客)이 일일 조문(弔問)하더라.

길현이 제도에 온 지 누월(屢月)이 됨에 홀연 본국에 돌아갈 마음이 간절한지라. 길동을 불러 왈,

하고, 인하여 체루(涕淚)하거늘, 길동 위로 왈,

하거늘, 길현이 마지 못하여 (9)허락하고 명일에 발행할새, 길동의 모(母)와 백씨 등이 이별 회답(回答)하여 수로(水路) 만리(萬里)에 안녕보중(安寧保重)하시고 다시 오심을 신신당부(申申當付)하더라. 길현 모든 군사에게 하직을 받고 부친 산소에 배사(拜辭) 애통(哀痛)하여 기절하거늘, 길동 재삼 위로하고 일척 소선(小船)을 재촉하여 배에 오를새, 길동이 이별하여 왈,

길현이 길동 손을 잡고 유체(流涕) 왈,

길동이 재삼 위로하고 사공을 불러 왈,

하고, 금은(金銀) 채단(綵緞)을 무수히 실어 보내니 길현이 칭찬을 마지 아니하더라. 배를 저어 사십 일만에 조선에 돌아와 길동에게 편지하고, 본가(本家)에 돌아와 대부인께 뵈옵고 전후사를 고한대, 부인이 길동의 소견(所見)을 칭찬하나 들으며 슬퍼하더라.

이 때 길동이 게도에 있어 조석(朝夕) 향화(香火)를 극진히 받들어 지내고 백씨도 존고(尊姑)를 지성으로 공양(供養)하니,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하고 사방으로 무일사(無一事)라. 삼년초종(三年初終)을 지성으로 지내고 길동이 화복(華服)을 갖추고 군사를 위로하여 태평 세월을 보내며 농업을 힘쓰고, 노는 날에 무예를 힘써, (0)곡식이 태산 같고 병기(兵器) 많은지라.

이 때 근처에 한 나라 있으되 이름은 율도국이라. 대국(大國)은 섬기지 아니하고 율왕이 누대(累代) 전위(傳位)하여 제화(濟化)를 행하니 나라가 윤택하고 백성이 요부(饒富)하여 사방에 근심이 없더라.

이적에 길동이 춘추(春秋)로 군사를 연습하니, 기병(騎兵)이 삼만(三萬)이요, 보병(步兵)이 이십만(二十萬)이라. 일일은 길동이 제장(諸將)을 모아 의논 왈,

길동이 택일(擇日)하여 군사를 발행할새, 대장(大將) 사만군으로 선봉(先鋒)을 삼고 부장(副將) 김익순으로 후군장(後軍將)을 삼고 수십만 군을 거느려 출전하니, 기치창검(旗幟槍劍)은 일월(日月)을 희롱하고 고각함성(鼓角喊聲)은 천지진동(天地震動)하더라. 대군을 재촉하여 강둑에 이르니 무수한 선척(船隻)이 강변(江邊)에 대후(待候)하였거늘, 군사와 군량(軍糧)을 싣고 행선(行船)하여 일삭(一朔)만에 율도국 지경(地境)에 이르러 군사를 육지에 내리고, 선척(船隻) 파래2 하고 대군을 급히 몰아 쳐들어가니, 각 읍이 문을 열고 맞아 항복하거늘, 단사호장(簞食壺漿)으로 지경(地境)을 범하니 수월만에 칠십여 성을 항복 받고, 연(連)하여 쳐들어가니 위엄이 사방에 진동하더라. 백성이 병란(兵亂)을 모르다가 불의에 난(亂)을 당하여 일국이 물 끓듯하여 산중(山中)으로 피란(避亂)하더라.

길동의 대군 후새성에 이르니 율도국 왕도(王都) 불원(不遠)하고 성(城)이 험악(險惡)하여 가볍게 파(破)치 못할지라. 길동이 사십 리 허(許)에 설진(設陣)하고 율도왕에게 격서(檄書)를 보내니라. 율왕이 개탁(開坼)하니 그 글에 하였으되,

하고 또 위로 왈,

하였더라. 율왕이 남필(覽畢)에 대경실색(大驚失色)하여 문무제신(文武諸臣)을 모아 의논 왈,

하신대, 제신이 고왈,

하거늘, 율왕이 분연(憤然) 왈,

하고, 정병(精兵) 삼만을 조발(調發)하여 친히 출전코자 하여 서주를 보내어 적세를 탐지하라 하신대 이윽고 군사 보(報)하되,

하거늘, 율왕이 군사를 호령하여 양안에 이르니 적병 벌써 사장(沙場)에 진(陣)하였더라.

각설. 길동이 양안 삼사십 리에 결진(結陣)하고, 제장(諸將)을 분발(奮發)할새,

하고, 선봉장 유면충을 불러 왈,

하고, 또 군대장 김익순을 불러 왈,

하고, 또 에기를 불러 왈,

하신대, 삼장(三將)이 각각 청령(聽令)하고 물러나니라.

