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터에 떠도는 글월을 다음어서 올립니다.

홍길동전이라(박 순호 86장본/현대문)

각설 세종대왕(世宗大王) 즉위(卽位) 십삼 년에 동화문 밖에 한 재상(宰相)이 있으되, 성(姓)은 홍(洪)이요, 이름은 이르지 아니하되, 승상(丞相)의 위인(爲人)이 경천공경(敬天恭敬)하여 사람마다 일컫는지라. 일찍 등과(登科)하여 벼슬이 우의정(右議政)에 이르니 충효겸전(忠孝兼全)하여 일국(一國)의 으뜸이라. 슬하(膝下)에 두 아들을 두었으되, 장자(長子)의 이름은 일형이니 소년등과(少年登科)하여 벼슬이 승지(承旨)에 있고, 차자(次子)의 이름은 길동이니 비첩(婢妾) 춘섬의 소생(所生)이라.

일일은 승상(丞相)이 화원(花園) 난간(欄干)에 의지하여 졸더니,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 한 곳에 다다르니, 청산(靑山)은 중중(重重)하고, 옥수(玉水)는 연연(涓涓)한데, 점점 들어가니 길이 끊어지고 층암절벽(層岩絶壁)은 반공에 솟아있고, 녹수는 골골이 흐르는데 천봉만학(千峯萬壑)에 채운(彩雲)이 어리였는데, 기이한 금수(禽獸)는 객(客)을 보고 반기는 듯하거늘, 시내 반석상(磐石上)에 앉아 사면을 구경하더니, 문득 일성뇌성(一聲雷聲)에 천지(天地) 아득하며 난데없는 청룡(靑龍)이 수염을 서리고 상공(相公)을 향하여 달려들거늘, 상공(相公)이 대경(大驚)하여 몸을 솟구쳐 괴이(怪異)하여 깨달으니 화원(花園) 난간(欄干)이라. 심중에 대열(大悅)하여 즉시 내당(內堂)에 들어가서 부인의 옥수(玉手)를 이끌어 친합(親合)코저 한데, 부인 정색 왈,

언파(言罷)에 소매를 떨치고 밖으로 나가니, 상공이 무료(無聊)하여 분기를 참고 외당(外堂)에 나와 절절 개탄(慨歎)하더니,1 시첩(侍妾) 춘섬이 비록 천비나 천성(天性) 온화하고 행실(行實)이 단정하여 일지심이 있으나, 감히 거절치 못하여 몸을 허(許)하니라. 차후(此後)로는 방문 밖에 나가지 아니하고 뜻을 한결 같이 하더라. 과연 그 달부터 태기(胎氣) 있어 십 삭(十朔)만에 해태(解胎)하니 일개 옥동(玉童)이라. 기골(氣骨)이 준수(俊秀)하고 용모(容貌) 기이하여 범인(凡人)과 다르니, 대감이 극히 기뻐하나 그 천생(賤生)됨을 개탄(慨歎)하고, 이름을 길동이라 하더라.

이 아이 점점 자라나매 영웅(英雄)의 기상(氣象)과 준걸(俊傑)의 골격(骨格)이 날로 성취하여 미간(眉間)에 강산정기(江山精氣)를 띄였으며 흉중(胸中)에 만고흥망(萬古興亡)을 품은 듯하여, 눈으로 보는 것과 귀로 듣는 말은 무불통지(無不通知)하니, 지략(智略)이 손오(孫吳)에게 지나고, 술법(術法)이 강태공(姜太公)과 방불(彷彿)하며, 용력(勇力)은 초패왕(楚覇王)을 비길지라. 일가(一家)의 보는 사람이 뉘 아니 칭찬할 이 없더라.

일일은 상공(相公)이 길동의 손을 잡고 부인의 앞에 앉아 탄식(歎息) 왈,

한대, 부인이 연고(緣故)를 물은대, 상공(相公)이 눈썹을 찡그리고 탄식(歎息) 왈,

몽사(夢事)를 말한데, 부인도 심중(心中)에 애원(哀怨)하나 무가내하(無可奈何)리라.

세월이 여류(如流)하여 길동의 나이 팔세에 이르러 상공(相公)이 각별 사랑하나, 아비를 제 입으로 부르지 못하고 부형을 형이라 못하고 길동의 나이 십세 되도록 부형을 입으로 부르지 못하니, 스스로 제 몸의 천루(賤陋)함을 깨달아 각별 서러워 하더라.

이 때는 춘사월(春四月) 망간(望間)이라. 월명양정(月明夜靜)하고 청풍(淸風)은 소슬한데, 길동이 적막히 앉아 글을 외다가는 책을 물리치고 탄식(歎息) 왈,

언파에 칼을 빼어 월색(月色) 좇아 검무(劍舞)를 희롱하니 자상한 기운을 측량치 못할네라. 이 때 마침 승상이 월하(月下)에 배회(徘徊)하다가 길동의 검무(劍舞)를 보고 시동(侍童)을 명하여 길동을 명하여 부르시니, 길동 즉시 칼을 떨치고 서헌(西軒)에 이르니 상공이 가로되,

길동이 복지(伏地) 대왈,

상공이 웃고 왈,

길동 왈,

말을 마치지 못하며 두 줄 눈물에 양협(兩頰)이 젖는지라. 웅장한 기운과 서러워하는 기상을 보고 측은이 여기시더라. 이윽고 길동이 침소에 돌아와 그 어미를 보고 왈,

그 모친이 이 말을 듣고 정신이 산란하고 심사 둘데없어 왈,

한데, 길동이 왈,

그 모친 왈,

하니, 길동 왈,

원래 곡산모는 곡산(谷山) 기생으로 승상이 작첩(作妾)하여 총애하시니, 스스로 몸이 방자하고 뜻이 만만하여 항상 길동 모자를 시기하는 바는 제 기출(己出)없고, 대감이 용몽(龍夢)으로 길동을 낳으매 각별 사랑하심을 보고 행여 총을 잃을까 염려하여 더욱 시기하여 해할3

하더니, 과연 곡여(谷女) 한 꾀를 생각하고 사람으로 무녀(巫女)를 청하여 의논 왈,

한데, 무녀는 재물을 탐하여 비계(秘計)를 들어 왈,

하니, 곡녀(谷女) 대열(大悅)하여 즉시 사람을 보내어 관상녀를 청하라 하고, 무녀를 은자(銀子) 오십 냥을 주어 보낸 후에 관상녀(觀相女) 즉시 이르거늘, 곡녀 주찬(酒饌)을 내어 대접하고 좋은 말로 은근이 제 소원을 설화(說話)하니, 상녀(相女) 이윽히 생각하다가 재물(財物)을 탐(貪)하여 흔연히 허락하고 가니라.

이튿날 대감이 부인과 길동을 데리고 희롱하더니, 문득 한 여자가 밖에서 들어와 뵈거늘, 살펴보니 의표(儀表) 비범하고 용모는 수(秀)한지라. 곡녀 문왈(問曰),

상녀(相女) 대왈(對曰),

상공이 웃고 왈,

하신데, 상녀 심중(心中)에 대열(大悅) 염슬단좌(斂膝端坐)하고 대감의 상을 보아 전후사를 의논하되 전에 보던 사연과 합부절(合符節)하니, 대감과 부인이 칭찬하시고 길동을 불러 앉히고,

하신데, 이윽히 보다가 왈,

상공이 대왈(對曰),

하신데, 상녀 다시 거짓 놀라는 체 하고 말이 없거늘, 상공과 부인 괴(怪)이 여겨,

상녀 주저(躊躇)하다가 여쭈오데,

부인 왈,

하신데, 상녀 그제야 조용히 고왈(告曰),

대감이 듣고 무인방약(無人傍若)으로 가로되,

하신데, 상녀 써 가로되,

하니, 상공이 탄식하고 은자 오십 냥을 주며 이 말을 누설치 말라 하시고 당부하여 보내니, 상녀 고두사례(叩頭謝禮)하고 돌아가더라.

상공이 차후는 길동이를 더욱 염려하며 일가(一家)도 다 천대(賤待)가 자심(滋甚)하니, 길동이 날로 설워하며 후원 심당(深堂)에 자취를 감추고 손오(孫吳)의 병서와 제갈무후(諸葛武侯)의 도략(圖略)이며, 천문지리(天文地理)를 달통하는지라. 상공이 길동이를 살피며 왈,

하고, 제족(諸族)을 모와 의논하여, ‘길동을 없애리라’하고, 생각 깊이 하더니, 이 때에 길동 설움을 이기지 못하여, ‘몸을 조금 피하리라’하고, 남 모르게 나가 수십 리를 행하다가 날이 저물거늘, 작점(作店)하여 들어가 자더니, 상고(商賈), 행인(行人) 십여 명이 앉았거늘, 길동이 한편에 앉았으니 벌써 석반(夕飯)을 들어 먹거늘, 한 사람이 저반(箸飯)을 내어주거늘, 길동이 먹고 앉았으니 이윽하여 상고(商賈) 들어와,

하니, 모든 행인이 배를 사자하며 값을 물으니, 그 장사 답왈(答曰),

하니, 만좌(滿座) 중인(衆人) 각기 다 사 먹으며 한 점씩 주거늘, 길동이 받아 먹으니 배 맛이 기이한지라. 모든 사람들이 또 사 먹자 한즉 그 장사 대답지 아니하고 가거늘, 방중(房中) 행인(行人)들이 서로 이르되,

하거늘, 길동이,

하니, 만좌(滿座) 중인(衆人)이 가로되,

하니, 길동이 왈,

하니, 여러 행인 이 말을 들으니 가장 유리한지라. 행인들이 달려들어 청하거늘, 행인 왈,

하거늘, 길동 왈,

하고,

모든 사람들이 그 지모를 칭찬하고 그 말과 같이 하였더니, 과연 그 밤 삼경에 적당(賊黨)이 달려 들어와 왈,

하고, 자리를 걷으며 살피여 ‘있다’하고 장판을 걷고 왈,

하며,

하며 묻거늘, 한 사람이 답왈(答曰),

하니, 도적이 칭찬 왈,

하고, 기물을 도로 주고 가거늘, 그 밤을 지내고 이튿날 십여 명 상고(商賈) 기물을 반분(半分)하여 주거늘, 길동 왈,

하고, 상고(商賈)를 이별하고 집으로 돌아오니라.

