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터에 떠도는 글월을 다음어서 올립니다.
직지 살림에 처음 올리는 때: 2009.04.21
- 글월 입력: 알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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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이라(박 순호 86장본/현대문)
각설 세종대왕(世宗大王) 즉위(卽位) 십삼 년에 동화문 밖에 한 재상(宰相)이 있으되, 성(姓)은 홍(洪)이요, 이름은 이르지 아니하되, 승상(丞相)의 위인(爲人)이 경천공경(敬天恭敬)하여 사람마다 일컫는지라. 일찍 등과(登科)하여 벼슬이 우의정(右議政)에 이르니 충효겸전(忠孝兼全)하여 일국(一國)의 으뜸이라. 슬하(膝下)에 두 아들을 두었으되, 장자(長子)의 이름은 일형이니 소년등과(少年登科)하여 벼슬이 승지(承旨)에 있고, 차자(次子)의 이름은 길동이니 비첩(婢妾) 춘섬의 소생(所生)이라.
일일은 승상(丞相)이 화원(花園) 난간(欄干)에 의지하여 졸더니,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 한 곳에 다다르니, 청산(靑山)은 중중(重重)하고, 옥수(玉水)는 연연(涓涓)한데, 점점 들어가니 길이 끊어지고 층암절벽(層岩絶壁)은 반공에 솟아있고, 녹수는 골골이 흐르는데 천봉만학(千峯萬壑)에 채운(彩雲)이 어리였는데, 기이한 금수(禽獸)는 객(客)을 보고 반기는 듯하거늘, 시내 반석상(磐石上)에 앉아 사면을 구경하더니, 문득 일성뇌성(一聲雷聲)에 천지(天地) 아득하며 난데없는 청룡(靑龍)이 수염을 서리고 상공(相公)을 향하여 달려들거늘, 상공(相公)이 대경(大驚)하여 몸을 솟구쳐 괴이(怪異)하여 깨달으니 화원(花園) 난간(欄干)이라. 심중에 대열(大悅)하여 즉시 내당(內堂)에 들어가서 부인의 옥수(玉手)를 이끌어 친합(親合)코저 한데, 부인 정색 왈,
- “대감의 체위(體位)가 지중(至重)하시거늘, 어찌 백주(白晝)에 남의 웃음을 생각지 아니하시고 연소경박자(年少輕薄者)의 추한 행실(行實)을 하나니까?”
언파(言罷)에 소매를 떨치고 밖으로 나가니, 상공이 무료(無聊)하여 분기를 참고 외당(外堂)에 나와 절절 개탄(慨歎)하더니,1 시첩(侍妾) 춘섬이 비록 천비나 천성(天性) 온화하고 행실(行實)이 단정하여 일지심이 있으나, 감히 거절치 못하여 몸을 허(許)하니라. 차후(此後)로는 방문 밖에 나가지 아니하고 뜻을 한결 같이 하더라. 과연 그 달부터 태기(胎氣) 있어 십 삭(十朔)만에 해태(解胎)하니 일개 옥동(玉童)이라. 기골(氣骨)이 준수(俊秀)하고 용모(容貌) 기이하여 범인(凡人)과 다르니, 대감이 극히 기뻐하나 그 천생(賤生)됨을 개탄(慨歎)하고, 이름을 길동이라 하더라.
이 아이 점점 자라나매 영웅(英雄)의 기상(氣象)과 준걸(俊傑)의 골격(骨格)이 날로 성취하여 미간(眉間)에 강산정기(江山精氣)를 띄였으며 흉중(胸中)에 만고흥망(萬古興亡)을 품은 듯하여, 눈으로 보는 것과 귀로 듣는 말은 무불통지(無不通知)하니, 지략(智略)이 손오(孫吳)에게 지나고, 술법(術法)이 강태공(姜太公)과 방불(彷彿)하며, 용력(勇力)은 초패왕(楚覇王)을 비길지라. 일가(一家)의 보는 사람이 뉘 아니 칭찬할 이 없더라.
일일은 상공(相公)이 길동의 손을 잡고 부인의 앞에 앉아 탄식(歎息) 왈,
- “이 아이 비록 영웅(英雄)이나 쓸데없는지라. 쓸데없으니 원통할사 부인 고집이로다.”
한대, 부인이 연고(緣故)를 물은대, 상공(相公)이 눈썹을 찡그리고 탄식(歎息) 왈,
- “부인이 전일에 괴이 여기지 말고 내 말씀을 들었던들 이 아이 부인의 복중(腹中)에 났을 것을”
몽사(夢事)를 말한데, 부인도 심중(心中)에 애원(哀怨)하나 무가내하(無可奈何)리라.
세월이 여류(如流)하여 길동의 나이 팔세에 이르러 상공(相公)이 각별 사랑하나, 아비를 제 입으로 부르지 못하고 부형을 형이라 못하고 길동의 나이 십세 되도록 부형을 입으로 부르지 못하니, 스스로 제 몸의 천루(賤陋)함을 깨달아 각별 서러워 하더라.
이 때는 춘사월(春四月) 망간(望間)이라. 월명양정(月明夜靜)하고 청풍(淸風)은 소슬한데, 길동이 적막히 앉아 글을 외다가는 책을 물리치고 탄식(歎息) 왈,
- “대장부(大丈夫) 세상(世上)에 처하거늘 제갈공명(諸葛孔明)같이 못할진데, 차라리 공명(功名)을 세워 출장입상(出將入相)하여 달만한 인수(印綬)를 요하(腰下)에 빗겨 차고 대장단에 높이 앉아 천만 말을 지휘간(指揮間)에 넣어두고, 동(東)으로 호국(胡國)을 멸(滅)하고, 서(西)로는 잔족(잔族)을 파(破)하고, 남(南)으로 초(楚)를 망(亡)하며, 북(北)으로 중원(中原)을 친 후에 이름을 죽백(竹帛)에 올려 만만세에 전(傳)하고, 얼굴을 누림상에 모화(模畵)하여 후세에 빛냄이 장부의 쾌(快)함이라. 왕후장상(王侯將相)이 어찌 씨 있으리요마는, 어이 부형을 부형이라 못하는고.”
언파에 칼을 빼어 월색(月色) 좇아 검무(劍舞)를 희롱하니 자상한 기운을 측량치 못할네라. 이 때 마침 승상이 월하(月下)에 배회(徘徊)하다가 길동의 검무(劍舞)를 보고 시동(侍童)을 명하여 길동을 명하여 부르시니, 길동 즉시 칼을 떨치고 서헌(西軒)에 이르니 상공이 가로되,
- “네 무슨 흥(興) 있어 월하(月下)에 홀로 노느냐?”
길동이 복지(伏地) 대왈,
- “소인이 당(堂)에 홀로 있사와 마침 월색이 명랑하옵기로 나와 배회(徘徊)하나이다.”
상공이 웃고 왈,
“하늘이 만물을 내시매2 네 어린 아이 무슨 일로 잠을 자지 아니하고 이 깊은 밤에 노느냐?”
길동 왈,
- “하늘이 만물(萬物)을 내었음에 오직 사람이 귀하거늘, 수(首)는 대감 정기 입사와 사람이 세상에 있사오니 즐겁삽거니와, 그 중 오륜(五倫)이 있사오니 남녀 분별(分別)하와 남자는 귀(貴)하고 여자는 천(賤)한데, 소인 당당한 남자되었삽거니와, 세상을 헤아려 살피오니 심중(心中)에 서러워하는 바는, 하늘을 우러러 보지 못하니 마음에 어찌 한이 없사오리까?”
말을 마치지 못하며 두 줄 눈물에 양협(兩頰)이 젖는지라. 웅장한 기운과 서러워하는 기상을 보고 측은이 여기시더라. 이윽고 길동이 침소에 돌아와 그 어미를 보고 왈,
- “모친으로 더불어 천생연분(天生緣分)이 지중하와 금세(今世)에 모자 되었사오니 은혜 백골난망(白骨難忘)이오이다. 장부 세상에 처하매 입신양명(立身揚名)하여 부모를 영화(榮華)롭게 하여 조선(祖先)을 빛내며, 부생모육지은(父生母育之恩)을 만분지일이나 갚자하였거늘, 내 팔자 불행하여 향당(鄕黨)이 외지(外之)하고, 친척이 천(賤)이 하여 나의 흉중(胸中)에 있는 한을 천지(天地) 밖에 알 이 없는지라. 대장부 조선국 대사마(大司馬) 인수(印綬)를 잡아 상장군이 못될진데, 차라리 일신(一身)을 물외(物外)에 던져 유취만년(遺臭萬年) 하올지라. 바라건데 모친은 구구한 사정을 생각지 말으시고 일생을 안보(安保)하소서. 소자 돌아와 찾기를 기다리소서.”
그 모친이 이 말을 듣고 정신이 산란하고 심사 둘데없어 왈,
- “재상가(宰相家) 천생(賤生)이 너뿐 아니라. 네 무슨 회곡(回曲)한 뜻을 머금어 나의 간장을 태우느냐? 너 장래 장성하면 대감의 처단이 있을 것이니 네 어미 낯을 보아 아직 참아라.”
한데, 길동이 왈,
- “부형 천대는 설혹 감수하려니와, 심지어 일가 놈이며, 각부(各府) 하인도 다 면면(面面) 지목(指目)하여 ‘아무의 천생(賤生) 길동이라’하니, 생각이 하마 있을 마음 없아와 심간(心間)에 맺쳤으니, 어찌 원통치 아니하리까. 마땅히 몸이 세상에 뛰어나 부귀영욕(富貴榮辱)을 잊고자 하오니, 복원(伏願) 모친은 자식을 생각지 말으시고 세월을 보내시면, 장래 반겨 만나 모자지정(母子之情)을 이룰 날이 있사오리다. 소자 집을 떠날지라도 모친에게 불의지환(不意之患)이 미치지 아니케 할 것이니 불효한 자식을 생각지 말으소서.”
그 모친 왈,
- “네 말이 가장 유리하나 당초 깨닫기 어렵도다. 만일 너 나가면 무슨 환(患)이 미치리라.”
하니, 길동 왈,
- “세상 사람을 측량하기 어렵사오나 곡산모(谷山母)라 하는 사람은 필경에 요악(妖惡)한 일을 행할 듯하오니 허술히 생각말고 나중을 살피소서.”
원래 곡산모는 곡산(谷山) 기생으로 승상이 작첩(作妾)하여 총애하시니, 스스로 몸이 방자하고 뜻이 만만하여 항상 길동 모자를 시기하는 바는 제 기출(己出)없고, 대감이 용몽(龍夢)으로 길동을 낳으매 각별 사랑하심을 보고 행여 총을 잃을까 염려하여 더욱 시기하여 해할3
- “것이니 부디 기미를 조심하소서.”
하더니, 과연 곡여(谷女) 한 꾀를 생각하고 사람으로 무녀(巫女)를 청하여 의논 왈,
- “길동의 모자를 처치하여 나의 염려를 덜게 하면, 그대를 후(厚)하게 대접하고 일생을 편케 하리라.”
한데, 무녀는 재물을 탐하여 비계(秘計)를 들어 왈,
- “서문 밖에 관상(觀相)하는 계집 있으되, 사람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결단(決斷)하오니, 그 사람을 청하여 계교를 의논한 후에 대감께 천거(薦擧)하여, 전후사를 본 듯이 말하면 소원을 이루리다.”
하니, 곡녀(谷女) 대열(大悅)하여 즉시 사람을 보내어 관상녀를 청하라 하고, 무녀를 은자(銀子) 오십 냥을 주어 보낸 후에 관상녀(觀相女) 즉시 이르거늘, 곡녀 주찬(酒饌)을 내어 대접하고 좋은 말로 은근이 제 소원을 설화(說話)하니, 상녀(相女) 이윽히 생각하다가 재물(財物)을 탐(貪)하여 흔연히 허락하고 가니라.
이튿날 대감이 부인과 길동을 데리고 희롱하더니, 문득 한 여자가 밖에서 들어와 뵈거늘, 살펴보니 의표(儀表) 비범하고 용모는 수(秀)한지라. 곡녀 문왈(問曰),
- “그대 무슨 연고(緣故)로 왔느뇨?”
상녀(相女) 대왈(對曰),
- “소녀는 문외(門外)에서 사옵더니, 팔자 기박(奇薄)하여 주유사방(周遊四方) 하옵다가 한 신인을 만나 관상찰색(觀相察色)하는 법을 배워 사람의 상을 보오면 재주와 길흉(吉凶)을 판단하옵기로, 댁 문하(門下)에 재주를 시험코자 하나이다.”
상공이 웃고 왈,
- “우리 가중(家衆) 인물을 차례로 의논하라.”
하신데, 상녀 심중(心中)에 대열(大悅) 염슬단좌(斂膝端坐)하고 대감의 상을 보아 전후사를 의논하되 전에 보던 사연과 합부절(合符節)하니, 대감과 부인이 칭찬하시고 길동을 불러 앉히고,
- “내 늦게야 이 아이를 낳아 사랑 그지 없거늘, 자세히 상을 보아 장래 말을 하라.”
하신데, 이윽히 보다가 왈,
- “이 아이 상을 보니 천고영웅(千古英雄)이요 일대호걸(一代豪傑)이라. 아지 못할지라. 부인의 기출(己出) 아니니까?”
상공이 대왈(對曰),
- “천첩소생(賤妾所生)이라.”
하신데, 상녀 다시 거짓 놀라는 체 하고 말이 없거늘, 상공과 부인 괴(怪)이 여겨,
- “무슨 불여(不如)한 일이 있느냐?”
상녀 주저(躊躇)하다가 여쭈오데,
- “소첩이 재상가 공자를 많이 보았사오나 앞에 같은 상은 보지 못하였사오나, 만일 실상을 고한데 대감 처분 어떠할 줄 몰라 주저하나이다.”
부인 왈,
- “그대 상법(相法)이 그러니 어찌 그릇 보았으리요.”
하신데, 상녀 그제야 조용히 고왈(告曰),
- “공자의 상을 보오니 만고무상(萬古無相)이라. 흉중(胸中)에 천지조화(天地造化)를 품어 있고, 미간(眉間)에 강산정기(江山精氣)를 띠었으니 진실로 왕자 기상이라. 우리 조선이 비록 예의지국(禮義之國)이오나 지방이 편소(編小)하니 왕자의 기상이 쓸데없삽고, 만일 장성하면 그 상(相) 발원(發源)하와 마침내 대환(大患)이 미치겠삽나이다. 방액(防厄)하소서.”
대감이 듣고 무인방약(無人傍若)으로 가로되,
- “만일 이 말 같을진데 놀납나이다. 본대 천비소생이라, 비록 재주 탁월하여도 용납지 못할 것이니, 아이 나이 오십이 넘도록 문밖에 출입하지 못하게 하면 무슨 염려 있으리오.”
하신데, 상녀 써 가로되,
- “왕후장상이 어찌 씨 있으리오.”
하니, 상공이 탄식하고 은자 오십 냥을 주며 이 말을 누설치 말라 하시고 당부하여 보내니, 상녀 고두사례(叩頭謝禮)하고 돌아가더라.
상공이 차후는 길동이를 더욱 염려하며 일가(一家)도 다 천대(賤待)가 자심(滋甚)하니, 길동이 날로 설워하며 후원 심당(深堂)에 자취를 감추고 손오(孫吳)의 병서와 제갈무후(諸葛武侯)의 도략(圖略)이며, 천문지리(天文地理)를 달통하는지라. 상공이 길동이를 살피며 왈,
- “이 아이 범인(凡人)이 아니라. 만일 범람(汎濫)한 뜻을 두면 내 집이 일조(一朝)에 대환을 당할 것이니, 차라리 저를 없애 일가 보존함만 같지 못하다.”
하고, 제족(諸族)을 모와 의논하여, ‘길동을 없애리라’하고, 생각 깊이 하더니, 이 때에 길동 설움을 이기지 못하여, ‘몸을 조금 피하리라’하고, 남 모르게 나가 수십 리를 행하다가 날이 저물거늘, 작점(作店)하여 들어가 자더니, 상고(商賈), 행인(行人) 십여 명이 앉았거늘, 길동이 한편에 앉았으니 벌써 석반(夕飯)을 들어 먹거늘, 한 사람이 저반(箸飯)을 내어주거늘, 길동이 먹고 앉았으니 이윽하여 상고(商賈) 들어와,
- “이 배를 사라.”