이튿날 선봉장 만총이 일천 군을 거느려 사장에 웅거하였다가 평명(平明)에 진문(陣門)을 열고 일성(一聲) 방포(放砲)에 말을 달려 외쳐 왈,

하되, 율왕이 대로(大怒)하여 의갑(衣甲)을 입고 말에 올라 우수(右手)에 유회2 를 들고, 좌수(左手)에 방천극(方天戟)을 들어 내노라 만충을 맞아 수십여 합(合)을 싸우더니, 만충이 거짓 패하여 산곡으로 달아나거늘, 율왕이 꾸짖어 왈,

하고, 급히 말을 달려 양안을 지내어 산곡으로 들어가니, 제장이 외쳐 왈,

하거늘, 율왕이 대로 왈,

하고, 말을 쳐 만충을 좇더니19, 양구(良久) 아니하여 후면으로서 일성(一聲) 방포(放砲)에 대군을 만나니라. 길을 막거늘, 살펴보니, 대장 홍길동 몸에 용린갑(龍鱗甲)을 입고, 머리에 순금 투구를 쓰고, 손에 철퇴(鐵槌)를 들고, 백설마(白雪馬)를 타고 나는 듯이 나오며 외쳐 왈,

하거늘, 율왕이 대로 왈,

하고, 삼십여 합에 승부를 짓지 못하더니 홀연이 좌편에서 금고함성(金鼓喊聲)이 천지진동(天地震動)하더니 일진(一陣) 군마(軍馬) 치닫거늘, 율왕 적장에게 속은 줄 알고 자퇴(自退)코자 하더니 또한 후군(後軍)이 응한지라. 적병이 산곡에 불을 지르고 일변 추살(追殺)한다 하거늘, 율왕이 황망(慌忙)히 말을 달려 남편(南便)을 바라보고 달아나더니, 문득 전면(前面)으로 일진광풍(一陣狂風)이 일어나며 사면(四面)으로 급한 불이 바람을 좇아 들어오거늘, 율왕이 대경하여 앙천(仰天) 탄왈(嘆曰),

하고, 인하여 칼을 빼어 자결(自決)하니, 그 아들 여차가 부왕(父王)의 신체(身體)를 붙들고 통곡하다가 또한 자결하니라. 길동이 모든 군사를 일시에 항복 받고 군사를 거두어 본진(本陣)으로 돌아와, 제장을 거느리고 승전고(勝戰鼓)를 울리고 율도국 도성에 들어가 백성을 안돈(安頓)하고, 제군을 상사(賞賜)하며, 만충으로 수문어사를 삼고, 율도국 삼백육십 주(州)를 순행(巡行)하여 창곡(倉穀)을 열고 곡식을 내어 백성을 진무(鎭撫)하니, 백성이 신왕(新王)의 덕을 일컫더라.

각설. 이 때는 삼월(三月) 갑자일(甲子日)에 신왕(新王)이 황각전에 전좌(殿座)하시고 만조백관(滿朝百官)을 모아 조회(朝會) 받고, 제장(諸將)을 각(各) 벼슬을 시키고 부귀를 누리게 하고, 대감(大監) 추존(追尊)하여 현덕왕이라 하고, 백웅으로 부원수(副元帥)를 하시고, 그 모친(母親)으로 왕후(王后)를 봉(封)하고, 백씨로 왕비(王妃)를 봉하고, 조씨로 충렬부인을 봉하시고, 정씨로 정절부인을 봉하시고, 각각 궁궐을 지어 거처하게 하시고, 대감 산소는 현릉이라 하고 참봉(參奉)으로 춘추(春秋) 제향(祭享)하게 하고, 정 조 양인(兩人)도 벼슬을 시키시니라.

이 때 왕이 덕을 기르며 밖으로 인정(仁政)을 행(行)하니, 십 년이 못하여 국태민안(國泰民安)하고 가급인족(家給人足)하여 도불습유(道不拾遺)하고 사무도적(四無盜賊)하니, 나라에 일이 없고 백성이 격양가(擊壤歌)를 불러 왈,

세월이 여류하여 왕후(王后)의 시년(時年)이 칠십세에 몸이 위중(危重)하여 십수년의 영화(榮華)를 받들다가, 병자(丙子) 구월 망간(望間) 우연히 득병(得病)하여 세상을 이별하니, 왕이 붙들고 만성인민(滿城人民)이 망극애통(罔極哀痛)하여 설워함을 마지 아니하더라. 초종(初終)을 극진히 하여 삼삭(三朔) 후에 현릉 좌편(左便)에 안장(安葬)하고 이름을 여흘릉이라 하고, 삼 년 초종(初終)을 극진히 지내고 풍악(風樂)을 갖추어 즐기더라.