이즈음 곡녀(谷女) 초난이 대감의 근심하는 뜻을 알고 더욱 마음이 방자하여, 가만이 특재라 하는 자객(刺客)을 청하여 은자를 후(厚)이 주고 길동이를 해(害)코자 할새, 일일은 대감께 고한데,

상공이 눈썹을 찡그리고 가로되,

하시니, 초난이 황공하여 물러가니라. 대감이 이로 말미암아 비병지병(非病之病)이 되어 부자지정(父子之情)이 점점 석나크나 참아 죽이지 못하여 엄금(嚴禁)하니, 길동 초난의 참소(讒訴)를 짐작하고 염려하여, 밤이면 잠을 자지 아니하고 서책(書冊)을 대하여 주역(周易)을 드려 송(誦)하며, 육십사괘(六十四卦)를 응하며, 조화와 팔문둔갑(八門遁甲)을 베풀어 천문지리(天文地理)를 통달하며 주야(晝夜) 연습하더니, 대감이 또한 이 기미를 살피시고 관상녀 말을 생각하니 실로 염려 적지 아니한지라. 이로써 병세 위중(危重)하시니 부인과 일가 다 황공하더라.

부인 왈,

하신데, 초난이 다시 여쭈오되,

한대, 부인이 이윽히 생각하다가 마지 못하여 왈,

하신데, 초난이 대열(大悅)하여 여쭈오되,

부인이 눈물을 흘리시고 왈,

하니, 초난이 기뻐하여 즉시 침방(寢房)으로 돌아와 특재를 불러 왈,

하고, 술을 권하며 전후사(前後事)를 말한 후에

하고 은자 오십 냥을 주니, 특재 대열(大悅)하여 은자를 감사하고 왈,

하고, 돌아와 밤을 기다려 들어가기를 꾀하더라.

이 때 초난 그 연유(緣由)를 부인께 고하니 부인이 탄식 왈,

하시고 개탄(慨歎)하니, 장자 일형이 어쭈오되,

한데, 부인이 밤이 맟도록 번뇌(煩惱)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더라.

이때 길동이 등촉(燈燭)을 밝히고 주역(周易)을 잠심(潛心)하더니, 밤이 이미 삼경이라. 서안(書案)을 물리치고 정히 취침코자 하더니, 문득 침방(寢房) 창 밖에서 난데없는 까마귀 세 번 울고 북으로 날아가거늘, 고히 여겨 생각하되, ‘이 깊은 삼경에 짐승이 남으로 날아와 북으로 울고 가니 무슨 일이 있어 알고 함이라.’ 즉시 주역(周易)을 내어 글자로 해혹(解惑)하니,

하고, ‘어떠한 흉인(凶人)이 있어 나를 해(害)하고자 하는고.’ 즉시 작괘(作卦)하니 선흉후길(先凶後吉) 대상(大祥)이라. ‘아무러커나 방어하여 비계(秘計)를 준비하리라’하고, 방중(房中)에 팔문둔갑(八門遁甲)을 펴 동서남북으로 각각 방위(方位)를 응(應)하고, 육정육갑(六丁六甲)을 그 가운데 두어 풍운조화(風雲造化)를 부리게 하고, 염슬단좌(斂膝端坐)하여 조용히 때를 기다리더니.

이때 특재 비수(匕首)를 들고 후원장(後園墻) 넘어들어 길동이 사처(私處)하는 초당(草堂)에 이르니, 화촉(華燭)이 명랑하고 인적(人跡)이 고요하거늘, 특재 심중(心中)에 의혹하여 헤오데, ‘길동이 범인(凡人)이 아니라 하더니 이제 짐승이 무슨 앎이 있어 천기(天氣)를 누설한단 말인가, 만일 길동이 지음(知音)하면 대사(大事) 그릇되리라.’하며, ‘그러나 아직 황구유아(黃口幼兒)라. 무슨 지식이 있으리오.’ 몸을 날려 방중(房中)을 열어보니, 길동이 서안을 비겨 팔문둔갑(八門遁甲)을 희롱하거늘, 자세히 보니 진언(眞言)을 법송(法誦)하며 방중에 살기(殺氣) 가득하여 정신이 산란한지라. 특재 고히 여겨 칼을 굳이 안고 탄식 왈,

하고, 찾아 가다가 도로 가고자 하더니 다시 생각하니, ‘장부 어찌 조그만한 아이를 겁하리오’하고, 다시 비수(匕首)를 잡고 언연(偃然)히 문을 열고 들어가니, 길동이 벌써 간데없고, 음풍(陰風)이 심하며 살기(殺氣) 충천하고, 뇌성벽력(雷聲霹靂)이 천지에 진동하거늘, 마음이 두려워 도로 나오고자 하더니 홀연 방중이 변하여 한 뜰이 되어 무수한 돌무덤이 중중(重重) 쌓여 있고, 천봉만학(千峯萬壑)같이 높은 봉이 첩첩(疊疊)이 둘렀는데, 폭포수는 천지 양양(洋洋)한데, 월색(月色)은 삼경에 걸려 있고 백로(白鷺)는 승지(勝地)에 깃들었는지라. 사면을 살펴본데 갈 길이 아득한지라. 특재 하늘을 우러러 탄식(歎息) 왈,

하고, 비수를 품고 시냇물에 다다라 한 곳에 다다르니, 운산(雲山)은 첩첩(疊疊)하고 대해(大海)가 망망(茫茫)한데, 두견성(杜鵑聲)의 슬피 우는 소리와 초객의 난데없는 성분(成墳)이거늘, 할일없어 층암절벽(層岩絶壁)에 빗겨 앉아 두루 살펴보니, 문득 동편에서 젓대 소리 들이거늘, 고이하여 눈을 들어 보니 일원(一員) 옥동(玉童)이라. 청포옥대(靑袍玉帶)에 채여(彩輿)를 타고 옥저(玉笛)를 불며 언연(偃然)히 오거늘, 특재 몸을 일으키고자 하더니 그 선동(仙童)이 옥저를 그치고 특재를 향하여 꾸짖어 왈,

특재 황망(慌忙)히 살펴보니 이는 곳 길동이라. 죽기로써 고성(高聲) 대왈(對曰),

언파(言罷)에 칼춤 추며 달려 들어오니, 길동이 대로(大怒)하여 몸을 날려 풍백(風伯)을 호령하니, 일변 흑운(黑雲)이 사방으로 자욱하여 풍운(風雲)이 대작(大作)하여 지척을 분별치 못하니, 특재 정신을 잃고 층암(層岩)을 의지하여 살펴보니 길동은 간데없고 살기(殺氣)만 섭섭한지라. 심중(心中)에 재주를 탄복하고 도망코자 하나 갈 바를 몰라 크게 울며 왈,

하고, 자탄(自歎)을 하더니, 문득 길동이 공중에서 내려와 다시 꾸짖어 왈,

특재 할일없어 애걸(哀乞) 왈,

하고 무수이 애걸한데, 길동이 분(忿)을 이기지 못하여 특재 칼을 앗아 들고 고성대질(高聲大叱) 왈,

하고 칼을 던지니, 검광(劍光)이 번득하며 특재의 머리 내려지는지라. 오히려 분기(憤氣)를 이기지 못하여 바로 관상녀 집에 가 둔갑(遁甲)을 부려 풍백(風伯)을 호령하니, 풍우대작(風雨大作)하며 뇌성벽력(雷聲霹靂)이 천지진동(天地振動)하는지라. 관상녀를 풍우(風雨)에 몰아 특재 죽은 방으로 들어 앉히고 크게 꾸짖어 왈,

이 때 관상녀 처음은 혼불부신(魂不附身)하여 아무런 줄을 모르고 풍우(風雨)에 싸이여 혼혼(昏昏)하여 생각하되, 생사간(生死間) 분별이 없이 길동이 꾸짖는 소리 들이거늘, 정녕 인간인 줄을 알고 할일없어 빌어 왈,

길동이 분연(憤然) 왈,

하고 칼을 날려 치니, 혼백(魂魄)이 어찌 슬프지 아니하리오.

각설. 이 때 길동이 분기(憤氣)를 이기지 못하여 바로 내당(內堂)에 들어가 초난이를 죽이고자 하다가 돌이켜 생각하되, ‘오륜을 생각함이라도 한 사람을 죽였으니 그 죄 적지 아니한지라. 내 도망하여 세사(世事)를 버리고 산림(山林)에 깃들여 세월을 보냄이 옳도다.’하고, 졸연(卒然)히 초당(草堂)을 떠나 바로 대감의 침소(寢所)로 들어가 계하(階下)에 꿇어 앉아 울거늘, 대감이 고히 여겨 문왈(問曰),

길동이 체읍(涕泣) 고왈(告曰),

한데, 대감이 생각한데 가내(家內)에 무슨 변이 있어 이런 일들이 있으니 길동이 범인(凡人)이 아니라 만류(挽留)하여도 듣지 아니할 줄 알고 왈,

길동 왈,

하며 대성통곡하니, 대감이 재삼 위로 왈,

길동이 다시 고왈(告曰),

대감이 희연(喜然) 대왈(對曰),

하시고 적자(嫡子)같이 사랑하시되, 길동이 두 번 절하고 왈,

하고, 어미 침소(寢所)로 들어가 고왈(告曰),

모친이 이 말을 듣고 길동을 붙들고 통곡하며 왈,

길동 왈,

하고 두 번 절하고 문에 나서니, 월색(月色)은 서산에 걸려있고 새벽닭은 처처(悽悽)히 우는데 갈 길이 망연(茫然)한지라. 하염없이 슬픔을 머금고 정처없이 가는지라.