하니, 모든 행인이 배를 사자하며 값을 물으니, 그 장사 답왈(答曰),
- “하나에 한 푼씩 받노라.”
하니, 만좌(滿座) 중인(衆人) 각기 다 사 먹으며 한 점씩 주거늘, 길동이 받아 먹으니 배 맛이 기이한지라. 모든 사람들이 또 사 먹자 한즉 그 장사 대답지 아니하고 가거늘, 방중(房中) 행인(行人)들이 서로 이르되,
- “그 어인 장사관데 답도 아니하고 팔지도 아니하니 그런 장사 또 있을까?”
하거늘, 길동이,
- “그 배장사 참 배장사가 아니라.”
하니, 만좌(滿座) 중인(衆人)이 가로되,
- “배장사 아니면 무엇이야?”
하니, 길동이 왈,
- “차방(此房) 중인(衆人) 명수(名數)를 알고자 함이라. 금야(今夜) 일행의 재물을 탈취코자 함이로다.”
하니, 여러 행인 이 말을 들으니 가장 유리한지라. 행인들이 달려들어 청하거늘, 행인 왈,
- “아니 잃을 꾀를 가르치면 우리 재물을 반분(半分)할 것이니 가르치라.”
하거늘, 길동 왈,
- “반분(半分)함이 아니라 오늘 밤 팃저왼으로 가르치리로다.”
하고,
- “방 자리를 걷고 밑에 유지(油紙)를 깔고 그 위에 여러 비단을 펴고, 그 위에 장판을 깔고 장판 위에 곡식을 널고, 자리 펴고 누웠으면 잃지 아니하리라.”
모든 사람들이 그 지모를 칭찬하고 그 말과 같이 하였더니, 과연 그 밤 삼경에 적당(賊黨)이 달려 들어와 왈,
- “이 집을 두루 살피되 없으니 암커나 방안을 보리라.”
하고, 자리를 걷으며 살피여 ‘있다’하고 장판을 걷고 왈,
- “용하다.”
하며,
- “이 꾀를 감히 생각지 못할 꾀를 하였느냐? 바로 이르면 아니 가져 가리라.”
하며 묻거늘, 한 사람이 답왈(答曰),
- “과연 우리 십여 명이로대 알 자 없더니, 어린 아이 가르친 바로다.”
하니, 도적이 칭찬 왈,
- “이 아이 장래 자라나 크면 영웅(英雄)이 되리로다.”
하고, 기물을 도로 주고 가거늘, 그 밤을 지내고 이튿날 십여 명 상고(商賈) 기물을 반분(半分)하여 주거늘, 길동 왈,
- “도적도 주고 가거늘 내 어찌 가지리오.”
하고, 상고(商賈)를 이별하고 집으로 돌아오니라.
이즈음 곡녀(谷女) 초난이 대감의 근심하는 뜻을 알고 더욱 마음이 방자하여, 가만이 특재라 하는 자객(刺客)을 청하여 은자를 후(厚)이 주고 길동이를 해(害)코자 할새, 일일은 대감께 고한데,
- “소첩 듣사오니 관상녀 길동의 상을 보고 왕자의 기상이 있다 한즉, 이는 일가대환(一家大患)이오니 첩의 소견으로는 저를 일찍 없이함만 같지 못하오니 깊이 생각하옵소서.”
상공이 눈썹을 찡그리고 가로되,
- “이는 너의 알 바 아니라. 다시 이러한 말을 하지말라.”
하시니, 초난이 황공하여 물러가니라. 대감이 이로 말미암아 비병지병(非病之病)이 되어 부자지정(父子之情)이 점점 석나크나 참아 죽이지 못하여 엄금(嚴禁)하니, 길동 초난의 참소(讒訴)를 짐작하고 염려하여, 밤이면 잠을 자지 아니하고 서책(書冊)을 대하여 주역(周易)을 드려 송(誦)하며, 육십사괘(六十四卦)를 응하며, 조화와 팔문둔갑(八門遁甲)을 베풀어 천문지리(天文地理)를 통달하며 주야(晝夜) 연습하더니, 대감이 또한 이 기미를 살피시고 관상녀 말을 생각하니 실로 염려 적지 아니한지라. 이로써 병세 위중(危重)하시니 부인과 일가 다 황공하더라.
- 초난이 꾀 생각하여 왈, “대감이 전일에 관상녀 말을 좇아 병세 점점 침중하시니, 비록 절박하오나 길동을 가만히 죽여 없앤 후에 대감께 연유(緣由)를 고하면 병세 자연 회복하리로다.”
부인 왈,
- “네 말이 유리하나 어찌 죽이리오.”
하신데, 초난이 다시 여쭈오되,
- “제 그 한 목숨을 아껴 대감의 환후도 침중(沈重)할 뿐아니라, 미구(未久)에 대환이 박두하와 일가(一家) 환(患)을 못 면하리라 하오니, 아무리 정의(情誼)에는 아니하나 어찌 아끼리이까?”
한대, 부인이 이윽히 생각하다가 마지 못하여 왈,
- “네 말대로 하라.”
하신데, 초난이 대열(大悅)하여 여쭈오되,
- “듣사오되 근처에 특재라 하는 자객(刺客)이 있다 하오니, 용력(勇力)이 과인(過人)하여 나는 제비라도 잡는 재주 있다 하니, 사람을 불러 천금을 주고 밤을 기다려 가만히 들어가 죽여 자취를 없이 함이 좋을까 하나이다.”
부인이 눈물을 흘리시고 왈,
- “이는 인정(人情)에 차마 못할 바라. 그러하나 대감을 위하는 일이니 급히 계교(計巧)를 행하라.”
하니, 초난이 기뻐하여 즉시 침방(寢房)으로 돌아와 특재를 불러 왈,
- “대감과 부인의 영(令)을 받았노라.”
하고, 술을 권하며 전후사(前後事)를 말한 후에
- “이는 다른 의심 없으니 금야(今夜) 삼경에 들어가 죽이되, 길동의 용력(勇力)이 과인(過人)하여 재주 비상하니 부디 조심하라.”
하고 은자 오십 냥을 주니, 특재 대열(大悅)하여 은자를 감사하고 왈,
- “길동이 비록 제 힘 있으나 황구유아(黃口幼兒)라. 무슨 근심 있사오리오.”
하고, 돌아와 밤을 기다려 들어가기를 꾀하더라.
이 때 초난 그 연유(緣由)를 부인께 고하니 부인이 탄식 왈,
- “저를 미워함이 아니라 사세(事勢)가 부득하여 행함이라.”
하시고 개탄(慨歎)하니, 장자 일형이 어쭈오되,
- “이제 이에 미쳤으니 후회막급(後悔莫及)하니 저의 신체(身體)나 염습(殮襲)하여 극진이 하여 안장(安葬)하면 무슨 여한(餘恨)이 있사오리까?”
한데, 부인이 밤이 맟도록 번뇌(煩惱)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더라.
이때 길동이 등촉(燈燭)을 밝히고 주역(周易)을 잠심(潛心)하더니, 밤이 이미 삼경이라. 서안(書案)을 물리치고 정히 취침코자 하더니, 문득 침방(寢房) 창 밖에서 난데없는 까마귀 세 번 울고 북으로 날아가거늘, 고히 여겨 생각하되, ‘이 깊은 삼경에 짐승이 남으로 날아와 북으로 울고 가니 무슨 일이 있어 알고 함이라.’ 즉시 주역(周易)을 내어 글자로 해혹(解惑)하니,
- “까마귀 소리 ‘깨차와’하니, 이는 자는 사람을 깨웠으니 필연 재액(災厄)이 오는도다.”
하고, ‘어떠한 흉인(凶人)이 있어 나를 해(害)하고자 하는고.’ 즉시 작괘(作卦)하니 선흉후길(先凶後吉) 대상(大祥)이라. ‘아무러커나 방어하여 비계(秘計)를 준비하리라’하고, 방중(房中)에 팔문둔갑(八門遁甲)을 펴 동서남북으로 각각 방위(方位)를 응(應)하고, 육정육갑(六丁六甲)을 그 가운데 두어 풍운조화(風雲造化)를 부리게 하고, 염슬단좌(斂膝端坐)하여 조용히 때를 기다리더니.
이때 특재 비수(匕首)를 들고 후원장(後園墻) 넘어들어 길동이 사처(私處)하는 초당(草堂)에 이르니, 화촉(華燭)이 명랑하고 인적(人跡)이 고요하거늘, 특재 심중(心中)에 의혹하여 헤오데, ‘길동이 범인(凡人)이 아니라 하더니 이제 짐승이 무슨 앎이 있어 천기(天氣)를 누설한단 말인가, 만일 길동이 지음(知音)하면 대사(大事) 그릇되리라.’하며, ‘그러나 아직 황구유아(黃口幼兒)라. 무슨 지식이 있으리오.’ 몸을 날려 방중(房中)을 열어보니, 길동이 서안을 비겨 팔문둔갑(八門遁甲)을 희롱하거늘, 자세히 보니 진언(眞言)을 법송(法誦)하며 방중에 살기(殺氣) 가득하여 정신이 산란한지라. 특재 고히 여겨 칼을 굳이 안고 탄식 왈,
- “내 아직 대사(大事)를 함에 겁함이 없더니 금야(今夜)에는 이 내 마음이 산란하고, 정신이 혼미하니 고이하도다.”
하고, 찾아 가다가 도로 가고자 하더니 다시 생각하니, ‘장부 어찌 조그만한 아이를 겁하리오’하고, 다시 비수(匕首)를 잡고 언연(偃然)히 문을 열고 들어가니, 길동이 벌써 간데없고, 음풍(陰風)이 심하며 살기(殺氣) 충천하고, 뇌성벽력(雷聲霹靂)이 천지에 진동하거늘, 마음이 두려워 도로 나오고자 하더니 홀연 방중이 변하여 한 뜰이 되어 무수한 돌무덤이 중중(重重) 쌓여 있고, 천봉만학(千峯萬壑)같이 높은 봉이 첩첩(疊疊)이 둘렀는데, 폭포수는 천지 양양(洋洋)한데, 월색(月色)은 삼경에 걸려 있고 백로(白鷺)는 승지(勝地)에 깃들었는지라. 사면을 살펴본데 갈 길이 아득한지라. 특재 하늘을 우러러 탄식(歎息) 왈,
- “남을 경(輕)히 여기다가 도로 사지(死地)에 들었으니 수원수구(誰怨誰咎)를 누구에다 하리오.”
하고, 비수를 품고 시냇물에 다다라 한 곳에 다다르니, 운산(雲山)은 첩첩(疊疊)하고 대해(大海)가 망망(茫茫)한데, 두견성(杜鵑聲)의 슬피 우는 소리와 초객의 난데없는 성분(成墳)이거늘, 할일없어 층암절벽(層岩絶壁)에 빗겨 앉아 두루 살펴보니, 문득 동편에서 젓대 소리 들이거늘, 고이하여 눈을 들어 보니 일원(一員) 옥동(玉童)이라. 청포옥대(靑袍玉帶)에 채여(彩輿)를 타고 옥저(玉笛)를 불며 언연(偃然)히 오거늘, 특재 몸을 일으키고자 하더니 그 선동(仙童)이 옥저를 그치고 특재를 향하여 꾸짖어 왈,
- “무지한 필부(匹夫)는 나의 말을 들으라. 힘만 믿고 재물을 탐(貪)하여 무단한 사람을 해코자 하여 삼경에 비수(匕首)를 갖고 과연히 들어오니, 내 비록 삼척(三尺) 소동(小童)이나 어찌 너를 두려워 하리요? 초패왕(楚覇王)의 용력(勇力)이라도 오강(吳江)을 못 건넜고, 형경(荊卿)의 날랜 기운도 역수(易水)에 울었거늘, 네 오늘 나를 죽이러 왔다만은 날을 죽이리오?”
특재 황망(慌忙)히 살펴보니 이는 곳 길동이라. 죽기로써 고성(高聲) 대왈(對曰),
- “내 재주 십년 공부하여 천하에 무쌍(無雙)이려니와, 금야(今夜) 너의 부형의 명(命)을 받아 네 목숨을 해치면, 일가(一家) 대환(大患)을 면케 함이라. 나를 원망치 말고 천명(天命)을 순수(順守)하여 나의 칼을 받아라.”
언파(言罷)에 칼춤 추며 달려 들어오니, 길동이 대로(大怒)하여 몸을 날려 풍백(風伯)을 호령하니, 일변 흑운(黑雲)이 사방으로 자욱하여 풍운(風雲)이 대작(大作)하여 지척을 분별치 못하니, 특재 정신을 잃고 층암(層岩)을 의지하여 살펴보니 길동은 간데없고 살기(殺氣)만 섭섭한지라. 심중(心中)에 재주를 탄복하고 도망코자 하나 갈 바를 몰라 크게 울며 왈,
- “내 재물을 탐하여 불의를 행하다가 이 화(禍)를 당하니 어찌 측은치 아니하랴.”
하고, 자탄(自歎)을 하더니, 문득 길동이 공중에서 내려와 다시 꾸짖어 왈,
- “내 너와 더불어 원(怨)이 없거늘 자연히 나를 해코자 함은 무슨 연고(緣故)뇨?”
특재 할일없어 애걸(哀乞) 왈,
- “실로 소인의 죄가 아니라 상공댁 소낭자(小娘子) 초난이 관상녀의 지휘(指揮)로이다.”
하고 무수이 애걸한데, 길동이 분(忿)을 이기지 못하여 특재 칼을 앗아 들고 고성대질(高聲大叱) 왈,
- “네 재물을 탐하여 무죄(無罪)한 사람을 죽이려 하느냐? 만일 너 같은 놈을 살려두면 일후에도 무죄한 인명(人命)을 상할 것이니, 너 같은 악종(惡種)한 놈을 없이 한 후에 환(患)을 면하리라.”
하고 칼을 던지니, 검광(劍光)이 번득하며 특재의 머리 내려지는지라. 오히려 분기(憤氣)를 이기지 못하여 바로 관상녀 집에 가 둔갑(遁甲)을 부려 풍백(風伯)을 호령하니, 풍우대작(風雨大作)하며 뇌성벽력(雷聲霹靂)이 천지진동(天地振動)하는지라. 관상녀를 풍우(風雨)에 몰아 특재 죽은 방으로 들어 앉히고 크게 꾸짖어 왈,
- “네 나를 아느냐? 네 나로 더불어 적원(積怨)이 없거늘 무슨 연고(緣故)로 대감께 고(告)하여 부자대의(父子大義)를 써 끊케 하고 심지어 나를 해코자 하느냐?”
이 때 관상녀 처음은 혼불부신(魂不附身)하여 아무런 줄을 모르고 풍우(風雨)에 싸이여 혼혼(昏昏)하여 생각하되, 생사간(生死間) 분별이 없이 길동이 꾸짖는 소리 들이거늘, 정녕 인간인 줄을 알고 할일없어 빌어 왈,
- “이는 초난의 죄오나 아뢰올 말씀이 없사오나 처분대로 하소서.”
길동이 분연(憤然) 왈,
- “초난이는 대감의 총희(寵姬)요, 내 어미라. 죽이지 못하거니와 너는 요망한 계집이라. 대감을 의혹케 하여 인륜(人倫)을 끊게 하고 인명을 상해코자 하니 하늘이 어찌 무심(無心)하리오. 네 죽은 혼이라도 나를 원치 말라.”
하고 칼을 날려 치니, 혼백(魂魄)이 어찌 슬프지 아니하리오.
각설. 이 때 길동이 분기(憤氣)를 이기지 못하여 바로 내당(內堂)에 들어가 초난이를 죽이고자 하다가 돌이켜 생각하되, ‘오륜을 생각함이라도 한 사람을 죽였으니 그 죄 적지 아니한지라. 내 도망하여 세사(世事)를 버리고 산림(山林)에 깃들여 세월을 보냄이 옳도다.’하고, 졸연(卒然)히 초당(草堂)을 떠나 바로 대감의 침소(寢所)로 들어가 계하(階下)에 꿇어 앉아 울거늘, 대감이 고히 여겨 문왈(問曰),
- “네 무슨 연고(緣故)로 잠을 자지 아니하고 어인 일을 저다지 설워하느냐?”