왕이 일찍 삼자(三子)를 두었으니 장자(長子)의 명(名)은 창이니 백씨 낳은 바요, 차자(次子)의 명(名)은 선이니 조씨 낳은 바요, 삼자(三子)의 명(名)은 석이니 정씨 낳은 바라. 장자(長子) 창의 위인(爲人)이 총명재승(聰明才勝)하여 가히 왕의 뒤를 본받을레라. 왕이 태자(太子)를 봉하였더니, 왕이 등극하시고 연신산에 자주 거동(擧動)하시더니, 일일은 천지 아득하여 뇌성벽력(雷聲霹靂)이 진동하며 운무(雲霧) 영신산에 둘렀거늘, 왕이 대경하여 조신(朝臣)으로 더불어 영신산에 올라가니, 대왕(大王) 대비(大妃) 간 데 없는지라.왕이 대경실색(大驚失色)하여 사방에 방문(訪問)하되 인적(人迹) 없는지라. 망극애통(罔極哀痛)함을 마지 아니하고 등신(等身)을 만들어 허장(虛葬)하고 주야(晝夜) 슬퍼하시더라. 이러하므로 사람들이 이르기를,

하더라.

각설. 세월이 여류하여 또한 삼십 년 치국(治國)하되, 왕이 현덕(賢德)을 본받아 인의(仁義)를 베풀새 일국이 태평하더라. 이러함으로 율왕이 대대(代代)로 전위(傳位)하니 어찌 아니 조록하리오. 2 세상 사람들이 뉘 아니 칭복(稱福)하리오 하더라.

이 때 조선국 홍승상의 장자 길현이 매일 친산(親山)을 생각하여 길동을 보고자 하더라.

계유(癸酉) 이월(二月) 이일(二日) 날 자서(自書)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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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래

엮인 글


  1. 원문 입력자 주: 내용이 빠졌음. 서강대 30장본에는, “夫人若聽吾言 此兒豈非夫人之己出乎”라고 되어 있다. (1)

  2. 원문 입력자 주: 미상. (2 3 4 5 6 7 8 9 10 11 12)

  3. 원문 입력자 주: “부인과 장자가”라는 말이 빠졌음. (13)

  4. 원문 입력자 주: 내용이 빠졌음. 89장본에는 “마음이 산란하고 정신이 혼미하니 괴이하도다. 하고” 라는 대목이 있음. (14)

  5. 원문 입력자 주: 미상. 89장본에는, “특재 그제야 그 재주 신기함을 보고 항복하여” 라는 대목이 있음. (15)

  6. 원문 입력자 주: 내용이 빠졌음. 완판에는, “한 군사 그 글을 등서하여 좌중에 드리니 상좌의 한 사람이 그 글을 보다가” 라고 되어 있음. (16)

  7. 원문 입력자 주: 원문은 중복되어 있음. (17)

  8. 원문 입력자 주: 내용이 빠졌음. 89장본에는, “주점에 들어와 안거늘, 포장이 일어나 예하고 좌를 정한 후엥 소년이 문득 한숨 지으며 탄식하거늘” 이라고 되어 있다. (18)

  9. 원문 입력자 주: 원문에는 내용이 중복 되었음. (19)

  10. 원문 입력자 주: 내용이 빠졌음. 서강대 30장본에는 “禁府羅卒 結縛八吉童 一時궤\\左右階下 八吉童相爭曰” 이라고 되어 있다. (20)

  11. 원문 입력자 주: 미상. 89장본에는, “이러한 뜻으로 榻前에 奏達하니 上이 振怒하사 爲先 押領 將校를 遠竄하라.” (21)

  12. 원문 입력자 주: 원문은 내용이 중복되었음, (22)

  13. 원문 입력자: 미상. 한문본에는 “如膠漆矣” 라고 했음. (23)

  14. 원문 입력자 주: 내용이 빠졌음. 89장본에는, “어떠한 중이관데 저다지 哀痛하나.고 疑心함을 마지 아니하더라. 반향 後에 길동이 울음을 그치고” 라고 되어 있음. (24)

  15. 원문 입력자 주: 내용이 빠졌음. 89장본에는, “하고, 즉시 鐵椎를 들어 바위를 깨치니 土色이 玲瓏하고, 數尺을 판 즉 붉은 안개 가득하여 斗牛星이 비치오며, 白鶴 한 雙이” 라고 되어 있음. (25)

  16. 원문 입력자 주: 89장본에는 “關山은 첩첩하고” 라고 되어 있음. (26)

  17. 원문 입력자 주: 내용이 빠졌음. 89장본에는, “諸君의 뜻이 어떠하뇨? 諸將이 應聲 왈, 소자의 平生 所願이로소이다.” 라고 되어 있다. (27)

  18. 원문 입력자 주: 미상. 정 우락본과 동양문고본에는, “적병이 벌써 흑제성을 파하고 군사를 삼로로 나누어 온다”라고 되어 있다. (28)

  19. 원문 입력자 주: 원문에는 내용이 중복되었음. (29)

홍길동전/홍긜동전리라(정 명기 77장본)/현대문 (last edited 2011-11-17 00:18:07 by Minsoo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