이때 초난이 자객(刺客)을 보내고 날 새도록 동정(動靜) 없으니, 고히 여겨 사람을 보내어 살펴보니, 길동이는 간데없고 목 없는 신체(身體)만 방중(房中)에 꺼꾸러졌사오니 또 한 계집의 죽엄이 있거늘, 돌아와 고하니, 초난이 대겁(大怯)하여 즉시 내당(內堂)에 들어가 부인께 고(告)한데, 부인이 혼불부신(魂不附身)하여 장자 일형을 불러 길동을 찾으니 종적(踪迹)이 없는지라. 즉시 대감께 고한데, 상공이 대경(大驚) 왈,

한데, 부인 왈,

대감이 왈,

하다가, 가중(家中)을 엄히 분부하여 말을 내지 못하게 하더라.

길동이 한 번 문 밖에 나오매 일신이 표박(漂泊)하여 대해(大海) 부평(浮萍)같이 다니다가, 한 곳에 다다르니 천봉만학(千峯萬壑)이 사위(四圍)가 수려하고, 화초(花草)는 이연(怡然)하여 객을 보고 반기는 듯하거늘, 점점 들어가니 층암절벽(層岩絶壁)에 낙락장송(落落長松)은 절개를 지키었고, 산화(山花)는 잔잔하여 가는 나비를 영접(迎接)하고, 석양(夕陽)은 월령(越嶺)하고 숙조(宿鳥)는 투림(投林)할 제, 수풀은 의멸한데 진퇴유곡(進退維谷)이라. 갈 길을 몰라 주저하더니, 문득 바라보니 난데없는 표자(瓢子) 냇물을 좇아오거늘, ‘이 곳에 왠 절이 있는가’하여 시내를 따라 점점 들어가니, 평원광야(平原廣野)에 일망무제(一望無際)라. 그 가운데 인가(人家)가 즐비(櫛比)한 중에 큰 와가(瓦家) 있으되 궁궐같이 화려하거늘, 바로 행하여 가니 주란화각(朱欄畵閣)이 공중에 솟아 있고 층층화계(層層花階)에 백화(百花)는 만발하여 별건곤(別乾坤)이더라. 문에 들어가니 마침 대연(大宴)을 배설(排設)하거늘, 길동이 바로 층계(層階)에 올라가니 본래 그 동중(洞中)은 도적의 굴혈(窟穴)이라. 잔치를 배설(排設)하여 장수를 정하려 하고 의논이 분분(紛紛)하거늘, 길동이 생각하되, ‘내 몸이 뜬 구름같이 의탁(依託)할 곳이 없더니, 하늘이 도운가 우연히 이 곳에 왔더니, 장차 영웅(英雄)의 기운을 펴리라.’하고, 의연(毅然)히 걸어 들어가 좌중에 참예(參預)하여 가로되,

여러 사람이 분운(紛紜)이 공론하다가 난데없는 아이 당돌히 들어와 무례하거늘, 군졸에게 분부하여 끌어내치며 왈,

한데, 군졸이 일시에 달려들어 재촉하여 내치니, 길동이 밀리어 동구(洞口)에서 나와 분함을 참고 나무를 꺽어 글 지어 그 나무에 세웠으니, 그 글에 하였으되,

하였더라. 군졸이 그 글을 써,

하거늘, 모두 그 글을 보고 의논 왈,

하고, 군사로 하여 길동을 청하여 당상(堂上)에 올리고 술을 권하며 왈,

하며 왈,

한데, 길동이 답왈(答曰),

하고, 즉시 나가 청부석을 들어 팔 위에 얹고 수십 보를 행하다가 도로 놓되 조금도 신고(辛苦)하는 바 없거늘, 중인(衆人)이 일시에 하례(賀禮) 배사(拜謝) 왈,

하고, 인하여 다시 잔치를 배설(排設)하고 장수를 삼아 상좌에 앉히고 차례로 배알(拜謁)하거늘, 길동이 군사를 명하여 백마(白馬)를 잡아 피로써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각각 마시고 맹세하여 왈,

한데, 중인(衆人)이 일시에 고두(叩頭) 각읍(各揖)하거늘, 길동이 대열(大悅)하여 왈,

하고, 칼 쓰기와 돌 던지기며, 말 타기와 택견하기며, 여러 가지 재주를 낱낱이 연습하니 수월지내(數月之內)에 익숙하여 항오(行伍) 정제(整齊)한지라.

길동이 하루는 분부 왈,

중인(衆人)이 일시에 청령(聽令)하고 그 영(令) 내리기를 기다리거늘, 길동이 노새를 타고 종자(從者) 수십 인을 데리고 나서며 왈,

하고, 청포옥대(靑袍玉帶)로 노새를 재촉하여 은연(隱然)히 나서니 완연(完然)한 재상가 자제라. 바로 동구에 들어가면서 절에 노문(路文) 보내되,

하였거늘, 그 절 중들이 황황(遑遑)하여 모실 채비를 극진히 차리더라. 행차 동구에 당하니 제승(諸僧)이 일시에 나와 맞아 사중(寺中)에 들어가 합장사례(合掌謝禮) 왈,

길동이 흔연(欣然) 답왈(答曰),

하며,

하신데, 제승(諸僧)이 고두청영(叩頭聽令)하고 차담(茶啖)을 성비(盛備)하여 올리거늘, 길동이 흔연(欣然)히 받아 먹고 법당(法堂)에 들어가 두루 살핀 후에 노승(老僧)을 불러 왈,

한데, 제승(諸僧) 등(等) 합장배례(合掌拜禮)하더라. 길동이 장중에 돌아와 백미 십 석을 수레에 실어 보내며 관인(官人)의 복색(服色)을 안동하여 합천 관사에서 보낸다 하니, 제승(諸僧)이 반겨 백미를 거두어 고중(庫中)에 넣고 기약한 날 밥과 술을 성비(盛備)하고 공자 오기를 기다리더니, 길동이 적당(賊黨)을 모아 분부 왈,

하고, 그 중에 건장한 군사를 육칠 인을 데리고 노새를 재촉하여 절로 들어가니, 제승(諸僧)이 동구에 나와 대후(待候)하였다가 영접하여 사중(寺中)에 들어가니, 길동이 제승을 불러 왈,

제승(諸僧)이 대왈(對曰),

길동이 왈,

하니, 제승(諸僧)이 어찌 도적의 흉계를 알리오. 행여 낙루(落漏)하면 죄될까 하여 각방 제승이 노소(老少) 없이 벽계에 이르러 장막을 배설하고 좌(座)를 정할새, 길동이 상좌(上座)하고 지차(之次)는 차례로 좌를 정한 후에 술을 나누어 제승을 권하며 왈,

하니, 제승이 치하하며 취토록 먹은 후에 밥을 차례로 올리거늘, 길동이 흔연히 소매를 걷고 밥을 먹다가 모래를 입에 넣고 밥을 씹으니 모래 깨지는 소리 나거늘, 제승(諸僧)이 놀라 황공하거늘, 길동이 눈을 부릅뜨고 크게 꾸짖어 왈,

언파(言罷)에 하인을 불러,

하고,

한데, 하인이 영(令)을 듣고 모든 중을 차례로 결박하는지라.

이 때 모든 도적이 밖에서 매복(埋伏)하였다가 일시에 들어와 사고(寺庫)의 문을 열고 제 것 가져가듯 하는지라. 제승(諸僧)이 그 기미(機微)를 알았으나 사지(四肢)를 동였으니 다만 소리 뿐일네라.

이 때 그 절 목공이 놈이 절을 지키더니 불의(不意)에 도적이 들어와 사중(寺中)을 수탈(收奪)함을 보고, 후원 담을 넘어 바로 합천 관가에 들어가 이유를 고하니, 관원이 대경(大驚)하여 즉시 관차(官差)를 배설하여 도적을 잡으려 하고, 장교 수십 군을 거느리고 망망히 찾아오며 뒤를 데리고 오더라.

이 때 도적이 수탐한 재물(財物)을 수람(收攬)하여 정이 가고자 하더니 멀리 바라보니 티끌이 하늘에 닿고 징,북 소리는 산천(山川)이 진동(震動)하거늘, 도적이 황황(遑遑)하여 갈 바를 몰라 독에 든 쥐 같더라. 길동이 대소(大笑) 왈,

하고, 제적(諸賊)으로 하여금 무수한 재물을 우마(牛馬)에 싣고 남편(南便) 대로(大路)로 가라 하고, ‘군사를 지휘(指揮)하여 북편(北便) 소로(小路)로 가게 하리라’하고, 길동이 법당(法堂)으로 들어가 몸에 장삼을 입고 머리에 고깔을 쓰고 동구에 나가 높은 대(臺)에 올라 관인(官人) 오는 양을 보고 높이 외여 왈,

하며, 장삼 소매를 들어 북로(北路)를 가리키니, 관차(官差)가 남로(南路)로 오다가 바로 북로(北路)로 가거늘, 그제야 제적(諸賊)이 우마(牛馬)를 몰아 남편(南便) 대로(大路)로 행하니라. 길동이 인하여 은신(隱身)하는 법을 행하여 돌아오니 제적(諸賊)이 또한 재물을 싣고 오거늘, 대연(大宴)을 배설하여 즐긴 후에, 길동이 재물을 조수(照數)하여 모든 도적에게 고르게 나눠 주니 모두 즐기며 칭찬하더라.