길동이 체읍(涕泣) 고왈(告曰),
- “소자 비록 천생이오나 대감의 정기(精氣)를 받자와 사람이 되었사오니 몸이 마치도록 부생모육지은(父生母育之恩)을 갚사올까 바랐더니, 가내(家內)의 흉인(凶人)이 대감의 마음을 고혹(蠱惑)케 하와 소자를 해(害)할 계교(計巧)를 무수이 장난하온데, 소자 전(前)에 차차 보존하옵더니, 홀연(忽然) 금야(今夜)에 변(變)이 있사와 거의 죽게되었사옵더니 천우신조(天佑神助)하와 겨우 목숨은 보전하였사옵더니, 장래 가중(家中)에 있삽다가 잔명(殘命)을 보존치 못할가 하옵기로 마지 못하여 망명도생(亡命圖生)하오매, 부모 모실 기약(期約)이 묘연(杳然)한지라. 복걸(伏乞) 대감은 만만세(萬萬歲)나 무강(無彊)하옵소서.”
한데, 대감이 생각한데 가내(家內)에 무슨 변이 있어 이런 일들이 있으니 길동이 범인(凡人)이 아니라 만류(挽留)하여도 듣지 아니할 줄 알고 왈,
- “네 집을 떠나 어디로 가려 하느냐?”
길동 왈,
- “소자 행색(行色)은 부운무적(浮雲無適)이라. 천지(天地)로 집을 삼고 사해(四海)를 거칠 것 없이 다닐 것이니 어디로 갈 줄을 알리이까? 심중(心中)에 평생 원이 있사오니, 소자의 나이 십 세 되도록 부형을 부형이라 못하오니, 비컨대 금수(禽獸)도 반포(反哺) 구구지정(區區之情)이 다 있어 부모자식 정이 있거늘, 하물며 소자는 아비를 아비라 못하고 형을 형이라 못하니, 어찌 한(恨)치 아니하리오.”
하며 대성통곡하니, 대감이 재삼 위로 왈,
- “금일부터 네 원을 풀게 할 것이니 안심하여 몸에 한이 맺지 아니케 하라.”
길동이 다시 고왈(告曰),
- “아버님은 천한 자식을 생각지 말으시고 부디 혈혈(孑孑)한 어미를 불쌍하게 여겨 곤곤(困困)한 일이 없게 하옵소서.”
대감이 희연(喜然) 대왈(對曰),
- “그런 말은 네 할 말이 아니련마는 부디 보존하라.”
하시고 적자(嫡子)같이 사랑하시되, 길동이 두 번 절하고 왈,
- “평생의 품은 원을 오늘날 푸오니 한이 없나이다.”
하고, 어미 침소(寢所)로 들어가 고왈(告曰),
- “간 밤에 어떠한 사람이 비수(匕首)를 빗겨 들고 나를 해하려 하여, 내 그 몸을 죽였사오니 어찌 완연(完然)이 살리까? 내 망명도생(亡命圖生)하려건데 천지간(天地間)에 무명객(無名客)이 되오니, 바라건데 모친은 불효자를 생각지 말으시고 기체(氣體)를 보존하옵소서.”
모친이 이 말을 듣고 길동을 붙들고 통곡하며 왈,
- “모자 서로 의지하여 세월을 보내더니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가려하느냐?”
길동 왈,
- “내 비록 정처없이 나가나 모자 만날 날이 있을 것이니 보존하옵소서.”
하고 두 번 절하고 문에 나서니, 월색(月色)은 서산에 걸려있고 새벽닭은 처처(悽悽)히 우는데 갈 길이 망연(茫然)한지라. 하염없이 슬픔을 머금고 정처없이 가는지라.
이때 초난이 자객(刺客)을 보내고 날 새도록 동정(動靜) 없으니, 고히 여겨 사람을 보내어 살펴보니, 길동이는 간데없고 목 없는 신체(身體)만 방중(房中)에 꺼꾸러졌사오니 또 한 계집의 죽엄이 있거늘, 돌아와 고하니, 초난이 대겁(大怯)하여 즉시 내당(內堂)에 들어가 부인께 고(告)한데, 부인이 혼불부신(魂不附身)하여 장자 일형을 불러 길동을 찾으니 종적(踪迹)이 없는지라. 즉시 대감께 고한데, 상공이 대경(大驚) 왈,
- “금야(今夜)에 길동이 이별을 고한대 고히 알았더니 저런 화변(禍變)이 있도다.”
한데, 부인 왈,
- “대감께옵서 길동으로 말미암아 병환이 날로 위중(危重)하옵기로 초난을 명(命)하여 특재를 시켜 길동을 없애고자 하였더니, 자객(刺客)이 도리어 길동의 해를 입은가 싶으나이다.”
대감이 왈,
- “인명(人命)이 재천(在天)하거늘 무고(無辜)한 사람을 죽이려 하고, 초난이 다 동심(同心)하여 가중(家中)에 이런 변이 있게 하니 어찌 아니 분하리요. 모함하는 초난을 죽여 없애면 분을 덜리라.”
하다가, 가중(家中)을 엄히 분부하여 말을 내지 못하게 하더라.
길동이 한 번 문 밖에 나오매 일신이 표박(漂泊)하여 대해(大海) 부평(浮萍)같이 다니다가, 한 곳에 다다르니 천봉만학(千峯萬壑)이 사위(四圍)가 수려하고, 화초(花草)는 이연(怡然)하여 객을 보고 반기는 듯하거늘, 점점 들어가니 층암절벽(層岩絶壁)에 낙락장송(落落長松)은 절개를 지키었고, 산화(山花)는 잔잔하여 가는 나비를 영접(迎接)하고, 석양(夕陽)은 월령(越嶺)하고 숙조(宿鳥)는 투림(投林)할 제, 수풀은 의멸한데 진퇴유곡(進退維谷)이라. 갈 길을 몰라 주저하더니, 문득 바라보니 난데없는 표자(瓢子) 냇물을 좇아오거늘, ‘이 곳에 왠 절이 있는가’하여 시내를 따라 점점 들어가니, 평원광야(平原廣野)에 일망무제(一望無際)라. 그 가운데 인가(人家)가 즐비(櫛比)한 중에 큰 와가(瓦家) 있으되 궁궐같이 화려하거늘, 바로 행하여 가니 주란화각(朱欄畵閣)이 공중에 솟아 있고 층층화계(層層花階)에 백화(百花)는 만발하여 별건곤(別乾坤)이더라. 문에 들어가니 마침 대연(大宴)을 배설(排設)하거늘, 길동이 바로 층계(層階)에 올라가니 본래 그 동중(洞中)은 도적의 굴혈(窟穴)이라. 잔치를 배설(排設)하여 장수를 정하려 하고 의논이 분분(紛紛)하거늘, 길동이 생각하되, ‘내 몸이 뜬 구름같이 의탁(依託)할 곳이 없더니, 하늘이 도운가 우연히 이 곳에 왔더니, 장차 영웅(英雄)의 기운을 펴리라.’하고, 의연(毅然)히 걸어 들어가 좌중에 참예(參預)하여 가로되,
- “경성(京城) 사람으로서 가화(家禍)를 만나 망명(亡命)하여 사해(四海)로 집을 삼고 정처없이 다니옵더니, 천우신조(天佑神助)하와 이 곳에 온 듯하오니, 지금 장수를 정치 못할가 싶으오니 내 비록 재주 없사오나 녹림(綠林) 호걸(豪傑)의 으뜸장수되어 사생(死生)을 동락(同樂)하옴이 어떠하오리까?”
여러 사람이 분운(紛紜)이 공론하다가 난데없는 아이 당돌히 들어와 무례하거늘, 군졸에게 분부하여 끌어내치며 왈,
- “우리 영웅이 수천이로되 용력(勇力)이 과인(過人)하고 지략(智略)이 당천(當千)하여도 감히 장수되자 함을 자청(自請)치 못하거늘, 네 어떤 아이관대 방자히 큰 말을 하느냐? 빨리 당하(堂下)에 내치라.”
한데, 군졸이 일시에 달려들어 재촉하여 내치니, 길동이 밀리어 동구(洞口)에서 나와 분함을 참고 나무를 꺽어 글 지어 그 나무에 세웠으니, 그 글에 하였으되,
- “용이 옅은 물에 잠기매 어별(漁鼈)이 침노하고, 범이 쇠잔(衰殘)하여 수풀에 들매 호토(狐兎)가 거만하는도다. 저희 아무리 수다(數多)한들 어찌 영웅(英雄)을 살피리오.”
하였더라. 군졸이 그 글을 써,
- “세웠삽기로 등서(謄書)하여 올립니다.”
하거늘, 모두 그 글을 보고 의논 왈,
- “조그만한 아이로서 우리 모인 중에 의연(毅然)히 들어와 큰 말을 할 때에는 제 응당 무슨 지략(智略)이 과인(過人)하기로 그러하니, 저를 청하여 재주 시험하여 실로 우리에게 승(勝)하면 장수를 정함이 옳다.”
하고, 군사로 하여 길동을 청하여 당상(堂上)에 올리고 술을 권하며 왈,
- “그대 상을 보니 진실로 영웅(英雄)이라. 이제 가지 말고 할 일이 있으니, 만일 행하면 우리 장수를 삼을 것이니 행하라.”
하며 왈,
- “하나는 이 앞에 ‘청부석’이라 하는 돌이 있으되 중(重)이 천여 근(千餘斤)이라. 그 돌을 들면 가히 용력(勇力)을 알 것이요. 두번째는 합천(陜川) 해인사(海印寺)에 재물(財物)이 많으니 그 절을 치고 재물(財物)을 취하면 우리 장수를 정하리라.”
한데, 길동이 답왈(答曰),
- “장부 세상에 처하여 상통천문(上通天文)하고, 하달지리(下達地理)하며, 중찰인사(中察人事)하여, 이음양순사시(理陰陽順四時)한 후에 능히 삼군의 장수되어, 들면 만인지상(萬人之上)이 되어 억조창생(億兆蒼生)을 도탄(塗炭)에서 건지고, 얼굴을 기린각(麒麟閣)에 붙여두고 이름은 죽백(竹帛)에 올려 만세에 유전함이 장부의 쾌한 일이라. 나는 신운(身運)이 불길하고 명도(命途) 기박(奇薄)하여 출장입상(出將入相)에 참예치 못하고 몸을 빼어나 이에 이르렀으나 어찌 이만 일을 근심하리오.”
하고, 즉시 나가 청부석을 들어 팔 위에 얹고 수십 보를 행하다가 도로 놓되 조금도 신고(辛苦)하는 바 없거늘, 중인(衆人)이 일시에 하례(賀禮) 배사(拜謝) 왈,
- “실로 장수로소이다. 우리 수천 인 중에 감히 들 이 없더니, 금일 장수님을 만났으니 진실로 하늘이 지시함이로소이다. 어찌 즐겁지 아니하리오.”
하고, 인하여 다시 잔치를 배설(排設)하고 장수를 삼아 상좌에 앉히고 차례로 배알(拜謁)하거늘, 길동이 군사를 명하여 백마(白馬)를 잡아 피로써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각각 마시고 맹세하여 왈,
- “금일부터 중(衆)이 일심(一心)되어 수화(水火)라도 피치말고 사생(死生)을 함께 하되, 만일 언약을 배반(背反)하고 영(令)을 어기난 자 있으면 군법을 면치 못하리라.”
한데, 중인(衆人)이 일시에 고두(叩頭) 각읍(各揖)하거늘, 길동이 대열(大悅)하여 왈,
- “금일 위시(爲始)하여 무예(武藝)를 힘쓰라.”
하고, 칼 쓰기와 돌 던지기며, 말 타기와 택견하기며, 여러 가지 재주를 낱낱이 연습하니 수월지내(數月之內)에 익숙하여 항오(行伍) 정제(整齊)한지라.
길동이 하루는 분부 왈,
- “합천(陜川) 해인사(海印寺)를 치고자 하니, 만일 영(令)을 어기는 자 있으면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중인(衆人)이 일시에 청령(聽令)하고 그 영(令) 내리기를 기다리거늘, 길동이 노새를 타고 종자(從者) 수십 인을 데리고 나서며 왈,
- “내 해인사(海印寺)에 가 동정(動靜)을 보고 올 것이니 오기를 기다리라.”
하고, 청포옥대(靑袍玉帶)로 노새를 재촉하여 은연(隱然)히 나서니 완연(完然)한 재상가 자제라. 바로 동구에 들어가면서 절에 노문(路文) 보내되,
- “경성 홍승상댁 공자 하나 공부하러 오신다.”
하였거늘, 그 절 중들이 황황(遑遑)하여 모실 채비를 극진히 차리더라. 행차 동구에 당하니 제승(諸僧)이 일시에 나와 맞아 사중(寺中)에 들어가 합장사례(合掌謝禮) 왈,
- “천리원정(千里遠程)에 안녕히 행차하옵시니 감사하여이다.”
길동이 흔연(欣然) 답왈(答曰),
- “네 절이 경향(京鄕)에 유명하기로 내 한 번 보고자 하여 왔으며, 내 추과거(秋科擧)에 올라 갈 것이니 객(客)을 괴로이 알지 말라.”
하며,
- “사처(私處)를 조용한 데 정하라.”
하신데, 제승(諸僧)이 고두청영(叩頭聽令)하고 차담(茶啖)을 성비(盛備)하여 올리거늘, 길동이 흔연(欣然)히 받아 먹고 법당(法堂)에 들어가 두루 살핀 후에 노승(老僧)을 불러 왈,
- “부디 잡인을 금(禁)하고 방을 수리(修理)하라. 내 백미 십 석을 보낼 것이니 금월(今月) 십오일에 주연(酒宴)을 성비(盛備)하라. 내 너희로 더불어 종일 즐긴 후에 그 날부터 공부를 하려 하노라.”
한데, 제승(諸僧) 등(等) 합장배례(合掌拜禮)하더라. 길동이 장중에 돌아와 백미 십 석을 수레에 실어 보내며 관인(官人)의 복색(服色)을 안동하여 합천 관사에서 보낸다 하니, 제승(諸僧)이 반겨 백미를 거두어 고중(庫中)에 넣고 기약한 날 밥과 술을 성비(盛備)하고 공자 오기를 기다리더니, 길동이 적당(賊黨)을 모아 분부 왈,
- “내 먼저 절에 가 모든 중을 낱낱이 결박할 것이니 너희 등은 때를 잃지 말고 하라.”
하고, 그 중에 건장한 군사를 육칠 인을 데리고 노새를 재촉하여 절로 들어가니, 제승(諸僧)이 동구에 나와 대후(待候)하였다가 영접하여 사중(寺中)에 들어가니, 길동이 제승을 불러 왈,
- “분부한 일은 어찌 하였는고?”
제승(諸僧)이 대왈(對曰),
- “이미 준비하였나이다.”
길동이 왈,
- “이 절 뒤에벽계(碧溪) 있어 경개(景槪) 절승하다니, 그 곳에 장막을 배설(排設)하고 너희로 더불어 즐기려 하니, 너희 노소(老少) 사중(寺中)에 낙루(落漏)치 말고 벽계(碧溪)로 모이라.”
하니, 제승(諸僧)이 어찌 도적의 흉계를 알리오. 행여 낙루(落漏)하면 죄될까 하여 각방 제승이 노소(老少) 없이 벽계에 이르러 장막을 배설하고 좌(座)를 정할새, 길동이 상좌(上座)하고 지차(之次)는 차례로 좌를 정한 후에 술을 나누어 제승을 권하며 왈,
- “오늘은 허물치 말고 받으라.”
하니, 제승이 치하하며 취토록 먹은 후에 밥을 차례로 올리거늘, 길동이 흔연히 소매를 걷고 밥을 먹다가 모래를 입에 넣고 밥을 씹으니 모래 깨지는 소리 나거늘, 제승(諸僧)이 놀라 황공하거늘, 길동이 눈을 부릅뜨고 크게 꾸짖어 왈,
- “너희로 더불어 승속(僧俗)의 예(禮)를 버리고 여동락(與同樂)자 하였더니 너희가 나를 쉽게 여겨 음식이 부정하니, 어찌 아니 통분치 아니하리요.”
언파(言罷)에 하인을 불러,
- “제승을 결박(結縛) 나입(拿入)하라.”
하고,
- “내 본관에 들어가 각별 중치(重治)하리라.”
한데, 하인이 영(令)을 듣고 모든 중을 차례로 결박하는지라.
이 때 모든 도적이 밖에서 매복(埋伏)하였다가 일시에 들어와 사고(寺庫)의 문을 열고 제 것 가져가듯 하는지라. 제승(諸僧)이 그 기미(機微)를 알았으나 사지(四肢)를 동였으니 다만 소리 뿐일네라.
이 때 그 절 목공이 놈이 절을 지키더니 불의(不意)에 도적이 들어와 사중(寺中)을 수탈(收奪)함을 보고, 후원 담을 넘어 바로 합천 관가에 들어가 이유를 고하니, 관원이 대경(大驚)하여 즉시 관차(官差)를 배설하여 도적을 잡으려 하고, 장교 수십 군을 거느리고 망망히 찾아오며 뒤를 데리고 오더라.
이 때 도적이 수탐한 재물(財物)을 수람(收攬)하여 정이 가고자 하더니 멀리 바라보니 티끌이 하늘에 닿고 징,북 소리는 산천(山川)이 진동(震動)하거늘, 도적이 황황(遑遑)하여 갈 바를 몰라 독에 든 쥐 같더라. 길동이 대소(大笑) 왈,
- “너희 등이 나의 비계를 어찌 알리오.”
하고, 제적(諸賊)으로 하여금 무수한 재물을 우마(牛馬)에 싣고 남편(南便) 대로(大路)로 가라 하고, ‘군사를 지휘(指揮)하여 북편(北便) 소로(小路)로 가게 하리라’하고, 길동이 법당(法堂)으로 들어가 몸에 장삼을 입고 머리에 고깔을 쓰고 동구에 나가 높은 대(臺)에 올라 관인(官人) 오는 양을 보고 높이 외여 왈,
- “도적이 북편 소로(小路)로 갔으니 급히 쫓아 잡으라.”
하며, 장삼 소매를 들어 북로(北路)를 가리키니, 관차(官差)가 남로(南路)로 오다가 바로 북로(北路)로 가거늘, 그제야 제적(諸賊)이 우마(牛馬)를 몰아 남편(南便) 대로(大路)로 행하니라. 길동이 인하여 은신(隱身)하는 법을 행하여 돌아오니 제적(諸賊)이 또한 재물을 싣고 오거늘, 대연(大宴)을 배설하여 즐긴 후에, 길동이 재물을 조수(照數)하여 모든 도적에게 고르게 나눠 주니 모두 즐기며 칭찬하더라.
그 날부터 길동이 당호(黨號)를 ‘활빈당’이라 하며, 팔도(八道) 왕래하며 무도한 자 있으면 재물을 취하여 지빈무의(至貧無依)한 사람을 구제(救濟)하며 성명을 통치 아니하더라.
이 때 그 합천 관졸(官卒)이 북로(北路)로 수백 리를 가되 종적(踪迹)이 없는지라. 그 연유(緣由)를 관가에 고하니 관원이 대경(大驚)하여 연유를 감영(監營)에 보(報)하여 나라에 장문(狀聞)하였더니, 상이 근심하다가 팔도(八道)에 행관(行關)하여 도적을 잡으라 하였도다.
이 때에 길동이 제적(諸賊)과 의논 왈,
- “우리도 나라 백성이라. 만일 난시(亂時)를 당하면 시석(矢石) 무릅쓰고 임금을 섬기려 하되, 방금의 사해(四海) 태평하여 국가가 무사하니 아직 산중에 웅거(雄據)하며 백성의 재물은 취(取)치 말고, 각읍 수령이 빙공영사(憑公營私)하여 준민고택(浚民膏澤)하는 재물만 앗아 먹으면 이른바 의적(義賊)이라. 만일 내 영(令)을 어기난 자는 죄를 면치 못하리라.”
하고, 수월(數月)이 지낸 후에 또 가로되,
- “우리 이제는 양식이 다 하고 창검(槍劍)이 없으니 함경 감영(監營)에 들어가 창곡(倉穀)과 군기(軍器)를 취하리니, 너희 등은 각각 흩어 들어가 성중(城中)이 빈 때를 타 백성의 재물은 일호(一毫)도 취치 말고 영(令)대로 시행하라.”
제적(諸賊)이 청령(聽令)하고 물러가니라.
이 때 기약한 대로 그 날이 당하매, 함경 영문(營門) 밖의 덕현능(德顯陵)에 이르러 군사 수십 명을 시켜 시초(柴草)를 수운(輸運)하여 능소(陵所)에 쌓고 사경에 불을 지른데,
- “능상(陵上)에는 불이 미치지 아니케 하라.”
하고 불을 지르니, 화광(火光)이 충천(衝天)하는지라. 능참봉(陵參奉)이 망지소조(罔知所措)하였거늘, 길동이 급히 성중(城中)에 들어가 관문을 두드리며 외여 왈,
- “능소(陵所)에 불이 급하오니 바삐 구하소서.”
하거늘, 감사 정신을 차리지 못하여 급히 바라보니 화광(火光)이 충천(衝天)하는지라. 일변 군사를 지휘(指揮)하여 능소로 나아가니 성중(城中)이 요란한지라. 남녀노소 없이 능소(陵所)로 가고 창고 지키는 군사를 하나도 없이 하는지라. 길동이 제적(諸賊)으로 더불어 고문(庫門)을 열고 곡식과 군기를 탈취(奪取)하여 북문(北門)으로 달아나며 왈,
- “함경 감사 필연 우리는 잡히지 아니하려니와, 그 중(中)에 애매한 백성이 잡히여 죄를 당할 것이니 어찌 가련치 아니하리오.”
하고, 북문에 큰4
- “창곡과 군기 도적은 활빈당 도대장(都大將) 홍길동이라.”
하고, 축지법을 행하여 동중(洞中)에 돌아가니 동방(東方)이 이미 열렸더라.
이적에 함경 감사 불을 구하고 돌아오니 창고 지키는 군사 고하되,
- “아까 무수한 도적이 들어와 창곡과 군기를 도적하여 갔다.”
하거늘, 감사 대경(大驚)하여 사면으로 발포(發捕)하되 종적을 모르더니, 문득 북문(北門) 지키는 수문장(守門將)이 급히 고왈(告曰),
- “석야(昔夜)에 어떠한 길동이라 써 붙이었나이다.”
감사 대경 왈,
- “천고(千古)에 괴변(怪變)이로다. 함경도 내(內)에 홍길동이라 하는 놈이 있느냐?”
가로되,
- “아지 못하나이다.”
하거늘, 각 읍에 행관(行關)하여 도적을 발포(發捕)하라 하니 연유(緣由)를 탑전(榻前)에 장계(狀啓)한데, 상이 친견(親見)하시고 진노(震怒)하사 팔도에 하교하되,
- “만일 홍길동 잡아들이면 크게 쓰리라.”
하고, 또 사대문(四大門)에 괘방(掛榜)하니 장안 백성이며 나라 안 인민이 다 소동(騷動)하더라.
각설이라. 이 때 길동이 초인(草人) 일곱을 만들어 각각 혼백(魂魄)을 붙이고 진언(眞言)을 염송(念誦)하니, 일곱 인(人)이 일시에 일어서며 팔을 뽐내며 소리를 지르며 팔 개 길동이 한테 앉으니, 어느 것이 참 길동인지 거짓 길동인지 몰라 의혹(疑惑)이 무궁(無窮)하더라. 이 때 여덟 왈,
- “길동이 하나씩 분자(分子)하여 적졸(賊卒) 일천 명씩 거느리고 가라.”
하고, 길동이 팔도 감사와 각읍 수령의 성명과 동서남북에 글을 기록하여 제적(諸賊)을 주어 보내니, 제적이 불승의혹(不勝疑惑)하여 자연이나 저와 함께 가는 것이 참 길동인지 몰라 의혹(疑惑)이 만단(萬端)하더라. 각각 하나씩 분자(分子)하여 보내고, 경상도 내(內)에 있어 각 도 각 읍의 봉물(封物)하는 재물과 각부(各部) 뇌물(賂物)하는 재물을 낱낱이 탈취(奪取)하니, 백성이 밤에 잠을 자지 못하고 창곡(倉穀)과 군기(軍器)를 수직(守直)하는지라. 길동이 능히 풍운(風雲)을 부리며 변화무궁(變化無窮)한지라. 백주(白晝)에 풍우대작(風雨大作)하여 사람의 눈을 뜨지 못하게 하고, 창고를 열어 곡식을 가져가며 재물을 취하되 종적이 없이 달아나니, 그로 말미암아 각 도 각 읍이 요란한지라.
이때 팔도 감사 일시에 장문(狀聞)을 올렸으되,
- “홍길동 도적이 능히 풍운(風雲)을 부리며 각읍 수령의 봉물(封物)과 창곡(倉穀)을 탈취(奪取)하니 그 죄는 태산(泰山)같다.”
하였고, 그 안의 연월자(年月字) 동월(同月) 동일(同日)한데, 상이 남필(覽筆)에 대경 왈,
- “이 도적은 옛날 초패왕(楚覇王)도 미치지 못하리라. 어떠한 놈이 일시에 팔도에 일어나 장난하는고? 뉘 능히 이 도적을 잡아 짐(朕)의 근심을 덜어 백성을 안존(安存)하리오?”
한데, 계하(階下)에 한 신하 출반주(出班奏) 왈,
- “소인이 비록 재주 없사오나 도적 홍길동을 잡아 국가의 큰 근심을 더오리다.”
하거늘, 상이 대희(大喜)하여 보니 이는 포도대장(捕盜大將) 이엽이라. 날랜 군사 이백을 주어 여유를 일 년 말미를 주신데, 이엽이 계하(階下)에 하직하고 성(城) 밖에 나와 각각 흩어 보내고 이르데,
- “조령(鳥嶺)을 넘어 문경(聞慶)으로 모이라.”
은밀히 근포(跟捕)하고, 이엽이 홀로 나와 김포 육십 리에 이르러 날이 저물거늘, 주점(酒店)을 찾아 자고자 하더니, 어떠한 소년이 나귀를 타고 종자(從者) 수인(數人)을 데리고 주점(酒店)에 오거늘, 이엽이 서로 예(禮)하고 좌정(座定)한데, 그 소년이 문득 한숨 짓고 탄식(歎息) 왈,
- “오호라. 슬프도다.”
하거늘, 이엽이 문왈(問曰),
- “그대 무슨 일이 있어 저다지 탄식하느뇨?”
그 소년이 대왈(對曰),
“이제 홍길동이란 도적이 있어 팔도에 장난하여 각읍 수령이 잠을 자지 못하고 성상(聖上)이 근심하나 팔도 행관(行關)하여 잡는 자 있으면 중(重)히 쓰리라 하되, 힘이 부족하고 좌우를 보오니5” “그대 장하고 말씀이 충직(忠直)하니 비록 재주 없으나 그대를 도와 일비지력(一臂之力)이 되리라.”
그 소년 왈,
- “이 도적의 지체(肢體)와 용맹(勇猛)은 과인(過人)하니, 그대 나와 더불어 동심동력(同心同力)하여 수화중(水火中)이라도 불피(不避)하면 잡으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도리어 환(患)을 당하리라.”
한데, 이엽이 왈,
- “대장부 죽을지언정 어찌 실신(失信)하리오.”
한데, 소년이 나가거날, 이엽이 또한 눈치를 좇아 한 곳에 다다르니, 그 소년 천만장(千萬丈)이나 한 뫼에 올라 앉으며 이엽더러 이로되,
- “그대 힘을 다하여 나를 차면 그대의 용력(勇力)을 알 것이요 길동을 잡으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대환(大患)을 당하리라.”
하면서 천만장(千萬丈)이나 한 뫼 강산 끝에 올라 앉거늘, 이엽이 평생 힘을 다하여 두 발로 힘써 차니 소년이 돌아 앉으면서,
- “그대 진실로 장사로다. 나를 따르면 좋을 것이니 나를 따르라.”
하고, 즉시 축지법을 행하여 산곡(山谷)으로 들어가며 소년 왈,
- “이 곳은 홍길동이 있는 곳이라. 내 먼저 탐지(探知)하고 올 것이니 그대 잠깐 머물라.”
하고, 혼자 산곡(山谷)으로 들어가거늘, 이엽이 홀로 앉아 기다리더니 일락함지(日落咸池)하고 월출동령(月出東嶺)이라. 이윽한 산중으로 훤화성(喧譁聲)이 나거늘, 자세히 보니 무수한 군졸이 황건(黃巾)을 쓰고 오거늘, 보니 상모(相貌) 영악(獰惡)한지라. 이엽이 피(避)코자 하더니 군사 좌우로 달려들어 이엽을 결박(結縛)하여 꾸짖어 왈,
- “네 포도대장 이엽이냐? 우리 십전대왕(十殿大王)의 명(命)을 받아 너를 잡으려 하고 팔도로 다니되 종시 잡지 못하였더니, 어찌 예 와 만날 줄을 뜻이나 하였으리오?”
하고, 언파(言罷)에 철바(鐵絲)로 목을 걸어 소같이 하여 들어가니 이엽이 혼불부신(魂不附身)하여 아무런 줄을 모르더니, 수십 리를 들어가니 성문(城門)이 열렸거늘, 눈을 들어 보니 이는 별세계(別世界)이라. 기이한 군졸 모여 연(連)하고, 무수한 군졸이 황건(黃巾)을 쓰고, 철퇴(鐵槌)를 들며, 방울을 흔들며, 훤화(喧譁)하는 소리 요란한지라. 이엽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몰라 엎드렸더니, 문득 천상(天上)에서 한 소년이 소리하며 무수한 군졸이 내달아 이엽을 잡아내어 계하(階下)에 꿇리거늘, 이엽이 아무런 줄을 모르더라. 송사하더니 전상(殿上)의 황사(黃絲) 금포옥대(金袍玉帶)한 소년이 앉아 소리 질러 왈,
- “네 포도대장(捕盜大將) 이엽이냐? 네 요망한 뜻을 바라고 홍길동이 대장을 잡으려 하니, 산중(山中) 신령(神靈)이 진노(震怒)하사 십전대왕(十殿大王)께 고(告)하여 너를 잡아 수지(囚之)하고 지옥에 가두어 다시 세상에 나지 못하게 하리라 하기로, 너를 잡으러 왔으니 너는 한(恨)치 말라.”
하고, 군졸을 명(命)하여,
- “저 놈을 엄수(嚴囚)하라.”
하니, 수십 명의 군졸이 일시에 고하거늘, 이엽이 난간(欄干)을 의지(依支)하여 기둥을 굳이 잡고 빌어 왈,
- “소인은 무죄(無罪)하게 잡혀 왔으니 복걸(伏乞) 명천(明天)은 죄를 사(赦)하옵소서.”
언파(言罷)에 대성통곡(大聲痛哭)하거늘, 좌우 대소(大笑) 고왈(告曰),
- “네 얼굴을 들어 자시 보라.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활빈당 도대장(都大將) 홍길동이로다. 너를 인도(引導)하여 이 곳에 왔으니 우리 위엄을 보게 함이라.”
언파(言罷)에 좌우를 명(命)하여 동인 것을 끄르고 올려 앉히고 술을 부어 왈,
- “너 같은 류(類) 십만인(十萬人)이라도 잡지 못하리라. 내 너를 죽여 세상을 다시 보지 못하게 할 것이로되, 십분 짐작하여 살려 보내거니와, 너 같은 놈이 있어 만일 생의(生意)하면 너같이 속는 폐단(弊端)이 없게 하고 죽이리라.”
하고, 또 사람을 잡아 계하(階下)에 꿇리고 꾸짖어 왈,
- “너희 등을 죽여 세상을 다시 보지 못하게 할 것이로되, 이엽을 살려보내니 너희 등을 어찌 하리오?”
하고 왈,
- “일후(日後)는 범람(氾濫)한 뜻을 생각지 말라. 이후에 이런 일이 있으면 비록 천리(千里) 밖에 있어도 잡아다가 죽일 것이니 삼가 조심하라.”
하고, 일시에 해방(解放)하여 술을 먹이며 위로 하거늘, 이엽이 그제야 정신을 차려보니 가죽 푸대에 싸여 나무 끝에 걸렸거늘, 간신히 푸대를 끄르고 보니, 끝에 어떠한 푸대가 달렸거늘, 급히 가 끌러 보니 어제 떠날 제 데리고 온 하인이라. 서로 이르되,
- “이것이 생시냐, 꿈이냐? 우리 어제 떠날 때 문경(聞慶)으로 거행하였더니 어찌 이 곳에 왔는고?”
하며 두루 살펴보니, 이 곳은 장안 북악산이라. 이엽이 왈,
- “나는 청포(靑袍) 소년에게 속아 왔거니와, 너희 등(等)은 어찌 왔느냐?”