그 날부터 길동이 당호(黨號)를 ‘활빈당’이라 하며, 팔도(八道) 왕래하며 무도한 자 있으면 재물을 취하여 지빈무의(至貧無依)한 사람을 구제(救濟)하며 성명을 통치 아니하더라.

이 때 그 합천 관졸(官卒)이 북로(北路)로 수백 리를 가되 종적(踪迹)이 없는지라. 그 연유(緣由)를 관가에 고하니 관원이 대경(大驚)하여 연유를 감영(監營)에 보(報)하여 나라에 장문(狀聞)하였더니, 상이 근심하다가 팔도(八道)에 행관(行關)하여 도적을 잡으라 하였도다.

이 때에 길동이 제적(諸賊)과 의논 왈,

하고, 수월(數月)이 지낸 후에 또 가로되,

제적(諸賊)이 청령(聽令)하고 물러가니라.

이 때 기약한 대로 그 날이 당하매, 함경 영문(營門) 밖의 덕현능(德顯陵)에 이르러 군사 수십 명을 시켜 시초(柴草)를 수운(輸運)하여 능소(陵所)에 쌓고 사경에 불을 지른데,

하고 불을 지르니, 화광(火光)이 충천(衝天)하는지라. 능참봉(陵參奉)이 망지소조(罔知所措)하였거늘, 길동이 급히 성중(城中)에 들어가 관문을 두드리며 외여 왈,

하거늘, 감사 정신을 차리지 못하여 급히 바라보니 화광(火光)이 충천(衝天)하는지라. 일변 군사를 지휘(指揮)하여 능소로 나아가니 성중(城中)이 요란한지라. 남녀노소 없이 능소(陵所)로 가고 창고 지키는 군사를 하나도 없이 하는지라. 길동이 제적(諸賊)으로 더불어 고문(庫門)을 열고 곡식과 군기를 탈취(奪取)하여 북문(北門)으로 달아나며 왈,

하고, 북문에 큰4

하고, 축지법을 행하여 동중(洞中)에 돌아가니 동방(東方)이 이미 열렸더라.

이적에 함경 감사 불을 구하고 돌아오니 창고 지키는 군사 고하되,

하거늘, 감사 대경(大驚)하여 사면으로 발포(發捕)하되 종적을 모르더니, 문득 북문(北門) 지키는 수문장(守門將)이 급히 고왈(告曰),

감사 대경 왈,

가로되,

하거늘, 각 읍에 행관(行關)하여 도적을 발포(發捕)하라 하니 연유(緣由)를 탑전(榻前)에 장계(狀啓)한데, 상이 친견(親見)하시고 진노(震怒)하사 팔도에 하교하되,

하고, 또 사대문(四大門)에 괘방(掛榜)하니 장안 백성이며 나라 안 인민이 다 소동(騷動)하더라.

각설이라. 이 때 길동이 초인(草人) 일곱을 만들어 각각 혼백(魂魄)을 붙이고 진언(眞言)을 염송(念誦)하니, 일곱 인(人)이 일시에 일어서며 팔을 뽐내며 소리를 지르며 팔 개 길동이 한테 앉으니, 어느 것이 참 길동인지 거짓 길동인지 몰라 의혹(疑惑)이 무궁(無窮)하더라. 이 때 여덟 왈,

하고, 길동이 팔도 감사와 각읍 수령의 성명과 동서남북에 글을 기록하여 제적(諸賊)을 주어 보내니, 제적이 불승의혹(不勝疑惑)하여 자연이나 저와 함께 가는 것이 참 길동인지 몰라 의혹(疑惑)이 만단(萬端)하더라. 각각 하나씩 분자(分子)하여 보내고, 경상도 내(內)에 있어 각 도 각 읍의 봉물(封物)하는 재물과 각부(各部) 뇌물(賂物)하는 재물을 낱낱이 탈취(奪取)하니, 백성이 밤에 잠을 자지 못하고 창곡(倉穀)과 군기(軍器)를 수직(守直)하는지라. 길동이 능히 풍운(風雲)을 부리며 변화무궁(變化無窮)한지라. 백주(白晝)에 풍우대작(風雨大作)하여 사람의 눈을 뜨지 못하게 하고, 창고를 열어 곡식을 가져가며 재물을 취하되 종적이 없이 달아나니, 그로 말미암아 각 도 각 읍이 요란한지라.

이때 팔도 감사 일시에 장문(狀聞)을 올렸으되,

하였고, 그 안의 연월자(年月字) 동월(同月) 동일(同日)한데, 상이 남필(覽筆)에 대경 왈,

한데, 계하(階下)에 한 신하 출반주(出班奏) 왈,

하거늘, 상이 대희(大喜)하여 보니 이는 포도대장(捕盜大將) 이엽이라. 날랜 군사 이백을 주어 여유를 일 년 말미를 주신데, 이엽이 계하(階下)에 하직하고 성(城) 밖에 나와 각각 흩어 보내고 이르데,

은밀히 근포(跟捕)하고, 이엽이 홀로 나와 김포 육십 리에 이르러 날이 저물거늘, 주점(酒店)을 찾아 자고자 하더니, 어떠한 소년이 나귀를 타고 종자(從者) 수인(數人)을 데리고 주점(酒店)에 오거늘, 이엽이 서로 예(禮)하고 좌정(座定)한데, 그 소년이 문득 한숨 짓고 탄식(歎息) 왈,

하거늘, 이엽이 문왈(問曰),

그 소년이 대왈(對曰),

그 소년 왈,

한데, 이엽이 왈,

한데, 소년이 나가거날, 이엽이 또한 눈치를 좇아 한 곳에 다다르니, 그 소년 천만장(千萬丈)이나 한 뫼에 올라 앉으며 이엽더러 이로되,

하면서 천만장(千萬丈)이나 한 뫼 강산 끝에 올라 앉거늘, 이엽이 평생 힘을 다하여 두 발로 힘써 차니 소년이 돌아 앉으면서,

하고, 즉시 축지법을 행하여 산곡(山谷)으로 들어가며 소년 왈,

하고, 혼자 산곡(山谷)으로 들어가거늘, 이엽이 홀로 앉아 기다리더니 일락함지(日落咸池)하고 월출동령(月出東嶺)이라. 이윽한 산중으로 훤화성(喧譁聲)이 나거늘, 자세히 보니 무수한 군졸이 황건(黃巾)을 쓰고 오거늘, 보니 상모(相貌) 영악(獰惡)한지라. 이엽이 피(避)코자 하더니 군사 좌우로 달려들어 이엽을 결박(結縛)하여 꾸짖어 왈,

하고, 언파(言罷)에 철바(鐵絲)로 목을 걸어 소같이 하여 들어가니 이엽이 혼불부신(魂不附身)하여 아무런 줄을 모르더니, 수십 리를 들어가니 성문(城門)이 열렸거늘, 눈을 들어 보니 이는 별세계(別世界)이라. 기이한 군졸 모여 연(連)하고, 무수한 군졸이 황건(黃巾)을 쓰고, 철퇴(鐵槌)를 들며, 방울을 흔들며, 훤화(喧譁)하는 소리 요란한지라. 이엽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몰라 엎드렸더니, 문득 천상(天上)에서 한 소년이 소리하며 무수한 군졸이 내달아 이엽을 잡아내어 계하(階下)에 꿇리거늘, 이엽이 아무런 줄을 모르더라. 송사하더니 전상(殿上)의 황사(黃絲) 금포옥대(金袍玉帶)한 소년이 앉아 소리 질러 왈,

하고, 군졸을 명(命)하여,

하니, 수십 명의 군졸이 일시에 고하거늘, 이엽이 난간(欄干)을 의지(依支)하여 기둥을 굳이 잡고 빌어 왈,

언파(言罷)에 대성통곡(大聲痛哭)하거늘, 좌우 대소(大笑) 고왈(告曰),

언파(言罷)에 좌우를 명(命)하여 동인 것을 끄르고 올려 앉히고 술을 부어 왈,

하고, 또 사람을 잡아 계하(階下)에 꿇리고 꾸짖어 왈,

하고 왈,

하고, 일시에 해방(解放)하여 술을 먹이며 위로 하거늘, 이엽이 그제야 정신을 차려보니 가죽 푸대에 싸여 나무 끝에 걸렸거늘, 간신히 푸대를 끄르고 보니, 끝에 어떠한 푸대가 달렸거늘, 급히 가 끌러 보니 어제 떠날 제 데리고 온 하인이라. 서로 이르되,

하며 두루 살펴보니, 이 곳은 장안 북악산이라. 이엽이 왈,

삼인이 대왈(對曰),

하고, 서로 길동의 신기한 말을 탄복하더라.

이엽이 군사를 거두어 돌아가 이 연유(緣由)를 탑전(榻前)에 주달(奏達)하니, 상이 대경(大驚)하사 더욱 각 도 각 읍에 행관(行關)하여 길동을 잡으라 한데, 길동이 변태(變態) 무궁(無窮)하여 장안으로 초헌(軺軒) 타고 다니며 각 읍의 노문(路文) 놓고도 타고 다니되, 알아 잡을 자 없는지라. 각 도 각 읍 수령이 역모(逆謀)하여 민간에 작폐(作弊) 주는 폐(弊) 있으면, 길동이 어사(御使)되어 그 관원을 봉고파직(封庫罷職)하고 그 연유(緣由)를 탑전(榻前)에 주달(奏達)하여 왈,

하고, 작폐(作弊) 무수(無數)하니라.

계유년(癸酉年) 팔월(八月)에 각 도 안찰어사(按察御使) 내려와 각 읍 출척(黜陟)이 무수하니 조야(朝野) 인민이 소동(騷動)하더라. 일일은 팔도 어사(御使) 일시에 장문(狀聞)을 올리되,

하였거늘, 상이 장문(狀聞)을 보시고 대경(大驚)하여 만조백관을 모와 의논 왈,

하신데, 한 신하 출반주(出班奏) 왈,

한데, 상이 옳히 여겨 즉시 홍승상을 금부(禁府)에 나수(拿囚)하고 일형을 패초(牌招)하여 가로사대,

하시되, 일형이 고두(叩頭) 왈,

상이 그 효성(孝誠)을 생각하여 홍승상을 도로 우의정(右議政)을 복직(復職)하시고, 일형으로 경상감사(慶尙監司)를 제수(除授)하시고 분부하시되,

하시니, 일형이 즉시 하직(下直) 숙배(肅拜)하고 발행(發行)하여 감영(監營)에 도임(到任)하여 방곡(坊曲)에 괘방(掛榜)하니, 그 글에 하였으되,

하고, 방문(榜文)을 각 읍에 행관(行關)하고, 심신(心身)이 산란(散亂)하여 공사(公事)를 폐(廢)하고 신음하더니, 이 날은 하인이 고하되,

하거늘, 감사 고이 여겨 들라 하시니 그 소년 바로 나귀를 타고 들어와 계하(階下)에 배례(拜禮)하거늘, 감사 고이 여겨 보니 곧 길동이라. 대경(大驚)하여 좌우를 물리치고, 길동의 손을 잡고 탄식 왈,

하고, 언파(言罷)에 눈물이 비 오듯 하거늘, 길동이 고개를 숙이고 왈,

감사 이튿날 장문(狀聞)을 먼저 띄우고, 길동을 항쇄족쇄(項鎖足鎖)하여 함거(轞車)에 싣고, 날랜 장교 수십여 명으로 하여금 보내며 슬피 통곡(痛哭)하여 이별하니라.

이 때 각 읍 백성이 길동이 잡아간단 말을 듣고 거리거리마다 서서 굿 보는지라. 길이 막히어 왕래(往來)하기 어렵더라. 이 때 팔도 감사 문안(文案)을 올리거늘, 즉시 개탁(開坼)하시니 홍길동을 잡아 올릴 장문(狀聞)이라 하였거늘, 대경(大驚) 왈,

하시니, 만조백관(滿朝百官)이며 장안(長安) 인민(人民)이 다 물 끓듯 하며 어느 것이 참 길동인지 거짓 길동인지 몰라 길동이 오기를 기다리더라. 수일 만에 팔도에서 길동을 항쇄족쇄(項鎖足鎖)하여 올리거늘, 일변 금부(禁府)에 나수(拿囚)하고 탑전(榻前)에 주달(奏達)하니, 상이 친히 승정원(承政院)에 좌기(坐起)하시고 만조백관(滿朝百官)을 모아 친국(親鞫)할새, 금부(禁府) 나졸이 여덟 길동이를 결박(結縛)하여 잡아드리니, 여덟 길동이 서로 팔을 뽐내며 소리를 높이 하여 달아나며 가로대,

하며, 서로 잡고 구르며 싸우니 진위(眞僞)를 알지 못하고 도리어 일대장관(一大壯觀)이더라. 상이 홍승상을 불러 왈,

하시니, 승상,

팔 개 길동을 향하여 꾸짖어 왈,

하고, 좌고(左股)를 상고(詳考)하니 팔 개 길동이 붉은 점이 다 있는지라. 불승의혹(不勝疑惑)하여 기절하거늘, 좌우(左右) 막불경악(莫不驚愕)이라. 상이 놀래시어 대신(待臣)을 명(命)하여 구하되 생도(生道) 없는지라. 여덟 길동이 대성통곡(大聲痛哭)하며 붙들고 낭중(囊中)에서 환약(丸藥) 두 개씩 내어 급히 입에 넣으니, 이윽하여 인사(人事)를 차리거늘, 여덟 길동이 울며 주(奏)왈,

말을 마치매 여덟 길동이 꺼꾸러져 죽으니, 좌우(左右) 시신(侍臣)과 보는 사람이 경혹(驚惑) 아니하는 이 없더라. 죽은 것을 보니 다 허인(虛人)이라. 길동은 간데없거늘 상이 대로(大怒)하사,

한데, 이 날 길동이 사대문(四大門)에 괘방(掛榜)하되,

하였거늘, 상이 만조백관(滿朝白官)을 모아 의논 왈,

하신데, 제신(諸臣)이 주(奏)왈,

하고, 길동 잡기를 더욱 힘쓰더라.

각설이라. 길동 이후로부터 더욱 장난하며 장안(長安)으로 별연(別輦)도 타고 초헌(軺軒)도 타고 다니되, 뉘 능히 알아 잡으리오. 일국(一國)이 소동(騷動)하여 조야(朝野) 백성이며 각 읍 수령이 밤에 잠을 자지 못하여 창곡(倉穀)을 지키고, 백주(白晝)에 풍운(風雲)을 부려 사람의 눈을 뜨지 못하게 하고 도적하여 가니, 날마다 각 도 각 읍의 장문(狀聞)이 연속하더라.

이 때 경상감사 이로써 근심되어 침식(寢食)이 불안하여 시름하더니, 일일은 감영(監營) 선화당(宣化堂)으로서 일원(一員) 소년이 공중으로 내려와 절하고 앉거늘, 감사 자세히 보니 이는 곧 길동이라. 손을 잡고 울며 왈,

길동이 부복(俯伏) 대왈(對曰),

감사(監司) 더욱 의혹하여 좌고(左股)를 상고(詳考)하니 과연 붉은 점 여럿 있는지라. 의심을 덜고 명일(明日)에 쇠사슬로 무수히 얽으니 비록 나는 제비라도 용납치 못할네라. 장교 수십에게 분부하되,

하고, 압령(押領)하고 보내니라.

이 때에 조정백관(朝廷百官)이 홍길동이 잡아 올린단 말을 듣고, 또 수십여 명에게 분부하여 길동을 놓으라6 하고 매복(埋伏)하니라. 길동이 중도(中途)에 내달아 크게 말하여 왈,

하고, 용맹을 쓰니 철사 풍비박산(風飛雹散) 하는지라. 몸을 날아 공중으로 향하는지라. 좌우(左右) 미처 손을 잡지 못하여서 다만 하늘만 바라보더니, 이 연유(緣由)를 탑전(榻前)에 주달(奏達)하니, 상(上)이 진노(震怒)하사 우선 장교를 원찬(遠竄)하시고 백관(百官)을 모아 길동이 잡기를 의논하시니, 백관이 다 주왈(奏曰),

상(上)이 그 말을 옳히 여겨 군사를 매복(埋伏)하고, 병조판서(兵曹判書) 유지(諭旨)를 내리어 병조(兵曹) 하인으로 하여금 사면(四面)으로 흩어 기다리더니, 남대문(南大門)으로서 한 소년이 청포옥대(靑袍玉帶)에 초헌을 타고 들어와 이르되,

하거늘, 하인이 일시에 옹위(擁衛)하여 장안(長安)으로 행하여 계하(階下)에 복지(伏地) 주왈(奏曰),

말을 마치며 몸을 날아 구름을 타고 초연(超然)히 가거날, 상(上)이 처음 얼굴을 보지 못하고 기골(氣骨)을 보니 신장(身長)이 십여 척이라. 탄복하여 왈,

하시고, 이 날 팔도의 행관(行關)하고 길동의 죄를 사(赦)하고 잡으라는 관자(關子)를 거두어 이후로는 길동이 장난이 들리는 바 없는지라.

삼 년 후 추구월(秋九月) 망간(望間)이라. 상(上)이 월색(月色)을 사랑하여 두 환자(宦子)를 데리고 후원(後園)에 나가 구경하시더니, 문득 일진청풍(一陣靑風)이 일어나며 공중으로 옥저(玉笛) 소리 나거늘. 바라보니 한 소년이 내려와 복지(伏地)하거늘, 상이 대경(大驚)하여 물어 가로대,

소년이 대왈(對曰),

상이 칭찬하시고 왈,

하신데, 길동이 고개를 숙이고 주왈(奏曰),

한데, 강권(强勸)치 아니하시고 물너가라 하시니, 길동이 몸을 소소아 일진청풍(一陣靑風)을 타고 옥저를 불고 비운간(飛雲間)으로 가더라. 상(上)이 그 재주를 탄복(歎服)하더라.7

대감이 일희일비(一喜一悲)하여 길동의 손을 잡고 왈,

길동이 복지(伏地) 주왈(奏曰),

하고, 내당에 들어가 대부인과 그 모친을 보고 서로 붙들고 새로이 통곡(痛哭)하며 누년(屢年) 그리던 정(情)을 다 펴고, 더 할 말이야 어찌 다 형언하리오.

각설이라. 이날 선혜청(宣惠廳)에 분부하여 정조(定租) 천 석과 미조(米租) 천 석을 서강으로 쌓고 기다리더니, 문득 선척(船隻)이 들어와 미조 천 석을 싣고 길동과 수천 적당(賊黨)은 천은(天恩)을 축수(祝壽)하고 배를 바삐 저어 조선을 떠나 남경 근처로 이르러 제도라 하는 섬중으로 들어가, 춘절(春節)에는 농업을 힘쓰고 추동(秋冬)에 군법(軍法)을 힘쓰니 곡식이 구여(丘如)하고 재주 더욱 신기하여 천하에 망농 땅이라.

원래에 그 섬중의 근처에 안광이라 하는 뫼 있으되, 높기는 만여장이요, 골이 깊고 요해(要害) 천연(天然)이라. 산중에 울동이라 하는 짐승이 있으되 수천 년을 지내매, 자연 신기하여 사람의 형용(形容)을 무릅쓰고 언어 말 능통하는지라. 장졸 천여 명을 거느리고 한 곳에서 웅거(雄據)하여 자칭(自稱) 왕이라 하고, 민간을 다니며 풍우(風雨)를 부르며 재물도 탈취(奪取)하고, 혹 아름다운 여자 있으면 도적(盜賊)하여 첩을 삼는지라. 그 근처의 사람들이 붙들지 못하거늘, 길동이 이 말을 듣고 매일 잡기를 생각하더라.