삼인이 대왈(對曰),
- “소인 등은 주점(酒店)에서 자옵더니 홀연 뇌성벽력(雷聲霹靂)이 대작(大作)하여 풍우(風雨)에 싸여 호호탕탕(浩浩蕩蕩)이 왔으니 아무런 줄을 모르거니와, 장군님은 어찌 이 곳에 와 계시니까?”
하고, 서로 길동의 신기한 말을 탄복하더라.
이엽이 군사를 거두어 돌아가 이 연유(緣由)를 탑전(榻前)에 주달(奏達)하니, 상이 대경(大驚)하사 더욱 각 도 각 읍에 행관(行關)하여 길동을 잡으라 한데, 길동이 변태(變態) 무궁(無窮)하여 장안으로 초헌(軺軒) 타고 다니며 각 읍의 노문(路文) 놓고도 타고 다니되, 알아 잡을 자 없는지라. 각 도 각 읍 수령이 역모(逆謀)하여 민간에 작폐(作弊) 주는 폐(弊) 있으면, 길동이 어사(御使)되어 그 관원을 봉고파직(封庫罷職)하고 그 연유(緣由)를 탑전(榻前)에 주달(奏達)하여 왈,
- “모든 수령이 빙공영사(憑公營私)하고 준민고택(浚民膏澤)하기로 가어사(假御使) 홍길동이 파직(罷職)하고 연유(緣由)를 탑전(榻前)에 주달(奏達)하나이다.”
하고, 작폐(作弊) 무수(無數)하니라.
계유년(癸酉年) 팔월(八月)에 각 도 안찰어사(按察御使) 내려와 각 읍 출척(黜陟)이 무수하니 조야(朝野) 인민이 소동(騷動)하더라. 일일은 팔도 어사(御使) 일시에 장문(狀聞)을 올리되,
- “모월 모일에 홍길동 도적이 창고를 열고 창곡(倉穀)과 군기(軍器)를 도적하였으나 종적(踪迹)을 알 길이 없나이다.”
하였거늘, 상이 장문(狀聞)을 보시고 대경(大驚)하여 만조백관을 모와 의논 왈,
- “홍길동은 어떠한 놈으로서 팔도 장난하는고? 조신 중에 뉘 능히 이 놈을 잡아 국가의 근심을 덜리오?”
하신데, 한 신하 출반주(出班奏) 왈,
- “신이 듣사오니 홍길동은 우의정(右議政) 모(某)의 천첩(賤妾) 소생(所生)이요, 형조판서(刑曹判書) 일형의 서제(庶弟)라 하오니, 홍모(洪某)를 잡아 금부(禁府)에 나수(拿囚)하고, 일형으로 경상 감사를 제수(除授)하시고 길동을 잡아 들이라 하시면, 길동이 비록 불충불효(不忠不孝)하나 제 부형의 사생(死生)을 돌아보아 잡히리다.”
한데, 상이 옳히 여겨 즉시 홍승상을 금부(禁府)에 나수(拿囚)하고 일형을 패초(牌招)하여 가로사대,
- “들으니 홍길동은 경(卿)의 서제(庶弟)라 하니 빨리 잡아들여 홍씨(洪氏)의 멸문지환(滅門之患)을 면(免)케 하라.”
하시되, 일형이 고두(叩頭) 왈,
- “소인의 서제 길동이 본래 불충무쌍(不忠無雙)하와 일찍이 사람을 죽이고 망명도주(亡命逃走)하여 사생(死生)을 알지 못하는지라. 아비 이로 병이 되어 명재조석(命在朝夕)하옵고 또 성상의 근심을 끼치오니 그 죄 만사무석(萬死無惜)이오나, 옛날 고수(瞽叟)는 천하성인(天下聖人) 순(舜)을 낳으시고, 순(舜)은 만고(萬古)의 명인(名人)이로되 상균(商均)같은 불효자를 두시고, 유하혜(柳下惠)는 성인(聖人)이로되 도척(盜跖)같이 하오리까마는, 불효불측(不孝不測)한 놈이 신의 집에 날 줄을 뜻하였으리오. 팔십 넘은 아비 이로 병이 되어 명재조석(命在朝夕)이오니, 복원(伏願) 성상이 은덕(恩德)을 내리사 노부(老父)의 죄를 사(赦)하옵소서. 집에 돌아가되 병이 나으시면 신이 무도한 길동을 잡아 국가의 근심을 덜으리다.”
상이 그 효성(孝誠)을 생각하여 홍승상을 도로 우의정(右議政)을 복직(復職)하시고, 일형으로 경상감사(慶尙監司)를 제수(除授)하시고 분부하시되,
- “일 년 내에 길동을 잡아들이라.”
하시니, 일형이 즉시 하직(下直) 숙배(肅拜)하고 발행(發行)하여 감영(監營)에 도임(到任)하여 방곡(坊曲)에 괘방(掛榜)하니, 그 글에 하였으되,
- “사람이 세상에 나매 오륜(五倫)이 으뜸이라. 군부(君父)의 명령을 거역하면 이는 불효불충(不孝不忠)이니 어찌 세상이 용납(容納)하리오. 오호라! 슬프도다. 길동은 윤기(倫紀)를 알거든 형을 찾아오라. 대감이 너로 하여 백수풍진(白首風塵)에 눈물을 그칠 날이 없고, 침식(寢食)이 불란(不亂)하여 병세 위중(危重)하신 중, 상(上)이 진노(震怒)하사 금부(禁府)에 나수(拿囚)하시고, 나로 하여금 경상감사(慶尙監司)를 제수(除授)하시고, 만일 너를 잡지 못하면 거역한 죄는 국율(國律)을 면(免)치 못하리라 하시니, 이를 장차 어찌하리오. 대범(大凡) 사람이 세상에 나매 군부(君父)의 명(命)으로 죽으면 충효(忠孝)라 하고, 거역하면 불효(不孝)라 하나니, 애닯고 오호라 슬프도다. 길동은 어인 사람으로 군부(君父)의 근심을 끼치고 홍씨(洪氏) 누대(累代) 청덕(淸德)을 망하게 하느뇨? 바라건데 길동은 금부(禁府)의 부친을 생각하여 빨리 자현(自現)하여 일문지환(一門之患)과 많은 욕명(辱名)을 면케 하라.”
하고, 방문(榜文)을 각 읍에 행관(行關)하고, 심신(心身)이 산란(散亂)하여 공사(公事)를 폐(廢)하고 신음하더니, 이 날은 하인이 고하되,
- “어떤 한 소년이 종졸(從卒) 수인(數人)을 거느리고 나귀를 타고 문 밖에 와 사또 전(前)에 통기(通寄)하라 하나이다.”
하거늘, 감사 고이 여겨 들라 하시니 그 소년 바로 나귀를 타고 들어와 계하(階下)에 배례(拜禮)하거늘, 감사 고이 여겨 보니 곧 길동이라. 대경(大驚)하여 좌우를 물리치고, 길동의 손을 잡고 탄식 왈,
- “네 한 번 집을 떠난 후에 사생존망(死生存亡)을 알지 못하여 노친이 너로서 침식(寢食)이 불안하여 병환이 위중(危重)하여 불효막대(不孝莫大)한 중(中)에, 도적(盜賊)의 장수되어 나라 득죄(得罪)하니 불효불충(不孝不忠)이라. 어찌 애닯지 아니하리오. 방금(方今)의 성상(聖上)이 진노(震怒)하사 너를 잡지 못하면 국율(國律)을 면(免)치 못하리라 하시니, 너는 왕명(王命)을 준수(遵守)하여 금부(禁府)에 갇힌 노친을 놓이게 하고, 일문지환(一門之患)을 면(免)하라.”
하고, 언파(言罷)에 눈물이 비 오듯 하거늘, 길동이 고개를 숙이고 왈,
- “지금 대감 환후(患候) 어떠하신가요? 소자 이제 오기는 노부형(老父兄)을 구코자 하거니와, 당초에 천한 길동으로 하여금 한 말씀만 허락하시면 어찌 이 지경이 됐을까? 명일(明日)은 소자를 결박(結縛)하여 경사(京師)로 보내옵소서.”
감사 이튿날 장문(狀聞)을 먼저 띄우고, 길동을 항쇄족쇄(項鎖足鎖)하여 함거(轞車)에 싣고, 날랜 장교 수십여 명으로 하여금 보내며 슬피 통곡(痛哭)하여 이별하니라.
이 때 각 읍 백성이 길동이 잡아간단 말을 듣고 거리거리마다 서서 굿 보는지라. 길이 막히어 왕래(往來)하기 어렵더라. 이 때 팔도 감사 문안(文案)을 올리거늘, 즉시 개탁(開坼)하시니 홍길동을 잡아 올릴 장문(狀聞)이라 하였거늘, 대경(大驚) 왈,
- “어떠한 놈을 팔도에서 다 잡아 올리는고.”
하시니, 만조백관(滿朝百官)이며 장안(長安) 인민(人民)이 다 물 끓듯 하며 어느 것이 참 길동인지 거짓 길동인지 몰라 길동이 오기를 기다리더라. 수일 만에 팔도에서 길동을 항쇄족쇄(項鎖足鎖)하여 올리거늘, 일변 금부(禁府)에 나수(拿囚)하고 탑전(榻前)에 주달(奏達)하니, 상이 친히 승정원(承政院)에 좌기(坐起)하시고 만조백관(滿朝百官)을 모아 친국(親鞫)할새, 금부(禁府) 나졸이 여덟 길동이를 결박(結縛)하여 잡아드리니, 여덟 길동이 서로 팔을 뽐내며 소리를 높이 하여 달아나며 가로대,
- “네 참 길동이냐? 내 참 길동이지.”
하며, 서로 잡고 구르며 싸우니 진위(眞僞)를 알지 못하고 도리어 일대장관(一大壯觀)이더라. 상이 홍승상을 불러 왈,
- “자식 알기는 아비 같은 이 없으니 경이 일찍 한 길동을 두었다 하더니 이제 여덟이 되었으니 어느 것이 경의 자식인가 찾아내라.”
하시니, 승상,
- “팔 개 길동 중에 붉은 점 있는 놈을 잡으소서.”
팔 개 길동을 향하여 꾸짖어 왈,
- “너는 불충불효(不忠不孝)하여 위로는 임군 계시고, 아래로는 아비 있고 네 몹쓸 행실(行實)을 행(行)하여 군부로 하여금 근심을 끼치니 이 세상을 용납하기 어려운지라. 빨리 와 불효막대(不孝莫大)한 죄를 받아 죽으라.”
하고, 좌고(左股)를 상고(詳考)하니 팔 개 길동이 붉은 점이 다 있는지라. 불승의혹(不勝疑惑)하여 기절하거늘, 좌우(左右) 막불경악(莫不驚愕)이라. 상이 놀래시어 대신(待臣)을 명(命)하여 구하되 생도(生道) 없는지라. 여덟 길동이 대성통곡(大聲痛哭)하며 붙들고 낭중(囊中)에서 환약(丸藥) 두 개씩 내어 급히 입에 넣으니, 이윽하여 인사(人事)를 차리거늘, 여덟 길동이 울며 주(奏)왈,
- “신의 아비 국은(國恩)이 망극(罔極)하여 대대로 공후장상(公侯將相)이 떠나지 아니하니 어찌 소인이 범람(氾濫)한 뜻을 두오리까마는, 소인이 전생(前生)의 죄악(罪惡)이 지중(至重)하와 천비의 배를 빌어 났사오니, 부형을 부형이라 못하오니, 실로 평생 한(恨)을 풀지 못하와 차라리 몸을 떠나 산수간(山水間)에 들어가 초목(草木)으로 더불어 함께 죽고자 하더니, 하늘이 밉게 여기사 도적의 장수 되었사오나 백성의 재물은 추호(秋毫)도 취함이 없삽고, 각 읍 수령의 노략(擄掠)한 재물을 앗아 먹사옵고, 나라의 재물과 곡식 먹기는 어린 자식 어미 젖 먹는 일체(一體)라. 이제 삼 년(三年)이 지나면 소인이 조선을 떠나 스스로 갈 곳이 있사오니 복걸(伏乞) 황상(皇上)은 근심치 말으소서. 길동의 죄를 사하옵소서. 팔도 잡는 관자(關子)를 거두소서.”
말을 마치매 여덟 길동이 꺼꾸러져 죽으니, 좌우(左右) 시신(侍臣)과 보는 사람이 경혹(驚惑) 아니하는 이 없더라. 죽은 것을 보니 다 허인(虛人)이라. 길동은 간데없거늘 상이 대로(大怒)하사,
- “길동을 잡아 죽이는 자 있으면 제 원(願)대로 하리라.”
한데, 이 날 길동이 사대문(四大門)에 괘방(掛榜)하되,
- “소인의 평생 한(恨)을 풀지 못하였사오니 복걸(伏乞) 성상은 천(賤)하온 길동으로 병조판서(兵曹判書)를 주시면 잡히리다.”
하였거늘, 상이 만조백관(滿朝白官)을 모아 의논 왈,
- “길동을 병조판서(兵曹判書)를 주면 잡히리라 하니 경(卿)의 소견이 어떠하뇨?”
하신데, 제신(諸臣)이 주(奏)왈,
- “제 나라에 큰 공(功)이 있으면 병조판서(兵曹判書)를 줌이 옳커니와, 제 불효불충(不孝不忠)한 놈을 마땅히 죽일 것이거늘, 어찌 제 뜻을 이루어 국법(國法)을 흐리게 하리오.”
하고, 길동 잡기를 더욱 힘쓰더라.
각설이라. 길동 이후로부터 더욱 장난하며 장안(長安)으로 별연(別輦)도 타고 초헌(軺軒)도 타고 다니되, 뉘 능히 알아 잡으리오. 일국(一國)이 소동(騷動)하여 조야(朝野) 백성이며 각 읍 수령이 밤에 잠을 자지 못하여 창곡(倉穀)을 지키고, 백주(白晝)에 풍운(風雲)을 부려 사람의 눈을 뜨지 못하게 하고 도적하여 가니, 날마다 각 도 각 읍의 장문(狀聞)이 연속하더라.
이 때 경상감사 이로써 근심되어 침식(寢食)이 불안하여 시름하더니, 일일은 감영(監營) 선화당(宣化堂)으로서 일원(一員) 소년이 공중으로 내려와 절하고 앉거늘, 감사 자세히 보니 이는 곧 길동이라. 손을 잡고 울며 왈,
- “이 불충(不忠)한 아이야. 너로써 일국(一國)이 소동(騷動)하고, 부자 각분(各分)하여 늙은 부모에게 근심 끼치고 일문지환(一門之患)을 재촉하느냐?”
길동이 부복(俯伏) 대왈(對曰),
- “형장이 나를 다시 의심치 말으시고, 소자를 결박(結縛)하여 경성(京城)으로 보내되 부모 친척이 없고 지빈무의(至貧無依)한 장교로 압령(押領)하여 보내소서. 자연히 할 도리 있사오니 의심치 말고 보내소서.”
감사(監司) 더욱 의혹하여 좌고(左股)를 상고(詳考)하니 과연 붉은 점 여럿 있는지라. 의심을 덜고 명일(明日)에 쇠사슬로 무수히 얽으니 비록 나는 제비라도 용납치 못할네라. 장교 수십에게 분부하되,
- “만일 잃는 폐단(弊端)이 있으면 죽음을 한(恨)치 못하리라.”
하고, 압령(押領)하고 보내니라.
이 때에 조정백관(朝廷百官)이 홍길동이 잡아 올린단 말을 듣고, 또 수십여 명에게 분부하여 길동을 놓으라6 하고 매복(埋伏)하니라. 길동이 중도(中途)에 내달아 크게 말하여 왈,
- “내 이미 아중(衙中)까지 왔으나 반드시 형장(刑場)에 잡아 올릴 줄은 알았거니와 너희는 나를 원망치 말라.”
하고, 용맹을 쓰니 철사 풍비박산(風飛雹散) 하는지라. 몸을 날아 공중으로 향하는지라. 좌우(左右) 미처 손을 잡지 못하여서 다만 하늘만 바라보더니, 이 연유(緣由)를 탑전(榻前)에 주달(奏達)하니, 상(上)이 진노(震怒)하사 우선 장교를 원찬(遠竄)하시고 백관(百官)을 모아 길동이 잡기를 의논하시니, 백관이 다 주왈(奏曰),
- “이제 길동은 범인(凡人)이 아니라 잡기 어렵사오니, 제 원대로 병조판서(兵曹判書)를 주시고 방(榜)을 사대문(四大門)에 걸면 길동이 들어와 숙배(肅拜)할 것이니, 군사 수백 명을 궐문(闕門) 밖에 매복(埋伏)하여 길동이 숙배(肅拜)하거든 쳐 죽이면, 길동이 비록 용맹(勇猛)이 있사와도 독에 든 쥐 잡듯이 하리라.”
상(上)이 그 말을 옳히 여겨 군사를 매복(埋伏)하고, 병조판서(兵曹判書) 유지(諭旨)를 내리어 병조(兵曹) 하인으로 하여금 사면(四面)으로 흩어 기다리더니, 남대문(南大門)으로서 한 소년이 청포옥대(靑袍玉帶)에 초헌을 타고 들어와 이르되,
- “군은(君恩)이 망극(罔極)하여 길동으로 병조판서(兵曹判書)를 제수(除授)하시니 숙배(肅拜)하시려 하고 온다.”
하거늘, 하인이 일시에 옹위(擁衛)하여 장안(長安)으로 행하여 계하(階下)에 복지(伏地) 주왈(奏曰),
- “불초한 길동은 평생 한(恨)을 품었다가 금일(今日) 천은(天恩)을 입사와 맺힌 한(恨)을 풀고 돌아가오니 만사무한(萬事無恨)이로소이다. 복걸(伏乞) 황상(皇上)은 만세무양(萬歲無恙)하옵소서.”
말을 마치며 몸을 날아 구름을 타고 초연(超然)히 가거날, 상(上)이 처음 얼굴을 보지 못하고 기골(氣骨)을 보니 신장(身長)이 십여 척이라. 탄복하여 왈,
- “그 놈의 용맹(勇猛)은 천고(千古)에 당할 이 없다.”
하시고, 이 날 팔도의 행관(行關)하고 길동의 죄를 사(赦)하고 잡으라는 관자(關子)를 거두어 이후로는 길동이 장난이 들리는 바 없는지라.
삼 년 후 추구월(秋九月) 망간(望間)이라. 상(上)이 월색(月色)을 사랑하여 두 환자(宦子)를 데리고 후원(後園)에 나가 구경하시더니, 문득 일진청풍(一陣靑風)이 일어나며 공중으로 옥저(玉笛) 소리 나거늘. 바라보니 한 소년이 내려와 복지(伏地)하거늘, 상이 대경(大驚)하여 물어 가로대,
- “귀신이오, 진 사람이 아니라. 어찌 인간에 와 무슨 말을 묻고저 하나니까?”
소년이 대왈(對曰),
- “병조판서(兵曹判書) 홍길동이로소이다. 신(臣)이 전하를 모시고 갈충보국(竭忠報國)하려 하나, 한갓 천비(賤婢) 소생(所生)이라 급제(及第)하여도 통천할 길이 없사와, 세상을 다 떨치고 적장(賊將)이 되어 이름을 탑전(榻前)에 들리게 하니 국은(國恩)이 망극(罔極)하여 평생 품은 한(恨)을 풀었사오니, 금일(今日)은 전하를 하직하고 조선(朝鮮)을 떠나 갈 곳이 있사오니, 복걸(伏乞) 황상(皇上)은 천인(賤人)을 감찰(鑑察)하와 정조(定租) 천 석을 서강(西江)으로 수운(輸運)하여 주시면 천한 인명이 전하의 은덕(恩德)으로 명(命)을 보전(保全)할까 하나이다.”
상이 칭찬하시고 왈,
- “자세히 보지 못하였으니 네 안면(顔面)을 들라.”
하신데, 길동이 고개를 숙이고 주왈(奏曰),
- “소인이 고개를 들면 전하가 놀래실까 하나이다.”
한데, 강권(强勸)치 아니하시고 물너가라 하시니, 길동이 몸을 소소아 일진청풍(一陣靑風)을 타고 옥저를 불고 비운간(飛雲間)으로 가더라. 상(上)이 그 재주를 탄복(歎服)하더라.7
대감이 일희일비(一喜一悲)하여 길동의 손을 잡고 왈,
- “네 한 번 집을 떠나매 사생존망(死生存亡)을 몰라 생각하더니, 무슨 뜻으로 도적(盜賊)의 장수되어 군부(君父)에 근심을 끼치고, 또 황은(皇恩)이 망극(罔極)하여 네 원을 이루어 주시거늘 어찌 이제야 집을 찾아 오느뇨?”
길동이 복지(伏地) 주왈(奏曰),
- “소자 집을 떠나 의지할 곳이 없삽다가 이름이 탑전(榻前) 들어가 평생 품은 한(恨)을 풀었사오니 국은(國恩)이 망극(罔極)하온지라. 이제 조선을 떠나 제자를 거느리고 갈 곳이 있삽기로 아까 황상(皇上)을 보옵고 미조(米租) 천 석을 얻었사오니, 복걸(伏乞) 대감은 만세무양(萬歲無恙)하옵소서.”
하고, 내당에 들어가 대부인과 그 모친을 보고 서로 붙들고 새로이 통곡(痛哭)하며 누년(屢年) 그리던 정(情)을 다 펴고, 더 할 말이야 어찌 다 형언하리오.
각설이라. 이날 선혜청(宣惠廳)에 분부하여 정조(定租) 천 석과 미조(米租) 천 석을 서강으로 쌓고 기다리더니, 문득 선척(船隻)이 들어와 미조 천 석을 싣고 길동과 수천 적당(賊黨)은 천은(天恩)을 축수(祝壽)하고 배를 바삐 저어 조선을 떠나 남경 근처로 이르러 제도라 하는 섬중으로 들어가, 춘절(春節)에는 농업을 힘쓰고 추동(秋冬)에 군법(軍法)을 힘쓰니 곡식이 구여(丘如)하고 재주 더욱 신기하여 천하에 망농 땅이라.
원래에 그 섬중의 근처에 안광이라 하는 뫼 있으되, 높기는 만여장이요, 골이 깊고 요해(要害) 천연(天然)이라. 산중에 울동이라 하는 짐승이 있으되 수천 년을 지내매, 자연 신기하여 사람의 형용(形容)을 무릅쓰고 언어 말 능통하는지라. 장졸 천여 명을 거느리고 한 곳에서 웅거(雄據)하여 자칭(自稱) 왕이라 하고, 민간을 다니며 풍우(風雨)를 부르며 재물도 탈취(奪取)하고, 혹 아름다운 여자 있으면 도적(盜賊)하여 첩을 삼는지라. 그 근처의 사람들이 붙들지 못하거늘, 길동이 이 말을 듣고 매일 잡기를 생각하더라.
각설이라. 길동이 하루는 제졸(諸卒)에게 분부하되,
- “내 안광산에 들어가 화살촉에 바를 약을 캐어 올 것이니 너희 등(等) 은 동중(洞中)을 잘 지키라.”
하고 홀로 떠나가니, 산곡(山谷)이 준수(俊秀)하고 인가(人家) 즐비(櫛比)한지라. 만석군 부자 있으되, 성은 백가요 이름은 용이라. 일찍 무남독녀(無男獨女)를 두었으되 그 얼굴이 절미(絶美)하고 재색(才色)이 비범한지라. 연장(年長) 십육에 택서(擇壻)하기를 일삼더라.
일일은 홀연 풍우대작(風雨大作)하여 천지 아득하여 지척(咫尺)을 분별치 못하여, 문득 백소저 간 데 없는지라. 그 부모가 애통하여 천금을 흩어 찾으되 종적(踪迹)이 없는지라. 길동이 한 말을 듣고 헤오되, ‘필연 울동이 한 바라’하고, 측은(惻隱)이 여겨 안광산에 들어가 약을 캘새, 문득 날이 저물고 길이 희미한지라. 홀연 바라보니 인성(人聲)이 훤화(喧譁)하거늘, 불빛대로 찾아 들어가니 수천 인이 잔치를 배설(排設)하고 주육(酒肉)이 난만(爛漫)하거늘, 자세히 보니 비록 형용(形容)은 사람이나 거동(擧動)은 다른지라. 길동이 생각하여 왈,
- “이것이 필연 울동이로다. 내 저 짐승을 잡지 못하면 세상 사람이 보전(保全)치 못하리라.”
하고, 몸을 감추고 활로 쏘아 그 장수를 맞히니 울동이 소리 지르며 제졸(諸卒)을 거느리고 달아나는지라. 길동이 따라가 잡고저 하되 밤이 깊고 갈 곳을 몰라 밤 새기를 기다려 살펴보니 그 짐승이 피를 흘리고 가거늘, 점점 찾아 가니 한 전문(殿門)이 있거늘, 멀리 서서 바라보니 가장 광활(廣闊)한지라. 그 문을 두드리니 기야(其夜)에 보던 울동이 무수히 나와 묻거늘, 길동이 왈,
- “나는 조선 사람이더니 대강 의술(醫術)을 하기로 채약(採藥)하려 하고 이 곳에 왔노라.”
하니, 울동이 문을 열거늘 길동이가 들어가니 울동이 왈,
- “우리 대왕이 부인을 얻으려 하고 잔치하다가 난데없는 살을 맞아 신음하니, 그대 고칠소냐?”
길동이 왈,
- “화타(華陀)의 재주와 편작(扁鵲)의 수단이 있으니 어찌 염려하리오.”
한대, 울동이 대희(大喜)하여 들어가고저 한대 즉시 모셔오라 하거늘, 길동이 상처를 보고 왈,
- “이 곳이 과히 상치 않은지라. 내게 명약(名藥)이 있으니 대왕이 먹으면 상처 즉차(卽差)하려니와 장생불사(長生不死)하리다.”
울동이 대희(大喜) 왈,
- “천우신조(天佑神助)하여 신인을 만났으니 저 약을 시험하옵소서.”
한데, 길동이 낭중(囊中)에서 또 약을 내어 먹이고 보니, 그 곁에 한 미인이 나건(羅巾)으로 목을 매어 죽고자 하니 두 미인이 만류(挽留)하여 죽지 못하게 하거늘, 길동이 괴이 여겨 앉았더니 이윽하여 울동이 또 약을 먹고 견디지 못하여 배를 두드리면서 왈,
- “네 무슨 약을 주어 나를 죽이고자 하느냐?”
하고, 죽으니 모든 울동이 대로(大怒)하여 칼을 들고 달려들거늘, 길동이 육정육갑(六丁六甲)을 호령하니 일시에 풍우(風雨)가 대작(大作)하여 공중에서 칼이 내려와 모든 울동을 죽이거늘, 길동이 바로 방으로 들어가 삼녀(三女)를 죽이고자 하니 여자 등(等)이 울며 대왈(對曰),
- “첩(妾) 등(等)은 요물(妖物)이 아니요 인간 사람이옵더니, 일시에 잡혀와 겁탈(劫奪)하고자 하거늘, 첩 등이 한 꾀를 생각하고 울동을 속여 좋은 날로 가리어 잔치를 배설(排設)하고 길례(吉禮)로 맞으라 하고 틈을 얻어 죽으려 한대, 틈을 얻지 못하였사옵더니, 마침 길일(吉日)이 당하여 울동이 잔치하다가 화살을 맞고 신음하였더니, 천우신조(天佑神助)하여 그대를 만나 울동을 죽였사오니, 그 은혜(恩惠) 백골난망(白骨難忘)이로소이다.”
하거늘, 그제야 성명 거주(居住)를 물으니, 하나는 합천현 백용의 딸이요, 둘은 정가, 조가의 딸이니, 길동이 삼녀(三女)를 데리고 합천에 이르더니, 백용에게 그 연유(緣由)를 이른대 백용이 대희(大喜)하여 일가친척을 모아 사위를 삼으니, 원앙(鴛鴦)이 녹수(綠水)를 만남 같고 비취연(翡翠燕)이 지(池)에 깃들임 같더라. 그 후에 정가조가 두 사람이 길동을 청하여 칭찬하고 각색의 딸로 첩(妾)을 삼으니, 길동이 삼십 되도록 실가지락(室家之樂)을 모르더니,8 일일은 용이 길동을 사랑하여 가산(家産)을 팔아가지고 길동을 따라 제도에 들어가니, 세월이 여류(如流)하여 섬중에 온지 이미 삼 년이라.
일일은 길동이 월색(月色)을 사랑하여 정전(正殿)을 배회(徘徊)하다가 천문(天文)을 바라보니 부친의 병세 위중(危重)하여 미구(未久)에 세상을 버릴지라. 하고, 이튿날 군졸을 거느려 십 리 내에 나와 명승지지(名勝之地)를 얻어 그 날부터 역사(役事)를 하며 좌우(左右) 성분(成墳)과 분묘(墳墓)를 능묘(陵墓)같이 하라 하고 분부 왈,
- “내 모월(某月) 모일(某日)에 부친 상구(喪柩)를 모시고 올 것이니 전선(戰船) 일척(一隻)을 서강(西江)으로 등대(等待)하라.”
하고, 몸에 상복(喪服)을 입고 머리에 상립(喪笠)을 쓰고 소선(小船) 일척(一隻)을 타고 조선을 향하니라.
이때 홍승상이 연장(年將) 구십(九十)에 우연이 득병(得病)하여 백약(白藥)이 무효(無效)라 하고, 부인과 일형의 손을 잡고 왈,
- “내 연광(年光)이 구십이라. 죽어도 무슨 여한(餘恨)이 있으리오마는, 길동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이별하니 가슴에 맺히노라. 제 어미를 천대 말라.”
하고, 또 춘섬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왈,
- “내 너를 어찌 못하고 또한 길동을 보지 못하고 황천(黃泉)에 돌아가니 눈을 어찌 감으리오.”
하시고, 말을 마치매 별세하니, 일형이 애통(哀痛)하고 초상(初喪)을 극진히 하여 성복(成服)을 극진히 한 후에 명승지지(名勝之地)를 얻어 장사(葬事)하고자 하더니, 일일은 시동(侍童)이 고하되,
- “어떠한 승인(僧人)이 문 밖에 와 대감 영위전(靈位前)에 뵈오리라 하나이다.”
하거늘, 일형이 고이 여겨 들어오라 하니, 그 승인(僧人)이 바로 대감 영위전(靈位前)에 대성통곡(大聲痛哭)하고 나와 상주(喪主)를 보고 왈,
- “형장(兄丈)은 불초(不肖)한 저를 모르시나이까?”
하거늘, 자세이 보니 이는 곧 길동이니라. 일형이 일희일비(一喜一悲)하여 붙들고 통곡(痛哭) 왈,
- “네 무정한 아이야, 네 어디 갔더냐? 대감이 너로 하여금 눈을 감지 못하노라 하시고 세상을 이별(離別)하여 계시니 어찌 슬프지 아니하리오?”
손을 잡고 내당(內堂)으로 들어가 뵈여 왈,
- “길동이로소이다.”
부인이 붙들고 통곡(痛哭) 왈,
- “네 한 번 집을 떠나매 어디로 갔더냐? 대감이 너로 하여금 죽도록 한(恨)이 가슴에 맺히노라 하시고 별세(別世)하시니 어찌 절통치 아니하리오?”
하고, 울기를 그치지 아니한데, 길동이 위로 왈,
- “소자 집을 떠나 산중(山中)에 거처(居處)하여 지리(地理)를 공부하되 대감의 만년유택(萬年幽宅)을 정하여 여산여해지은(如山如海之恩)을 만분지일(萬分之一)이나 갚사올까 하나이다.”
부인이 시비(侍婢)를 명(命)하여 길동의 모(母)를 부르니, 그 모친이 이 말을 듣고 전지도지(顚之倒之) 나와 서로 붙들고 통곡(痛哭)하다가 기절하거늘, 제인(諸人)이 구하여 밤이 새도록 누년(屢年) 그리던 정을 다하고 수삼 일을 지낸 후에 길동이 일형을 데리고 한 곳에 다다르니, 길동이 앉으며 왈,
- “이곳은 천하(天下)의 명당(明堂)이라. 형장(兄丈)의 소견은 어떠하신가요?”
일형이 살펴보니 사방이 모두 암석(岩石)이라. 가로되,
- “아무리 명당(明堂)인들 어찌 이런 곳에 부모를 모시리오?”
하고, 길동이더러 다른 데로 보라 하니, 길동이 가로되,
- “조선을 다 다녀도 이런 땅은 얻지 못하리로다.”
하고, 재삼 당부하되 그 형이 듣지 아니한지라. 길동이 탄식 왈,
- “형장이 이 땅을 가질 복이 없사오니 무가내하(無可奈何)로다. 내 재주 다 보옵소서.”