각설이라. 길동이 하루는 제졸(諸卒)에게 분부하되,

하고 홀로 떠나가니, 산곡(山谷)이 준수(俊秀)하고 인가(人家) 즐비(櫛比)한지라. 만석군 부자 있으되, 성은 백가요 이름은 용이라. 일찍 무남독녀(無男獨女)를 두었으되 그 얼굴이 절미(絶美)하고 재색(才色)이 비범한지라. 연장(年長) 십육에 택서(擇壻)하기를 일삼더라.

일일은 홀연 풍우대작(風雨大作)하여 천지 아득하여 지척(咫尺)을 분별치 못하여, 문득 백소저 간 데 없는지라. 그 부모가 애통하여 천금을 흩어 찾으되 종적(踪迹)이 없는지라. 길동이 한 말을 듣고 헤오되, ‘필연 울동이 한 바라’하고, 측은(惻隱)이 여겨 안광산에 들어가 약을 캘새, 문득 날이 저물고 길이 희미한지라. 홀연 바라보니 인성(人聲)이 훤화(喧譁)하거늘, 불빛대로 찾아 들어가니 수천 인이 잔치를 배설(排設)하고 주육(酒肉)이 난만(爛漫)하거늘, 자세히 보니 비록 형용(形容)은 사람이나 거동(擧動)은 다른지라. 길동이 생각하여 왈,

하고, 몸을 감추고 활로 쏘아 그 장수를 맞히니 울동이 소리 지르며 제졸(諸卒)을 거느리고 달아나는지라. 길동이 따라가 잡고저 하되 밤이 깊고 갈 곳을 몰라 밤 새기를 기다려 살펴보니 그 짐승이 피를 흘리고 가거늘, 점점 찾아 가니 한 전문(殿門)이 있거늘, 멀리 서서 바라보니 가장 광활(廣闊)한지라. 그 문을 두드리니 기야(其夜)에 보던 울동이 무수히 나와 묻거늘, 길동이 왈,

하니, 울동이 문을 열거늘 길동이가 들어가니 울동이 왈,

길동이 왈,

한대, 울동이 대희(大喜)하여 들어가고저 한대 즉시 모셔오라 하거늘, 길동이 상처를 보고 왈,

울동이 대희(大喜) 왈,

한데, 길동이 낭중(囊中)에서 또 약을 내어 먹이고 보니, 그 곁에 한 미인이 나건(羅巾)으로 목을 매어 죽고자 하니 두 미인이 만류(挽留)하여 죽지 못하게 하거늘, 길동이 괴이 여겨 앉았더니 이윽하여 울동이 또 약을 먹고 견디지 못하여 배를 두드리면서 왈,

하고, 죽으니 모든 울동이 대로(大怒)하여 칼을 들고 달려들거늘, 길동이 육정육갑(六丁六甲)을 호령하니 일시에 풍우(風雨)가 대작(大作)하여 공중에서 칼이 내려와 모든 울동을 죽이거늘, 길동이 바로 방으로 들어가 삼녀(三女)를 죽이고자 하니 여자 등(等)이 울며 대왈(對曰),

하거늘, 그제야 성명 거주(居住)를 물으니, 하나는 합천현 백용의 딸이요, 둘은 정가, 조가의 딸이니, 길동이 삼녀(三女)를 데리고 합천에 이르더니, 백용에게 그 연유(緣由)를 이른대 백용이 대희(大喜)하여 일가친척을 모아 사위를 삼으니, 원앙(鴛鴦)이 녹수(綠水)를 만남 같고 비취연(翡翠燕)이 지(池)에 깃들임 같더라. 그 후에 정가조가 두 사람이 길동을 청하여 칭찬하고 각색의 딸로 첩(妾)을 삼으니, 길동이 삼십 되도록 실가지락(室家之樂)을 모르더니,8 일일은 용이 길동을 사랑하여 가산(家産)을 팔아가지고 길동을 따라 제도에 들어가니, 세월이 여류(如流)하여 섬중에 온지 이미 삼 년이라.

일일은 길동이 월색(月色)을 사랑하여 정전(正殿)을 배회(徘徊)하다가 천문(天文)을 바라보니 부친의 병세 위중(危重)하여 미구(未久)에 세상을 버릴지라. 하고, 이튿날 군졸을 거느려 십 리 내에 나와 명승지지(名勝之地)를 얻어 그 날부터 역사(役事)를 하며 좌우(左右) 성분(成墳)과 분묘(墳墓)를 능묘(陵墓)같이 하라 하고 분부 왈,

하고, 몸에 상복(喪服)을 입고 머리에 상립(喪笠)을 쓰고 소선(小船) 일척(一隻)을 타고 조선을 향하니라.

이때 홍승상이 연장(年將) 구십(九十)에 우연이 득병(得病)하여 백약(白藥)이 무효(無效)라 하고, 부인과 일형의 손을 잡고 왈,

하고, 또 춘섬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왈,

하시고, 말을 마치매 별세하니, 일형이 애통(哀痛)하고 초상(初喪)을 극진히 하여 성복(成服)을 극진히 한 후에 명승지지(名勝之地)를 얻어 장사(葬事)하고자 하더니, 일일은 시동(侍童)이 고하되,

하거늘, 일형이 고이 여겨 들어오라 하니, 그 승인(僧人)이 바로 대감 영위전(靈位前)에 대성통곡(大聲痛哭)하고 나와 상주(喪主)를 보고 왈,

하거늘, 자세이 보니 이는 곧 길동이니라. 일형이 일희일비(一喜一悲)하여 붙들고 통곡(痛哭) 왈,

손을 잡고 내당(內堂)으로 들어가 뵈여 왈,

부인이 붙들고 통곡(痛哭) 왈,

하고, 울기를 그치지 아니한데, 길동이 위로 왈,

부인이 시비(侍婢)를 명(命)하여 길동의 모(母)를 부르니, 그 모친이 이 말을 듣고 전지도지(顚之倒之) 나와 서로 붙들고 통곡(痛哭)하다가 기절하거늘, 제인(諸人)이 구하여 밤이 새도록 누년(屢年) 그리던 정을 다하고 수삼 일을 지낸 후에 길동이 일형을 데리고 한 곳에 다다르니, 길동이 앉으며 왈,

일형이 살펴보니 사방이 모두 암석(岩石)이라. 가로되,

하고, 길동이더러 다른 데로 보라 하니, 길동이 가로되,

하고, 재삼 당부하되 그 형이 듣지 아니한지라. 길동이 탄식 왈,

하고, 바위를 깨치니, 붉은 안개 하늘에 닿았고 봉황 한 쌍이 날거늘, 일형이 대경(大驚) 왈,

길동이 길이 탄식 왈,

일형이 왈,

길동이 왈,

하고, 집에 돌아와 부인께 그 연유(緣由)를 고한데 부인이 허락(許諾)하시거늘, 길동이 부인께 고왈(告曰),

부인이 즉시 허락(許諾)하시니, 길동이 그 은혜를 축수(祝手)하고 즉시 길을 구모아 상구(喪具)을 모시고 길을 떠나 서강(西江)에 다다르니, 제졸(諸卒)이 전선(戰船) 일척(一隻)을 등대(等待)하였다가 상구(喪具)를 배에 모시고 만경창파(萬頃蒼波)에 흘러 저어 수일 만에 섬중에 들어가 장처(葬處)에 이르니, 벌써 능묘(陵廟)를 다 모으고 하관(下棺)을 재촉하니 그 범절(凡節)이 도로 측량(測量)치 못할네라. 길동이 제복(祭服)을 갖추어 형을 데리고 분묘(墳墓)에 들어가 백씨와 정씨, 조씨 삼인이 이내 복(服)을 차려 시숙(媤叔)을 맞아 조문(弔問)하는지라. 오호라! 슬피 통곡하니 분묘(墳墓)에 하직하고 길동의 거처하는 방으로 들어가보니 궁궐과 위의(威儀) 길동은 왕자(王者)에 비길레라. 일형이 길동의 사사(事事) 신기한 말을 탄복하더라.

일일은 일형이 길동을 불러 왈,

한데, 길동 왈,

일형이 이튿날 발행(發行)할새, 길동과 삼 부인이 맞아 나와 이별(離別)하여 왈, 수로(水路) 만리(萬里)를 편안히 월섭(越涉)하며 다시 보기를 당부하니, 그 떠나는 정(情)이 비할 데 없더라. 제인(諸人)을 하직하고 부친 산소에 하직 통곡(痛哭)하고 길을 떠날새, 길동이 재삼 위로(慰勞)하고 채단(綵緞)과 금은(金銀)을 많이 실어 보내며 하직 왈,

일형이 길동을 위로하고 일엽(一葉) 소선(小船)을 바삐 저으니. 삼 일만에 고국에 돌아와 부인을 뵈옵고 길동의 사요 성과 사사(事事) 신기함을 절절(節節)이 탄복(歎服)하더라.

각설이라. 길동이 제도에 있어 삼년초토(三年草土)를 극진히 지낸 후에 길복(吉服)을 갖추고 제인(諸人)을 데리고 농업을 힘쓰고 군법(軍法)을 연습하니 곡식이 구산(丘山)같고 군기(軍器) 무수한지라. 원래에 근처에 율동이국이라 하는 나라 있으되, 지광(地廣)이 수천 리요, 군현(郡縣) 삼백팔십 주(州)라. 본래 해도지국(海島之國)으로 대국을 섬기지 아니하고, 율왕이 세대(世代)로 전위(傳位)하고, 사방이 무사하고 백성이 요부(饒富)하더라.