하고, 바위를 깨치니, 붉은 안개 하늘에 닿았고 봉황 한 쌍이 날거늘, 일형이 대경(大驚) 왈,
- “이제는 할일없사오니 네 말대로 할 것이니 어디 명당(明堂) 또 있느냐?”
길동이 길이 탄식 왈,
- “여기서는 더 좋은 땅이 있으되 길이 요정(遙程)하오니 형장이 듣지 아니할까 하나이다.”
일형이 왈,
- “수천 리라도 너를 좇아 가리라.”
길동이 왈,
- “수로(水路)로 천리를 가면 대대로 공후장상(公侯將相)이 떠나지 아니할 곳이 있사오니, 명일(明日) 상구(喪柩)를 모시고 가사이다.”
하고, 집에 돌아와 부인께 그 연유(緣由)를 고한데 부인이 허락(許諾)하시거늘, 길동이 부인께 고왈(告曰),
- “소자 어머니를 떠난 지 십년이라. 지금 보고 떠나기는 박절(迫切)하오니 복걸(伏乞) 부인은 수월(數月) 말미를 주옵시면 어미를 데리고 누년(屢年) 그리던 정을 풀고 대감 영위전(靈位前)에 조석(朝夕)이나 할까 바라옵나이다.”
부인이 즉시 허락(許諾)하시니, 길동이 그 은혜를 축수(祝手)하고 즉시 길을 구모아 상구(喪具)을 모시고 길을 떠나 서강(西江)에 다다르니, 제졸(諸卒)이 전선(戰船) 일척(一隻)을 등대(等待)하였다가 상구(喪具)를 배에 모시고 만경창파(萬頃蒼波)에 흘러 저어 수일 만에 섬중에 들어가 장처(葬處)에 이르니, 벌써 능묘(陵廟)를 다 모으고 하관(下棺)을 재촉하니 그 범절(凡節)이 도로 측량(測量)치 못할네라. 길동이 제복(祭服)을 갖추어 형을 데리고 분묘(墳墓)에 들어가 백씨와 정씨, 조씨 삼인이 이내 복(服)을 차려 시숙(媤叔)을 맞아 조문(弔問)하는지라. 오호라! 슬피 통곡하니 분묘(墳墓)에 하직하고 길동의 거처하는 방으로 들어가보니 궁궐과 위의(威儀) 길동은 왕자(王者)에 비길레라. 일형이 길동의 사사(事事) 신기한 말을 탄복하더라.
일일은 일형이 길동을 불러 왈,
- “이 곳에친산(親山)을 모시니 오래 머물 것이로되, 고국을 생각하니 어찌 묘연(杳然) 아니하리오.”
한데, 길동 왈,
- “형주(兄主)는 조금도 염려치 말으소서, 이 곳은 천만대(千萬代)를 대대로 공후장상(公侯將相)이 떠나지 아니할 것이요, 또 형주(兄主)는 선친(先親)을 생전(生前)에 모셨으니 소제(小弟)는 사후(死後)에 모시리다. 고국으로 돌아가 대부인을 위로하소서.”
일형이 이튿날 발행(發行)할새, 길동과 삼 부인이 맞아 나와 이별(離別)하여 왈, 수로(水路) 만리(萬里)를 편안히 월섭(越涉)하며 다시 보기를 당부하니, 그 떠나는 정(情)이 비할 데 없더라. 제인(諸人)을 하직하고 부친 산소에 하직 통곡(痛哭)하고 길을 떠날새, 길동이 재삼 위로(慰勞)하고 채단(綵緞)과 금은(金銀)을 많이 실어 보내며 하직 왈,
- “부디 수로(水路) 만리(萬里)를 편안히 월섭(越涉)하여 대부인을 모시고 만세무양(萬歲無恙)하옵소서.”
일형이 길동을 위로하고 일엽(一葉) 소선(小船)을 바삐 저으니. 삼 일만에 고국에 돌아와 부인을 뵈옵고 길동의 사요 성과 사사(事事) 신기함을 절절(節節)이 탄복(歎服)하더라.
각설이라. 길동이 제도에 있어 삼년초토(三年草土)를 극진히 지낸 후에 길복(吉服)을 갖추고 제인(諸人)을 데리고 농업을 힘쓰고 군법(軍法)을 연습하니 곡식이 구산(丘山)같고 군기(軍器) 무수한지라. 원래에 근처에 율동이국이라 하는 나라 있으되, 지광(地廣)이 수천 리요, 군현(郡縣) 삼백팔십 주(州)라. 본래 해도지국(海島之國)으로 대국을 섬기지 아니하고, 율왕이 세대(世代)로 전위(傳位)하고, 사방이 무사하고 백성이 요부(饒富)하더라.
일일은 길동이 제적(諸賊)과 더불어 의논 왈,
- “우리 양식이 넉넉하고 용장(勇將)이 백여원(白餘員)이요, 마병(馬兵) 수십만이며, 보병(步兵)이 팔십만이니, 천하(天下)를 행하여도 염려 없을지라. 들으니 율동국(國)이 지방이 넓고 대국(大國)이라 하니, 대장부 세상에 처하면 차라리 죽으면 말려니와 죽지 아니하오면 반드시 큰 이름을 얻을지라. 이제 군병(軍兵)을 거느리고 울동국을 치고자 하여 제장을 불렀으니 뜻이 어떠하뇨?”
제인(諸人)이 일시에 왈,
- “이는 소장 등의 평생 소원이온데, 어찌 수다(數多)한 군병(軍兵)을 이 섬중에서 초목(草木)같이 늙으리오. 장군의 처분대로 하옵소서.”
하거늘, 길동이 택일(擇日)하여 기군(起軍)할새 성(城)을 나와 가로되,
- “제장 중에서 뉘 능히 선봉장을 설 자 있는고?”
말을 마치니, 한 장수 출반주(出班奏),
- “소장이 비록 재주 없사오나이 때를 당하여 빈 이름을 후세에 전코자 하나이다.”
하거늘, 모두 보니 이는 조선(朝鮮) 해동(海東) 사람 김수길이라. 신장(身長)이 팔 척이요, 좌수(左手)에 칠척장검(七尺長劍)을 들고, 우수(右手)에 홀기(笏旗)를 들었으니 웅장하고 기운이 늠름한지라. 길동이 대희(大喜)하여 즉일로 도원수(都元帥)를 정할새, 전주작(前朱雀) 최인영이요, 후현무(後玄武) 김성용이요, 좌청룡(左靑龍) 이흔열이요, 우백호(右白虎) 백호손이라. 길동이 장대에 급히 올라앉아 선봉(先鋒)을 호령하여 행군(行軍)을 재촉하여 정병 백여만 인(人)이요, 기치창검(旗幟槍劍)은 일월(日月)을 호령하고, 함성(喊聲)은 천지진동(天地震動)하더라. 한 십여 일에 율국 지경(地境)에 다다르니 각 읍 수령이 바람을 쫓아 향하는지라. 일시에 십 주(州)를 항복(降伏) 받고 도로 행하여 격서(檄書)를 율왕께 보내고,
각설이라. 이때에 율왕의 용력(勇力)이 능히 단산(丹山) 맹호(猛虎)를 잡으며, 술법은 풍운(風雲)을 부리는지라. 국정(國政)을 전폐(全廢)하고 미색(美色)을 좋아하여 날마다 잔치만 하더니, 백성이 평안치 못하여 난세(亂世)를 생각하더라. 이때 마침 소민으로 더불어 태평연을 배설(排設)하고 즐기더니, 어떠한 군사 글을 올리거늘 하였으되,
- “조선 활빈당 도대장 병조판서(兵曹判書) 홍길동이 의병(義兵) 일으켜 그대의 죄를 묻고자 하니, 깊이 생각하여 대세를 당할 듯하거든 하여보고, 당치 못하거든 급히 항서(降書)를 올리라. 나라는 한 사람의 솥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솥이라. 성탕(成湯)이 하걸(夏桀)을 멸하고 주문왕(周文王)은 상주(商紂)를 베었으되 후세에 그르다 아니 하니, 바삐 신명(神命)을 순수(順守)하여 항복(降伏)하라.”
하였거늘, 율왕이 견필(見畢)로 대경(大驚)하여 연유(緣由)를 말하고 스스로 군사를 거느려 치고자 하여 군병(軍兵)을 총독(總督)할새, 남문장(南門將) 수문장(守門將)이 급히 고왈,
- “조선 홍길동이라 하는 놈이 정병(精兵) 백만을 거느려 칠십 성(城)을 항복 받고 바로 도성(都城)을 향하매, 그 형세 위태한지라. 복걸(伏乞) 폐하는 군병(軍兵)을 총독(總督)하여 막으소서.”
하거늘, 율왕이 대경(大驚)하여 서안(書案)을 치며 왈,
- “내 나라가 불행하도다.”
군병(軍兵)을 조동(躁動)할새, 최일영으로 선봉(先鋒)을 삼고 정병(精兵) 팔십만을 조발하여 동군 서를 막아 길은 되고 격서(檄書)를 전하시니, 길동이 격서를 보고 왈,
- “율왕이 비록 용맹(勇猛)이 있으나 어찌 나를 당하리오.”
하고, 선봉장(先鋒將) 김수길로 나가 싸우라 하니, 수길이 몸에 엄심갑(掩心甲)을 입고, 머리에 칠성기린(七星麒麟) 투구를 쓰고, 우수(右手)에 장창(長槍)을 들고, 좌수(左手)에 홀기(笏旗)를 들고 진문(陣門)을 나서며 우뢰 같은 소리를 질러 왈,
- “우리 주상(主上)이 의병(義兵)을 일으켜 너의 국(國)을 반이나 얻었으니 어찌 대세(大勢) 당하리오. 바삐 나와 나의 칼을 받으라.”
하는 소리 강산(江山)이 진동(震動)하는지라. 적진(敵陣) 중에서 최일영이 엄심갑(掩心甲)을 입고, 백금투구를 쓰고, 백 근(百斤) 철퇴(鐵槌)를 들고, 만리청총마(萬里靑驄馬)를 타고 나오면서 외쳐 왈,
- “너희는 어떠한 놈으로서 태평세월(太平歲月)을 불안케 하느냐? 우리 대왕이 나로 하여금 너같은 놈 반적(叛賊)을 잡아 시절(時節)을 태평(太平)케 할 것이니 바삐 재주를 다투라.”
하고, 달려들어 서로 합하여 수합(數合)이 못하여 수길이 번듯하며 일영의 머리 마하(馬下)에 내려지는지라. 칼 끝에 꿰어들고 날랜 장수 십여 명을 한 칼로 베어 들고 좌충우돌(左衝右突)하니. 율진 장졸의 머리 끝이 구월(九月) 단풍에 낙엽 떨어지듯하는지라. 율진 중에 호잡티 선봉(先鋒) 죽음을 보고 분기(憤氣)를 참지 못하여, 칠십 근(七十斤) 장창(長槍)을 바삐 들고, 비룡마(飛龍馬)를 타고, 우레 같은 소리를 지르며 나는 듯이 나와 크게 위여 왈,
- “적장은 닫지말고 내 칼을 받으라.”
하며 달려들거늘, 수길이 대소(大笑) 왈,
- “어떠한 아이 당돌히 어른을 대하여 큰 말을 하여 하루 강아지 맹호(猛虎)를 모르는 격(格)이로다.”
하고, 서로 맞아 싸워 십여 합(十餘合)에 몸의 승부를 결단치 못하는지라. 두 장수 칼이 번개 같아서 피차 분별치 못하는지라. 다시 합하여 삼십여 합에 수길의 기운은 점점 쇠진하고 호잡티의 기운은 점점 승하니, 수길이 당치 못할 줄 알고 도망코자 하더니, 마침 길동이 장대에서 보다가 후군장(後軍將) 서성인을 불러 바삐 가 선봉(先鋒)을 구하라 한대, 성인이 팔척(八尺) 장창(長槍)을 들고 우레 같은 소리를 벽력 같이 지르며 나는 듯이 달려들어 적장 십여 원(員)을 한 칼로 베어 들고 율진 중에 헤쳐가며,
- “선봉(先鋒)은 어디 계시니까?”
하고 장졸이 무수히 짓쳐 좌충우돌(左衝右突)하니, 수길이 서성인의 말을 보고 기운을 돋우어 싸우니, 호잡티 능히 당치 못할 줄을 알고 달아나거날, 경인이 크게 호통하여 왈,
- “적장은 닫지 말고, 내 칼을 받으라.”
하고 달려들거늘, 호잡티 놀래여 돌아보니 앞에는 서성인이요 뒤에는 수길이 따르는지라. 죽기로써 싸움을 하더니 십 합이 못하여 성인의 칼이 번듯하며 호잡티 머리 내려지는지라. 칼 끝에 꿰여 들고 마상(馬上)에서 칼춤 추며 승전고(勝戰鼓)를 울리며, 양장(兩將)이 합세(合勢)하여 바로 율왕을 향하여 들어가니, 장졸의 머리를 물에 풀 뿌리듯하며, 우레 같은 소리를 질러 왈,
- “개와 같은 율왕은 불쌍한 장졸을 죽이지 말고, 바삐 나와 항복하라.”
하는 소리 강산(江山)이 치솟는 듯, 율진 중에 장졸이 이제 눈이 어두워 정신이 아득하여 감히 싸울 자(者) 없는지라. 율왕이 분기(憤氣)를 참지 못하여 몸에 엄심갑(掩心甲)을 입고, 머리에 칠성기린(七星麒麟) 투구를 쓰고, 만리청룡마(萬里靑龍馬)를 타고, 팔십근(八十斤) 장창(長槍)을 들고, 진문(陣門)에 나서며 크게 위여 왈,
- “너희는 어떠한 놈으로서 평안한 시절을 불안케 하느냐? 무단(無端)한 장졸을 무수히 상(傷)하게 하느뇨? 오늘날 너희를 참(斬)하여 백성을 건지리라.”
하거늘, 수길과 성인이 바로 보니, 신장(身長)이 십여 척이요, 사나운 거동(擧動)은 단산(丹山) 맹호(猛虎) 밥을 노려보는 듯하는지라. 한 번 보매 눈이 어둡고 정신이 막막(漠漠)한지라. 양장(兩將)이 서로 보아 왈,
- “우리 십일지내(十日之內)에 칠십여 주(州)를 항복(降伏) 받고 여기 왔으되 적수(敵手) 없더니, 율왕의 기상(氣象)을 보니 천하(天下)의 영웅이니 경적(輕敵)치 못하리라.”
하고, 기운을 가다듬어 크게 위여 왈,
- “율왕은 들으라. 우리 국왕(國王)이 천명(天命)을 받아 의병(義兵)을 일으켜 이에 이르렀으니 형세(形勢) 위태하거든 부질없는 장졸을 죽이지 말고 항서(降書)를 올리라.”
하니, 율왕이 대로(大怒)하여 바로 들어 양장(兩將)이 맞아 싸와 십 합이 못하여 수길과 성인의 기운이 쇠진하여 달아나는지라. 율왕이 우레 같은 소리를 질러 왈,
- “적장은 닫지 말고 하늘로 오르며 땅으로 돋아”
군사를 호령하여 금삼주 작북현에 모아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로 원앙진(鴛鴦陣)을 쌓고, 내(內)에 생살문(生殺門)을 두어 양장(兩將)을 에워싸니, 삼백여 첩에 쌓이었는지라. 양장(兩將)이 칼을 들고 아무리 헤친들 장창검극(長槍劍戟)이 별질 듯하고, 율왕이 풍운(風雲)을 부려 명랑(明朗)한 천지 아득하며 어둠이 군졸의 몸을 침노하니, 할 길이 없어 하늘을 우러러 탄식(歎息) 왈,
- “황천(黃泉)은 감동하사 우리 중장에게 하소서.”
하고, 빌기를 마지 아니하더니, 이때 길동이 장대에서 양장 싸움을 보고 좌우(左右) 제장을 불러 뒤를 따르라 하고, 비룡마(飛龍馬)를 바삐 몰아 팔십근(八十斤) 장창을 들고 우레 같은 소리를 지르고, 율왕 진중(陣中)을 헤쳐 날낸 장수 이십여 원(員)을 한 칼에 베어들고 육정육갑(六丁六甲)을 호령하니, 천지 명랑하고 율진 장졸이 호통 소리에 양의를 수습치 못하고, 양장이 또한 기운을 돋우어 군사를 짓치고 헤쳐나와 합세하여 율왕을 맞아 싸울새, 율왕이 수다(數多)한 풍운(風雲)을 부리며 변화 무궁하고, 용맹이 번개 같은지라. 길동이 제장을 호령하여 전후좌우(前後左右)로 높이 치니, 율왕이 죽는 사람의 손을 잡아 살리며 칼로 장졸을 무수히 짓치는지라. 길동이 평생 힘을 다하여 싸워 백여 합(百餘合)에 승부를 결단치 못하고 날이 저물고 월출동령(月出東嶺)하니라. 서로 태평(太平)하고 본진(本陣)으로 돌아오니라. 율왕이 본진(本陣)에 돌아와 대성통곡 왈,
- “적장의 재주를 보니 귀신 같고, 군사 백여만이라. 내 나라 불행하도다. 나를 위하여 도적을 막을 자(者)가 없으니 어찌 한심치 아니하리오.”
한대, 장하에 한 장수 출반주(出班奏) 왈,
- “소장이 비록 재주 없사오나 내일 전장(戰場)에 나아가 반적(叛賊) 홍길동을 사로잡아 대왕의 근심을 덜리이다.”
하거늘, 모두 보니 이는 백이문이라. 율왕이 대희(大喜)하여 백이문으로 선봉(先鋒)을 삼고 대장군 절월(節鉞)을 주어 왈,
- “적장의 재주를 보니 귀신 같은지라. 부디 걱정치 말고 대공(大功)을 이루면 나라를 반분(半分)하리라.”
하니, 사은숙배(謝恩肅拜)하고 밤 새기를 기다리더라.
이때 길동이 본진(本陣)에 돌아와 제장을 불러 왈,
- “율왕의 재주를 보니 걱정치 못하리라. 재주로써 잡으리라.”
하고, 선봉장(先鋒將) 수길, 후군장(後軍將) 성인을 불러 왈,
- “그대는 정병(精兵) 일천을 거느려 율왕과 합전(合戰)하다가 거짓 패하여 이리이리 하라.”
하고, 최인엽과 김성용을 불러 왈,
- “그대는 정병(精兵)을 일천을 거느리고 건국산에 매복(埋伏)하다가 선봉(先鋒)이 패하여 오거든 이리이리 하라.”
하고, 이흔열과 백호손을 불러 왈,
- “그대는 정병 일천을 거느려 건주산을 지나 호진산에 매복하다가 이리이리 하라.”
하고, 남은 장졸을 거느려 호진산을 지나 김학산에 가,
- “이 산이 높고 골이 깊고 돌이 많으니, 산곡(山谷)에 들면 방포(放砲) 일성(一聲)하거든, 그대 등은 동편으로 바삐 달아나라.”
하니, 제장이 영(令)을 듣고 밤 새기를 기다리더니, 명일(明日)로 율왕 진중(陣中)서 백이문이 엄심갑(掩心甲)을 입고 머리에 순금(純金) 투구를 쓰고, 비룡마(飛龍馬)를 타고, 장창(長槍)을 빗겨 들고, 진문(陣門)에 나서며 크게 위여 왈,
- “적장은 빨리 나와 내 칼을 받으라.”
하거늘, 수길과 성인이 응성출마(應聲出馬)하여 나는 듯이 달려들어 맞아 싸워 십 합이 못하여 수길의 칼이 번듯하며 적장의 머리 내려지는지라. 승세(勝勢)하여 장졸을 무수히 짓쳐 들어가니, 율왕이 선봉(先鋒) 죽음을 보고 분기(憤氣)를 이기지 못하여 장창(長槍)을 빗겨 들고 나는 듯이 달려들어 양장(兩將)을 맞아 싸워 십여 합에 수길과 성인이 거짓 패하여 건주산을 바라보고 달아나니, 율왕이 소리를 지르며 급히 달아나 건주산 하(下)에 다다르니, 일성방포(一聲放砲)에 한 떼 복병(伏兵)이 내달아 길을 막으며 최인엽과 김성용이 장창(長槍)을 들고 싸우다가 거짓 패하며 호진산을 바라보고 달아나매, 율왕 더욱 승세(勝勢)하여 급히 떠나 호진산 하(下)에 다다르니, 방포일성(放砲一聲)에 복병(伏兵)이 일어나며 이흔열과 백호손이 장창(長槍)을 들고 싸우다가 거짓 패하여 김학산을 바라보고 달아나니, 율왕 종일 기운을 다하여 오륙(五六) 장(將)을 연(連)하여 싸우매, 기력(氣力) 기진할 뿐아니라, 또 보니 복병(伏兵)이 있는가 의심하여 따라오지 아니하거늘, 이흔열이 다시 합하여 싸우다가 거짓 패하여 욕을 무수히 하니, 율왕이 대로(大怒)하여 급히 나오거늘, 김수길과 서성인과 김성용 등이 서로 합세(合勢)하여 싸우며 달아나며 김학산으로 들어가니, 율왕이 더욱 승세(勝勢)하여 급히 따라와 계곡에 들거늘, 방포일성(放砲一聲)하고 좌편으로 매복(埋伏)하니라.
이 때 길동이 장졸을 거느리고 김학산에 들어와, 육정육갑(六丁六甲)을 호령하여 무수한 돌에 신장(神將)의 혼백(魂魄)을 부쳐 사십팔진(四十八陣)을 쌓고 내(內)에 생살문(生殺門)을 두고 기다리더니, 방포(放砲) 소리를 듣고 급히 호령하니, 일시에 뇌성풍운(雷聲風雲)이 대작(大作)하며, 천지(天地) 진동(震動)하며, 지척(咫尺)을 분별치 못하며, 마상(馬上)으로서 무수한 돌이 구르는 소리 강산(江山)이 뛰노는 듯하는지라. 돌 마다 구르면 율왕이 정신이 아득하여 사면을 살펴보니, 군사 다 돌로 맞아 죽고 독부(獨夫) 되었는지라. 할 길이 없어 하늘을 우러러 탄식(歎息) 왈,
- “내 남을 경(輕)히 여기다가 이 환(患)을 당하니 누구를 원망하리오.”
하며 또,
- “수천년(數千年) 왕도(王都) 내 몸에 미쳐 망하오니, 지하(地下)에 돌아간들 무슨 면목으로 사십팔(四十八) 친(親) 선왕(先王)을 보리오.”
하고 칼을 들어 자문(自刎)하니, 길동이 율왕의 신체(身體)를 거두어 왕례(王禮)로 안장(安葬)하고, 도성(都城)에 들어가 택일(擇日)하여 대연(大宴)을 배설(排設)하고, 길동이 즉위(卽位)하여 국호(國號)를 고쳐 망선국(望鮮國)이라 하고, 부친을 높여 평숙황제라 하고, 그 모친으로 평열왕후를 봉(封)하시고, 백씨로 대행왕비라 하고, 제장(諸將)을 차례로 공(功)을 나눌새, 김수길로 좌승상(左丞相)을 삼고, 서성인으로 우승상(右丞相)을 삼고, 백호손으로 좌장군(左將軍)을 삼고, 김성용으로 우장군(右將軍)을 삼고, 이흔열로 좌판서(左判書)를 삼고, 최인엽으로 형조판서(刑曹判書)를 삼고, 그 남은 장수(將帥)는 각각 공(功)을 더하고 인정을 행하여 백성을 다스리니, 일국이 태평(太平)하고 사방에 일이 없고, 요지일월(堯之日月)이요 순지신군(舜之臣君)이라. 백성이 만세를 부르더라.
각설이라. 백씨는 일남일녀(一男一女)를 두고, 정씨는 삼남일녀(三男一女)를 두고, 조씨는 남삼녀(男三女)를 두었으되, 다 인물이 비범(非凡)하여 선친(先親)의 유풍(遺風)이 있는지라. 왕이 백씨의 아들로 태자(太子)를 삼으니라.
일일은 왕이 조신(朝臣)을 모아 의논 왈,
- “내 고국을 떠난 지 여러 해라. 생각 주야(晝夜) 간절하니 사신(使臣)을 보내고자 하노라. 즉시 사신을 정하여 비단 한 배를 실어 조선 왕에게 글월을 보내고, 또 비단 한 배를 실어 본가(本家)에 글월을 보내라.”
각설이라. 일형이 한번 고국으로 돌아와 삼년초토(三年草土)를 극진히 지내고, 길이 요원(遙遠)하기로 다시 가지 못하고 주야(晝夜)로 길동만 생각하였더니, 일일은 시동(侍童)이 고(告)하되,
- “어떠한 사람이 위의(威儀)를 갖추어 글월을 올리나이다.”
하거늘, 일형이 급히 개탁(開坼)하니 하였으되,
- “불초제(不肖弟) 길동은 돈수백배(頓首百拜)하옵고 형주(兄主) 전(前)에 일장(一張) 서(書)를 올리나이다. 헤아려 살피소서. 여러 해 소식이 돈절(頓絶)하오나 울울(鬱鬱)하온 마음 측량(測量)하오리까? 대부인 모시고 기체후일향만안(氣體候一向萬安)하시니까? 복미심차시(伏未審此時) 소제는 외람(猥濫)한 뜻으로 율동국이라 하는 나라를 치옵고 왕위에 있사오나 불승황공(不勝惶恐)하오이다. 주야(晝夜)로 고국 생각이 간절하오나, 나라를 비지 못하여 돌아올 날이 요원(遙遠)하오니 더욱 황공하오나, 형주(兄主)께옵서 불초제(不肖弟)의 죄를 사하옵고, 한 번 오시기를 천만 바라옵나이다. 붓을 잡으매 눈물이 솟아 아무리 할 줄을 모르나이다. 아뢰올 말씀 하해(河海) 태산(泰山) 같사오나 일필난기(一筆難記)로소이다.”
하였더라. 일형 견필(見畢)로 대경(大驚)하여 내당(內堂)에 들어가 부인께 고한대, 부인이 이 말을 듣고 일희일비(一喜一悲)하더라. 일형이 즉일로 비단을 간수하고, 사자(使者)를 데리고 궐내(闕內)에 들어가 채단(綵緞)과 글월을 올린대, 즉시 개탁(開托)하시니 하였으되,
- “불충(不忠) 신(臣) 병조판서(兵曹判書), 망선국왕(望鮮國王) 홍길동은 돈수백배(頓首百拜)하옵고 대왕(大王) 전(前)에 올리나이다. 신(臣)이 한 번 조선을 하직하고 해도(海島)에 들어와 십여 년을 지내다가, 천우신조(天佑神助)하여 외람(猥濫)의 명(命)을 이루어 율도국을 처 멸(滅)하옵고 왕위(王位)에 처(處)하였사오나, 불승황공(不勝惶恐)하나이다. 신 비록 그러하나 하루도 폐하를 잊지 못하옵기로, 국호(國號)를 망선국(望鮮國)이라 하고, 의복(衣服) 문물(文物)을 조선과 같이 하였사오나, 수로(水路) 만리(萬里) 밖에 있사오니, 양국(兩國)이 비록 환란(患亂)이 있어도 생각할 일 없사오니 평생 유한이로소이다.”
하였거늘,상이 견필(見畢)에 대경(大驚)하여 왈,
- “천고(千古)의 사람이니 하늘이 하신 바요, 인력(人力)으로 못할 바라.”
하시고, 즉시 회답하니라.
일형이 수일 후에 부인께 하직하고 사자(使者)를 데리고 일엽소주(一葉小舟)를 타고 여러 날 만에 망선국(望鮮國) 지경(地境)에 다다르니, 먼저 노문(路文)을 보내니, 왕이 이 말을 듣고, 백관을 거느리고 이십 리 밖에 나와 대후(待候)하여 따르는 형의 행차(行次)를 보고 전지도지(顚之倒之)하여 그 형을 붙들고 대성통곡 왈,
- “수로(水路) 만리(萬里)를 편안히 월섭(越涉)하여 계시니까?”
서로 붙들고 옛 말을 이르고, 바로 부친 산소로 들어가 재배(再拜) 통곡하고, 형을 모시고 환궁(還宮)하니 평열황후와 대행왕후와 정씨, 조씨 맞아 나와 반기는지라. 그 정을 비할 데 없더라.
조선국왕이 또 서간(書簡)을 보고 하였으되,
- “조선국왕이 망선국왕(望鮮國王)께 회답하나니, 과인(寡人)이 덕이 없어 그대를 보낸 후에 주야불망(晝夜不忘)하더니, 마침 글월 받아보니 이는 황천(皇天) 그대를 도움이라. 과인의 희(喜)한 마음을 어찌 측량(測量)하리오. 그러하나 길이 요원(遙遠)하고 대해(大海) 가리었으니 서로 만날 기약이 묘연(杳然)하니 어찌 한심치 아니하리오.”
하였더라.
일형이 수월(數月) 머문 후에 부친 산소에 하직 통곡하고, 왕과 제인(諸人)을 하직하고, 비단 배를 실어 보내니, 일형이 여러 날 만에 고국에 돌아와 부인께 문안하고 길동의 신기함을 탄복하더라.
각설이라. 정열왕후 우연 득병(得病)하여 별세하니 왕이 애통하기를 극진이 하고 부친 산소에 분자하고 삼 년을 애통으로 지내더라.
각설. 이 때 길동이 연(年)이 팔십(八十)이라. 태자 명덕(明德)이 있어 백성을 다스리니 일국(一國)이 태평(太平)하더라. 여러 해 지난 후에 왕이 별궁(別宮)에 거처(居處)하더니, 일일은 일장 호접(胡蝶)이 길을 인도(引導)하여 한 곳에 다다르니, 사람이 손을 잡고 위로 왈,
- “그대는 여러 해 인간을 향하매 우리를 모르는도다.”
하고 술을 주거늘, 먹으니 정신이 씩씩하거늘, 이전(以前) 천상(天上)에서 행하던 일이 완연한지라. 그 중에 한 사람이 가로되,
- “그대는 상제(上帝)께 득죄(得罪)하여 인간에 적거(謫居)하였더니 여러 해 됨에 도로 천상(天上)으로 올 줄 어찌 알리오.”
하고 크게 웃거늘, 소리에 깨달으니 남가일몽(南柯一夢)이라. 심신(心身)이 황홀하더니 과연 그 달부터 기운이 불평하여 백약(百藥)이 무효(無效)한지라. 태자를 불러 손을 잡고 가로대,
- “내 명(命)이 진(盡)하게 되었으니 부디부디 너희 형제 화목(和睦)하여 일국(一國)을 안보(安保)하라.”
하시고 승하(昇遐)하시더니, 태자 망극애통(罔極哀痛)하여 초상을 극진이 한 후에 선산(先山)에 안장(安葬)하고, 삼년을 지낸 후에 성덕(聖德)을 행하여 백성을 다스리고, 일국(一國)이 태평(太平)하여 강구연월(康衢煙月)로 격양가(擊壤歌) 전자전손(傳子傳孫)하여 만만(滿滿) 도읍인(都邑人)들을 상대하니, 여운간지명월(如雲間之明月)이요, 주순(朱脣)을 반개(半開)하니 천정세월(天定歲月) 인정수(人定壽)요 춘만건곤(春滿乾坤) 복만가(福滿家)라.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李太白)이 놀던 달아. 이태백이 없어지면 누구와 함께 노자느냐. 반월이야, 네가 무슨 반월이야, 그믐 초생 반월이지 네가 무슨 반월이야.
갑술년(甲戌年) 정월(正月) 이 책 등서(謄書)하노라.정월(正月) 염팔일(念八日) 날 등서(謄書)하노라. 이 책 글씨는 흉괴괴(凶怪怪)하니 만인간(萬人間)의 부인들 보고, 웃고 빗고 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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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래
엮인 글
원문 입력자 주: 차를 올리는 시비 춘섬과 관계를 갖는다는 내용이 빠졌다. (1)
원문 입력자 주: ‘하늘이 만물을 내시매’는 뒤에 나오는 대목인데 잘못 필사한 것이다. (2)
원문 입력자 주: 내용이 빠졌음. (3)
원문 입력자 주: 크게 방문을 써 붙인다는 내용이 빠졌음. (4)
원문 입력자 주: 협력할 사람이 없다는 내용이 빠졌음. (5)
원문 입력자 주: 도감포수에게 총을 쏘라고 하는 내용이 빠졌음. (6)
원문 입력자 주: 길동이 집에 들리는 내용이 빠졌음. (7)
원문 입력자 주: 일조에 세 여자를 취하니 그 정이 비할 데 없다는 내용이 빠졌음. (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