일일은 길동이 제적(諸賊)과 더불어 의논 왈,

제인(諸人)이 일시에 왈,

하거늘, 길동이 택일(擇日)하여 기군(起軍)할새 성(城)을 나와 가로되,

말을 마치니, 한 장수 출반주(出班奏),

하거늘, 모두 보니 이는 조선(朝鮮) 해동(海東) 사람 김수길이라. 신장(身長)이 팔 척이요, 좌수(左手)에 칠척장검(七尺長劍)을 들고, 우수(右手)에 홀기(笏旗)를 들었으니 웅장하고 기운이 늠름한지라. 길동이 대희(大喜)하여 즉일로 도원수(都元帥)를 정할새, 전주작(前朱雀) 최인영이요, 후현무(後玄武) 김성용이요, 좌청룡(左靑龍) 이흔열이요, 우백호(右白虎) 백호손이라. 길동이 장대에 급히 올라앉아 선봉(先鋒)을 호령하여 행군(行軍)을 재촉하여 정병 백여만 인(人)이요, 기치창검(旗幟槍劍)은 일월(日月)을 호령하고, 함성(喊聲)은 천지진동(天地震動)하더라. 한 십여 일에 율국 지경(地境)에 다다르니 각 읍 수령이 바람을 쫓아 향하는지라. 일시에 십 주(州)를 항복(降伏) 받고 도로 행하여 격서(檄書)를 율왕께 보내고,

각설이라. 이때에 율왕의 용력(勇力)이 능히 단산(丹山) 맹호(猛虎)를 잡으며, 술법은 풍운(風雲)을 부리는지라. 국정(國政)을 전폐(全廢)하고 미색(美色)을 좋아하여 날마다 잔치만 하더니, 백성이 평안치 못하여 난세(亂世)를 생각하더라. 이때 마침 소민으로 더불어 태평연을 배설(排設)하고 즐기더니, 어떠한 군사 글을 올리거늘 하였으되,

하였거늘, 율왕이 견필(見畢)로 대경(大驚)하여 연유(緣由)를 말하고 스스로 군사를 거느려 치고자 하여 군병(軍兵)을 총독(總督)할새, 남문장(南門將) 수문장(守門將)이 급히 고왈,

하거늘, 율왕이 대경(大驚)하여 서안(書案)을 치며 왈,

군병(軍兵)을 조동(躁動)할새, 최일영으로 선봉(先鋒)을 삼고 정병(精兵) 팔십만을 조발하여 동군 서를 막아 길은 되고 격서(檄書)를 전하시니, 길동이 격서를 보고 왈,

하고, 선봉장(先鋒將) 김수길로 나가 싸우라 하니, 수길이 몸에 엄심갑(掩心甲)을 입고, 머리에 칠성기린(七星麒麟) 투구를 쓰고, 우수(右手)에 장창(長槍)을 들고, 좌수(左手)에 홀기(笏旗)를 들고 진문(陣門)을 나서며 우뢰 같은 소리를 질러 왈,

하는 소리 강산(江山)이 진동(震動)하는지라. 적진(敵陣) 중에서 최일영이 엄심갑(掩心甲)을 입고, 백금투구를 쓰고, 백 근(百斤) 철퇴(鐵槌)를 들고, 만리청총마(萬里靑驄馬)를 타고 나오면서 외쳐 왈,

하고, 달려들어 서로 합하여 수합(數合)이 못하여 수길이 번듯하며 일영의 머리 마하(馬下)에 내려지는지라. 칼 끝에 꿰어들고 날랜 장수 십여 명을 한 칼로 베어 들고 좌충우돌(左衝右突)하니. 율진 장졸의 머리 끝이 구월(九月) 단풍에 낙엽 떨어지듯하는지라. 율진 중에 호잡티 선봉(先鋒) 죽음을 보고 분기(憤氣)를 참지 못하여, 칠십 근(七十斤) 장창(長槍)을 바삐 들고, 비룡마(飛龍馬)를 타고, 우레 같은 소리를 지르며 나는 듯이 나와 크게 위여 왈,

하며 달려들거늘, 수길이 대소(大笑) 왈,

하고, 서로 맞아 싸워 십여 합(十餘合)에 몸의 승부를 결단치 못하는지라. 두 장수 칼이 번개 같아서 피차 분별치 못하는지라. 다시 합하여 삼십여 합에 수길의 기운은 점점 쇠진하고 호잡티의 기운은 점점 승하니, 수길이 당치 못할 줄 알고 도망코자 하더니, 마침 길동이 장대에서 보다가 후군장(後軍將) 서성인을 불러 바삐 가 선봉(先鋒)을 구하라 한대, 성인이 팔척(八尺) 장창(長槍)을 들고 우레 같은 소리를 벽력 같이 지르며 나는 듯이 달려들어 적장 십여 원(員)을 한 칼로 베어 들고 율진 중에 헤쳐가며,

하고 장졸이 무수히 짓쳐 좌충우돌(左衝右突)하니, 수길이 서성인의 말을 보고 기운을 돋우어 싸우니, 호잡티 능히 당치 못할 줄을 알고 달아나거날, 경인이 크게 호통하여 왈,

하고 달려들거늘, 호잡티 놀래여 돌아보니 앞에는 서성인이요 뒤에는 수길이 따르는지라. 죽기로써 싸움을 하더니 십 합이 못하여 성인의 칼이 번듯하며 호잡티 머리 내려지는지라. 칼 끝에 꿰여 들고 마상(馬上)에서 칼춤 추며 승전고(勝戰鼓)를 울리며, 양장(兩將)이 합세(合勢)하여 바로 율왕을 향하여 들어가니, 장졸의 머리를 물에 풀 뿌리듯하며, 우레 같은 소리를 질러 왈,

하는 소리 강산(江山)이 치솟는 듯, 율진 중에 장졸이 이제 눈이 어두워 정신이 아득하여 감히 싸울 자(者) 없는지라. 율왕이 분기(憤氣)를 참지 못하여 몸에 엄심갑(掩心甲)을 입고, 머리에 칠성기린(七星麒麟) 투구를 쓰고, 만리청룡마(萬里靑龍馬)를 타고, 팔십근(八十斤) 장창(長槍)을 들고, 진문(陣門)에 나서며 크게 위여 왈,

하거늘, 수길과 성인이 바로 보니, 신장(身長)이 십여 척이요, 사나운 거동(擧動)은 단산(丹山) 맹호(猛虎) 밥을 노려보는 듯하는지라. 한 번 보매 눈이 어둡고 정신이 막막(漠漠)한지라. 양장(兩將)이 서로 보아 왈,

하고, 기운을 가다듬어 크게 위여 왈,

하니, 율왕이 대로(大怒)하여 바로 들어 양장(兩將)이 맞아 싸와 십 합이 못하여 수길과 성인의 기운이 쇠진하여 달아나는지라. 율왕이 우레 같은 소리를 질러 왈,

군사를 호령하여 금삼주 작북현에 모아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로 원앙진(鴛鴦陣)을 쌓고, 내(內)에 생살문(生殺門)을 두어 양장(兩將)을 에워싸니, 삼백여 첩에 쌓이었는지라. 양장(兩將)이 칼을 들고 아무리 헤친들 장창검극(長槍劍戟)이 별질 듯하고, 율왕이 풍운(風雲)을 부려 명랑(明朗)한 천지 아득하며 어둠이 군졸의 몸을 침노하니, 할 길이 없어 하늘을 우러러 탄식(歎息) 왈,

하고, 빌기를 마지 아니하더니, 이때 길동이 장대에서 양장 싸움을 보고 좌우(左右) 제장을 불러 뒤를 따르라 하고, 비룡마(飛龍馬)를 바삐 몰아 팔십근(八十斤) 장창을 들고 우레 같은 소리를 지르고, 율왕 진중(陣中)을 헤쳐 날낸 장수 이십여 원(員)을 한 칼에 베어들고 육정육갑(六丁六甲)을 호령하니, 천지 명랑하고 율진 장졸이 호통 소리에 양의를 수습치 못하고, 양장이 또한 기운을 돋우어 군사를 짓치고 헤쳐나와 합세하여 율왕을 맞아 싸울새, 율왕이 수다(數多)한 풍운(風雲)을 부리며 변화 무궁하고, 용맹이 번개 같은지라. 길동이 제장을 호령하여 전후좌우(前後左右)로 높이 치니, 율왕이 죽는 사람의 손을 잡아 살리며 칼로 장졸을 무수히 짓치는지라. 길동이 평생 힘을 다하여 싸워 백여 합(百餘合)에 승부를 결단치 못하고 날이 저물고 월출동령(月出東嶺)하니라. 서로 태평(太平)하고 본진(本陣)으로 돌아오니라. 율왕이 본진(本陣)에 돌아와 대성통곡 왈,

한대, 장하에 한 장수 출반주(出班奏) 왈,

하거늘, 모두 보니 이는 백이문이라. 율왕이 대희(大喜)하여 백이문으로 선봉(先鋒)을 삼고 대장군 절월(節鉞)을 주어 왈,

하니, 사은숙배(謝恩肅拜)하고 밤 새기를 기다리더라.

이때 길동이 본진(本陣)에 돌아와 제장을 불러 왈,

하고, 선봉장(先鋒將) 수길, 후군장(後軍將) 성인을 불러 왈,

하고, 최인엽과 김성용을 불러 왈,

하고, 이흔열과 백호손을 불러 왈,

하고, 남은 장졸을 거느려 호진산을 지나 김학산에 가,

하니, 제장이 영(令)을 듣고 밤 새기를 기다리더니, 명일(明日)로 율왕 진중(陣中)서 백이문이 엄심갑(掩心甲)을 입고 머리에 순금(純金) 투구를 쓰고, 비룡마(飛龍馬)를 타고, 장창(長槍)을 빗겨 들고, 진문(陣門)에 나서며 크게 위여 왈,

하거늘, 수길과 성인이 응성출마(應聲出馬)하여 나는 듯이 달려들어 맞아 싸워 십 합이 못하여 수길의 칼이 번듯하며 적장의 머리 내려지는지라. 승세(勝勢)하여 장졸을 무수히 짓쳐 들어가니, 율왕이 선봉(先鋒) 죽음을 보고 분기(憤氣)를 이기지 못하여 장창(長槍)을 빗겨 들고 나는 듯이 달려들어 양장(兩將)을 맞아 싸워 십여 합에 수길과 성인이 거짓 패하여 건주산을 바라보고 달아나니, 율왕이 소리를 지르며 급히 달아나 건주산 하(下)에 다다르니, 일성방포(一聲放砲)에 한 떼 복병(伏兵)이 내달아 길을 막으며 최인엽과 김성용이 장창(長槍)을 들고 싸우다가 거짓 패하며 호진산을 바라보고 달아나매, 율왕 더욱 승세(勝勢)하여 급히 떠나 호진산 하(下)에 다다르니, 방포일성(放砲一聲)에 복병(伏兵)이 일어나며 이흔열과 백호손이 장창(長槍)을 들고 싸우다가 거짓 패하여 김학산을 바라보고 달아나니, 율왕 종일 기운을 다하여 오륙(五六) 장(將)을 연(連)하여 싸우매, 기력(氣力) 기진할 뿐아니라, 또 보니 복병(伏兵)이 있는가 의심하여 따라오지 아니하거늘, 이흔열이 다시 합하여 싸우다가 거짓 패하여 욕을 무수히 하니, 율왕이 대로(大怒)하여 급히 나오거늘, 김수길과 서성인과 김성용 등이 서로 합세(合勢)하여 싸우며 달아나며 김학산으로 들어가니, 율왕이 더욱 승세(勝勢)하여 급히 따라와 계곡에 들거늘, 방포일성(放砲一聲)하고 좌편으로 매복(埋伏)하니라.

이 때 길동이 장졸을 거느리고 김학산에 들어와, 육정육갑(六丁六甲)을 호령하여 무수한 돌에 신장(神將)의 혼백(魂魄)을 부쳐 사십팔진(四十八陣)을 쌓고 내(內)에 생살문(生殺門)을 두고 기다리더니, 방포(放砲) 소리를 듣고 급히 호령하니, 일시에 뇌성풍운(雷聲風雲)이 대작(大作)하며, 천지(天地) 진동(震動)하며, 지척(咫尺)을 분별치 못하며, 마상(馬上)으로서 무수한 돌이 구르는 소리 강산(江山)이 뛰노는 듯하는지라. 돌 마다 구르면 율왕이 정신이 아득하여 사면을 살펴보니, 군사 다 돌로 맞아 죽고 독부(獨夫) 되었는지라. 할 길이 없어 하늘을 우러러 탄식(歎息) 왈,

하며 또,

하고 칼을 들어 자문(自刎)하니, 길동이 율왕의 신체(身體)를 거두어 왕례(王禮)로 안장(安葬)하고, 도성(都城)에 들어가 택일(擇日)하여 대연(大宴)을 배설(排設)하고, 길동이 즉위(卽位)하여 국호(國號)를 고쳐 망선국(望鮮國)이라 하고, 부친을 높여 평숙황제라 하고, 그 모친으로 평열왕후를 봉(封)하시고, 백씨로 대행왕비라 하고, 제장(諸將)을 차례로 공(功)을 나눌새, 김수길로 좌승상(左丞相)을 삼고, 서성인으로 우승상(右丞相)을 삼고, 백호손으로 좌장군(左將軍)을 삼고, 김성용으로 우장군(右將軍)을 삼고, 이흔열로 좌판서(左判書)를 삼고, 최인엽으로 형조판서(刑曹判書)를 삼고, 그 남은 장수(將帥)는 각각 공(功)을 더하고 인정을 행하여 백성을 다스리니, 일국이 태평(太平)하고 사방에 일이 없고, 요지일월(堯之日月)이요 순지신군(舜之臣君)이라. 백성이 만세를 부르더라.

각설이라. 백씨는 일남일녀(一男一女)를 두고, 정씨는 삼남일녀(三男一女)를 두고, 조씨는 남삼녀(男三女)를 두었으되, 다 인물이 비범(非凡)하여 선친(先親)의 유풍(遺風)이 있는지라. 왕이 백씨의 아들로 태자(太子)를 삼으니라.

일일은 왕이 조신(朝臣)을 모아 의논 왈,

각설이라. 일형이 한번 고국으로 돌아와 삼년초토(三年草土)를 극진히 지내고, 길이 요원(遙遠)하기로 다시 가지 못하고 주야(晝夜)로 길동만 생각하였더니, 일일은 시동(侍童)이 고(告)하되,

하거늘, 일형이 급히 개탁(開坼)하니 하였으되,

하였더라. 일형 견필(見畢)로 대경(大驚)하여 내당(內堂)에 들어가 부인께 고한대, 부인이 이 말을 듣고 일희일비(一喜一悲)하더라. 일형이 즉일로 비단을 간수하고, 사자(使者)를 데리고 궐내(闕內)에 들어가 채단(綵緞)과 글월을 올린대, 즉시 개탁(開托)하시니 하였으되,

하였거늘,상이 견필(見畢)에 대경(大驚)하여 왈,

하시고, 즉시 회답하니라.

일형이 수일 후에 부인께 하직하고 사자(使者)를 데리고 일엽소주(一葉小舟)를 타고 여러 날 만에 망선국(望鮮國) 지경(地境)에 다다르니, 먼저 노문(路文)을 보내니, 왕이 이 말을 듣고, 백관을 거느리고 이십 리 밖에 나와 대후(待候)하여 따르는 형의 행차(行次)를 보고 전지도지(顚之倒之)하여 그 형을 붙들고 대성통곡 왈,

서로 붙들고 옛 말을 이르고, 바로 부친 산소로 들어가 재배(再拜) 통곡하고, 형을 모시고 환궁(還宮)하니 평열황후와 대행왕후와 정씨, 조씨 맞아 나와 반기는지라. 그 정을 비할 데 없더라.

조선국왕이 또 서간(書簡)을 보고 하였으되,

하였더라.

일형이 수월(數月) 머문 후에 부친 산소에 하직 통곡하고, 왕과 제인(諸人)을 하직하고, 비단 배를 실어 보내니, 일형이 여러 날 만에 고국에 돌아와 부인께 문안하고 길동의 신기함을 탄복하더라.

각설이라. 정열왕후 우연 득병(得病)하여 별세하니 왕이 애통하기를 극진이 하고 부친 산소에 분자하고 삼 년을 애통으로 지내더라.

각설. 이 때 길동이 연(年)이 팔십(八十)이라. 태자 명덕(明德)이 있어 백성을 다스리니 일국(一國)이 태평(太平)하더라. 여러 해 지난 후에 왕이 별궁(別宮)에 거처(居處)하더니, 일일은 일장 호접(胡蝶)이 길을 인도(引導)하여 한 곳에 다다르니, 사람이 손을 잡고 위로 왈,

하고 술을 주거늘, 먹으니 정신이 씩씩하거늘, 이전(以前) 천상(天上)에서 행하던 일이 완연한지라. 그 중에 한 사람이 가로되,

하고 크게 웃거늘, 소리에 깨달으니 남가일몽(南柯一夢)이라. 심신(心身)이 황홀하더니 과연 그 달부터 기운이 불평하여 백약(百藥)이 무효(無效)한지라. 태자를 불러 손을 잡고 가로대,

하시고 승하(昇遐)하시더니, 태자 망극애통(罔極哀痛)하여 초상을 극진이 한 후에 선산(先山)에 안장(安葬)하고, 삼년을 지낸 후에 성덕(聖德)을 행하여 백성을 다스리고, 일국(一國)이 태평(太平)하여 강구연월(康衢煙月)로 격양가(擊壤歌) 전자전손(傳子傳孫)하여 만만(滿滿) 도읍인(都邑人)들을 상대하니, 여운간지명월(如雲間之明月)이요, 주순(朱脣)을 반개(半開)하니 천정세월(天定歲月) 인정수(人定壽)요 춘만건곤(春滿乾坤) 복만가(福滿家)라.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李太白)이 놀던 달아. 이태백이 없어지면 누구와 함께 노자느냐. 반월이야, 네가 무슨 반월이야, 그믐 초생 반월이지 네가 무슨 반월이야.

갑술년(甲戌年) 정월(正月) 이 책 등서(謄書)하노라.정월(正月) 염팔일(念八日) 날 등서(謄書)하노라. 이 책 글씨는 흉괴괴(凶怪怪)하니 만인간(萬人間)의 부인들 보고, 웃고 빗고 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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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래

엮인 글


  1. 원문 입력자 주: 차를 올리는 시비 춘섬과 관계를 갖는다는 내용이 빠졌다. (1)

  2. 원문 입력자 주: ‘하늘이 만물을 내시매’는 뒤에 나오는 대목인데 잘못 필사한 것이다. (2)

  3. 원문 입력자 주: 내용이 빠졌음. (3)

  4. 원문 입력자 주: 크게 방문을 써 붙인다는 내용이 빠졌음. (4)

  5. 원문 입력자 주: 협력할 사람이 없다는 내용이 빠졌음. (5)

  6. 원문 입력자 주: 도감포수에게 총을 쏘라고 하는 내용이 빠졌음. (6)

  7. 원문 입력자 주: 길동이 집에 들리는 내용이 빠졌음. (7)

  8. 원문 입력자 주: 일조에 세 여자를 취하니 그 정이 비할 데 없다는 내용이 빠졌음. (8)

홍길동전/홍길동전이(박 순호 86장본)/현대문 (last edited 2010-05-10 20:44:06 by 78-23-64-46)